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07 08:37

글자크기

[무기백과]

8.8cm FlaK

대공포로만 사용할 수 없었던 강력함

0 0
8.8cm FlaK은 대공포로 개발이 되었지만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대전차포로 더욱 유명하다. < (cc) I, Hal9001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8.8cm FlaK(독일식 표기로는 8.8cm 이하 88)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공기를 잡기 위한 대공포다. 당연히 그러한 목적으로 개발되었고 좋은 대공포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제2차 대전을 대표하는 대전차포로 더욱 유명하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고고도까지 신속하게 포탄을 올려야 하는 대공포는 포구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대물 격파용으로 전용이 가능하다.

무기의 관리나 체계적인 전투를 고려한다면 이렇게 임무를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 다만 적 전차가 바로 앞에 달려드는 상황에서 이 포는 대전차포가 아니므로 사용할 수 없다고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당연히 일단 가지고 있는 무기로 전투를 벌여야 한다. 그런 와중에 88은 대전차포로서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제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88의 모태가 되었던 FlaK 16. 함포를 바탕으로 급조 개발된 초창기 대공포다. < (cc) Mark Pellegrini at Wikimedia.org >

제1차 대전이 발발하고 항공기가 무기로 사용되자 당연히 대공포가 요구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기존 무기를 기반으로 개발했는데, 1916년에 독일이 개발한 8.8cm FlaK 16도 해군의 함포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급하게 만들어졌으나 FlaK 16에 적용된 급탄 시스템, 포가 등은 후속작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만큼 참신했다. 하지만 일선에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전이 되면서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패전 후 독일은 신무기 개발에 제한을 받았다. 다만 이미 개발된 대공포는 양산이 가능했기에 FlaK 16을 생산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신형 대공포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포신을 수평까지 내릴 수 있도록 앙각을 개량하면 평사포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1928년에 개발된 대공포가 8.8cm FlaK 18이다. FlaK 28이라 명명되는 것이 맞지만 FlaK 16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작명되었다.

1942년 6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작전 중인 FlaK 18. 1928년에 개발되었으므로 FlaK 28로 명명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FlaK 16과 혼동시킬 목적으로 FlaK 18로 이름 붙여졌다. < Public Domain >

이때만 해도 대공포 이외의 용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FlaK 18은 1936년 독일이 국민전선을 지지하며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면서 뛰어난 대전차포라는 명성을 얻었다. 당시 파견된 독일군은 소규모여서 보유한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갑부대와 교전을 벌일 때 FlaK 18을 동원했는데, 의외로 좋은 효과를 얻은 것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된 개량형이 8.8cm FlaK 36이다.

같은 시기에 개발된 8.8cm FlaK 37이 대공포 전용으로 사용된 것과 달리 FlaK 36은 포방패를 설치하고 대차에 올려놓고 이동하다가 곧바로 사격이 가능하도록 처음부터 지상전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전차포의 대명사처럼 불린 88은 대개 FlaK 36을 의미한다. 유명한 6호 전차 티거의 주포도 88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한마디로 88은 당시 적 전차에게는 사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FlaK 36을 기반으로 제작된 6호 전차 티거의 8.8cm KwK 36 주포는 당대의 모든 전차들을 압도했다. < (cc) JustSomePics Wikimedia.org >
1941년에 개발된 8.8cm Flak 41은 10,000m 이상의 고고도를 침투하는 폭격기를 격추할 수 있도록 개발되면서 전작들과 부품 교환이 되지 않고 별도의 강장약탄환을 사용하는 별종이다. 수평까지 부앙각이 내려와 대전차전 수행도 가능하기에 일부 자료에서 제2세대 88로 구분하기도 한다. 다만 구조가 복잡해 정비가 불편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서 충분한 활약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인 556문만 제작되었다.


특징

88은 포탄을 10km 이상의 고공까지 쏘아 올릴 수 있을 만큼 사거리가 출중하고 분당 최대 20발까지 가능할 정도로 연사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대공포로써는 보통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이는 88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당시 사통장치의 성능으로는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웠기에 같은 시기에 활약한 대공포의 성능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다만 대구경이어서 명중이 된다면 중폭격기도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진지에 고정 배치해 놓고 대공용으로 사용 중인 모습. < Public Domain >
대전차전에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유효 사거리 내라면 철갑탄으로 당시의 모든 전차를 잡을 수 있었고 200m 내라면 고폭탄으로도 교전이 가능했다. 또한 연사력이 뛰어나서 빗맞았을 경우 다음 목표를 신속히 공격할 수 있었다. 특히 긴급할 경우 대차를 분리하지 않고도 사격이 가능했고 포신도 360도 회전이 가능해 상황 대처가 빨랐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대전차포로 손색이 없었다.
88은 크기가 크고 중량이 많이 나가서 이동이나 방열이 어려운 편이다. < Public Domain >
물론 단점도 있다. 포가 강력하다는 것은 포신이 길거나 대구경이라는 의미와 같다. 필연적으로 크기가 크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덩치가 커서 매복이 어려운 편인데 이는 수세 상황일 경우에는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 주로 후방 진지에 거치해 놓고 사용하는 대공포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전차 전용으로 사용할 때는 견인하기 위해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고 운용하는 데 병력도 많이 필요해서 신속한 기동이 어려웠다.


운용 현황

88은 스페인 내전 당시에 이미 가능성을 보였지만 대전차포로 본격적인 명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는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당시였다. 많은 이들이 독일 전차라고 하면 티거 같은 중전차를 연상하지만 정작 전쟁 초기에 사용한 전차들은 상당히 빈약했다. 그래서 독일은 적 전차 요격을 주로 대전차포가 담당했다. 그러나 3.7cm PaK 36로는 연합군의 마틸다 II 전차나 샤르B 전차를 격파하기 어려웠다.

동부전선에서 적 전차를 요격하는 모습. 소련 기갑부대에게 88은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 Public Domain >
이때 궁여지책으로 동원한 것이 바로 88이었다. 특히 롬멜이 지휘한 제7기갑사단은 152대의 전차와 151곳의 벙커를 격파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88은 신화에 가까운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진정한 명성은 거대한 평원에서 기갑전이 일상이었던 동부전선에서 얻었다. 88은 물량에서 열세임에도 기갑전에서 독일이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1943년 이탈리아 시가전에 투입된 88. 이처럼 제2차 대전 당시에 모든 곳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 Public Domain >
88은 1945년까지 모든 종류를 포함해 21,000여 문 정도 생산되었다. 일부가 추축국에 공급되었고 연합군이 노획해서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독일군이 운용했다. 다만 운용상에 난맥이 있어 공군 예하 방공포병과 육군의 포병 사이에 알력이 벌어지고는 했다. 종종 적이 근처까지 몰려왔는데도 공군이 방공을 명분으로 88을 지원하지 않았고 그러면 육군이나 친위대가 강제적으로 빼앗아 전투에 동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8.8cm Flak의 2차대전 운용영상 <출처 : 유튜브>


변형 및 파생형

8.8cm Flak 18: Kw FlaK 18을 기반으로 1928년에 개발된 대공포.

8.8cm Flak 18 < Public Domain >
8.8cm Flak 36: 포회전에 전기 모터를 사용하며 포신 교환과 방열이 편리한 개량형.
8.8cm Flak 36 < Public Domain >
8.8cm Flak 37: Kdr.Gr.36 사통장치를 탑재한 대공 전용 모델.
8.8cm Flak 37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8.8cm Flak 41: 장포신에 전고를 낮춘 개량형이나 전작들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8.8cm Flak 41 < (cc) Mark Pellegrini at Wikimedia.org >


제원(FlaK 36)

무게: 7,407kg
포신: 4.938m
전폭: 2.3m
전고: 2.1m
구경: 88mm
앙각: −3°~ +85°
선회각: 360 °
발사 속도: 분당 15~20발
유효 사거리: 14.860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