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33B 돌격보병포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위해 탄생하다
  • 남도현
  • 입력 : 2021.03.05 08:42
    3호 전차 차체를 이용한 33B 돌격보병포.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3호 전차 차체를 이용한 33B 돌격보병포.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40년 봄에 있었던 독불전쟁은 제2차 대전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지만 그 결과는 이후 전쟁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제1차 대전 당시에 서부전선은 독일이 4년 동안 수백만의 병력이 전사상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뚫는 데 실패했던 곳이었다. 그랬던 원한의 장소를 이번에는 전쟁이 개시되자마자 신속히 돌파하는 데 성공하면서 불과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1941년 10월 경 모스크바를 향해 전진하는 독일군 기갑부대.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애써 간과하던 독일군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 Public Domain >
    1941년 10월 경 모스크바를 향해 전진하는 독일군 기갑부대.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애써 간과하던 독일군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 Public Domain >

    공군의 호위를 받는 기갑부대로 상대의 종심까지 순식간 파고 들어가 저항 의지를 꺾어버린, 이른바 전격전을 실현한 것이다. 엄청난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승리를 거두면서 자신감을 얻은 독일은 이후 발칸반도, 북아프리카에서도 쾌속의 진격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절정은 1941년 여름에 시작된 독소전쟁이었다. 여기서도 유감없이 기갑부대를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러시아 평원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 해 겨울이 되자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무려 500만의 소련군을 붕괴시키고 모스크바 문 앞까지 다가갔는데도 소련이 굴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그 해 12월에 개시된 소련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밀려나면서 전선은 급속히 고착되었다. 만고의 진리처럼 여겨지던 전격전의 신화가 불과 2년도 못 되어 막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려있던 독일군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33B 돌격보병포는 전황이 급박하게 변하면서 서둘러 개발이 이루어졌다. < (cc) Галин Владимир Петрович at Wikimedia.org >
    33B 돌격보병포는 전황이 급박하게 변하면서 서둘러 개발이 이루어졌다. < (cc) Галин Владимир Петрович at Wikimedia.org >

    먼저 독일제 무기의 성능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에 고민했던 것처럼 독일이 현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후 연승을 이어가다 보니 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전차 프로젝트처럼 연승에 도취되어 묵혀 두거나 보류했던 사업이 재개되었다. 33B 돌격보병포(Sturm-Infanteriegeschütz 33B, 이하 33B)도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개발된 무기 중 하나다.

    독일은 1940년 초에 기갑부대의 지원용으로 15cm sIG 33 보병포(이하 sIG 33)를 1호 전차 차체에 올린 1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를 급하게 제작해 프랑스 전역에 투입했다. 기동력이나 사격 시의 반동처럼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으나 그럭저럭 쓸만한 장비로 판단했다. 그래서 이때의 전훈을 발판으로 같은 sIG 33을 2호 전차 차체와 결합한 2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I)도 개발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건물에 은폐해서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 이처럼 시가전으로 진행되면서 근접해서 화력을 투사할 수단이 요구되었다. < Public Domain >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건물에 은폐해서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 이처럼 시가전으로 진행되면서 근접해서 화력을 투사할 수단이 요구되었다. < Public Domain >

    하지만 테스트 결과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12문만 제작해서 아프리카 군단에 배치한 후 후속작 연구는 중단했다. 이는 엄밀히 말해 만용이었다. 앞서 언급처럼 계속해서 독일군이 승승장구하다 보니 과거의 절박함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소련 침공을 앞두고는 기존 전차, 돌격포 등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했다. 결국 전선이 정체된 후에서야 새로운 무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점차 시가전으로 변모해 가던 1942년 9월 20일 벌어진 회의에서 히틀러는 단 몇 발로 건물을 파괴할 수 있는 시가전용 기갑장비의 개발을 지시했다. 그것도 2주 이내에 투입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에 제작한 1호, 2호 자주보병포는 일단 문제점이 많았고 오픈 탑이어서 근접 시가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때 육군이 먼저 떠 올린 것이 3호 돌격포(Sturmgeschütz III)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건물에 은폐해서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 이처럼 시가전으로 진행되면서 근접해서 화력을 투사할 수단이 요구되었다. < Public Domain >

    3호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3호 돌격포는 유휴 장비를 개조한 것이 아니라 별도로 양산 중인 현용 장비였다. 또한 이름 그대로 보병을 엄호해 전선을 돌파하는 임무가 목적이었다. 다만 제거해야 할 구조물이 많은 시가전에서 사용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육군은 3호 돌격포를 개조해 주포를 sIG 33로 환장하면 총통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곧바로 알케트(Alkett)에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불과 한 달 만에 탄생한 괴물이 바로 33B다. 총 24문만 제작된 레어 아이템이어서 자료가 많지 않다 보니 개발 시점 등에서 다른 의견도 있으나 일선 투입 시점은 차이가 없다. 3호 전차가 아니라 3호 돌격포가 직접적인 개발 기반이 되었고 전작 자주보병포들과 목적이 조금 차이가 있어 제식 명칭이 '돌격보병포'다. 그러나 단지 차체만 다를 뿐이지 사실 공격력은 1호, 2호 자주보병포와 동일하다.


    특징

    33B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발 기반이 되었던 3호 돌격포처럼 상부까지 장갑을 둘렀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전고가 높아진 3호 돌격포처럼 보인다. 유탄 파편 정도만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오픈 탑이어서 상부 방어력이 전무한 자주보병포와 차이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화력이 대폭 강화된 3호 돌격포의 파생형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실제로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 가까이 다가가 사격을 가했다.

    33B 돌격보병포는 기반이 된 3호 돌격포처럼 상부까지 장갑이 둘려있다. 그래서 이름에서 보듯이 대구경 돌격포로도 구분된다. < Public Domain >
    33B 돌격보병포는 기반이 된 3호 돌격포처럼 상부까지 장갑이 둘려있다. 그래서 이름에서 보듯이 대구경 돌격포로도 구분된다. < Public Domain >

    3호 돌격포에 탑재된 7.5cm 주포에 비해 33B의 sIG 33의 포신과 주퇴복좌기는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워서 라인메탈(Rheinmetall)은 대형 보정기를 하단 마운트에 장착한 형태로 개량했다. 부앙각이 최대 -6°에서 +25°까지 움직일 수 있는데 이 정도면 33B의 역할이 근거리 직사 공격이라는 의미다. 전면, 측면 장갑을 늘렸고 자위용 부무장을 장착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33B의 개발과 배치가 마치 번갯불에 콩 볶는 것처럼 빨랐던 이유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문이었다. 1942년 9월을 넘어서면서 독소전쟁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철저한 시가전이었다. 그래서 앞서 히틀러의 언급처럼 이에 적합한 무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급하다 보니 제대로 테스트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자주보병포 운용 경험과 3호 돌격포의 검증된 성능 덕분에 커다란 문제 없이 가동된 것으로 전해진다.

    33B호 돌격보병포는 상당히 급하게 개발되었지만 별 탈 없이 가동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Public Domain >
    33B호 돌격보병포는 상당히 급하게 개발되었지만 별 탈 없이 가동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33B는 초도 물량으로 12문이 1942년 10월 28일 스탈린그라드로 보내졌다. 이들은 제177 돌격포대대, 제244 돌격포대대에 각 6문씩 배치된 후 곧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11월 7일 육군 최고사령부에 14Z 조준경이 없이 배치된 점이 보고되었을 정도로 급하게 개발되고 투입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까지 이들 물량은 순차적으로 소모되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전투에 임했다는 의미다.

    1943년 촬영된 33B 돌격보병포. 제23기갑사단에서 활약 당시의 모습으로 추측된다. < (cc) worldwarphotos.info >
    1943년 촬영된 33B 돌격보병포. 제23기갑사단에서 활약 당시의 모습으로 추측된다. < (cc) worldwarphotos.info >

    2차로 제작된 12문이 제243돌격포대대와 제245돌격포대대에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11월 21일에 사투를 벌이던 제6군이 소련군에게 완전히 포위되면서 불발로 끝났다. 대신 구원 부대인 제22기갑사단에 배속되어 실패로 끝난 구출 작전에서 활약했다. 이 전투에서 제22기갑사단이 해체 수준의 피해를 입자 잔여 물량들은 제23기갑사단으로 소속을 변경한 후 축차적으로 소모되었는데 기록에는 1944년 6월까지 활약한 것으로 언급된다.

    전쟁 말기 제23기갑사단 소속 당시의 33B 돌격보병포. 총 24문만 제작된 레어 아이템이다. < Public Domain >
    전쟁 말기 제23기갑사단 소속 당시의 33B 돌격보병포. 총 24문만 제작된 레어 아이템이다.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Sturm-Infanteriegeschütz 33B: 33B 돌격보병포

    SiG 33B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SiG 33B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Sturmgeschütz III: 3호 돌격포

    STuG III < (cc) Roland Turner at Wikimedia.org >
    STuG III < (cc) Roland Turner at Wikimedia.org >

    Sturmhaubitze 42: 33B처럼 화력 강화를 위해 10.5cm 18호 곡사포를 장착한 3호 돌격포 파생형

    StuH 42 < Public Domain >
    StuH 42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2년
    생산 대수: 24문
    중량: 21톤
    전장: 5.4m
    전폭: 2.9m
    전고: 2.3m
    무장: 1×15 cm sIG 33/1
            1×7.92mm MG34
    엔진: 마이바흐 HL120 TRM 수랭식 12기통 가솔린 엔진 296마력(221kW)
    추력 대비 중량: 14.3마력/톤
    항속 거리: 110km
    최고 속도: 2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33B 돌격보병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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