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StG44 돌격소총
총기 역사를 바꾼 돌격소총의 아버지
  • 남도현
  • 입력 : 2021.03.03 08:33
    StG44는 현재 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돌격소총의 시대를 개막한 무기사의 걸작이다. < (cc) The Swedish Army Museum >
    StG44는 현재 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돌격소총의 시대를 개막한 무기사의 걸작이다. < (cc) The Swedish Army Museum >


    개발의 역사

    제1차 대전은 군사적으로 많은 숙제를 남겼다. 워낙 참혹했기에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점은 확실했다. 새로운 전략, 전술, 작전이 요구되었고 이에 걸맞게 무기도 갖춰야 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보병의 제식 화기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은 기존 Gew98 소총의 교체를 검토했다. 참호전에서 연사력이 떨어지는 볼트액션 소총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후 승전국이 가한 군비 제약과 대공황의 여파로 말미암아 결국 Gew98을 개량한 Kar98k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는데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를 도입한 미국을 제외한 당시 모든 나라가 같은 처지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MG34(후에 MG42로 대체) 기관총이 분대의 화력을 담당하고 근접전용으로 MP38(후에 MP40으로 대체) 기관단총 1정을 부사관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반자동소총인 SVT-40으로 무장하고 돌격하는 소련군. 소부대 화력에서 밀리자 독일군은 대책을 강구했다. < (cc) RIA Novosti >
    반자동소총인 SVT-40으로 무장하고 돌격하는 소련군. 소부대 화력에서 밀리자 독일군은 대책을 강구했다. < (cc) RIA Novosti >

    1939년 폴란드, 이듬해 북유럽과 프랑스 정복에 연이어 성공하면서 독일은 그런 결정이 옳은 것이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1941년 소련을 침공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연전연승 중이었지만 툭하면 화력의 열세를 느끼는 경우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소련군 분대는 독일군보다 더 많은 기관단총을 보유하고 있었고 일부는 전체가 기관단총 혹은 SVT-40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독일의 무기 생산 능력이 뒤졌기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런 열세를 양으로 뒤집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질적으로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런 의도에 따라 독일은 기존 소총의 정확도, 기관총의 연사력 그리고 기관단총의 휴대성을 모두 보유한 새로운 소총 개발에 나섰다.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해 총기의 역사를 바꾼 걸작이 너무나도 유명한 StG44(Sturmgewehr44)다.

    StG44는 비록 전쟁의 향방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총기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 (cc) Quickload at Wikimedia.org >
    StG44는 비록 전쟁의 향방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총기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 (cc) Quickload at Wikimedia.org >

    총의 자동화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으나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잡는 것이 선결 과제다. 가장 쉬운 해결책이 무게를 늘리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기관총처럼 휴대가 어렵다. 1940년대 이전까지 존재한 자동소총 중 가장 성공작이라 할 수 있던 미국의 M1918 BAR도 10kg 가까이 되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기관단총은 권총탄을 사용해서 반동과 무게를 잡았으나 대신 파괴력, 사거리, 정확도는 포기해야 했다.

    개발에 뛰어든 해넬(Haenel)은 대부분의 보병 간 교전이 300m 이내에서 벌어지므로 새로운 소총은 그 정도 내에서 파괴력, 정확도만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기존 7.92×57mm 마우저(Mauser)탄보다 장약량이 적은 탄을 사용하면 위력은 유지하되 반동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마침 독일에는 육군 병기국의 주도로 1939년 개발된 단소탄(短小彈)인 7.92×33mm 쿠르즈(Kurz)탄이 있었다.

    마우저탄의 길이를 단축한 쿠르즈탄. 장약이 감소한 만큼 사격 시 반동을 줄였지만 300m 이내에서는 위력이 특별히 감소되지 않았다. < (cc) Volhv944 at Wikimedia.org >
    마우저탄의 길이를 단축한 쿠르즈탄. 장약이 감소한 만큼 사격 시 반동을 줄였지만 300m 이내에서는 위력이 특별히 감소되지 않았다. < (cc) Volhv944 at Wikimedia.org >

    해넬은 이를 기반으로 1942년 가스작동식 Mkb42(H)을 개발했다. 발터의 MKb42(W)와 벌인 경쟁에서 승리한 후 8,000정의 시험 물량이 제작되어 전선에 공급했는데 Kar98k 소총과 MP40 기관단총의 장점을 결합한 소총이라며 일선의 반응이 뜨거웠다. 다만 오픈볼트여서 정확도가 떨어졌고 오염물 유입으로 작동 불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조준경 부착을 위한 레일과 탄피 배출구로 덮개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별도의 탄을 사용하면 보급에 문제가 생기므로 Mkb42(H)의 양산은 미루어졌다. 많이 비판을 받지만 사실 이는 당시 보급 문제로 애를 먹던 독일군의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대신 기존 마우저탄을 사용하는 소총의 개발이 별도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구스틀로프(Gustloff)의 MKb42(G)는 실패작이 되었다. 반면 일선에서 Mkb42(H)를 공급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Mkb42(H)와 끝까지 경쟁을 벌인 발터의 MKb42(W). 총열을 감싸는 형태의 피스톤이 열을 받을 경우 작동이 안 되는 치명적인 문제로 탈락했다. < (cc) Hmaag at Wikimedia.org >
    Mkb42(H)와 끝까지 경쟁을 벌인 발터의 MKb42(W). 총열을 감싸는 형태의 피스톤이 열을 받을 경우 작동이 안 되는 치명적인 문제로 탈락했다. < (cc) Hmaag at Wikimedia.org >

    이에 육군은 MP40 후속작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히틀러의 허락을 받아 MKb42(H)의 개량에 나서 클로즈드볼트로 동작하며 여러 부분을 개선한 MP43을 개발했다. 히틀러는 탄 보급 문제로 망설이면서 여전히 마우저탄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일선에서의 요구가 너무 크자 양산을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MP43의 개량형이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선에 공급되었다.

    암울한 상황을 반전시켜달라는 희망을 담아 전쟁 말기에 등장한 여타 무기들처럼 돌격(Sturm)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StG44로 명명되었다. 때문에 관계자들이 모여 공식적으로 정의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 단소탄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을 M1918 BAR 같은 전작들과 구분해서 특별히 돌격소총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주력 소총 대부분이 이 방식을 따르고 있어 StG44를 흔히 돌격소총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특징

    StG44은 분당 최대 600발에 이르는 연사력을 자랑하면서도 반동이 적어 집중도가 뛰어나며 볼트액션 소총처럼 단발로 조준 사격도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양산이 이루어지던 때가 전쟁 말기여서 자재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어져 생산성이 좋고 제작 단가도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강재가 많이 사용되다 보니 열전도율이 높아 연사 시 쉽게 과열되었고 사수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다.

    ZF4 사이트를 부착하고 조준 사격 중인 독일군 병사. < Public Domain >
    ZF4 사이트를 부착하고 조준 사격 중인 독일군 병사. < Public Domain >

    손잡이 등을 플라스틱의 일종인 베이클라이트로 제작해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자 했으나 30발들이 탄창과 결합하면 5kg 정도에 이르렀다. 이는 전후 동서 진영을 대표한 대표적인 돌격소총들인 AK-47과 M16과 비교하면 1~2kg 정도 더 나가나 휴대하는 데 크게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시대를 선도할 만큼 좋은 성능이었지만 구조가 복잡한 편이어서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잡이 등에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했으나 철재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무게가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 (cc) Rama at Wikimedia.org >
    손잡이 등에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했으나 철재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무게가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 (cc) Rama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StG44는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개발 중의 우여곡절 등으로 너무 늦게 제식화된 데다 물자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소량이라 할 수 있는, 총 425,977정이 생산되었다. 때문에 각개 병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적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음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니 StG44가 본격적으로 일선에 공급된 1944년이 되었을 때,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한 지경이었다.

    1944년 12월 벌지 전투 당시 StG44로 무장하고 전투 중인 독일군. < Public Domain >
    1944년 12월 벌지 전투 당시 StG44로 무장하고 전투 중인 독일군. < Public Domain >

    종전 후 AK-47이 공급되기 전까지 동독에서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었고 전시에 일부 물량이 교전국을 거쳐 여러 나라에 퍼져 나갔다. 때문에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소말리아 내전, 현재도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 등에 등장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돌격소총의 아버지로 불리나 후속 소총들이 개념을 승계했을 뿐이지 기술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60년대 초반 StG44로 무장하고 퍼레이드 중인 동독 무장경찰대. < Public Domain >
    1960년대 초반 StG44로 무장하고 퍼레이드 중인 동독 무장경찰대.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MKb42(H): 오픈볼트 방식 선행 양산형

    MKb42(H) < (cc) The Swedish Army Museum >
    MKb42(H) < (cc) The Swedish Army Museum >

    MP43: 클로즈드볼트 방식 선행 양산형

    MP43 < Public Domain >
    MP43 < Public Domain >

    MP43/1: 유탄발사기 운용 가능형

    MP43/1 < Public Domain >
    MP43/1 < Public Domain >

    StG44: 양산형

    StG44 < (cc) Claus Ableiter at Wikimedia.org >
    StG44 < (cc) Claus Ableiter at Wikimedia.org >

    StG45(M): 롤러자연식 블로우백 방식 도입 개량형

    StG45(M) < Public Domain >
    StG45(M) < Public Domain >

    GSG-StG44: 2012년 GSG에서 복제 생산한 반자동소총형 모델

    GSG-StG44 < (cc) Michael E. Cumpston at Wikimedia.org >
    GSG-StG44 < (cc) Michael E. Cumpston at Wikimedia.org >


    제원

    제작사: 해넬 외
    구경: 7.92mm
    탄약: 7.92×33mm 쿠르즈
    급탄: 30발 들이 탄창
    전장: 940mm
    총열: 420mm
    중량: 4.6kg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StG44 돌격소총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