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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추모' 전현직 연합사령관 8명 나섰다
경북 다부동서 오늘 1주기 행사 "白 장군은 조지 워싱턴 같은 분"
전직 사령관 등 7명 추모 메시지, 러캐머라 現사령관은 직접 참석
우리 정부 공식 추모행사 안열어

입력 : 2021.07.09 03:24
본지는 고 백선엽 장군 별세 1주기(7월 10일)를 맞아 고인이 생전에 소장했던 앨범을 입수, 6·25전쟁 당시 백 장군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 일부를 공개한다. 왼쪽 사진은 1951년 3월 서울 탈환 작전을 앞두고 대화하는 백선엽(오른쪽) 당시 1사단장과 매슈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 오른쪽 사진은 같은 해 4~5월 중공군의 춘계 공세가 실패한 뒤 강원도 삼척의 1군단을 방문한 미군 수뇌부에게 작전 상황을 설명하는 백선엽(맨 오른쪽) 당시 1군단장. /고 백선엽 장군 앨범
본지는 고 백선엽 장군 별세 1주기(7월 10일)를 맞아 고인이 생전에 소장했던 앨범을 입수, 6·25전쟁 당시 백 장군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 일부를 공개한다. 왼쪽 사진은 1951년 3월 서울 탈환 작전을 앞두고 대화하는 백선엽(오른쪽) 당시 1사단장과 매슈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 오른쪽 사진은 같은 해 4~5월 중공군의 춘계 공세가 실패한 뒤 강원도 삼척의 1군단을 방문한 미군 수뇌부에게 작전 상황을 설명하는 백선엽(맨 오른쪽) 당시 1군단장. /고 백선엽 장군 앨범

9일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별세 1주기 추모 행사를 앞두고 전직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7명이 영상 등으로 추모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주 취임한 폴 러캐머라 신임 한미연합사령관은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이 행사에 직접 참석한다. 전·현직 주한미군 최고 수뇌부 8명이 전례 없이 뭉쳐 한국군 전쟁 영웅을 기리는 것이다. 미군은 백 장군 생전 그를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예우해왔다.

백 장군 1주기 행사는 한미동맹재단(회장 정승조 전 합참의장)과 주한미군전우회(회장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공동 주최로 9일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경북 칠곡 다부동에서 개최된다. 서욱 국방장관,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다만 국방부나 국가보훈처 등 정부 차원의 공식 추모 행사는 열리지 않는다.

◇"백 장군은 절대적 애국자" 추모

백 장군 추모 메시지를 보내온 전직 한미연합사령관들은 빈센트 브룩스, 존 틸럴리, 토머스 슈워츠, 버웰 벨, 제임스 서먼, 월터 샤프, 커티스 스캐퍼로티 예비역 대장 등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미리 배포된 환영사에서 "다부동에서 백선엽 대장님의 용맹한 저항과 적과 기꺼이 맞서는 투지는 모든 미군에게 결의를 불어넣었고, 이를 통해 전세를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한미 동맹과 대한민국을 위해 일생 동안 수훈을 남겼던 대장님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슈워츠 전 사령관은 "제가 군에서 복무했던 35년 동안 위대한 지도자를 많이 만났는데 백 장군님은 가장 위대한 분 중 한 명"이라며 "백 장군님과 포옹했을 때의 사진을 갖고 있는데 제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했다.

틸럴리 전 사령관은 "백 장군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조국이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쓴 그의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한다"며 "백 장군님은 이 위대한 나라와 위대한 사람들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절대적인 애국자였다"고 했다. 벨 전 사령관은 "저는 항상 백선엽 대장을 미국의 조지 워싱턴 장군에 비유해왔다"며 "워싱턴 장군은 미국이 자유를 찾는 데 기여한 존경받는 고위 군사 지도자였고, 백 장군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켜낸 것과 같다"고 했다. 서먼 전 사령관은 "그는 자유의 대가와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한국 국민들뿐 아니라 미국 군인들에게도 큰 유산을 남겼다"고 추모했다.

◇우리 정부는 별도 행사 안 열어

추모 행사가 열리는 칠곡 다부동은 백 장군을 상징하는 곳이다. 1950년 8월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30세였던 백선엽 1사단장은 후퇴하는 한국군을 가로막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장병들을 독려했다. 결국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패퇴 직전의 전세를 뒤집었다.

백 장군은 1952년 7월 최연소(32세)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정전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한국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현 여권 일각은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일본군에서 복무한 기록만 부각하며 그를 '독립군 토벌 친일파'로 폄훼·매도해왔다. '현충원 파묘'를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가 백 장군 1주기 추모 행사를 별도로 열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도 "백 장군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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