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27 08:37

글자크기

[무기백과]

MBT-70/KPz-80 전차

명작의 탄생으로 이어진 실패한 공동 개발

0 0
미국과 독일의 야심찬 공동개발전차 MBT-70 <출처: US Army>


개발의 역사

2차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전차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은 M60 패튼(Patton) 전차 시리즈를 개발했고, 서독은 레오파르트(Leopard) I 전차를 탄생시켰다. 최초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대결이 첨예화하면서 본격적인 군비 경쟁이 시작됐으며, 소련이 T-54와 T-55 시리즈를 내놓자 미국은 영국의 L7 105mm 주포를 발전시킨 105mm 강선포를 M60에 장착하여 대응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소련의 엄청난 생산력 때문에 다량의 전차를 상대할 강한 전력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이때 결정적으로 미 육군이 M60을 대체할 신형 전차 개발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소련이 115mm 활강포를 채택한 T-62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기준으로 대구경 주포를 채택한 T-62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M-60의 105mm 주포보다 강한 화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소련이 T-62보다 더 구경이 크고, 자동 장전장치와 포신 안정장치가 설치된 신형 전차를 개발한다는 첩보가 입수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이를 꺾을 전차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맹국으로 최일선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Warsaw Treaty Organization)와 대치 중인 독일 역시 레오파르트 I 전차로는 소련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됐으므로 미국과 서독은 공동으로 차세대 전차 개발에 돌입했다.

소련의 신형전차인 T-62(좌)가 등장하자 미국은 M60(우)으로 더 이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신형전차의 개발에 나섰다. <출처: Tank Museum>
미국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국방장관은 서독과 공동 개발로 "슈퍼탱크" 프로젝트를 가동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1970년대 이후를 책임질 전차라는 의미로 MBT(Main Battle Tank)-70이라 프로젝트를 명명했다. 사실 이때까지 아직 전차 분야에서는 국제 공동 개발이 이루어진 전례가 없었는데, 미국과 서독은 공통의 위협을 갖고 있고, 동일한 작전 지역과 요구도를 갖고 있는 데다 두 나라 모두 전차 기술 수준도 높았으므로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공동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본격적으로 공동 개발에 들어갔다.
MBT-70 시제 차량 주행 시험 모습. (출처: US Army)
양국은 최초 낮은 식별성이나 방어에 중점을 둔 설계 등에서는 이견이 없었으나, 주포와 엔진 채택을 놓고 첫 번째 이견이 발생했다. 주포 구경뿐 아니라 활강포를 채택할지, 강선포를 채택할지 논란이 된 것인데, 결국 미국과 독일 개발진의 의견이 갈리게 되자 주포를 두 개로 별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엉뚱하게도 설계 과정에서의 단위도 문제가 됐는데, 독일은 미터법을 사용하기를 원한 반면, 미국은 SAE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사의 단위를 쓰길 고집했다. 양측은 한참 동안 단위 문제를 놓고 논쟁을 했으나, 결국에는 모두 미터법을 사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문제는 이 '단위 결정' 문제 때문에 사업이 한참 동안 지연됐고, 결과적으로는 사업비가 커지는 데 일조했다.
MBT-70 최종 설계안. (출처: US Army)
MBT-70의 시제 차량은 1965년부터 제작에 들어갔으며, 장갑으로 연강(軟鋼: mild steel)을 차체에 입힌 시제차 2대와 이중 공간 장갑을 모두 적용한 미국 형상과 독일 형상(각각 국가가 선택한 엔진과 주포를 채택한 차량) 각 6대씩을 포함한 14대가 완성됐다. 차체와 구동렬은 1966년부터 별도로 시험 평가를 시작했으며, 완성된 차량에 대한 시험 평가는 1968년부터 시작했다. MBT-70이 시험 평가에 들어가자 우선적으로는 양국 개발진 모두 MBT-70의 높은 기동성에 만족했다. 특히 MBT-70은 속도뿐 아니라 가속력 면에서도 M60보다 뛰어나 10km 짜리 장애물 코스를 약 30% 빠른 속도로 완주했다.
MBT-70 데모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MBT-70은 예정보다 1년 밀린 1967년 10월에 일반 공개됐으며, 미국 형상의 시제 차량은 워싱턴 D.C.의 미 육군협회 바깥에 전시했다. 하지만 독일 쪽은 전시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시연하던 중 포탑의 유압계통이 고장 났고, 갑자기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MBT-70은 시작부터 망신살을 뻗쳤으나, 독일 정부는 이날 MBT-70이 향후 M48 패튼 전차를 대체할 것임을 발표했으며, 독일연방군은 1972년부터 해당 차량을 인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징

2007년 에버딘(Aberdeen)의 미 육군 병기박물관에 전시된 MBT-70. (출처: Fat Yankey/Wikimedia Commons)
MBT-70은 냉전이 본격화됨에 따라 미국과 서독이 공동 개발을 추진한 전차로, 명칭 자체도 '1970년대를 위한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 for 70s)'라는 의미를 담았다. MBT-70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다수 적용됐다. 우선 당시로서는 드문 유기압 현가장치를 채택해 45톤의 무거운 중량에도 불구하고 높은 험지 주행 속도를 자랑했다. 현가장치로는 복합 유기압 현가장치를 채택해 50톤이 넘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험지에서도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 현가장치는 위 · 아래로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가능해 제자리에서 은닉할 경우에는 차체를 지면에서 불과 100mm까지 바짝 붙게 만들고, 험지에서 달릴 때는 차체를 최대한 올려 711mm까지 높인 상태로 주행할 수 있었다.
MBT-70 내부도. (출처: US Army)
문제는 차체가 낮았기 때문에 조종수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조종수까지 모두 포탑에 위치시킬 수밖에 없었다. 대신 조종수의 좌석은 포탑 회전과 상관없이 항상 전방을 보도록 조종 공간을 기어 방식으로 분리했으므로 포탑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든지 상관없이 조종수는 차체의 전방 방향과 일치하게 했다. 하지만 조종수가 조작할 경우 조종석도 제자리에서 180도로 돌릴 수 있었으므로, 차량이 후진으로 주행해야 할 경우 조종수가 뒤를 바라보면서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게 했다.
MBT-70의 포수 좌석(좌)과 조종수 좌석(우). 포수좌석은 캡슐 형태로 설계되어 있으므로 포탑에 위치하고 있지만 포탑 회전과 상관없이 전차의 주행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출처: US Army)
두 나라는 각각 제각기의 엔진을 채택했다. 미국은 콘티넨털(Continental)사의 1,470마력 급 AVCR 공랭식 V-12 디젤 엔진을 채택한 반면, 독일은 다임러-벤츠(Daimler-Benz)사의 엔진을 설치했다가 1,500마력 급 MTU사의 엔진으로 교체했다. MTU 엔진의 특징은 차체에 넣고 빼는 것이 간단하다는 점인데, 구동렬(驅動列)까지 포함해 엔진 전체를 교체하는데 1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MBT-70의 뒷면. (출처: Fat Yankey / Wikimedia Commons)
미국과 독일 엔진 모두 69km/h까지 도달할 수 있었으므로 시속 48km/h가 최고 속도인 T-62에 비해 현저하게 빨랐다. MBT-70은 향후 소련 전차에 대응한다는 대전제가 깔려있었으므로, 공격 능력보다 방어 능력에 더 비중을 둔 것이 특징이다.
MBT-70 시제 차량 중 연강으로 제작한 형상. (출처: Fat Yankey/Wikimedia Commons)
MBT-70은 미국과 독일이 모두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하도록 설계했다. 두 나라가 가장 우선시한 요구도는 현재 M60보다 낮은 식별성(low silhouette)으로, M60은 러시아제 전차보다 약 6~70cm가량 높았다. 또한 승무원을 모두 차체부에 태우는 대신 넓게 만든 포탑부에 모두 탑승하도록 했으며, 포탑은 화생방(NBC) 위협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장갑으로 공간장갑을 채택해 외부 장갑은 두터운 냉간압연강판(冷間壓延鋼板)을 채택했으며, 내부 장갑에는 연한 강철을 채택해 스폴링(spalling) 현상으로 장갑 내부가 깨져 파편이 튀는 것을 막았다.
MBT-70 자동 급탄 장치. (출처: US Army)
주포는 양국이 이견을 보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개발했다. 우선 독일이 선택한 주포는 라인메탈사(Rheinmetall)에서 제작한 120mm 자동장전식 강선포로 제작이 단순했다. 하지만 미국은 복잡한 XM150 주포를 원했는데, 이는 자동장전에 수평안정장치가 설치됐고,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장착된 152mm 구경의 활강포였다. 특히 XM150은 포탄뿐 아니라 MGM-51 쉴레일리(Shillelagh)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있었다. 문제는 이 XM150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XM150 주포는 M551 셰리단(Sheridan) 경정찰차와 M60A1E2 전차에 채택됐지만, 152mm 포탄을 쏘거나, 쉴레일리 미사일을 쏠 때 문제가 계속 발생했고, 사격통제장치나 수평안정장치도 지속적으로 고장이 일어났다. 결국 M60A1E2의 경우는 대부분의 포탑을 제거한 후 기존 다른 전차에서 쓰던 105mm 포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코네티컷주 댄버리 군사박물관의 MBT-70 내부 영상 (출처: 유튜브 영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70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기술이 대량으로 녹아들어 간 전차다. 당시 전차에서는 보기 어렵던 외양뿐 아니라 유기압 현가장치, 레이저 거리측정기, 탄도계산 컴퓨터, 야시경부터 원격조종으로 작동하는 20mm 대전차포, 그리고 (비록 제대로 작동은 안 했지만) 포탄과 미사일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152mm 주포까지 모두 당시 기술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전차였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체계가 모두 안정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전차는 운용하기가 복잡했고, 고장은 잦았으며, 개발비는 끝없이 치솟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운용 현황

기본적으로 MBT-70 계획은 향후 소련이 개발할 모든 차세대 전차에 대응할 기술적 도약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일명 '슈퍼탱크(supertank)' 계획으로 출발하면서 미국과 서독의 기술을 통합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지만, 안타깝게도 개발 과정에서 개발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자 불가피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MBT-70은 공간장갑을 채택한 것이 특징적이다. (출처: Mark Pellegrini / Wikimedia Commons)

앞서 언급했듯이 MBT-70은 혁신적인 기술이 대거 투입된 '시대를 앞서간' 전차였지만, 동시에 아직 시도된 적이 없거나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지나치게 많이 넣은 '불안한'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전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조작계통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이 전차를 살펴본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lbright, 1905~1995/민주/아칸소주) 상원의원은 "MBT-70을 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공학계통 석사 학위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MBT-70은 운용 단계에서 예상 못 한 문제도 여러 가지가 나타났다. 우선 조종수 좌석이 포탑에 있지만 포탑 회전과 상관없이 전방을 보도록 설계하다 보니, 포탑 회전 때마다 운전 중 혼란이 온다는 불만이 있었다. 전차 설계 단계에서는 조종수 좌석을 가급적 포탑 회전 중심부에 위치시키면 혼란이 덜 올 것으로 계산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MBT-70 주포로 쉴라일라(Shillelagh)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출처: US Army)

두 국가가 따로 채택한 주포도 각각의 문제가 있었다. 우선 미국이 채택한 XM150 주포는 앞서 설명했듯 포탄과 미사일을 발사할 때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독일이 채택한 120mm 주포는 미국의 선택과 달리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과 대전차고폭탄(HEAT)만 사용할 수 있어 대전차 미사일을 쓸 수 없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포탄도 탄피 없이 제작한 것이 문제가 됐는데, 물에 젖을 경우 포탄이 팽창해 포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사격 후 잔여물이 심하게 남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연사를 하다 보면 포신 안의 열 때문에 탄피 없는 포탄이 들어갔다가 일찍 발사되어 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mm 대전차포 또한 사격 방식이 복잡했으므로 표적을 맞히는 것이 어려웠다.

MBT-70의 중량 증가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업 초반에 잡았던 중량은 46.3톤가량이었으나 개발 과정에서 54톤으로 증가했고, 이 때문에 설계 일부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중량을 덜어낸 결과 사업 최종 단계에서는 50.3톤으로 줄어 있었으나, 이는 이미 요구도를 초과한 중량이었다. 중량이 문제가 된 이유는 미군이 기존에 운용한 구난구조차나 전차교가 하중을 버틸 수 없어 별도의 장갑차량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MBT-70은 개발비가 계획보다 5배 이상으로 급상승하면서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출처: The Tank Museum>

요구 속도까지 전차 출력을 올리기 위해 미국 쪽 형상은 터빈 엔진을 따로 개발했다. 하지만 터빈 엔진은 항상 깨끗한 공기가 필요했고, 모래 먼지 같은 환경에서 주행할 경우 엔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 문제 자체는 공기 필터를 설치하고, 터빈 엔진도 기존 피스톤 엔진으로 교체해 해결했다.

하지만 MBT-70이 취소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개발비 상승이다. 1969년이 됐을 무렵 MBT-70의 개발비는 초창기 계획의 다섯 배로 뛰어 대당 1백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700만 달러)까지 올랐다. 최초 예상했던 사업비도 8천만 달러 정도였으나 1969년 무렵에는 3억 3백만 달러까지 뛰었고, 독일군 형상만 추산해도 최초 예상액을 훌쩍 넘긴 1억 3천만 달러에 육박했다. 결국 미 상원은 1969년 8월에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으며,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1912~1996) 국방차관은 미 회계감사실(GAO: Government Accounting Office)에 감사를 요청했다. 결국 회계감사실도 1969년 말까지 검토를 실시한 끝에 사업 중단을 권고했으며, 이에 미 국방부는 1970년 1월 20일 자로 사업 취소를 최종 결정했다.

MBT-70의 저가형인 XM803(사진)도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결국 XM1 사업으로 예산이 모두 전용되었다. <출처: US Army>
미 육군은 이미 개발한 미 육군용 MBT-70 설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변경하여 저가로 개발하는 대안을 고민했다. 하지만 저가형으로 개발된 XM803 시제차는 개발을 진행할수록 MBT-70과 마찬가지로 복잡해질 양상이 보이게 되자 미 의회는 1970년 12월부로 대안 연구도 취소할 것을 명령했다. MBT-70은 1971년 6월 30일에 완전히 사업이 엎어졌으며, 예산은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는 XM1 설계 사업으로 모두 전용됐다. 그리고 XM1 사업은 향후 미국의 주력 전차가 된 M1 에이브럼스(Abrams) 전차 양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독일연방군용 형상 역시 사업 취소 후 독일이 자체적으로 개발을 지속했으며, 이는 이후의 레오파르트 2 전차 개발로 이어졌다.


파생형

MBT-70: 미 육군용으로 제작한 형상. 엔진으로 1,470마력 콘티넨털(Continental) V-12를 채택했다. MBT-70은 취소될 때까지 총 14대의 시제 차량이 개발됐으며, 그중 두 대는 연강 재질로 제작했다. 아직도 약 다섯 대의 전차가 남아있는데, 미국 쪽에는 시제 차량 한 대가 앨라배마주 애니스턴의 애니스턴(Anniston) 육군 조병창에 전시 중이고, 조지아주의 포트 베닝(Fort Benning, GA) 기갑 박물관에 XM803 시제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한 대는 2019년 10월까지 코네티컷주 댄버리(Danbury, CT)의 남부 뉴잉글랜드 군사박물관(Military Museum of Southern New England)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박물관 폐쇄와 함께 고철로 폐기 처리했다. 현재 포탑 부분만 남아있다.

MBT-70 측면 모습. 특히 포탑이 특징적이다. 코네티컷주 댄버리의 남부 뉴잉글랜드 군사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MBT-70. (출처: Marc Palumo / Wikimedia Commons)
KPz-70: 독일연방군용으로 제작한 형상. 엔진으로 1,500마력 다임러-벤츠(Daimler-Benz) 엔진을 채택했다. 전차 한 대는 뮌스터(Munster)의 독일 전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한 대는 코블렌츠 군사박물관(Wehrtechnische Studiensammlung Koblenz)에 전시되어 있다.
MBT-70의 독일연방군 형상인 KPz-70 시제차. 독일 코블렌츠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습이다. KPz-70은 주포와 엔진 등이 MBT-70과 다르다. (출처: Bojoe/Wikimedia Commons)


제원

용도: 주력 전차
승무원: 3
전장: 9.1m
전고: 1.99~2.59m
전폭: 3.51m
중량: 49.6톤
장갑: 공간장갑 - 장갑 사이 127mm 간격 적용: 내부 장갑에 46mm 강철, 외부 장갑에 34mm 냉간 강철
주무장: (MBT-70) 152mm XM150E5 강선포 / (KPz-70) 120mm 활강포
부무장: (MBT-70)
            ㄴ 20mm RH202 원격식 기관포
            ㄴ 7.62mm M73 혹은 MG-3 공축기관총
            (Kpz-70)
            ㄴ 20mm RH202 원격식 대공기관포
            ㄴ 7.62mm M73 공축기관총
출력체계:  - 1,100kw 콘티넨털(Continental) V-12 엔진(MBT-70) 
               - 1,100kW 다임러-벤츠 엔진(KPz-70)
출력 대비 중량: 29.2 마력/톤(MBT-70) / 29.8 마력/톤(KPz-70)
변속장치: 렌크(Renk) HSWL354
현가장치: 유기압 현가장치
최대 연료량: 1,300 리터
항속 거리: 644km
최고 속도: 69km/h
최저 지상고: 100mm
대당 가격: 1백만 달러(1960년대 화폐 가치)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