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F2H 반시 전투기
2차대전 말미에 태어나 한반도에서 활약하다
  • 윤상용
  • 입력 : 2021.03.08 08:51
    1952년 10월, 북한 원산시 상공을 비행 중인 F2H2 반시 전투기의 모습. 사진 속 기체는 기체 번호 125663번 기로, 당시 키어사지 항모(USS Kearsarge, CVA-33)에 소속된 기체였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s)
    1952년 10월, 북한 원산시 상공을 비행 중인 F2H2 반시 전투기의 모습. 사진 속 기체는 기체 번호 125663번 기로, 당시 키어사지 항모(USS Kearsarge, CVA-33)에 소속된 기체였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s)


    개발의 역사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전이던 1940년, 미 육군 항공단(US AAC: Army Air Corps)은 R-40C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발행해 적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고속, 장거리, 고고도 요격기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까지 항공기 부품 분야로만 사업하고 있던 맥도넬 (McDonnell) 항공은 자체 항공기를 개발하여 항공기 제조업체로 사세를 넓히기 위해 모델 I(Model I)로 명명된 설계안과 제안 내용을 제출했으며, 당시까지 존재하던 전투기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전투기를 요구하는 제안요청서에 회신했다. 하지만 제안서를 제출한 23개 업체 제안서 중 별로 눈에 띌 것이 없던 모델 I은 21위로 평가받았지만, 육군항공단은 그 가능성을 보고 설계 변경을 조건으로 3,000달러를 개발 지원금으로 지원했다. 맥도넬은 제안서를 두 번 더 제출했음에도 계속 퇴짜를 맞다가 1941년 9월, "모델 IIa"를 "XP-67 문배트(Moonbat)"라는 이름으로 시제기 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완성품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능이었고, 그나마도 시험 비행 중 화재가 발생해 기체 전체가 전소해버리자 육군항공단은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XP-67 문배트 시제기는 실패했지만 제작사인 맥도넬 항공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XP-67 문배트 시제기는 실패했지만 제작사인 맥도넬 항공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다음에 XP-67의 과감한 설계에 눈길을 준 것은 미 해군이었다. 해군은 맥도넬을 따로 초청하여 항모 탑재용 전투기 개발 협력 요청을 했고, 조건으로는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전기에서 개발한 터보 제트(Turbo Jet) 엔진을 탑재하도록 했다. 맥도넬은 1943년 8월 30일에 세 대의 시제기 개발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체에 XFD-1이라는 제식 번호를 부여받았다. XFD의 D는 원래 더글러스(Douglas) 항공 제품에 부여되어 있던 제식 기호였으나 더글러스가 이때까지 납품한 항공기가 없었으므로 미 해군은 D를 맥도넬의 제품 기호로 수정해서 지정했다. 기체 번호 48235를 부여받은 XFD-1 초도기는 1945년 1월에 완성됐으나, 당시에 설치가 가능한 엔진은 웨스팅하우스 19XB-2B 엔진뿐이었다. 이 기체는 1945년 1월 26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미 해군은 총 100대의 기체를 주문해 기체명을 "팬텀(Phantom)"으로 부여했다.

    XFD-1 시제기는 함상 제트전투기로 1943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45년 1월에서야 완성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XFD-1 시제기는 함상 제트전투기로 1943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45년 1월에서야 완성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곧 전쟁이 종전함에 따라 주문량은 30대로 축소됐지만, 해군의 요청에 따라 수량을 다시 늘려 60대로 확정됐다. 미 해군은 ‘팬텀’의 양산이 본격화됐을 때 기체 번호를 FH-1으로 재지정했다. 팬텀은 제트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로는 사상 처음으로 항모에 착륙한 항공기이며, 미 해병대가 채택한 첫 제트기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팬텀의 실전 배치 기간은 짧았는데, 우선 항속 거리가 짧은 데다가 폭장량이 작았고, 폭탄은 아예 탑재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승률도 좋지 못해 프로펠러 항공기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으므로 미 해군은 팬텀이 길게 사용할 수 있는 기체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려 실전 배치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도태시키고 말았다.

    XFD-1의 양산형인 FH1은 애초 100대가 요구되었으나 종전으로 대수는 줄었고 활약도 짧았다. <출처: Public Domain>
    XFD-1의 양산형인 FH1은 애초 100대가 요구되었으나 종전으로 대수는 줄었고 활약도 짧았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맥도넬사는 앞선 1944년 가을부터 미 해군 항공역학부의 의뢰를 받아 고급 피스톤 엔진, 터보 제트 혹은 터보 프롭 추진 방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 이 연구를 의뢰받은 3개사 중 하나였던 맥도넬은 그중 웨스팅하우스의 신형 24C 제트 엔진을 선택한 뒤 FH-1 팬텀 설계에 기반하여 신형 전투기 개발을 진행했다. 원래 맥도넬의 엔지니어들은 FH-1 팬텀과 최대한 유사한 기체를 만들어 두 기체가 부품 상당수를 공유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무장에 더 필요한 데다 내장 연료도 훨씬 많이 들어가야 하고, 지금까지 발견된 팬텀의 문제를 해결하자면 기존 팬텀과 유사 형태로는 항공기를 만들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XF2D-1으로 명명된 이 기체는 3천 파운드 추력의 24C 엔진을 장착함에 따라 XFD-1에 탑재됐던 19B 엔진 두 배의 추력을 자랑했으며, 무장으로는 2개의 기관총 대신 4개의 20mm 기관포를 탑재했다. 미 해군은 전반적으로 신형 기체 개념에 만족해 3대의 시제기 계약 협상을 하면서 1945년 3월까지 요구도 협상을 완료했다. 신형 기체의 목업(Mock-up)은 1945년 4월에 완성됐으며, 그 사이에 2차 세계대전이 종전했으나 사업은 취소되지 않았다. 맥도넬은 엔진 제조사의 제품 양산 속도가 떨어져 생산 일정이 밀린 데다가 예산까지 줄어들어 1947년 1월 11일에 가서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램버트 활주로에서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XF2D-1은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함상제트기로 가능성을 입증했다. <출처: Public Domain>
    XF2D-1은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함상제트기로 가능성을 입증했다. <출처: Public Domain>

    XF2D-1은 첫 비행 때 분당 2,743m의 상승률을 기록해 당시 미 해군 주력 함대방어 요격기인 F8F 베어캣(Bearcat) 두 배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 해군은 1947년에 더글러스사로부터 항공기를 도입하기 시작함에 따라 기체 제식 기호"D"를 더글러스 제품에 부여하기 시작했으므로 이 기체 제식 번호를 XF2H-1로 변경했다. 미 해군은 1947년 3월에 1차 양산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후 56대 양산 수량을 늘렸다. 그 과정에서 주익과 미익, 에일러론을 얇게 재설계했다. 조종석 유압과 사출 좌석은 일반적인 형태로 설계됐지만 엔진 흡입구 도어(door)를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 해 엔진 하나로도 비행할 수 있게 한 점은 독창적이었다.

    F2H 반시는 F4U 코르세어 등 기체를 대체하여 본격적인 함상제트기로써 도입되기 시작했다. <출처: Public Domain>
    F2H 반시는 F4U 코르세어 등 기체를 대체하여 본격적인 함상제트기로써 도입되기 시작했다. <출처: Public Domain>

    XF2D-1은 맥도넬의 제조사 기호인 "D"이 부여된 마지막 항공기가 됐다. 1947년 8월 28일부터 항공기의 명칭은 F2H-2로 변경됐으며, 별칭은 독특하게 생긴 날개 모양에 착안해 아일랜드 민화 속에 나오는 정령인 '반시(Banshee)'의 이름을 붙였다. 민화 속에서 반시는 보통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 가족이 죽으면 찾아와 통곡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그 사실을 알리는 정령이다. 양산기는 1948년 8월부터 납품이 시작됐다. 첫 기체인 F2H-1은 모두 미 해군 제171 비행대대(VF-171)가 보유 중이던 FH-1 팬텀과 교대했으며, 그 뒤를 이어 VF-172도 F2H-1으로 교체했다. 두 전투대대는 모두 1949년 말부터 F2H-2로 교체했다.

    F2H 반시는 F4U 코르세어 등 기체를 대체하여 본격적인 함상제트기로써 도입되기 시작했다. <출처: Public Domain>


    특징

    FH-1 팬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탄생한 반시는 우선 출력부터 팬텀의 두 배였고, 로켓과 기관포뿐 아니라 폭탄까지 장착할 수 있는 '전폭기'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반시는 전투기와 폭격기뿐 아니라 주간/야간 전투기로 모두 활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임무 범위가 매우 넓었다. 미 해군은 반시를 주로 주간 전투기로 활용한 반면, 야간에는 정찰기로 운용했다. 심지어 일부 형상은 핵무기 투발까지 가능하도록 개조됐다.

    아일랜드 민화에 등장하는
    아일랜드 민화에 등장하는 "반시"에서 이름을 따온 F2H는 독특한 날개 형상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출처: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Cmdr Richard Timm, USN)

    반시는 200갤런(757리터) 외장 연료 탱크를 날개 끝 윙팁(wingtip)에 설치할 수 있고, 엔진을 최대한 동체와 날개 연결 부위의 윙루트(wing root)에 설치함에 따라 항공역학적으로 발생하는 항력을 줄였다. 그 덕에 FH-1 팬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상승률 문제를 해결해 F2H-2는 1949년 전투기 최고 고도 도달 기록을 수립했다(15,000m).

    F2H 반시는 쌍발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로, 전통적인 삼각랜딩기어에 어레스트 후크를 장착한 함상기였다. <출처: Public Domain>
    F2H 반시는 쌍발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로, 전통적인 삼각랜딩기어에 어레스트 후크를 장착한 함상기였다. <출처: Public Domain>

    F2H-2는 단좌식 조종석에 쌍발 엔진을 장착한 제트기이며, 지상 활주로 및 항모 모두에서 운용이 가능했다. 랜딩기어는 완전 전기식으로 작동하는 전통적인 삼각 랜딩기어 방식이고, 어레스트 후크가 설치되어 있어 항모 착함 시 케이블에 줄을 걸어 착함할 수 있다.

    1956년 미 해군 항모 인트레피드함(USS Intrepid, CVA-11)에서 이함 준비 중인 F2H-4 반시. (출처: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1956년 미 해군 항모 인트레피드함(USS Intrepid, CVA-11)에서 이함 준비 중인 F2H-4 반시. (출처: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후기에 도입된 F2H-3의 동체는 레이더 장착 및 추가 내장 연료 탱크 탑재를 위해 약 2.4m 가량 증가했다. 또한 공중 급유 능력도 추가하여 항속 거리가 비약적으로 길어졌다. 반시는 항속 거리 과시를 위해 1954년 미 서부 해안에서 동부 해안까지 논스톱으로 급유 없이 비행해 성공했다. 반시는 캘리포니아주 로스 알라미토스(Los Alamitos, CA)에서부터 플로리다주 세실 필드(Cecil Field) 해군 항공기지까지 총 3,100km 거리를 단 4시간 만에 주파했다.

    F2H 반시는 기관포와 로켓 또는 500파운드 폭탄 6발을 장착할 수 있었으며, 핵폭탄도 운용할 수 있었다. 사진은 1952년경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VF-11 소속의 반시 전투기편대의 모습이다. <출처: US Navy>
    F2H 반시는 기관포와 로켓 또는 500파운드 폭탄 6발을 장착할 수 있었으며, 핵폭탄도 운용할 수 있었다. 사진은 1952년경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VF-11 소속의 반시 전투기편대의 모습이다. <출처: US Navy>

    반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 중 사출 좌석을 사용한 케이스가 됐다. 1949년 말, 미 해군 제171 전투비행대대(VF-171) 소속 F2H-1이 비행 중 좋지 못한 기상 상태에서 나선 강하를 하다가 실속해 추락했다. 이에 조종사가 사출을 실시해 기체에서 탈출했으며, 항공기는 그대로 추락해 회복하지 못했다.

    F2H 반시는 기관포와 로켓 또는 500파운드 폭탄 6발을 장착할 수 있었으며, 핵폭탄도 운용할 수 있었다. 사진은 1952년경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VF-11 소속의 반시 전투기편대의 모습이다. <출처: US Navy>


    운용 현황

    1953년 3월, 북한 지역 상공에서 수직 상승 중인 F2H-2 반시. 이 사진은 1953년 3월 4일, 미 극동 해군사령부에서 공개한 사진이다. (US Navy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1953년 3월, 북한 지역 상공에서 수직 상승 중인 F2H-2 반시. 이 사진은 1953년 3월 4일, 미 극동 해군사령부에서 공개한 사진이다. (US Navy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F2H "반시"는 미 해군 제77 기동함대(Task Force 77)에 소속되어 1951년 6.25 전쟁에서 처음 실전 데뷔했다. 미 해군은 6.25 전쟁 중 초기 양산 형상을 투입했다가 2년 후 정찰기 형상으로 동체를 늘려 6대의 카메라를 장착한 F2H-2P를 개발했다. 2P형은 전쟁 기간 중 효과가 입증됨에 따라 미 해군은 50대를 추가로 도입했으며, 전쟁 기간 중 주로 정찰 임무나 일부 폭격기 호위 임무를 소화했다. 전쟁 중 미 극동 공군(Far East Air Force, FEAF)은 주로 F-86 세이버(Sabre)를 주 전투기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F2H-2는 공중전 기록을 한 대도 수립하지 못한 대신 적기에게 격추당한 기록도 없으나, 3대의 기체가 대공포에 격추됐다. 앞서 언급된 F2H-2P 정찰기는 대부분 미 해병대가 운용했는데, 이 시기엔 아직 전투기 대부분에 레이더가 장착되기 이전이고, 정밀한 지대공 미사일도 없던 때인데다가 대공포도 고고도 고속 표적은 따라잡지 못하던 때였으므로 반시가 효과적인 전술 정찰기로 제값을 했다. 특히 2P 형상은 고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했으므로 격추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단 두 대만이 레이더 유도 방식의 대공포에 격추됐을 뿐이다.

    1953년 7월 26일, 6.25 전쟁 휴전 협정 불과 하루 전에 촬영된 사진으로, F2H-2 반시 두 대가 북한의 흥남시 상공을 비행 중인 모습이다. 사진 왼쪽 아래는 흥남 부두이며, 왼쪽 위에는 송천강이 보인다. (US Navy/National Archives)
    1953년 7월 26일, 6.25 전쟁 휴전 협정 불과 하루 전에 촬영된 사진으로, F2H-2 반시 두 대가 북한의 흥남시 상공을 비행 중인 모습이다. 사진 왼쪽 아래는 흥남 부두이며, 왼쪽 위에는 송천강이 보인다. (US Navy/National Archives)

    6.25 전쟁 기간 중 미국은 소련이 유럽을 침공할 가능성을 우려했으며, 소련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고민했다. 특히 소련 내의 활주로 위치 등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 때문에 미 해군은 스티브 브로디(Steve Brody) 작전을 통해 F2H-2P 정찰기를 그리스 앞 해상에 띄운 항모에서 이함 시킨 후 흑해 주변 촬영을 하는 방안을 입안했다. 미 해군은 이 작전 내용을 1952년 5월 로버트 로벳(Robert Lovett, 1895~1986) 국방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로벳 장관은 이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는커녕 본인 선에서 자른 후 취소했다. 1955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가능성이 생기자 또 한 번 미 해군은 반시를 중국에 투입시켜 지형 촬영을 실시하고자 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트루먼 행정부 때와 달리 작전을 허가했으며, 반시 정찰기는 대한민국에서 이륙한 전투기가 호위하도록 했다. 미 해군은 총 27회에 걸쳐 임무를 실시했으며, 단 한 대도 격추당하지 않았다.

    에섹스함(USS Essex, CVA-9) 소속 미 해병 제62 전투비행대대의 F2H-2P 반시 정찰기 형상. 1955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에섹스함(USS Essex, CVA-9) 소속 미 해병 제62 전투비행대대의 F2H-2P 반시 정찰기 형상. 1955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미 해군은 6.25 이후 레이더를 장착한 전천후 함대 방어용 형상으로 F2H-3 및 F2H-4 형상을 제작했으며, 개발에 들어간 F9F 쿠가(Cougar), F3H 디몬(Demon), F4D 스카이레이(Skyray) 전투기의 양산 수량이 안정적으로 인도될 때까지 임시변통용으로 활용했다. 반시는 1959년까지 미 해군의 전천후 주력 전투기로 운용됐으나, 1955년 11월부터 F2H-3의 도태가 시작되었다. 1955년 11월 39대의 기체가 캐나다 해군에게 양도되었다. 반시의 마지막 기체는 1962년 9월에 최종 퇴역했다. 정찰기 형상인 F2H-2P는 이보다 조금 오래 운용했지만, 이 또한 F9F-8P(RF-9J로 재지정) 및 F8U 크루세이더(Crusader)의 파생형인 F8U-1P(이후 RF-8A로 재지정)이 도입되면서 퇴역했다.

    에섹스함(USS Essex, CVA-9) 소속 미 해병 제62 전투비행대대의 F2H-2P 반시 정찰기 형상. 1955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파생형

    XF2H-1: 반시의 시제기 형상. 3대가 제작됐다. 최초 XF2D-1으로 지정됐다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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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F2D-1 "반시"(앞)와 XFD-1 "팬텀"(뒤) 시제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F2H-1: 단좌식 전투기 형상. 1,400kg 급 웨스팅하우스 J34-WE-22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됐다. 초기 양산 형상으로 56대가 제작됐다.

    1949년경 촬영된 F2H-1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1949년경 촬영된 F2H-1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F2H-2: 날개 끝에 증가 탱크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량한 형상. 주익 아래 8개의 파일런이 설치되어 총 454kg 무장을 장착할 수 있다. 1,475kg 급 웨스팅하우스 J34-WE-34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됐다. 두 번째 양산 형상으로 308대가 제작됐다.

    F2H-2B: 단좌식 전폭기 형상. 핵 투발을 위해 개량한 형상으로, 기체 좌측에 1,465kg 마크(Mark) 8 핵폭탄 장착이 가능하다. 25대 양산됐다.

    핵투발이 가능했던 F2H-2B 전폭기 <출처: Public Domain>
    핵투발이 가능했던 F2H-2B 전폭기 <출처: Public Domain>

    F2H-2N: 단좌식 야간전투기 형상으로 APS-19 레이더를 장착하기 위해 기수가 길어졌다. 14대 제작됐다.

    F2H-2N 야간전투기 <출처: US Navy>
    F2H-2N 야간전투기 <출처: US Navy>

    F2H-2P: 단좌식 영상정찰기로, 기수를 늘여 6대의 카메라가 장착됐다. 89대가 양산됐다.

    미 해군 항공박물관에 전시 중인 F2H-2P 반시 정찰기의 모습. 6.25 전쟁 중에 사용된 기체 도장 그대로 전시 중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미 해군 항공박물관에 전시 중인 F2H-2P 반시 정찰기의 모습. 6.25 전쟁 중에 사용된 기체 도장 그대로 전시 중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F2H-3(F-2C): 단좌식 전천후 전투기 형상으로, 동체가 길어지고 미익을 재설계 했으며, 연료량이 늘었다. 주익 하부에 8개 파일런이 설치되어 최대 1,361kg 폭탄을 장착할 수 있다. APQ-41 레이더가 기수에 설치됐다. 250대가 양산됐으며 1962년 F-2C로 재지정됐다.

    미 해군 제 92 전투비행대대
    미 해군 제 92 전투비행대대 "실버 킹즈(Silver Kings)" 대대 마킹이 되어 있는 F2H-3 반시. 미 해군 항공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습이다. (출처: US Naval Aviation Museum)

    F2H-3P: F2H-3의 영상정찰기 형상 제안안. 실제 제작되지는 않았다.

    F2H-4(F-2D): 전천후 전투기 형상으로, 1,630kg 출력의 웨스팅하우스 J-34-WE-38 터보제트 엔진과 APG-37 레이더가 설치됐다. 외양은 F2H-3와 거의 동일하다. 최종 양산 형상으로 150대가 제작됐으며, 1962년 F-2D로 재지정됐다.

    지상에서 촬영된 F2H-4 반시.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미 해군 항공기지에서 촬영됐다. (출처: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지상에서 촬영된 F2H-4 반시.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미 해군 항공기지에서 촬영됐다. (출처: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F2H-5: 후퇴익을 설치하기 위해 제안한 비공식 설계안. XF-88 부두(Voodoo)의 미익과 애프터버너를 장착하려 했었다. 실제 제작되지는 않았다.


    제원

    용도: 함재기
    제조사: 맥도넬 항공(McDonnell Aircraft)
    승무원: 1명
    전장: 14.68m
    전고: 4.42m
    날개 길이: 12.73m
    날개 면적: 27.3㎡
    자체 중량: 5,980kg
    총중량: 9,531kg
    최대 이륙 중량: 11,437kg (활주로/캐터펄트)
    전투 중량: 7,094kg
    착륙 중량: 7,484kg(활주로) / 6,939kg(어레스팅 와이어 사용)
    연료 탑재량: 2,987리터(동체) x 3 / 333리터 x 2(주익)/ 1,514리터 x 2(날개 증가 탱크)
    추진체계: 3,250 파운드 급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J-34-WE-34 터보제트 엔진 x 2
    최고 속도: 930km/h
    순항 속도: 742km/h
    전투 범위: 1,880km 내장 연료만으로)
    페리 범위: 2,760km(170갤런 증가 탱크 x 2 부착 시)
    실용 상승 한도: 14,000m
    상승률: 30m/s
    무장: 20mm 콜트(Colt) Mk.12 기관포  x 4(상부 기관포 최대 220발, 하부 기관포 최대 250발)
            27kg 고폭 로켓 x 8
            230kg 폭탄 및 27kg 고폭 로켓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x 2(왕립 캐나다 해군 사양)
    항전: AN/RC-1(라디오 VHF), AN/ARN-6(무선나침반), AN/ARR-21(호밍)/AN-ARR2A(무선호밍)/
            AN/AFN-1(고도계), AN/APX-6(피아식별장치)/ AN/APG-30(레이더)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F2H 반시 전투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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