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자녀 학자금 문제로 200여년만에 징역형 선고받은 영국 장군

글자크기 프린트
0 0

입력 : 2021.04.06 00:00

자녀 학자금 부정수령 혐의로 2021년3월 징역 21개월형을 선고받은 닉 웰치 영국 예비역 육군소장. /BBC 뉴스

안녕하세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는 ‘공정’이지요. 공정하지 않은 사례들에 대해 젊은이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최근 영국에서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사건이 발생해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영국의 한 예비역 육군소장이 자녀 학자금 부정수령으로 징역 21개월을 선고받은 것인데요, 영국에서 고위 장성이 범죄 혐의로 기소된 것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200여년 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 영국군 장군급 기소는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처음
BBC 등 영국 주요 매체들은 지난달말 퇴역 육군 소장의 군사재판 결과에 대해 일제히 보도했는데요, 영국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영국 군사법원은 지난달 27일 퇴역 육군 소장이 자녀에 대한 학자금 5만 파운드를 부당하게 수령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1개월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닉 웰치(Nick Welch) 예비역 육군 소장인데요, 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 군사법원에 기소된 최고위급 장교였습니다. 웰치 소장 이전에 영국 장성이 군법회의에 기소된 경우는 1815년에 있었는데요,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군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영국군 장군 존 머레이경은 스페인에 주둔하며 1만6000여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공성포(siege cannons)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닉 웰치 장군의 자녀중 한명이 다녔던 클로에모어 스쿨. 1년 학비는 3만7000파운드 수준이다. /BBC 뉴스

200여년만의 사건인 만큼 영국 언론에선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중의 하나는 그가 해외파병 등을 통해 훈장도 받았던 엘리트 고급간부였기 때문입니다. 1984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독일, 북아일랜드, 아프가니스탄, 벨리즈 등에 파병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2006년엔 대영제국 훈장장교(OBE·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가 되는 영예도 얻었다는데요,
2018년까지 영국 국방부에서 최고위급 현역장교로 근무하다가 그해 전역, 최근까지 본머스 예술대학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으로 근무해왔습니다. 그의 범죄에 대한 수사는 그가 영국 국방부에 근무할 당시 시작됐고,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자진 전역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계속됐고 지난해 기소됐습니다.
◇ 두 자녀 학비 7500만원 부당수령 혐의로 21개월 징역형
그러면 그의 범죄 혐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길래 200여년만에 장성을 기소하고 징역형까지 선고했을까요? 그의 기소 혐의는 규정을 위반한 자녀 학자금 부정수령이었습니다. 영국군은 보통 군인 부모가 타지로 전출을 갔더라도 자녀가 기존 학교를 계속 다닐 경우 군인에게 일정한 학자금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를 지속교육수당(CEA)이라고 하는데요, 다만 이 경우 군인의 배우자는 반드시 군인을 따라 이사해 군인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1년에 90일 이상을 군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닉 웰치 영국군 장군의 또다른 자녀가 다녔던 핸포드 스쿨. 1년 학비는 2만2500파운드 수준이다. /BBC 뉴스

웰치 장군은 영국 도르셋(Dorset)에서 거주하다 국방부가 있는 런던으로 근무지를 옮겼다는데요, 당시 그의 자녀는 도르셋 근처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두 자녀의 1 년 학비는 약 5만 파운드(한화 약 7500만 원)였습니다. 웰치 장군 부부는 일단 런던으로 이사를 했지만, 그의 부인은 남편과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녀가 기숙하던 도르셋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이웃이 웰치 장군 부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수사당국에 신고를 하면서 그의 위법 행각이 드러났다고 하는군요. 웰치 부부는 자신들이 규정에서 정한 기간 이상 거주지(런던)에 머물렀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재판부, 영국군 장군의 거짓말을 엄중하게 판단
재판은 샐리스베리에 있는 불포드 군사법원에서 4주에 걸쳐 진행됐는데요, 배심원들은 퇴역한 고위 장성들로 구성됐습니다. 배심원들은 우선 그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고, 이어진 양형을 위한 재판에서 그에게 징역 21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웰치 장군이 받은 5만 파운드를 환수하고, 소급해서 그를 육군에서 제적시켰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웰치 장군은 징역형은 물론 퇴역 장군로서의 예우와 혜택가 모두 박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이렇게 ‘가혹한’ 처벌을 하게 된 배경은 단순히 돈 몇천 만원을 부당하게 받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런던에 실제 거주한 날짜를 조작하는 등 거짓말을 한 것을 재판부가 엄중하게 봤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2017년8월 문재인 정부 첫 군 수뇌부 인사 뒤 문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0여년만의 영국군 장군 유죄 판결을 계기로 우리 군 고위간부들도 명예와 정직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 DB

이번 사건에 보면서 우선 지난 200여년간 영국 장성급 고위 군간부들중 범법 혐의로 처벌받았던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아울러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명예와 정직 소중히 여기는 영국군 문화 때문에 200년간 장군비리 없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홍창식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예비역 육군준장)는 “지난 200여년간 장군 범죄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명예와 정직을 소중하게 여기는 영국군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며 “영국 사회에서도 각종 처우 등에서 군을 예우해주고 존중해줬다는 의미”라고 평가했습니다.
한 영국 언론은 이번 사건에 대해 “그가 화려한 군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누구도 법위에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웰치 장군 사건은 영국뿐 아니라 전직 법무장관 딸의 부정입학 의혹 등으로 갈등을 겪고 상처를 입었던 우리에게도 큰 교훈과 여운을 남겨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