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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모두 “내 것부터” 自軍 이기주의… 전력 증강 중복·낭비 우려
[유용원의 군사세계] ‘겹치기’ 무기 도입 이어져… “순위 밀렸던 ‘아파치’를 왜 지금?”
경항모는 논란거리되고, 2조원 합동화력함도 “가성비 낮다” 지적
AI·로봇 등 미래 기술 뒷전… “수년내 각군 주요사업 서로 충돌”
입력 : 2021.05.19 03:00

“왜 아파치 헬기 추가 도입 사업이 갑자기 앞당겨져 결정됐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지난 3월 말 서욱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제134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이 결정되자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방추위에서 방위사업청은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을 해외 구매로 추진하는 사업 추진 기본 전략을 심의·의결했다. 헬기 기종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군 안팎에선 미국의 AH-64E 아파치 가디언 헬기가 선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 2012년부터 대형 공격헬기 1차 사업을 통해 약 1조9000억원의 예산으로 아파치 가디언 36대가 도입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백형선


추가로 36대가 도입될 2차 사업은 내년부터 2028년까지 약 3조1700억원이 투입된다. 군 일각에서 이번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이 송영무 국방장관 시절 평양을 조기 점령하는 ‘신(新)작전 수행 개념’에 맞춰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장관이 바뀐 뒤 새 작전 개념이 유야무야되면서, 사업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있었다. 북한 기계화부대 위협 등에 대비한 공격헬기 전력이 이미 충분하다는 평가도 이런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세계 최강의 공격헬기로 꼽히는 아파치는 한국군 외에 주한미군도 2개 대대(48대)를 보유 중이다. 군 당국은 이와 별개로 기존 코브라, 500MD 등 노후 공격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국산 LAH(소형 무장헬기)를 개발 중이다. 대전차(對戰車)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LAH는 내년부터 총 200여 대가 도입된다. 이 사업에는 개발비와 양산비를 합쳐 5조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간다. 한·미 양국 군은 공격용 헬기 외에도 다양한 ‘북 전차 킬러’들을 보유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육·해·공군 모두 자군(自軍) 이기주의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각종 전력 증강 사업들을 한꺼번에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어, 일종의 내폭(內爆)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육군에선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 외에 차륜형 대공포 ‘비호’ 등 지나치게 다양한 단거리 대공(對空) 무기들, 과도하게 많은 일부 탄약 등이 그런 경우로 알려져 있다.

해군에선 최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형 경항공모함 사업이 중요 사례로 꼽힌다. 우리 대전략과 작전 개념하에서 경항모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심층 분석 없이 통수권자와 일부 군 수뇌부의 의지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정치적 논란거리로 비화했다는 지적이다. 경항모 논란에 비해선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합동화력함의 경우도 실효성에 대해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합동화력함은 우리 지상 미사일 기지가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무력화할 경우에 대비해 80발의 현무-2 등 각종 탄도·순항 미사일을 탑재하는 ‘미사일 포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총 3척 건조 및 탑재 미사일 비용으로 2조원 가까운 돈이 들 것으로 예상돼 지상 미사일 기지에 비해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군의 경우 F-15K 전투기와 E-737 조기경보기 성능 개량에 각각 4조600억원, 1조5000억원의 엄청난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게 논란거리다. F-15K는 도입가의 절반, E-737은 도입가와 같은 수준의 성능 개량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해외 대형 방산업체 고위 관계자는 “F-15K 성능 개량 비용은 2조원 수준이 합리적이라고 본다”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항모에 탑재할 F-35B 스텔스 수직 이착륙기 20대 도입 비용도 문제가 될 전망이다. 총 3조~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공군은 자신들의 예산으로 해군용 F-35B를 도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반면 해군은 해군대로 공군 예산으로 도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 같은 대형 무기사업들이 여러 해에 걸쳐 분산돼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전문가들은 군 당국이 보통 국회 동의 등을 받기 위해 처음엔 적은 예산을 배정했다가 나중에 많은 돈이 들어가도록 해왔기 때문에 2020년대 중반 이후 육·해·공 각군 주요 사업들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해당 사업들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우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첨단 미래전 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AI(인공지능), 드론·로봇, 레이저, 사이버, 초소형 위성 등 우주전, 극초음속 무기 등은 미래 한국군의 운명을 좌우할 무기다. 올해 방위비 개선비 16조9964억원 중 4차 산업혁명 관련 예산은 1조5299억원으로 방위력 개선비의 9% 수준이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면 4차 산업혁명 관련 국방예산 비율이 크게 높아지기 어렵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장병 급식비 등 후생복지 예산이나 동원(예비군) 예산을 크게 개선하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올 병사 순수 급식예산은 1조1900억원으로 전체 국방비 52조8401억원의 2.3%였다. 대규모 병력 감축에 따라 예비군의 중요성은 훨씬 커졌지만 올해 동원 예산은 2444억원으로 전체 국방비의 1%도 안 된다. 군 전력 증강 전문가인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군사력 건설 결정 과정에서 각군의 집단 이기주의 등이 작동하게 되면 국방예산의 효율적 사용은 요원해진다”고 강조한다.

‘타키투스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정부나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모두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육·해·공 각군이 군 전력 증강 등에서 지금과 같은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은 군이 뭐라 해도 믿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군 수뇌부와 육·해·공 각군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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