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렉싱턴급 항공모함
진정한 미국 항공모함의 역사를 개막하다
  • 남도현
  • 입력 : 2021.04.15 08:49
    1942년 작전 지역을 향해 항해 중인 렉싱턴급 항공모함 2번 함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1942년 작전 지역을 향해 항해 중인 렉싱턴급 항공모함 2번 함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1차 대전 말기에 영국은 기존 순양함과 여객선을 개조해서 만든 퓨리어스(Furious)와 아거스(Argus)를 각각 취역시켰다. 단지 바다에서도 항공기를 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실험적인 함들이었기에 이런 종류의 군함이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으로 해군의 역사는 완전히 새롭게 쓰였다. 바로 바다의 제왕인 항공모함이 등장한 것이었다.

    영국 해군의 퓨리어스 항모는 최초로 랜딩기어 휠로 평갑판에 이착륙하는 항모의 개념을 선보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영국 해군의 퓨리어스 항모는 최초로 랜딩기어 휠로 평갑판에 이착륙하는 항모의 개념을 선보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랫동안 영국 해군은 전 세계 해군의 바로미터였다. 영국이 만든 군함, 전략, 전술, 제도, 하다못해 군복에 이르기까지 해군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가 따라서 하는 규범 아닌 규범이었다. 세계 1위에 오른 강력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1920년대에 영국과 맞먹는 해군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영국 해군이 한 것이면 일단 따라 했다. 항공모함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CV-1 랭글리. 석탄운반선을 개조한 실험용 소형 항공모함이다. 이를 운용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이후 등장하는 항공모함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CV-1 랭글리. 석탄운반선을 개조한 실험용 소형 항공모함이다. 이를 운용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이후 등장하는 항공모함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국은 벤치마킹을 시도했지만 항공모함이 이제 막 발걸음을 시작한 새로운 함종이다 보니 영국도 노하우가 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처럼 일단 실험용 항공모함을 제작해 운용해보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런 목적에 따라 기존 석탄운반선인 AC-3 주피터(Jupiter)를 개장해서 1922년 탄생한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이 CV-1 랭글리(Langley)다.

    순양전함 CC-1 렉싱턴을 묘사한 그림. 16인치 주포 4문을 갖추고 최대 33노트의 고속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미 해군은 1920년대 중반까지 총 6척의 동급 함을 획득할 예정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순양전함 CC-1 렉싱턴을 묘사한 그림. 16인치 주포 4문을 갖추고 최대 33노트의 고속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미 해군은 1920년대 중반까지 총 6척의 동급 함을 획득할 예정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여기에 더해서 랭글리가 취역한 바로 그 해 발효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미국의 본격적인 항공모함 시대를 좀 더 앞당긴 촉매제로 작용했다. 당시 해군력의 핵심인 전함, 순양전함의 보유에 강력한 제약이 가해지면서 조약 참여국들은 기존 함을 폐기하거나 건조 중인 함의 제작을 중단해야 했다. 이에 미국은 순식간에 지위가 곤란하게 된 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1928년 건조를 마무리 중인 CV-2 렉싱턴 항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1928년 건조를 마무리 중인 CV-2 렉싱턴 항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항공모함의 가치를 모르던 시기다 보니 조약에서 주력 함으로 묶지 않았고 미국에는 척당 최대 36,000톤, 총 135,000톤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락한 덕분이었다. 이때 미 해군이 낙점한 대상은 총 6척 획득 예정으로 1920년부터 제작에 나섰다가 건조가 중단된 렉싱턴급 순양전함이었다. 선체가 큰 데다 상부 구조물이 제작되지 않은 상태라서 개조가 용이한 편이었고 최대 33노트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도 고려된 결과였다.

    실험용과 실전용 항공모함의 차이를 알 수 있는 1929년 푸젯사운드 해군 공창에 정박 중인 CV-2 렉싱턴, CV-3 새러토가, CV-1 랭글리의 사진(위에서 아래로). 렉싱턴급은 배치 직후 너무 크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실험용과 실전용 항공모함의 차이를 알 수 있는 1929년 푸젯사운드 해군 공창에 정박 중인 CV-2 렉싱턴, CV-3 새러토가, CV-1 랭글리의 사진(위에서 아래로). 렉싱턴급은 배치 직후 너무 크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해서 1922년부터 CC-1 렉싱턴(Lexington)과 CC-3 새러토가(Saratoga)의 건조가 재개되었다. 당연히 랭글리를 운용하면서 터득한 많은 노하우가 제작에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처럼 아직 항공모함에 대한 개념이나 구조가 정립되기 이전이어서 렉싱턴급은 제작 당시부터 말이 많이 나왔다. 너무 크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였는데 실제로 후속한 요크타운(Yorktown)급이나 개수 전 에식스(Essex)급보다 배수량이 조금 더 나갔다.

    1931년 훈련 당시 T4M-1 뇌격기를 이함시키는 CV-2 렉싱턴. 미 해군의 진정한 항공모함 시대를 개막한 선구자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31년 훈련 당시 T4M-1 뇌격기를 이함시키는 CV-2 렉싱턴. 미 해군의 진정한 항공모함 시대를 개막한 선구자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야 크기에 대한 말은 쏙 들어갔다. 이처럼 초창기에는 항공모함의 크기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적당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오늘날 미 해군의 자랑인 슈퍼캐리어는 지난 100여 년간 하나하나 터득한 기술과 수많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개선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모함으로 바뀐 렉싱턴과 새러토가는 각각 CV-2, CV-3라는 새로운 함번을 부여받고 1927년 취역했다.

    함재기를 가득 싣고 이동 중인 CV-2 렉싱턴 항모. 1930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함재기를 가득 싣고 이동 중인 CV-2 렉싱턴 항모. 1930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랭글리가 CV-1이라는 함번으로 알 수 있듯이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37년 수상기 모함으로 개장되고 전쟁 중에는 항공기 수송함으로 사용되다가 일본군의 공격에 의해 격침당했을 만큼 흔적도 깊게 남겼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아 항공모함으로써 랭글리는 실험용이었다. 그런 점에서 렉싱턴급은 비록 우연히 탄생했지만 미국 해군의 진정한 항공모함 시대를 개막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특징

    렉싱턴급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 군함이다. 테일러(David W. Taylor)가 개발한 새로운 구상선수(Bulbous bow)를 적용하면서 최고 속도가 6퍼센트 정도 향상되었다. 거기에다가 당시 한창 유행하던 일종의 하이브리드 기관은 터보 일렉트릭 동력 체제를 사용해서 최대 33.25 노트의 고속 순항이 가능했다. 놀랍게도 이는 니미츠급이나 최신식 제럴드 R 포드급보다 빠른 속도다.

    진수 직전인 1925년 건조대에 거치된 CV-2 렉싱턴의 선체. 원래 순양전함으로 설계된 데다 여러 최신 기술이 접목되면서 고속 항해가 가능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진수 직전인 1925년 건조대에 거치된 CV-2 렉싱턴의 선체. 원래 순양전함으로 설계된 데다 여러 최신 기술이 접목되면서 고속 항해가 가능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랭글리보다 성능이 개량된 엘리베이터와 사출기가 장착되었다. 특히 승강기를 중앙에 일렬로 배치한 구조는 1950년대에 근대화 개수 전까지 미국 항공모함들이 사용한 기본 방식이었다. 초기 항공모함에는 이착함 공간을 분리시킨 다단계 갑판도 존재했으나 렉싱턴급이 채택한 평갑판이 효율적임이 입증되었다. 다만 렉싱턴급은 순양함 선체를 개조하면서 연돌 등의 구조로 말미암아 함교가 상당히 컸다.

    비행갑판에 도열한 보우트 O2U-4 '코르세어' 관측기와 보잉 F3B-1 복엽전투폭격기의 모습. 1930년도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비행갑판에 도열한 보우트 O2U-4 '코르세어' 관측기와 보잉 F3B-1 복엽전투폭격기의 모습. 1930년도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갑판 하부에 설치된 격납고는 높이가 20.7~22.6m에 이르러 함재기 관리에 편리했다. 다만 해수, 해풍의 피해를 막기 위해 채택한 밀폐식 구조는 유사시 폭발 에너지를 배출하는 데 불리했다. 그래서 이후 등장한 요크타운급은 측면이 노출된 개방식 구조를 택하고 있다. 지금은 호위함이 항공모함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자위용 무장을 최소로 장착하지만 렉싱턴급은 8인치 함포를 8문이나 장착했을 정도로 자체 무장도 강력했다.

    CV-2 렉싱턴 함교 뒤편에 설치된 8인치 쌍열 함포 포탑. 자위용으로 설치했으나 항공모함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너무 과한 무장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CV-2 렉싱턴 함교 뒤편에 설치된 8인치 쌍열 함포 포탑. 자위용으로 설치했으나 항공모함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너무 과한 무장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 당시에 CV-2 렉싱턴은 전투기를 운반하던 중이었고 CV-3 새러토가는 샌디에이고에서 수리 중이어서 기적적으로 화를 모면했다. 미 태평양 함대의 전함 전력이 일거에 와해되면서 항공모함의 보존이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미국은 대결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CV-2 렉싱턴은 1942년 5월 7일, 역사상 최초의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인 산호해 해전에 CV-5 요크타운(Yorktown)과 함께 참전했다.

    침몰 직전 화재로 불타는 CV-2 렉싱턴. 공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내부 유폭으로 피해가 급격히 커졌고 결국 자침 처리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침몰 직전 화재로 불타는 CV-2 렉싱턴. 공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내부 유폭으로 피해가 급격히 커졌고 결국 자침 처리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국은 일본의 경항공모함 쇼호(祥鳳)를 잡고 적의 진출을 저지하는 전략적 전과를 얻었지만 CV-2 렉싱턴은 치명상을 당했다. 처음에는 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누출된 유증기에 불이 붙고 이것이 밀폐식 격납고 구조로 말미암아 대폭발로 이어지면서 결국 자침 처리되어야 했다. 이처럼 CV-2 렉싱턴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제 역할을 다해 주었음에도 미국 최초로 침몰한 항공모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침몰 직전 화재로 불타는 CV-2 렉싱턴. 공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내부 유폭으로 피해가 급격히 커졌고 결국 자침 처리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2년 6월 6일, 진주만으로 전개한 CV-3 새러토가는 솔로몬 제도 전투를 시작으로 여러 전역을 옮겨 다니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 사이에 일본 잠수함, 가미카제의 공격 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얻고 수차례 수리를 받기도 했지만 종전 때까지 살아남았다. 미 해군에서 CV-6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의 명성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CV-3 새러토가도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불사신이었다. 하지만 종전 후인 1946년 핵실험용 표적함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제2차 대전에서는 종횡무진 활약하며 살아남았지만 1946년 7월 25일 핵실험에서 최후를 맞는 물기둥 좌측의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에서는 종횡무진 활약하며 살아남았지만 1946년 7월 25일 핵실험에서 최후를 맞는 물기둥 좌측의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CV-2 렉싱턴(Lexington)

    CV-2 렉싱턴< 출처 : Public Domain >
    CV-2 렉싱턴< 출처 : Public Domain >

    발주 1916년
    기공 1921년 1월 8일
    진수 1925년 10월 3일
    취역 1927년 12월 14일
    침몰 1942년 6월 24일

    CV-3 새러토가(Saratoga)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발주 1917년
    기공 1920년 9월 25일
    진수 1925년 4월 7일
    취역 1927년 11월 16일
    침몰 1946년 7월 25일


    제원

    경하 배수량: 36,000톤
    만재 배수량: 43,055톤
    전장: 270.7m
    선폭: 32.3m
    흘수: 9.3m
    추진기관: 16×수관보일러(130MW)
                  4×터보 일렉트릭 변속기
                  4×프로펠러
    속력: 33.25노트
    무장: 4×8인치 쌍렬포
            12×5인치 대공포
    함재기: 평균 90기 탑재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렉싱턴급 항공모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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