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38(t) 자주보병포
궁극의 자주보병포
  • 남도현
  • 입력 : 2021.03.17 08:37
    통상 그릴레(Grille)라고 불리는 38(t) 자주보병포. 15cm sIG 33 보병포를 탑재한 자주포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 출처 : (cc) User:Fat yankey at Wikimedia.org >
    통상 그릴레(Grille)라고 불리는 38(t) 자주보병포. 15cm sIG 33 보병포를 탑재한 자주포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 출처 : (cc) User:Fat yankey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독일이 1940년에 제작한 '1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는 많은 숙제를 남겼다. 기갑부대가 전선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에 발맞춰 15cm sIG 33 보병포(이하 sIG 33)를 자주화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제작 수량이 38문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성능이 생각만큼 발휘되지는 못했다. 프랑스 침공을 앞두고 급조한 장비였기에 일견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래서 전훈을 참조해 2호 전차 차체에 sIG 33을 결합한 '2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I)'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12문만 제작되어 별동대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군단에게만 공급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그다지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프랑스 전역 이후 독소전쟁 초기까지 연전연승을 거두다 보니 자주보병포에 대한 절실함이 사라지면서 후속작 개발에 대해 무관심해진 것이었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중보병포인 15cm sIG 33. 대구경이지만 크기가 작고 사거리도 짧아 최전선에서 보병과 함께 작전을 펼쳤다. 기갑부대용으로 이를 이용한 다양한 자주보병포들이 등장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중보병포인 15cm sIG 33. 대구경이지만 크기가 작고 사거리도 짧아 최전선에서 보병과 함께 작전을 펼쳤다. 기갑부대용으로 이를 이용한 다양한 자주보병포들이 등장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다가 1941년 겨울에 모스크바 전투에서 패하며 전선이 고착화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이듬해 여름부터 시작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잠시 묵혀두었던 자주보병포를 다시 검토하도록 만들었다. 연일 지옥의 시가전이 계속되자 근거리에서 교전 중인 보병을 도와서 은폐된 소련군의 거점을 일격에 무너뜨릴 수단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결국 히틀러가 직접 개발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불과 한 달 만에 탄생한 후속작이 3호 돌격포에 sIG 33을 탑재한 '33B 돌격보병포(Sturm-Infanteriegeschütz 33B, 이하 33B)'다. 하지만 현지에 투입된 지 두 달 만에 독일 제6군이 항복하면서 총 24문으로 생산이 종료되었고 순차적으로 소모되었다. 더구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33B는 1호, 2호 자주보병포와 달리 돌격포에 가까웠다. 어쨌든 그와 별개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자주보병포에 대한 수요는 여전했다.

    33B 돌격보병포를 비롯한 전작들이 일선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자주보병포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33B 돌격보병포를 비롯한 전작들이 일선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자주보병포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문제는 뒤늦게 전시 경제체제로 전환했어도 독일의 무기 생산 능력이 연합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무기의 생산에 있어 최대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자주보병포를 놓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기는 하나 기갑장비 중에서 소량만 생산된 보조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작들도 유휴 장비를 이용했기에 새로운 자주보병포를 도입한다면 그런 식으로 제작해야 했다.

    기존에 사용한 1호, 2호 전차는 자주보병포의 차체로 문제가 많았던 데다 도태되어 구할 수도 없었다. 33B의 기반이었던 3호 돌격포는 일선에서 요구한 물량을 생산하는 데도 벅찰 정도였던 데다 33B가 화력 강화형 돌격포였기에 미세하나마 자주보병포와 용도도 달랐다. 이처럼 고민이 생겼을 때 제2차 대전 이전에 점령한 체코슬로바키아의 BMM이 제작한 38(t) 전차가 눈에 들어왔다.

    체코슬로바키아산 LT vz. 38 전차는 독일도 38(t)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해서 사용했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이후 그릴레를 비롯한 수많은 파생형 기갑장비의 기반이 되었다. < 출처 : (cc) Werner Willmann at Wikimedia.org >
    체코슬로바키아산 LT vz. 38 전차는 독일도 38(t)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해서 사용했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이후 그릴레를 비롯한 수많은 파생형 기갑장비의 기반이 되었다. < 출처 : (cc) Werner Willmann at Wikimedia.org >

    프랑스 침공전에 투입해 대단한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독소전쟁에서 소련 전차에게 역부족임이 확인되자 1942년을 기점으로 후방으로 보내졌다. 다만 주행력이 좋다는 점을 살려 마르더 Ⅲ(Marder Ⅲ) 대전차자주포 등의 차체로 이용되었고 나중에는 유명한 헤처(Hetzer) 구축전차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육군은 38(t)가 성능이 충분히 검증된 데다 단종되지 않고 계속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살려 새로운 자주보병포의 플랫폼으로 선정했다. 이미 탑재용 포신은 준비되어 있고 차체도 마르더 Ⅲ를 약간 개조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므로 개발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실험 결과 성능에 만족한 육군은 1차분으로 200문을 발주했다. 1호, 2호 자주보병포들이 각각 38문, 12문만 제작되었던 점과 비교하면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알 수 있다.

    그릴레도 유휴 장비를 이용해 탄생했으나 기반이 되었던 38(t) 차체의 생산이 여러 이유 때문에 전쟁 말기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제작 여건은 좋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릴레도 유휴 장비를 이용해 탄생했으나 기반이 되었던 38(t) 차체의 생산이 여러 이유 때문에 전쟁 말기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제작 여건은 좋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처음에는 자주식 마운트를 장착하기 위해 제작 중인 38(t) M형을 차체로 사용하기로 예정했으나 즉시 제작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으로 우선 기존 38(t) H형을 기반으로 1943년 2월부터 양산이 개시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자주보병포가 '15cm schweres Infanteriegeschütz 33 (Sf) auf Panzerkampfwagen 38(t)'다. 줄여서 '38(t) 자주보병포(Sturmpanzer 38(t))'로 표기하나 대부분 그릴레(Grille, 이하 그릴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특징

    히틀러의 조급증으로 38(t) H형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된 1차 양산 분이 그릴레 H형이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처럼 1942년 이후 38(t)가 도태되면서 정작 H형 차체를 이용한 전차는 없었다. 그래서 H형 이후에 등장한 38(t) 차체는 그릴레, 마르더, 헤처처럼 파생형 장비의 기반으로만 사용되었다. 뒤늦게 개발을 완료한 38(t) M 차체를 사용해 1943년 12월부터 생산에 들어간 2차 양산 분은 그릴레 K형으로 구분한다.

    주포가 전면에 배치된 그릴레 H형. 무게 중심을 잡는 데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진다. < 출처 : Public Domain >
    주포가 전면에 배치된 그릴레 H형. 무게 중심을 잡는 데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진다. < 출처 : Public Domain >

    생산은 HMM에서 담당했는데 전작 자주보병포들을 개발한 알케트(Alket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1호, 2호 자주보병포처럼 오픈 탑 구조로 전투실을 만들고 sIG 33 포신과 주퇴복좌기를 결합했다. 후기형은 엔진을 중앙으로 옮겨서 확보한 후방 공간에 전투실을 확보해 승무원들의 편의성을 높임과 동시에 H형의 무게 쏠림 현상을 해결했다. 주포의 탈부착이 용이해서 야전에서 정비가 손쉬운 편이었다.

    엔진을 차체 중앙으로 옮기고 후방에 전투실을 만든 그릴레 K형 < 출처 : (cc) warhistoryonline.com >
    엔진을 차체 중앙으로 옮기고 후방에 전투실을 만든 그릴레 K형 < 출처 : (cc) warhistoryonline.com >

    공격력은 특별히 거론할 것은 없고 주행력은 월등히 좋았다. 속도, 항속 거리 측면에서만 보자면 1호, 2호 자주보병포와 비슷하나 38(t) 차체답게 기계적 안정성이 뛰어났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그릴레는 가장 많이 생산된 자주보병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주보병포의 고질적인 약점처럼 장갑이 없다시피하고 차체가 작아 탄약 적재량이 적었다. 때문에 그릴레를 기반으로 탄약운반차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운용 현황

    5호 전차 판터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그릴레. 경계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아 휴식 중 사진으로 판단된다. < 출처 : (cc) warhistoryonline.com >
    5호 전차 판터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그릴레. 경계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아 휴식 중 사진으로 판단된다. < 출처 : (cc) warhistoryonline.com >

    그릴레는 총 389문이 생산되었다. H형이 210문, K형이 179문으로 비슷한 수량이다. 그 외 탄약운반차가 102대가 만들어졌는데 필요할 경우 현장에서 약간의 개조를 거쳐 자주보병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들 물량은 기갑사단, 기갑척탄병사단 예하의 기갑척탄병연대 직할 자주보병포대에서 운용했다. 생산량은 많았지만 본격 배치가 이루어진 시점이 독일의 쇠퇴기여서 특별한 전과는 알려지지 않는다.

    5호 전차 판터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그릴레. 경계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아 휴식 중 사진으로 판단된다. < 출처 : (cc) warhistoryonline.com >


    변형 및 파생형

    15 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38(t) Ausf. H: 그릴레 H형

    그릴레 H형 < 출처 : Public Domain >
    그릴레 H형 < 출처 : Public Domain >

    15 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38(t) Ausf. K: 그릴레 K형

    38(t) 자주보병포

    Munitionspanzer 38(t) (Sf) Ausf. K: 그릴레 K형 기반 탄약운반차

    릴레 K형 탄약운반차 < 출처 : (cc) Aviarmor.net at en.topwar.ru >
    릴레 K형 탄약운반차 < 출처 : (cc) Aviarmor.net at en.topwar.ru >

    38(t): LT vz. 38의 독일형

    38(t) 전차 < 출처 : Public Domain >
    38(t) 전차 < 출처 : Public Domain >

    Marder Ⅲ: 38(t) 기반 대전차자주포

    마르더 III 대전차 자주포 < 출처 : Public Domain >
    마르더 III 대전차 자주포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업체: BMM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389문
    중량: 11.5톤
    전장: 4.95m
    전폭: 2.15m
    전고: 2.47m
    무장: 1×15 cm sIG 33
             1×7.92mm MG34
    엔진: Praga AC 수랭식 6기통 가솔린엔진 147마력(110kW)
    추력 대비 중량: 12.8마력/톤
    항속 거리: 190km
    최고 속도: 35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38(t) 자주보병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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