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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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톰슨 기관단총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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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기관단총은 최초의 기관총들 중 하나로 거론되는 총기 역사의 걸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14년 미 육군에서 퇴역한 후 레밍턴에 입사해 총기 생산 업무를 관리하던 톰슨(John T. Thompson)은 그해 발발한 제1차 대전의 상황을 유심히 분석했다. 전투가 양측의 참호 사이에서만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엄청난 희생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는 참호전에 적합한 새로운 총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16년에 이를 ‘참호용 빗자루(Trench broom)’라고 명명한 후 연구를 시작했다.

블리쉬 락 방식을 적용한 첫 시제 총기인 '퍼쉐이더(Persuader, 설득자)'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필요한 기술을 조사하던 그는 블리쉬(John B. Blish)가 개발한 블리쉬 락(Blish Lock) 방식의 블로우백 시스템을 이용하면 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내친김에 블리쉬와 함께 오토오드넌스(Auto-Ordnance)를 설립하고 본격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던 이듬해 미국이 제1차 대전에 참전하자 톰슨은 당국의 명령을 받고 현역으로 복귀해 조병창 감독관으로 복무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야 했기에 아무래도 개발 속도가 지체되었다.
M1919 톰슨이 등장하기 직전의 시제총기인 '애니힐레이터(Annihilator, 섬멸자)'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사실 톰슨이 구상한 새로운 방식의 총기에 대한 필요성은 한창 참호전을 벌이던 당사자들이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제1차 대전 종전 무렵을 기점으로 사거리, 정확도, 파괴력은 떨어지나 병사들이 휴대할 수 있는 연사력이 뛰어난 총기가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관단총이다. 한마디로 지옥의 참호전이 없었다면 이처럼 성능이 연사력에만 편중된 총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톰슨 M1921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존 T. 톰슨. < 출처 : (cc) Jamie C at Wikimedia.org >
이러한 탄생 배경과 개발 과정 때문에 최초의 기관단총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인데 톰슨이 만든 총도 그중 하나로 거론된다. 일단 최초 양산형인 M1919에 Submachine gun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M1919부터 꾸준히 개량을 거쳐 제2차 대전 당시에 주력으로 사용된 M1A1에 이르는 시리즈를 흔히 톰슨 기관단총이라고 부른다.
기관단총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붙여진 톰슨 M1919. 하지만 군납에는 실패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17년 9월에 참호용 빗자루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벨트식 급탄 방식과 내구성이 떨어지는 부품의 파손으로 말미암아 사격 시 탄 걸림이나 작동 불능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즉시 대대적인 재설계에 착수했고 여러 차례의 개량과 개선을 거쳐 1918년 ‘섬멸자(Annihilator)’로 이름 붙여진 새로운 프로토타입 제작을 마쳤으나 정작 그해 11월 11일에 제1차 대전이 막을 내렸다.
비록 1차대전은 끝났지만 톰슨 기관단총은 뛰어난 휴대성과 강력한 화력으로 민간의 인기를 끌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처럼 결정적인 시기를 놓친 섬멸자는 이듬해 M1919라는 이름으로 40정의 테스트 물량이 제작되어 미 육군에 시험용으로 제출되었다. 테스트에서 분당 1,500발의 엄청난 연사력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지만 정작 군비 축소에 들어간 군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국이 전쟁 말에 참전했기에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참호전 경험이 짧았고 그만큼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민간 판매 목적으로 개발된 톰슨 M1921. 정작 예상과 달리 범죄 조직이 애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 출처 : (cc) Gelpgim22 at Wikimedia.org >
더구나 구조가 복잡한 데다 일일이 절삭 가공 방식으로 제작되어 납품가가 비쌌던 점도 채택을 가로막은 약점이었다. 군납 좌절은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까지 조달 받아 오토오드넌스를 설립했던 톰슨에게 위기였다. 이에 M1919를 간략화한 M1921을 만들어 민간 판매를 시작했는데 예상을 벗어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톰슨이 예상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향에서의 성공이었다.
톰슨 기관단총으로 많은 범죄를 벌여 ‘머신 건 켈리’라고 불린 조지 반스의 체포 당시 모습. 경찰들도 톰슨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피아 같은 갱들이 범죄에 사용하면서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누아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미국의 1920~30년대는 갱단이 활개 치고 다녔던 시기였다. 권총이나 산탄총 같은 고전적인 무기를 주로 사용하던 갱단에게 엄청난 속도로 난사할 수 있는 톰슨 기관단총은 한마디로 혁명이었다. 특히 1927년 알 카포네가 이끄는 갱단이 M1921로 상대 조직을 무참히 제거하면서 유명세가 하늘을 찔렀다.
범죄자에 대항하여 경찰들도 톰슨 기관단총을 들었다. 사진은 토미건으로 사격중인 J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의 1936년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결국 화력에서 밀린 경찰, 국세청 수사관, 현금 호송원 등도 M1921을 앞다투어 구매해서 갱단과 대결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톰슨 기관단총은 특유의 연사 소음을 빗대어 ‘시카고 타자기(Chicago Typewriter)’ 또는 제작자 이름을 따서 ‘토미건(Tommy Gun)’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비록 경영상의 위기를 넘겼지만 이런 엉뚱한 결과에 실망한 톰슨은 더욱 적극적으로 군납을 시도했다.
M1928이 1930년 미 해군과 해병대에 채용되면서 토미건은 비로소 군용으로 채용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M1928 톰슨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영국군 병사의 모습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45구경 레밍턴-톰슨 총탄을 사용하여 화력과 사거리를 늘린 M1923을 육군이 거부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이를 개량한 M1928이 마침내 1930년 미 해군과 해병대에 공급되었다. 더불어 영국, 중국 등에도 수출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제2차 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으로 미국이 참전하자 당장 마땅한 기관단총이 없던 육군도 마침내 M1928을 채택했다.
유명 TV 시리즈에 소품으로 등장한 톰슨 기관단총. 제2차 대전 당시 M1 개런드, M1 카빈, BAR와 더불어 소부대의 주요 무장 수단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때 부여받은 정식 제식 부호가 M1이었는데 정확도 향상을 위해 이 모델부터 단순 블로우백 방식으로 바뀌었고 대량 생산과 제작비 절감을 위해 구조가 좀 더 단순해졌다. 한마디로 전쟁에 적합한 형태로 재탄생한 것이다. 1943년부터 개량형인 M1A1이 사용되었는데 교전 중 사진에 찍힌 대부분의 톰슨 기관단총이 바로 이것이다. M1A1은 톰슨 시리즈의 최종 형이었고 이후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특징
M1928 톰슨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이렇게 많은 부분을 포기한 대신 얻은 유일한 장점은 연사력이다. M1919는 앞서 언급처럼 분당 1,500발까지 연사가 가능했으나 사실 이는 너무 과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반동 제어가 어려워 후속작들은 연사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최종 형인 M1A1의 분당 700~800발의 속도는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라이벌인 MP40과 PPSh-41의 중간 정도의 수준이어서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분해된 톰슨 M1928A1. 목재를 제외하고 대부분 절삭 가공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 (cc) C. Corleis t Wikimedia.org >
톰슨 기관단총은 절삭 가공으로 제작되어 프레스 가공 방식과 비교하면 당연히 생산성이 좋지 않았으나 대신 대규모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었기에 손쉽게 외주가 가능했다. 총열, 탄창, 손잡이, 개머리판 등이 꾸준히 개량되었는데 연사 시 반동을 줄여주기 위한 컴펜세이터(Compensator)처럼 사용자에 의해 개량된 부분도 있다. 때문에 모델별로 외형상 차이가 많은 편이다.
톰슨 M1928의 사격 장면. 총구 앞에 장착된 컴펜세이터는 반동을 잡는 용도인데 1920년대 범죄 조직에서 개발한 것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톰슨 기관단총은 1945년까지 모든 변형을 포함해 약 175만 정 정도 생산되었는데 대부분이 제2차 대전 중에 만들어졌다. 오토오드넌스 외에도 콜트를 비롯한 여러 업체에서 생산이 이루어졌고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무단 복제되기도 했다. 노획하거나 비공식 경로를 통한 경우까지 포함해 약 50여 개국 이상에서 사용되었거나 현재도 사용 중이고 제2차 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실전에서 활약했다.

토미건의 가장 유명한 사진 가운데 하나로 윈스턴 처칠 수상이 총기를 들고 있는 이 사진은 2차대전의 강력한 지도자로서 모습을 보인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주력 화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연사력이 좋아도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해서 근접전에 특화된 무기로만 사용되었다. 또한 보기와 달리 탄창을 제외하고도 무게가 5kg 가까이나 될 정도로 무거워서 다루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복잡한 구조 등으로 말미암아 조달가가 비싼 편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더 이상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신 M3 기관단총이 사용되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 톰슨 M1A1으로 교전 중인 미 해병대원 < 출처 : Public Domain >
톰슨 기관단총은 거대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맹활약하였던 미국의 대표적인 무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암울한 기운이 엄습하던 1920~30년대 미국의 이면사를 상징하는 흉기이기도 했다. 전선에서는 적과 싸우기 위해서 사용한 반면 도시에서는 대치하고 있던 경찰과 갱들이 함께 사용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성능보다 더 많은 명성을 얻었다. 복잡했던 시대상을 함축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분해해서 바이올린 가방 속에 숨겨진 톰슨 기관단총. 이런 방식으로 범죄 조직들이 애용했다. < 출처 : (cc) C. Corleis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참호용 빗자루(Trench broom): 프로토타입

톰슨 기관단총의 초기 시제 총기 < 출처 : Public Domain >
M1919: 기관단총이라는 명칭이 처음 부여된 군납 제안을 위한 선행 양산형
M1919 < 출처 : Public Domain >
M1921: 총열 덮개가 제거된 초기 양산형
M1921 < 출처 : Public Domain >
M1923: 육군에 제안된 45구경 레밍턴-톰슨 탄약을 사용하는 개량형. 경쟁에서 브라우닝 M1918A에 패배.
M1923 < 출처 : Royal Danish Arsenal Museum >
M1927: 반자동 방식의 민수형
 
M1928: 손잡이, 사격 속도 등이 조정된 미 해군, 해병대 공급형
M1928 < 출처 : Public Domain >
M1928A1: M1928 구조를 간략화 한 미 육군 제안형
M1928A1 < 출처 : Public Domain >
M1: 미 육군용 양산형
M1 < 출처 : Public Domain >
M1A1: 총열과 가늠좌가 개량된 최종 양산형
M1A1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M1A1)

제작사: 오토 오드넌스 외
구경: 11.43mm
탄약: 레밍턴-톰슨(45ACP, 11.43×23mm)
급탄: 20발 막대탄창 외
전장: 860mm
총열: 267mm
중량: 4.5kg
작동: 블로우백
발사 속도: 분당 700~800발
유효 사거리: 150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