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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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덱탸료프 경기관총

최고는 아니었지만 승전을 이끈 소련군의 마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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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는 1920년대에 탄생한 초창기 경기관총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승리를 이끈 숨은 주인공 중 하나였다. 사진은 개량형인 DPM의 모습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참호는 제1차 대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요 참전국들의 한 세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참혹했던 서부전선이 그러했다. 이런 무서운 결과가 나오게 된 가장 커다란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100여 년간 무기의 발달은 꾸준했지만 이에 걸맞게 전술이나 작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병사들이 줄을 맞춰 함성을 지르면서 적진을 향해 뛰어가기만을 반복했다.

화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1세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술로 1차대전의 참호전은 커다란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단 돌격이 시작되면 포병의 엄호를 받을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단발씩 사격하는 볼트액션 소총을 들고 돌격하던 병사들이 마주한 것은 기관총이었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기관총탄에 하염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우금치 전투처럼 일방만 입은 피해가 아니라 서로 공수를 바꿔가며 반복된 일상이었다. 결국 양측 참호 사이가 엄청난 시신으로 덮이면 이를 정리하기 위한 임시 휴전이 수시로 벌어질 정도가 되었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기관총으로 경계 중인 영국군. 제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기관총은 참호전의 총아로 군림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이르러서는 방어가 최고라는 사상이 머리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는 기관총이 너무 무거워서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기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였다. 대표적으로 피아 구분 없이 주력으로 사용한 맥심(Maxim) 기관총 같은 경우는 40kg 가까이 되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진지에 거치하고 방어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루이스 기관총은 1인이 운용할 수도 있었지만, 13kg으로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당연히 일선에서는 공격할 때 쉽고 들고 다닐 수 있는 경량의 기관총을 원했다. 하지만 루이스나 MG08/15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쇼샤는 신뢰성이 너무 떨어져 사용을 꺼려 했다. 결국 제대로 된 경기관총 또는 다목적기관총의 개발은 종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성능만 놓고 보자면 그저 그랬지만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의 승리를 이끈 덱탸료프 경기관총(Degtyaryov Machinegun, 이하 DP)도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쇼사 기관총은 9kg으로 가벼웠지만, 신뢰성이 낮아 일선에서 악명이 높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맥심을 면허 생산한 PM M1910으로 러일전쟁에서 좋은 전과를 올렸을 만큼 소련(러시아)은 기관총의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본 나라다. 이후 제1차 대전과 내전을 통해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절감하자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1920년대 중반부터 획득 사업을 시작했다. 당국이 각 설계국에 제시한 목표는 휴대가 편리하고 약간의 교육만으로도 사격과 정비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하지만 사실 이루기는 어려운 목표였다.
바실리 덱탸료프는 DP 경기관총 이외에 DShK 중기관총, DS-39 중기관총, PPD-40 기관단총, PTRD 대물저격총, RPD 경기관총을 개발한 총기 발명가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시작된 경쟁에서 대용량의 쟁반식 탄창을 이용해 지속 사격 능력을 향상한 바실리 덱탸료프(Vasily Degtyaryov)의 제안이 채택되었다. 기존 경기관총들은 대개 탄창식이어서 탄띠식 중기관총에 비해 지속 사격 능력이 떨어졌다. 탄창이 길면 엎드리거나 진지에 거치해서 사격하기 불편하고 마드센처럼 상부에 꽂는 방식이면 목표물 조준에 어려움이 많고 적에게 위치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DP의 특징인 쟁반 모양의 탄창. 총 47발의 탄환을 장전할 수 있다. < 출처 : (cc) DL24 at Wikimedia.org >
덱탸료프는 루이스 기관총을 참조해 47발의 탄환을 장탄할 수 있는 쟁반 모양의 탄창을 채택했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DP로 명명되었고 1926년 프로토타입인 DP-26이 완성되었다. 실험 결과 작동 불량이 수시로 발생해 곧바로 성능 개선에 착수했다. 이후 DP-27을 거쳐 1928년부터 양산을 시작한 모델이 DP-28이다. 흔히 DP라 하면 DP-28을 의미하고 시리즈 전체를 통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최초 프로토타입인 DP-26의 성능을 개량한 DP-27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DP는 즉시 기본 제식 화기로 채택되었고 소련이 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탄창을 제거하고도 무게가 9kg가 넘어 휴대가 쉬웠던 것은 아니나 전후 탄생한 M60이 10kg이 넘는다는 점과 비교하면 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속 사격 능력이나 역할 때문에 경기관총으로 취급받지만 사용하는 7.62×54mmR 탄의 위력을 고려하자면 충분히 중기관총의 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DP는 제2차 대전에서 소련에서 승리하는 데 앞장선 경기관총이다. < 출처 : (cc) blanksandbobbypins >
DP에서 사용하는 쟁반식 탄창은 장탄량이 막대식 탄창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을 뿐이지 충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시로 교환해야 했고 재장전도 불편했다. 이런 문제 등으로 결국 탄띠를 사용하는 RP-46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DP는 전장 상황을 계속 피드백해가면서 꾸준히 성능을 개량했다. 그래서 파생형이 많고 형태도 조금씩 달랐으나 기본적으로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쟁반식 탄창과 장착 구조는 동일했다.
1960년대 DP로 무장하고 훈련 중인 폴란드군. PK가 등장하기 전까지 다목적기관총 역할을 담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종전 후 역시 덱탸료프가 설계한 RPD가 소련군의 새로운 주력 경기관총이 되었지만 단소탄인 7.62×39mm 탄을 사용하므로 저지력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실 해당 총탄은 걸작 소총인 AK-47의 탄생을 이끌었지만 분대지원화기용 탄환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DP는 계속 사용되다가 1960년 들어 PK 다목적기관총이 배치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특징

DP는 프레스 방식으로 제작되어 저렴한 가격에 양산이 쉬웠고 구조가 간단해서 고장이 발생하지 않는 편이었다. 분당 500~600발의 발사 속도와 800m 정도의 유효 사거리는 전투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대항마였던 MG42와 비교한다면 떨어졌지만 당장 대안이 없는 데다 안정성도 좋아서 일선에서 마르고 닳도록 애용했다. 사실 MG42가 워낙 강력해서 그렇지 DP가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독소전쟁 초기인 1941년 9월, 레닌그라드 인근 참호에서 DP로 무장하고 휴식 중인 소련군. < 출처 : RIA Novosti >
다만 쟁반식 탄창은 탄생의 기반이기도 했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킨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재장전이 어려웠고 구조가 복잡해서 급탄 불량이 자주 일어났다. 루이스 기관총의 탄창을 벤치마킹했지만 충격에 쉽게 변형되거나 파손되어 어려움을 주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두께를 얇게 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소련의 금속 가공 기술력이 부족해서 사용된 강재의 강도가 부족했던 결과였다.
쟁반식 탄창은 구조가 복잡해 급탄 불량이 자주 일어나고 외부 충격에 쉽게 파손되어 교전 중 어려움을 주고는 했다. < 출처 : (cc) DAVID HOLT at Wikimedia.org >
같은 이유로 양각대와 리코일 스프링도 변형이 자주 일어났다. 특히 가스 피스톤 근처에 설치된 리코일 스프링은 사격 시 발생하는 열팽창으로 변형이 되면서 작동 불량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연사는 되도록 삼가고 3~6발씩 점사로 사격하도록 조치되었다. 또한 손잡이 구조가 나쁜 편인 데다 사수들이 쉽게 화상을 당하는 것처럼 안전 조치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DP-27 기관총: 15분만에 알아보는 2차대전의 전설" 소개영상 (러시아어) <출처: 유튜브>


운용 현황

DP는 소련에서 1950년대까지, 그리고 중국 등에서 1960년대까지 생산되었는데 파생형을 포함해 약 795,000정 정도 제작되어 30여 개국 이상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 실전은 스페인 내전이었다. 상당량의 DP가 공화파에 지원되었는데 공산주의 세계화를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각종 무기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이때 항공기, 전차, 야포 같은 중화기도 대량 공급되었다. 소련군 최초의 실전은 1939년 벌어진 할힌골 전투다.

6.25전쟁 당시인 1951년 4월 25일, DP로 저항하던 공산군 진지를 점령한 직후의 미군 병사. < 출처 : Public Domain >
DP가 가장 크게 활약을 펼친 시공간은 제2차 대전 당시에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벌어진 동부전선, 즉 독소전쟁이었다. 모신나강 소총, PPSh-41 기관단총 다음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화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후 국공내전,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은 물론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국지전, 분쟁 등에서 등장했고 현재도 지구 어디에서 여전히 활동 중이다.
독일군 리인액트먼트에서 시연되는 DP-28 기관총의 공포탄 사격장면 <출처: 유튜브>


변형 및 파생형

DP-26: 프로토타입
 
DP-27: 실험용 선행 양산형

DP-27 < 출처 : Public Domain >
DP-28: 양산형. 통상 DP라 하면 이를 의미함.
DP-28 < 출처 : Public Domain >
DPM: 내구성을 높이고 여러 문제점을 개선한 개량형
DPM < 출처 : Public Domain >
DT, DTM, DTM-4: 기갑 차량 장착형
양각대를 장착한 DT 기관총 < 출처 : (cc) Billyhill at Wikimedia.org >
RP-46: 쟁반형 탄창 외에 탄띠 급탄도 가능한 개량형
RP-46 < 출처 : Public Domain >
53식: 중국 면허생산형 DPM
53식 기관총 < 출처 : (cc) Mak Thorpe at Wikimedia.org >


제원(DP-28)

제작사: 덱탸료프 설계국 외
구경: 7.62mm
탄약: 7.62×54mmR
급탄: 47발 쟁반형 탄창
전장: 1,270mm
총열: 604mm
중량: 9.12kg
작동: 가스작동식
발사 속도: 분당 500~600발
유효 사거리: 800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