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06 08:44

글자크기

[무기백과]

FH70 155mm 견인곡사포

영국, 서독, 이탈리아 3국 합작으로 개발된 155mm 견인곡사포

0 0
2017년 이탈리아 육군의 FH70 사격 훈련 장면 <출처 : 이탈리아 국방부>


개발의 역사

미사일이 널리 사용되는 현대전에서도 화포는 중요한 전력이다. 특히, 탄도미사일이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전인 1960년대 초반에는 광역 제압을 위한 다연장로켓과 함께 전선의 화력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포는 크게 견인포와 자주포로 나뉘는데, 견인포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이동에 차량이 필요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중량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산악 등으로 이동이 쉽다. 자주포는 장갑차량에 화포를 탑재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무겁지만, 별도의 차량이 필요 없고, 운용 인원이 노출되지 않고 보호된다.

화포도 구경별로 여러 규격이 있다. 이런 규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나라마다 달라 다른 나라의 화포를 직접 지원받지 않는 이상 포탄의 호환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을 중심으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에서 각자 표준 규격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영국이 1940년대 초반부터 운용한 BL 5.5인치 견인곡사포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공산주의 국가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1949년 출범한 집단 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10개국과 바다 건너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여 12개국으로 출발했다. 이후 1952년 그리스와 터키, 1955년 서독이 합류하는 등 차차 회원국이 늘기 시작했다.

나토와 같은 통합군 형태의 군사 동맹을 위해서는 무기의 상호 운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나토 회원국들은 협의를 거쳐 군사 및 기술 절차, 장비 운용 절차, 용어 및 조건 등을 표준화시킨 STANAG(Standardization Agreement)라는 표준화 협정을 마련하고 있다. STANG는 소총탄, 방어 능력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나토 설립 초기, 전쟁의 피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할 여력이 없던 서유럽 각국은 미국에서 막대한 무기를 공여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제 무기의 규격이 나토 표준 규격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194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까지 운용된 미국제 M114 155mm 견인곡사포 <출처 : 미 육군>

1963년, 나토는 견인포와 자주포로 구성되는 근접 지원 포병에 대한 기본군사요구조건(BMR, Basic Military Requirement) 39에 합의했다. 이때 참여한 국가는 미국, 영국, 서독이었다. 미국과 서독은 M114 155mm 견인곡사포를, 영국은 5.5인치(약 140mm) 견인곡사포를 대체할 새로운 견인포를 개발하기로 했다.

M114 곡사포는 1940년대 초반에 도입되었고, 사거리도 14.6km에 불과하여 당시 전장에 맞지 않아 대체가 시급했다. 영국제 5.5인치 곡사포도 1940년대 초반에 도입되었고, 사거리가 최대 16.5km에 불과했다. 하지만, 3국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M198 155mm 견인포 개발을 결정하면서 이탈했다.

이후 영국과 서독만으로 논의가 시작되었고, 설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두 나라는 1968년에 새로운 155mm 견인곡사포의 운용 특성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1970년에는 이탈리아도 합류하면서 3개국 프로그램으로 확대되었다.

APU의 장착으로 견인 트럭이 없어도 멀지 않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출처 : aris-spa.it>

합의된 핵심 요구 조건은 1)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도록 탈부착 가능한 보조동력장치(APU, Auxiliary Power Unit) 채택, 2) 통상탄 사거리 24km, 로켓추진탄 사거리 30km, 3) 15~20초간 3발의 버스트 사격, 단시간 분당 6발 사격, 지속 발사기 분당 2분 사격 능력, 4) 나토가 운용 중인 모든 155mm 포탄과 앞으로 도입될 새로운 탄약 운용이 가능할 것이 요구되었다.

신형 견인곡사포는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155mm 구경 39 구경장으로 결정되었다. 영국에서 FH(Field Howitzer) 70으로, 서독에서는 FH(Die Feldhaubitze, 영어 The field howitzer)155-1, 이탈리아에서는 Il cannone/obice FH-70(영어 The cannon/howitzer FH-70)으로 불렸다.

견인포와 함께 서독 주도로 PH(Panzerhaubitze, 영어 Self-propelled howitzer) 70라는 자주포 개발도 추진되었다. 하지만, PH 70은 1986년 취소되었고, 독일이 독자적으로 PzH(Panzerhaubitze) 2000 자주포를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FH70은 장거리 이동 시에는 견인 트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출처 (cc) Hunini at wikimedia.org>

FH70 개발은 3개국이 분담했다. 영국의 빅커스(Vickers, 현재 BAE 시스템 랜드 시스템, BAE Systems Land Systems)가 설계를 담당했고, 서독의 라인메탈(Rheinmetall GmbH)이 장전시스템, 견인용 바퀴의 서스펜션, 조준경, APU 등을 담당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토멜라라(Oto Melara)가 선회식 턴테이블, 반동 흡수 장치, 조준기 마운트 등을 담당했다.

사용할 탄에 대해서는 영국 왕립 무기연구개발기구(RARDE, Royal Armament Research and Development Establishment)가 155mm 고폭탄(HE)과 장약의 설계를 담당했고, 서독 측에서 연막탄, 조명탄 개발을 담당했다.

첫 시제품은 이탈리아가 참여하기 전인 1969년과 1970년에 여섯 문이 완성되었다. 추가로 여덟 문의 시제품이 주문되었지만, 구체적인 조건이 합의되지 않았기에 1973년에서야 완성되었다. 시제품 시험은 라인메탈의 지원을 받으면서 진행되었다.

이동 형태에서 발사까지 FH-70 곡사포의 자위대 시연 장면 <출처: 유튜브>
양산 결정은 1976년에서야 내려졌으며, 영국 71문, 서독 216문, 이탈리아 164문을 주문했다. 1978년 첫 양산품이 인도되었고 3개국의 주문량은 1982년에 모두 인도되었다. 수출은 1982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등이 주문했고, 일본은 면허 생산을 통해 480문을 생산하여 최대 운용국이 되었다.

특징
방열 후 사격 중인 FH70 <출처 : Public Domain>
FH70은 견인식(Towed) 곡사포(Howitzer)지만, APU를 사용하여 자체 이동도 가능하다. APU는 가신의 보조 바퀴와 가신의 전개에도 사용되어 포 전개와 철수 시 적은 인력으로도 빨리 작업할 수 있도록 해준다. FH70은 8명이 운용하지만, 최소 4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동 형태로 전환되는 장면 <출처: 유튜브>
포는 155mm 39구경장으로 포신 길이만 6.02m이다. 전체 포의 길이는 이동 시 9.8m, 사격 시 12.4m, 폭 2.5m이며 전투 중량은 8,500kg이다. 고각은 −4.5° ~ 70°, 좌우 편각은 56°다.
FH70의 최대 특징인 APU, 사진은 이탈리아가 개량하면서 정착한 ARIS제 디젤 엔진 장착 APU. <출처 : aris-spa.it>
APU는 독일 폭스바겐(Volkswagen) 1,795cc 휘발유 엔진으로 움직인다. 최고 속도 16km/h로 최대 27km까지 이동이 가능하며, APU만으로 34°의 경사를 오를 수 있다. 이탈리아는 현대화 개량을 하면서 ARIS(Applicazioni Rielaborazioni Impianti Speciali)가 개발한 40kW 출력의 디젤 엔진으로 교체했다. FH70을 라이선스 생산한 일본은 엔진을 스바루(Subaru)의 수평대향 디젤 엔진으로 교체했다.
견인 상태의 FH70 <출처 : armedconflicts.com>
FH70의 포구 속도는 탄에 따라 다르지만 213m/s ~ 827 m/s 사이다. 표준 고폭탄(HE)은 중량 43.5kg이며, 내부에 11.3kg의 폭발물이 충진되어 있다. 이 밖에 연막탄, 조명탄을 사용할 수 있으며, 기타 나토 표준 155mm 포탄을 운용할 수 있다. 사거리는 일반탄의 경우 24km이며, 로켓추진탄(RAP) 사용 시 30km다. 분당 최대 6발까지 발사가 가능하며, 지속 사격 시에는 분당 2발로 사격이 가능하다.
조준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포미 왼쪽에 올라탄 사수 <출처 : armedconflicts.com>
포미 폐쇄기는 위로 튀어 올라오는 상하 슬라이딩식이다. 폐쇄기는 포미 오른쪽에 있는 레버를 사용하여 수동으로 열 수 있으며, 포탄과 장약을 장전한 후 포미 왼쪽 아래 레버를 당기면 내려가 잠긴다.
포미 폐쇄기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장약을 넣고 있는 이탈리아군 <출처 : 이탈리아 육군>
폐쇄기 뒤쪽으로 탄 적재대가 있으며, 탄을 올려놓은 후 양쪽에 위치한 판으로 탄을 덮어 흔들리지 않게 한다. 탄 장전은 적재대의 탄을 자동으로 폐쇄기 안으로 밀어 넣는 유압식 플릭 래머(Flick Rammer)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운용 병력들이 직접 적재대를 들어 올리고 장전봉으로 포탄을 밀어 장전할 수도 있다. 장약은 모듈식을 채택하여 원하는 사거리에 따라 3단계로 나뉘며, 최대 12개까지 사용한다.
방열 상태에서 포판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 <출처 : net-maquettes.com>
포구에는 넓은 면적을 가진 이중-배플(Dubble-Baffle)형 포구제퇴기(Muzzle Brake)가 달려 있다. 포미 왼쪽에는 포의 고각과 편각 조절기와 조준 장치가 달려 있는 사수석이 있다.
발사 후 수동으로 폐쇄기를 열고 포탄을 장전하는 훈련 (24초부터) <출처: 유튜브>
방열 순서는 견인 트럭을 사용하여 발사 위치에 도착하면, 1) 포를 차량에서 분리한다. 2) 고정된 포를 분리하고 가신 방향으로 향한 포신을 180도 회전시킨다. 3) 포를 지상에 밀착시킨다. 4) 결합한 양쪽 가신을 분리한다. 5) APU를 가동하거나 수동으로 가신 안쪽 보조 바퀴를 90도 돌린다 6) 가신을 벌린 후 보조 바퀴를 원위치시키고 접는다. 7) 포의 고각과 편각을 조정하고 발사한다. 자체 APU를 사용하여 이동할 경우 1)과 2)는 생략된다.
FH90을 슬링으로 운반하는 일본 육상자위대 CH-47J <출처 : 일본 방위성>
APU를 사용하지 않는 장거리 운반은 견인 트럭을 사용한다. 트럭 견인 시 도로에서 최대 100km/h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독일은 만(MAN) 6X6 7톤 트럭을 사용하며, 이탈리아는 피아트(FIAT) 6605 TM을, 영국은 포덴(Foden) 6X6 중형트럭을 사용한다. 이 밖에 CH-47 헬리콥터에 슬링 되어 운반되거나, C-130 수송기에 싣고 항공 수송이 가능하다.


운용 현황

FH70은 1978년부터 영국, 독일, 이탈리아에 배치가 시작되었고, 1982년 3개국 주문량이 모두 납품되었다. 이들 3개국 가운데 독일은 통일 후인 2002년에 PzH2000 자주포로 교체하면서 모두 퇴역했다. 영국도 1992년부터 감축을 진행하여 현재는 모두 퇴역한 상태다.

이탈리아 육군 훈련 장면 <출처 : 이탈리아 국방부>
개발국 가운데 유일한 운용국 이탈리아는 2015년 말부터 개량을 실시했다. 개량 내용은 셀렉스(Selex)의 LINAPS 배터리 전력 관리 시스템, GPS 기반 FIN3110 항법 장치, 컬러 디스플레이와 컨트롤 유닛, 탄약 제원 계산기 등의 장착과 APU의 엔진을 ARIS(Applicazioni Rielaborazioni Impianti Speciali)의 디젤 엔진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육군 FH90 훈련 장면 <출처: 유튜브>
이 밖에 사거리 36km의 불카노(Vulcano) 탄도거리연장탄(BER, Balastic extentded range)과 사거리 54km의 장사정유도포탄(GLR, Guided Long-range)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형 화력통제장치(FCU, Fire Control Unit)도 장착했다.
일본은 FH70의 최대 운용국이다. <출처 : 일본 방위성>
개발국 외에 유럽의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레바논, 북아프리카 모로코, 그리고 동아시아의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1983년부터 일본제강(Japan Steel Works)를 통해 480문을 라이선스 생산하여 최다 보유국이 되었다. 일본은 FH70 자주포와 75식 자주포를 19식 차륜형 155mm 자주포로 교체할 예정이다.
에스토니아군 훈련 장면 <출처: 유튜브>
FH70의 유일한 전투 경험은 레바논에서 내전에 사용된 것뿐이다.
유럽 3개국 공동 노력으로 개발된 견인곡사포 FH70 <출처: 일본 방위성>


변형 및 파생형

공동 개발국에 따라 명칭이 다르지만, 외형적 차이는 없다.

FH70: 영국과 이탈리아 사업명, 영어로는 Field Howitzer, 이탈리아어로는 Il cannone/obice

FH70 곡사견인포 <출처 : Public Domain>

L121: 영국의 FH70 제식명

FH155-1: Die Feldhaubitze 독일어 제식명


저자 소개

최현호 | 군사 칼럼니스트

오랫동안 군사 마니아로 활동해오면서 다양한 무기 및 방위산업 관련 정보를 입수해왔고, 2013년부터 군사커뮤니티 밀리돔(milidom)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방위산업진흥회 <국방과 기술>, 국방홍보원 <국방저널> 등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고, 기타 매체들에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