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주 III V 수직이착륙 전투기
첫 단추부터 잘못 꿴 VTOL 전투기
  • 윤상용
  • 입력 : 2021.06.17 08:32
    미라주 III V 수직이착륙 전투기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III V 수직이착륙 전투기 <출처: Dassault Aviation>


    개발의 역사

    제자리에서 활주로를 이용하지 않고 이륙하는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개념은 이미 항공기 역사의 초창기부터 오랜 도전 과제였다. 유인형 수직이착륙 항공기의 시초인 ‘헬리콥터’의 모습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스케치에 처음 등장했지만 실질적인 유인형 VTOL 항공기의 개발이 시작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20세기 중반이었다. 항공기가 본격적으로 전장에 등장하면서 ‘적의 활주로 파괴’는 중요한 전략 목표가 되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활주로가 필요 없는’ 항공기의 개발이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활용할 수준의 VTOL 전투기는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끝내 등장하지 못했다. 또한 VTOL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던 연합국과 추축국은 모두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VTOL 전투기 개발의 시급성이 떨어졌고, 전쟁 간 쌓인 전비 부채와 재건 비용 등 경제 문제에 집중함에 따라 모든 개발 노력이 중단됐다.

    NBMR-3 사업으로 인해 NATO 회원국 산하의 항공기제작사들은 다양한 수직이착륙기모델을 선보였다. 사진은 독일 VFW사가 선보인 VAK 191B 수직이착륙기이다. <출처 : Public Domain>
    NBMR-3 사업으로 인해 NATO 회원국 산하의 항공기제작사들은 다양한 수직이착륙기모델을 선보였다. 사진은 독일 VFW사가 선보인 VAK 191B 수직이착륙기이다. <출처 : Public Domain>

    다시 VTOL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1950년대 말, 냉전이 본격화되면서였다. 이 시기에 미국과 유럽은 대륙으로 이어져 있는 소련과 소련 위성 국가들이 서방 국가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활주로부터 파괴하는 상황을 우려하게 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위시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맹국들은 1960년 미래에 도입해야 할 전투기 설계의 상세 요구도를 발행한 "북대서양조약기구 기본 군사요구도-3", 통칭 NBMR-3(NATO Basic Military Requirement-3)를 내놓았다. NBMR-3 사업은 두 개로 나뉘어 NBMR-3a는 초음속 전투기, NBMR-3b는 초음속 전폭기의 상세 요구도를 담았으며, 두 요구도 모두 소련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VTOL 능력을 필수로 포함했으며, 전투 범위 460km, 순항 속도 마하 0.92, 최고 속도 마하 1.5, 탑재 중량 910kg, 무장 탑재 시에도 150m 활주 후 15m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륙할 수 있을 것을 요구했다. 동구권과 최전방에 인접한 서독은 이 사업을 통해 신형 VTOL 전투기가 도입되면 기존 NBMR-1으로 1953년에 도입한 이탈리아 피아트(Fiat)의 G.91과 미제 F-104G 스타파이터(Starfighter)를 대체할 계획을 수립했다.

    외관상으로는 미라주 IIIV와 거의 동일한 기술 시연기인
    외관상으로는 미라주 IIIV와 거의 동일한 기술 시연기인 "발자크(Balzac) V". (출처: Dassault Aviation)

    NBMR-3이 정식으로 발행되자 1962년 초까지 11여 개의 유럽 항공업체가 요구도에 맞춘 제안서를 제출했다. 대표적인 업체는 영국의 호커-시들리(Hawker-Siddeley), 잉글리시 일렉트릭(English Electric), 비커스(Vickers), 프랑스의 다쏘(Dassault), 그리고 미-독 컨소시엄인 포케-리퍼블릭(Fokker-Republic) 등이었다. 이번 사업은 NATO가 이미 만들어져 있던 항공기를 오프-더-쉘프(Off-the-shelf: 기존에 나와있는 완제기 구입) 방식이 아닌 ‘NATO의 요구도에 따라 개발된 첫 NATO용 항공기’라는 상징성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이들 업체가 모두 전력투구했다. NATO는 이들 업체가 제안한 11개의 제안서를 면밀히 검토했으며, 최종 후보로 호커-시들리의 P.1154와 다쏘의 미라주(Mirage) IIIV 제안서를 골랐다. 당시 이 결정은 두 가지 관점에 중점을 두고 내려졌다. 하나는 기술적 우위였고, 또 다른 하나는 산업계에 미칠 경제적 영향성이었다. NATO는 P.1154 쪽이 기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 반면, 미라주 IIIV는 사업이 제안한 국제 협업 부분 때문에 정치적으로 NATO 가맹국의 입맛에 맞았다. 결국 ‘최고의 성능’을 갖춘 항공기를 선택하느냐, 항공산업계 전반에 이익이 될 항공기를 고르느냐를 놓고 오랜 논쟁이 있었으며, 결국 NATO는 1962년 5월 자로 호커-시들리의 P.1154를 선택했다.

    외관상으로는 미라주 IIIV와 거의 동일한 기술 시연기인 "발자크(Balzac) V". (출처: Dassault Aviation)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미라주 IIIV 설계가 탈락하자 NATO 국제공동개발 사업 자체에서 탈퇴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미라주 IIIV가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수직 이륙을 위해 엔진을 8개나 장착했으므로 개발 및 생산이 복잡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쏘는 NBMR-3 사업에서 나온 후 미라주 IIIV를 실현화하기 위한 개발에 돌입했으며, 이에 1962년 미라주 IIIV 설계안의 실(實) 기체이자 VTOL 테스트베드 항공기인 ‘발자크(Balzac) V’를 완성했다. 발자크 V는 미라주 IIIV 계획안을 당시 현존 기술로 우선 개발하여 비행 데이터를 수집할 목적으로 제작했다. 발자크 V는 1962년 10월 수직 이륙 후 호버링에 성공했고, 1963년 초에는 수직 이륙에서 수평 비행 전환도 성공했지만 1964년 1월과 9월에 치명적인 추락 사고가 두 차례 발생해 기체가 소실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쏘는 발자크 V를 완성한 직후 별도의 라인으로 미라주 IIIV의 시제기도 개발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다시 최초의 미라주 IIIV 계획으로 돌아오게 됐다. IIIV는 프랫앤위트니(Pratt & Whitney)사의 TF306 엔진을 장착하여 1966년 초부터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1966년 3월 24일에는 다쏘 수석 조종사인 장마리 사게(Jean-Marie Saget, 1929~2020)의 조종으로 수직 이륙 후 수평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2번기가 완성되면서 최대 마하 2.04까지 도달했으나, 시제기 두 대 모두 수직 이륙 후 수평 비행으로 초음속 돌파까지는 해보지 못했다.

    수직 이륙 중인 미라주 IIIV. (출처: Dassault Aviation)
    수직 이륙 중인 미라주 IIIV. (출처: Dassault Aviation)

    1966년 11월 28일, 미라주 IIIV의 2번기가 시험 비행을 하던 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번기는 완전히 소실됐으며, 프랑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미라주 IIIV 개발 사업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이미 1965년에 경쟁작이던 영국의 P.1154가 시제기 조립 중 영국 정부에 의해 사업이 중단된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P.1154 취소 후에도 미-영-서독이 공동으로 P.1154의 사촌 격인 호커-시들리 케스트렐(Kestrel) VTOL 전투기 시험 평가를 계속했으며, 이는 결국 훗날 VTOL 전투기의 최대 성공작인 호커-시들리 해리어(Harrier) 및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 現 BAE 시스템즈) 해리어 II VTOL 전투기 개발로 이어졌다.


    특징

    미라주 IIIV(미라주 III를 베이스로 한 수직이착륙[VTOL] 기체라는 의미로, ‘35’가 아니라 미라주 3-V로 읽는다)는 초음속 비행 능력을 갖춘 VTOL 전투기를 목표로 개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미라주 IIIV의 기본 설계는 기존 원통형의 삼각익을 갖춘 미라주 시리즈와 공통성을 갖고 있으나, 추력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체와 주익 크기가 커졌다.

    아래에서 바라본 미라주 IIIV. 수직 이륙을 위한 리프트 엔진 추진구 8개가 보인다. (출처: Dassault Aviation)
    아래에서 바라본 미라주 IIIV. 수직 이륙을 위한 리프트 엔진 추진구 8개가 보인다.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IIIV는 수직 이륙을 위해 총 8개의 리프트 엔진을 장착했고, 수평 비행을 위한 메인 엔진을 따로 두었다. 수평 비행을 위해서는 프랫앤위트니의 JTF10 터보팬 엔진을 장착했으며, 수직 이륙을 위해서는 영국 롤스-로이스의 RB162-1 엔진 8기를 설치했다. 리프트 엔진은 동체 중심선을 따라 쌍으로 설치되어 네 줄로 장착됐다.

    아래에서 바라본 미라주 IIIV. 수직 이륙을 위한 리프트 엔진 추진구 8개가 보인다.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IIIV 설계의 핵심 중 하나는 하부 리프트 엔진 앞에 움직일 수 있도록 장착된 추력 디플렉터(Deflector) 도어이다. 이 도어는 지상에 있을 땐 45도 후방으로 꺾여 있도록 해 뜨거운 가스 열과 파편 조각들을 최대한 항공기에서 멀리 밀어내도록 했다. 그리고 엔진 추력을 최대로 올리면 도어가 자동으로 90도로 일어서 최대한의 수직 추력을 내도록 설계했다. 당시 개발사인 다쏘는 미라주 IIIV가 적정 고도에서 비행할 경우 마하 2.3, 저고도에서 비행할 경우 마하 1.15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미라주 IIIV. (출처: Pline/Wikimedia Commons)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미라주 IIIV. (출처: Pline/Wikimedia Commons)

    미라주 IIIV는 개발 간 전기 계통 설계가 계속 문제가 됐다. 워낙 내부 설계와 엔진 설계가 복잡해 이 부분에서 비용 증가가 크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라주 IIIV에 사용된 사출좌석과 부가 전기 계통은 훗날 미라주 F-1으로 명명된 미라주 IIIF를 개발할 때 재사용됐다.


    운용 현황

    미라주 IIIV는 최초 NBMR-3 사업을 위해 개발됐으나, NBMR-3 사업에서 탈락하면서 두 단계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첫 단계는 NBMR-3 사업 탈락 후 VTOL 기술 시연과 데이터 수집을 위해 제작한 ‘발자크-V’이며, 두 번째는 실제 제작된 미라주 IIIV이다. 다쏘는 최초 미라주 IIIV용 엔진으로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RB162 엔진을 장착할 계획이었으나, 미라주 IIIV 초도기 개발 때까지 엔진이 완성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우선 8기의 롤스-로이스 RB-108 엔진을 수직이륙용 리프트(lift) 엔진으로 장착했다. 각 엔진은 최대 이륙 추력 9.83kN(2,210파운드)를 냈으며, 메인 엔진은 미라주 III의 스네크마(Snecma, 現 사프란) 아타르(Atar) G.2 엔진 대신 브리스톨-시들리(Bristol-Siddeley)의 21.57kN(4,850파운드)급 오르피우스(Orpheus) BOr 3 엔진을 장착했다.

    미라주 III V(앞)와 발자크 V(뒤)의 모습. 두 기체 모두 실패작으로 기록된다.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III V(앞)와 발자크 V(뒤)의 모습. 두 기체 모두 실패작으로 기록된다. <출처: Public Domain>

    발자크 V는 1962년 10월 13일, 계획보다 반 년 일찍 수직 이륙 후 호버링에 성공했으며, 1963년 3월 18일, 17차 시험 비행 중 수직 이륙에서 수평 비행으로 전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발자크 V는 1964년 1월 10일, 125차 비행 중 저고도 호버링 상태에서 주익 떨림 현상이 발생하다가 균형을 상실했다. 이때 리프트 엔진 추력이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기체가 왼쪽으로 전복되면서 그대로 지상으로 급격하게 추락해 파손됐고, 조종사인 자끄 피니에(Jacquest Pinier) 역시 탈출에 실패해 사망했다. 발자크 V는 다시 수리되어 1965년 2월 2일부터 비행을 재개했지만 같은 해 9월 8일, 미 공군에서 미-불 VTOL 정보 교환 사업으로 파견 나와있던 P.E. 닐(Neale) 소령이 비행하던 중 똑같이 저공에서 기체가 뒤집혀 추락했다. 닐 소령은 기체가 불안정하자 사출을 시도했지만, 낙하산 개방 고도가 아니었으므로 결국 사망했다. 결국 이 사고로 발자크 V의 유일한 시제기가 파손되자 개발은 완전히 중단됐다.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 중인 시제기 1번기. 수직 이륙을 위해 리프트 제트 엔진 흡입구가 동체 상부에 열려있는 것이 보인다. (출처: Dassault Aviation)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 중인 시제기 1번기. 수직 이륙을 위해 리프트 제트 엔진 흡입구가 동체 상부에 열려있는 것이 보인다. (출처: Dassault Aviation)

    하지만 발자크 개발 성공 후 다쏘는 별도로 미라주 IIIV 시제기를 완성했으며, 엔진으로는 프랫앤위트니사의 JTF10 터보팬 엔진의 파생형인 JTF104를 채택했다. 하지만 출력이 다소 낮을 것으로 예측한 다쏘는 시제기의 시험 비행 전까지 엔진을 74.5kN(16,750파운드)급의 JTF106 엔진으로 교환했으며, 미라주 IIIV는 1966년 3월에 첫 수직 이륙 후 수평 비행으로 전환에 성공했으며, 차기 비행에서는 활주 이륙 후 마하 1.32 도달에 성공했다. 다쏘는 1966년부터 2번기에 엔진 출력을 82.4kN(18,500 파운드)로 향상시킨 TF306 엔진을 장착했다. 2번기는 수평 비행 중 마하 2.04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지만 1966년 11월 28일에 사고로 기체를 소실했다. 이때까지 미라주 IIIV는 수직 이륙 후 수평 전환은 성공했지만 이 상태로 초음속을 돌파하는 데엔 실패했는데,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당대 기술로 마하 2 속도의 VTOL 전투기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실상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미라주 III V 초도기의 모습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III V 초도기의 모습 <출처: Dassault Aviation>

    사실 미라주 IIIV는 처음부터 실전 도입이 가능한 “현실적” 설계가 아니었다. 우선 리프트 엔진을 하나만 채택한 ‘케스트렐’과 달리 리프트 엔진을 여덟 개나 장착한 것은 유지 관리 면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나만 고장으로 꺼지면 균형이 틀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완성했다고 치더라도 엔진이 아홉 개나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속 거리나 탑재 중량 등을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NBMR-3 사업의 승자가 된 경쟁작인 호커-시들리의 P.1154가 현실적인 것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다수의 엔진 탑재와 복잡한 메커니즘 때문에 고가의 항공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이다. 당시 NATO 가맹국 상당수는 고가의 항공기를 대량으로 구매할 예산 자체가 없었다. 이 때문에 NBMR-3 사업의 승자로 P.1154가 채택됐을 때 대다수의 NATO 국가들은 NATO의 결정과 무관하게 P.1154를 구입할 의향이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NATO 공통 전투기”가 탄생하기엔 시기 상조였던 것이다.

    1965년, 시험 비행 중 촬영된 미라주 IIIV. (출처: Public Domain)
    1965년, 시험 비행 중 촬영된 미라주 IIIV. (출처: Public Domain)



    파생형

    미라주 IIIV-01: 미라주 IIIV 시제기 1번기. TF104 엔진을 장착했다가 16,750 파운드급 TF106 엔진을 장착했다.

    파리 르부르제에 위치한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Musée de l'air et de l'espace)에 전시 중인 미라주 IIIV. 1번기로 추측된다. (출처: ignis/Wikimedia Commons)
    파리 르부르제에 위치한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Musée de l'air et de l'espace)에 전시 중인 미라주 IIIV. 1번기로 추측된다. (출처: ignis/Wikimedia Commons)

    미라주 IIIV-02: 시제기 2번기. 18,500 파운드급 TF306 엔진을 장착했다. 추락으로 파손됐으며 수리되지 않고 폐기됐다.

    발자크 V: 미라주 IIIV 설계의 기술 시연을 위해 제작한 기체. 미라주 IIIV보다 소형으로, 전장은 13.1m에 날개 길이는 7.3m, 자체 중량은 6,124kg에 불과했다. 수평비행용 엔진은 브리스톨 시들리사의 B.Or3 오르피우스 엔진을 장착했으며, 수직 이륙을 위한 리프트 엔진은 롤스-로이스사의 RB108-1A 엔진 8기를 장착했다. 단 한 대만 제작되었으며, 사고로 파손 후 폐기했다.

    시험평가용 기체로 오직 1대만 제작된 발자크 V <출처: Dassault Aviation>
    시험평가용 기체로 오직 1대만 제작된 발자크 V <출처: Dassault Aviation>



    제원

    용도: VTOL 전투기 및 기술 시연용 시제기
    제작사: 다쏘(Dassault)
    승무원: 1명
    전장: 18m
    전고: 5.55m
    날개 길이: 8.72m
    최대 이륙 중량: 12,000kg
    자체 중량: 6,750kg
    추진체계: 19,842파운드급 프랫앤위트니/스네크마 TF104 애프터버닝 엔진 x 1(수평 비행)
                    4,409파운드급 롤스-로이스 RB162 터보제트 엔진 x 8(리프트 엔진)
    무장: 없음(하드포인트만 4개)
    최고 속도: 마하 2.04
    실용 상승 한도: 17,000m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미라주 III V 수직이착륙 전투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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