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2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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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6호 돌격전차

오로지 공격력만 강했던 별종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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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전차 티거 I형 차체를 이용해 도심 시가전용으로 개발된 6호 돌격전차.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에 커다란 고민을 안겨주었다. 지난 1941년 겨울에 있었던 모스크바 전투의 패배는 라스푸티차와 연이어 닥쳐온 혹한 때문에 단지 공세가 멈춘 것뿐이라고 애써 핑계를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시일 내에 회복하기 힘든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소련군이 의도한 시가전에 철저히 말려 들어가면서 낭패를 본 것이었으므로 차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말아야 했다.

독일군은 공성용 카를 자주구포를 운용했으나 속도가 느리고 방어력도 빈약해서 도심 시가전에는 투입할 수 없었다. < 출처 : (cc) Ruslan Salikhov at Wikimedia.org >
물론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에도 적이 은폐한 곳을 소멸하기 위해 각종 야포, 돌격포, 전차들이 동원했다. 그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급하게 개조한 3호 돌격포에 15cm sIG 33 보병포(이하 sIG 33)를 결합한 33B 돌격보병포(이하 33B)를 제작해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방어력이 부족해서 쉽게 격파당하고 공격력도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스탈린그라드 등 시가전을 겪으면서 독일은 이런 환경에서도 운용 가능한 돌격전차를 만들고자 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주포인 sIG 33은 살상 반경이 100m에 이를 정도로 강력하지만 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식 건물과 달리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공고한 건축물은 격파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런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60cm 구경의 카를 자주구포(Karl-Gerät, 이하 칼)가 존재했으나 기동력과 연사력이 부족해서 원할 때 즉시 화력 지원할 수 없었다. 만일 추후 비슷한 시가전이 재발된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은 명약관화했다.
해안포로 사용 중인 50구경장 30.5cm SK 함포. 독일은 한때 이 포를 단축하여 티거 전차와 결합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때문에 스탈린그라드 전투 직후부터 전면 장갑을 100mm로 강화한 4호 전차 차체에 15cm StuH 43 곡사포를 탑재한 4호 돌격전차 제작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카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고강도 건축물을 쉽게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주먹을 탑재한 또 다른 자주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개발을 지시했다. 독일은 전통의 포병 강국이어서 거포 수배는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차체였다.
4호 돌격전차(사진)를 만들었음에도 히틀러는 이보다 더욱 강력한 자주포의 개발을 지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기존 자주포의 차체는 도태된 경전차나 노획 장비 등이 기반이었다. 자원 재활용 측면에서는 좋았지만 차체에 비해 포의 크기가 커서 사격 시 반동이 심했고 늘어난 무게로 말미암아 주행 성능도 떨어졌다. 따라서 더 큰 포를 탑재하려면 당연히 차체도 바뀌어야 했다. 이때 참조가 되었던 것은 1942년에 6호 전차 티거 I(Tiger I, 이하 티거) 차체에 30.5cm SK L/50 함포를 결합하려던 베어(Bär) 프로젝트였다.
무장친위대원들이 슈트름티거의 시제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중량이 120톤 정도로 예상되어 700마력 엔진을 장착해도 시속 20km만 낼 수 있어 서류상 검토로 끝났던 계획이었다. 이에 개발 중이던 21cm GrW ser 18 곡사포로 주포를 변경하기로 하고 '6호 돌격전차(Sturmpanzer VI)'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부활시켰다. 차체 개조는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개발이 지지부진한 주포였다. 실제로 해당 곡사포는 1944년에야 배치될 수 있었다.
러시아 쿠빙카 박물관에 전시 중인 6호 돌격전차. 슈투름티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갈수록 전황이 악화되고 총통의 채근이 계속되자 1943년 4월 군수장관 슈피어(Albert Speer)가 함정에서 폭뢰투척용으로 사용하는 38cm RW 61 로켓발사기를 주포로 제안했다. 어차피 시가전이 목적이니 사거리는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오로지 화력만 강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장비를 차출당한 해군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1942년 12월 바렌츠 해전 패배 이후 히틀러로부터 없는 취급을 받았기에 반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변경을 거친 후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1943년 10월 20일, 프로토타입이 히틀러에게 선보였다. 이후 각종 테스트를 거친 후 양산이 결정되었고 'Sturmmörserwagen 606/4 mit 38cm RW 6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는데, 흔히 '슈투름티거(Sturmtiger)'라는 인상적인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그러나 고질적인 기갑병과와 포병병과의 알력 때문에 양산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6호 돌격전차의 실제 운용영상 <출처: 유튜브>
티거는 가히 당대 최강의 전차였다. 하지만 공급량이 절대 부족해서 기갑병과는 상당히 애지중지 운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티거 차체를 포병병과에게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다. 엄밀히 말해 전차가 항상 부족했던 기갑병과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결국 신조 물량이 아니라 전투 중 손상을 입고 회수된 차체를 이용해서 6호 돌격전차를 양산하기로 교통정리되었다.
노획된 엘리판트와 슈트름티거 전차가 쿠빙카 박물관으로 이송되기전 대기 중인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이런 논쟁을 거친 후 1년 가까이 지난 1944년 9월 15일 1호 차를 시작으로 23일까지 10문이 완성되어 곧바로 실전에 배치되었다. 독일 본토가 연일 대대적인 폭격을 받던 전쟁 말기이기도 했지만 손상된 티거가 회수될 때마다 1문씩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그해 말까지 겨우 18문만 생산될 수 있었다. 다만 독일의 전성기에 12문만 만들어진 2호 자주보병포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나마 양호했다고 할 수 있다.

특징
슈트름티거의 38cm 탄 발사장면 < 출처 : Public Domain >
6호 돌격전차의 가장 큰 특징은 38cm라는 구경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화력이다. 최대 376kg의 탄을 이용해 6,000m 이내에 위치한 2.5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탄환이 커서 내부에 14발만 적재할 수 있고 상부에 달린 크레인을 이용해 장전하는 방식이어서 연사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로켓 발사 시 발생하는 고압의 가스와 열기를 배출하기 위해 발사관에 환기용 샤프트 링이 장착되어 있다.
고압의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환기용 샤프트 링이 장착된 38cm 로켓 발사관의 정면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여타 자주보병포들과 비교할 경우 또 다른 차이점은 엄청난 방어력이다. 원체 강력한 티거 차체를 이용한 데다 경사장갑을 적용해서 전면 장갑이 150mm에 이르렀다. 아무리 근접전이라도 상대방이 어지간한 화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격파하기 어려웠다. MG 34 기관총과 더불어 유탄발사기를 장착해 근접 방어 능력도 향상했다. 때문에 자주포라기보다 돌격포 혹은 전차로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근접전을 대비하기 위해 정면 장갑은 최대 150mm에 이르렀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반면 주행력은 엔진과 구동 계통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티거 고유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6호 돌격전차의 경우는 중량의 발사관과 엄청난 장갑을 두르면서 중량이 68톤으로 늘어나 더욱 떨어졌다. 더구나 고장이 발생해도 복잡한 구조로 말미암아 야전에서 정비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래서 자동 기어 같은 부품은 고장이 발생하면 수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운용 현황

6호 돌격전차는 불과 18문만 제작된 귀한 무기여서 독립 제1000, 1001, 1002 돌격전차중대에 배치해서 운용했다. 원래 독일군 전차 부대의 편제에 맞춰 각 중대당 14문씩 배치하려 했으나 생산량이 부족해 6문씩 배치되었고 이후 고장 물량 등이 발생하며 중대당 평균 4문만 가동된 것으로 알려진다. 본격 배치가 이루어진 때는 독일의 쇠퇴기여서 주로 방어전이나 바르샤바 봉기 진압처럼 후방 작전에 투입되었다.

1945년 2월 28일, 유기된 제1001 돌격전차중대 소속 6호 돌격전차를 노획한 연합군 병사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른바 벌지 전투로 알려진 1944년 12월에 있었던 독일군의 제2차 대전 마지막 공세에 투입되면서 이후 주로 서부전선에서 활약했다. 단 한 발로 3대의 M4 전차를 완파한 사례를 포함해서 한 개 전차 중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6호 돌격전차는 교전 중 격파되거나 고장으로 유기 혹은 후퇴 전 폐기하는 식으로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순차적으로 소모되어 갔다.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유기된 6호 돌격전차를 조사하는 미군 병사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Sturmpanzer VI: 6호 돌격전차.

6호 돌격전차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Panzerkampfwagen VI Tiger I: 6호 전차 티거 1형. 이를 기반으로 6호 돌격전차가 제작되었다.
6호전차 티거 I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제원

생산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18문
중량: 68톤
전장: 6.28m
전폭: 3.57m
전고: 2.85m
무장: 1×38cm RW61 L/5.4
        1×10cm 유탄발사기
        1×7.92mm MG34
엔진: 마이바흐 HL230 P45 수랭식 12기통 가솔린 엔진 700마력(515kW)
추력 대비 중량: 10.77마력/톤
항속 거리: 12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