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0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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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판터 구축전차

제2차 대전 최고의 전차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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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전차 차체에 당대 최강의 8.8cm 대전차포를 장착한 판터구축전차는 5호 구축전차로도 불리며 제2차 대전 당시 최고의 전차 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렸다. < 출처 : (cc) Makizox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18년 4월 24일, 프랑스 북부의 국경 도시인 빌레-부르토뉴에서 독일군 A7V 전차 3대와 영국군 Mk. IV 전차 3대가 마주했다. 상대의 존재를 확인한 양측은 곧바로 돌격에 들어가 주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며 전투를 시작했다. 각각 한 대씩 상실하고 1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나 규모나 전과가 전선에 미친 영향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는 전쟁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사건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기갑전이었던 것이다.

페르디난트(엘레판트)는 기동성이 좋지 않고 기계적 신뢰성도 나빴지만 쿠르스크 전투에서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이에 히틀러는 이를 후속할 구축전차의 개발을 명령했다. < 출처 : (cc) Scott Dunham at Wikimedia.org >

20여 년이 지난 제2차 대전에서는 대규모 기갑부대가 격렬히 충돌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전차를 앞세워 전격전이라는 엄청난 신화를 쓰며 해당 부문의 역사를 선도 중인 독일군은 의외로 고민이 많았다. 전쟁 초반에 독일군이 사용한 전차의 성능이 교전국 전차보다 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일군은 PaK 38, PaK 40, 8.8cm FlaK처럼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대전차포로 적 전차를 요격했다.

하지만 전차들이 섞여서 난전을 벌이면 대전차포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때문에 전차의 공격력을 향상시켜야 했다. 1942년부터 6호 전차 티거가 실전 배치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공급량이 절대 부족했다. 물량 대결에서 어려움이 커지자 독일은 도태, 유휴 차체에 대전차포를 탑재해서 전선에 투입했다. 이는 일종의 고육책이었지만 1943년 7월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에서 이들이 좋은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공격력으로만 보면 판터구축전차는 티거 II와 동일하고 티거 I, 엘레판트, 판터보다 우월하다. 때문에 전쟁 말기 독일의 상황을 고려하면 판터구축전차 생산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 출처 : (cc) Joshua06 at Wikimedia.org >

특히 페르디난트 구축전차의 전과는 경이적이었다. 고무된 히틀러는 후속 장비의 개발을 명령했다. 독일이 물자를 절감하고 공급량을 확대하기 위해 유휴 장비 등을 이용해 다양한 장비들을 만들어 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는 일부만 맞는 말이다. 도태될 장비를 사용하면 문제가 아니나 정작 차체를 공급하기 위해 오히려 도태시키지 못하고 계속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원 배분 측면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성능을 가진 4호 전차 후기형, 4호 돌격포, 4호 구축전차가 동시에 생산되었다. 이처럼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여러 장비들이 중구난방으로 등장하게 된 가장 이유 중 하나가 히틀러의 간섭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장비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실패작도 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성능을 발휘하며 명성을 날린 경우도 있다. 판터구축전차(Jagdpanther)는 후자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뮌스터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판터구축전차. 교전 흔적을 엿볼 수 있다. < 출처 : (cc) Banznerfahrer at Wikimedia.org >

개발은 1942년 8월 3일 육군 병기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5호 전차 판터에 8.8cm PaK 43 대전차포 탑재를 검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다임러 벤츠가 개발을 주도한 전차가 이른바 판터 II였다. 하지만 차체 개발 지연 등의 이유로 진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5월에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사실 5호 전차가 아직 실전에 투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판터 II의 개발은 너무 조급했다.

그래도 6호 전차의 엄청난 활약상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8.8cm PaK 43 대전차포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다임러 벤츠 대신 MIAG의 주도로 돌격포처럼 5호 전차의 차체에 해당 주포를 결합하는 방안이 연구되었다. 그러던 중 앞서 언급한 쿠르스크 전투를 치르고 난 후 히틀러가 구축전차의 개발 및 배치를 지시하면서 진행에 탄력을 받았다. 이때는 독일의 수세기여서 상당히 급한 상황이었다.

독일군은 강력한 8.8cm PaK 43 대전차포를 사용하기 위하여 5호전차의 차체와 결합하여 판터 구축전차를 만들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3년 10월, MIAG은 포탑을 제거한 5호 전차 차체에 8.8cm PaK 43을 결합한 프로토타입을 선보였고 판터자주대전차포(Panzerjäger Panther)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처럼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으나 정작 양산 단계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나중에 MBA가 생산에 참여하면서 조금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개발을 주도한 MIAG의 설비와 인력 수준이 대량 제작을 하기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5호 전차의 성능 불량이었다. 최초의 실전이었던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 피격된 것보다 고장으로 이탈하거나 유기된 수량이 더 많았을 정도로 구동 계통이 툭하면 말썽을 부렸다. 사실 군부는 문제점을 해결한 후 실전에 투입하자고 주장했지만 신무기를 자랑하고 싶었던 히틀러의 조급증으로 인해 조기 등판이 이루어지면서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결국 판터자주대전차포의 제작도 지체되었다.

판터구축전차의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으나 기반이 되었던 5호 전차 차체의 성능 불량으로 인해 양산이 늦어졌다.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마침내 문제점이 해결된 1943년 말부터 양산이 개시되었고 판터구축전차로 재명명되어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선에 배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대대로 모든 전선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은 다양한 자주대전차포, 구축전차를 운용했는데 그중 판터구축전차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마디로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전쟁사에 굵은 흔적을 남긴 당대 최고의 구축전차였다.


특징

티거II의 주포로도 사용된 판터구축전차의 71 구경장 8.8cm 전차포는 당대 활약한 모든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 또한 사거리도 연합국, 소련의 전차들보다 길어서 기갑전이 벌어질 경우 먼 거리에서부터 상대를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차내에 57~60발의 탄약을 적재하고 분당 6~8발 사격이 가능해서 지속 전투 능력도 뛰어났다. 한마디로 전차, 구축전차로는 공격력이 당대 최강이었다.

당대 최강의 대전차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는 PaK 43. 판터구축전차는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71구경장 KwK 43을 장착했다. 때문에 티거 II와 공격력이 동일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방어력도 출중했다. 전면은 100mm 장갑이나 30도 각도로 경사를 준 덕분에 160mm 장갑과 맞먹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전면 하부, 측면도 경사 장갑을 채택했다. 전후 노획물로 테스트해 본 결과 유일하게 소련 IS-2 전차의 122mm 주포가 100m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이는 이론적으로 100m를 넘는 거리에서 판터구축전차와 기갑전을 펼칠 전차가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연합군은 후방의 취약부나 궤도 등을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판터구축전차는 경사 장갑으로 방어력을 강화한 차체에 주포를 장착했다. 공격력은 티거 II와 동일했으나 차체를 돌려서 조준을 하는 관계로 구동 계통에 무리가 많이 갔다. < 출처 :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
주행 장치는 5호 전차 판터와 동일하다. 전력화에 어려움이 많았을 만큼 초기형의 신뢰성은 낙제 수준이었으나 성능 개선이 이루어진 후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다만 구조가 복잡한 편이어서 유지 보수가 어려워 가동률이 좋지는 않았다. 거기에 더해 판터구축전차는 교전 시 급하게 차체를 돌려 목표를 조준하기 때문에 변속기, 조향 장치, 궤도 등에 무리가 많이 갔다. 또한 거대한 주포가 전면에 붙어 자세 제어가 어려운 편이었다.
판터 구축전차의 소개영상 < 출처: 유튜브 Military History Visualized 채널 >


운용 현황

판터구축전차는 1943년 12월부터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4월까지 프로토타입을 포함해서 총 415대가 제작되었다. 아무리 체계적인 무기의 생산 및 공급이 어려운 전쟁 말기라는 상황을 고려해도 성능에 비한다면 생산량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전쟁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성능, 생산성 등을 고려했을 때 당시 독일은 유사 장비의 생산을 중단하고 판터구축전차에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

1944년 프랑스에서 이동 중인 판터구축전차. < 출처 : Public Domain >

이렇게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일선에서 상당히 귀한 자원으로 취급되었다. 별도로 편성된 독립 중(重)구축전차대대에서 운용했는데 최초 생산분을 인수한 부대는 운용하던 페르디난트(엘레판트) 구축전차가 소진된 제654중구축전차대대였다. 이후 여러 부대가 순차적으로 판터구축전차로 장비를 개편했지만 고질적인 공급량 부족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한마디로 완편된 상태로 전투를 벌이기 어려웠다.

비록 전술적 무기여서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 없었지만 전사에 남아 있는 판터구축전차의 실전 기록은 대단했다. 압도적인 연합군, 소련군 기갑부대와 대결을 회피하지 않았고 더 많은 손실을 입혔다. 일선 부대에게는 전투 못지않게 연료, 탄약, 부속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고통이었다. 결국 가동을 할 수 없어 노획을 방지하기 위해 자폭 처리하기도 했다. 성능이나 명성에 비해 아쉬운 종말이었다.

1945년 헝가리 발라톤 호수 전투 당시에 격파된 판터구축전차. 종전 때까지 곳곳에서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Jagdpanther G1: 5호 전차 A형 기반 차체에 Pak 43/3 주포를 탑재한 초기 양산형

Jagdpanther G1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Jagdpanther G2: 5호 전차 G형 기반 차체에 KwK 43/4 L/71 주포를 탑재한 후기 양산형
Jagdpanther G2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제원(Jagdpanther G2)

생산 업체: MIAG, NMH, MBA
중량: 45.5톤
전장: 9.87m
전폭: 3.42m
전고: 2.71m
장갑: 40mm~100mm
무장: 8.8cm KwK 43 L/71 ×1
         7.92mm MG42 기관총×1
엔진: 마이바흐 HL230 P30 12기통 가솔린 엔진 690마력(515kW)
추력 대비 중량: 15.4마력/톤
서스펜션: 토션바
항속 거리: 200km
최고 속도: 46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