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2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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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커레지어스급 항공모함

시대를 선도했으나 굴욕적인 기록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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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레지어스급 중 가장 먼저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고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3번 함 퓨리어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항공모함은 20세기 들어 등장했으므로 여러 종류의 현용 군함들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랫동안 바다의 제왕 노릇을 하던 전함을 순식간에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만들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태평양전쟁은 항공모함에 의해 시작되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강대국의 힘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16년 취역 직후의 순양전함 커레지어스. 33노트의 고속으로 순항이 가능했다. < Public Domain >

이처럼 굵지만 짧은 역사에서 영국 해군의 커레이저스급(Courageous class)은 최초로 격침당한 항공모함들이라는 감추고 싶은 기록을 남겼다. 군함에게 있어 격침은 씻기 어려운 치욕이다. 하지만 전쟁사나 무기사 측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패자의 굴욕적인 전과 또한 예외 없이 중요하다. 특히 처음이라는 기록은 해전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의미하기에 여타 전과보다 의의가 크게 취급된다.

초창기의 여타 항공모함들처럼 커레이저스급도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건조된 것이 아니라 기존 순양전함의 선체를 개조한 것이다. 순양전함은 전함과 더불어 거함거포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투함이다. 유틀란트 해전도 싱겁게 막을 내렸을 만큼 제1차 대전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해전은 없었지만 속도가 빠른 순양전함은 항상 선봉에 투입되었기에 그나마 가장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제1차 대전 참전 당시의 2번 함 글로리어스. 제2차 헬리고란트 바이트 해전에서 활약했다. < Public Domain >

그런데 커레이저스급은 등장 과정이 동 시기에 활약한 여타 순양전함들과 달랐다. 원래 순양전함은 전함과 더불어 함대의 주력을 담당할 목적으로 탄생했으나 이들은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제1해군경(해군 총사령관) 피셔 제독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진 발트해 연안에 대규모 연합군을 상륙시켜 독일의 후방을 공략하는 발트 계획(Baltic Project)을 구상했다.

적 후방에 거점을 마련하려면 엄청난 지상군을 투입해야 하고 이들을 꾸준히 지원할 해상 전력도 필요하다. 이에 화력은 강화하되 장갑을 줄여 고속 순항 능력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순양전함이 추가로 요구되었다. 그렇게 해서 1915년부터 대형경순양함(Large light cruiser)이라는 어정쩡한 함종으로 구분되어 건조에 들어간 3척의 전투함이 커레지어스급 순양전함이다.

1917년 포탑을 제거하고 함교 전후에 비행갑판을 설치한 퓨리어스. 실험 함이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항공모함이 탄생했다. < Public Domain >

이들은 1916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취역했지만 정작 무모했던 발트 계획은 취소된 상태였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독일 해군이 더욱 수세적으로 나오면서 제2차 헬리고란트 바이트 해전에 참전한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전과 없이 종전을 맞이했다. 거대한 전쟁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전력 감축이 이루어지기는 하나 커레지어스급은 여기에 더해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면서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다.

1922년 워싱턴 해군 조약이 체결되자 각국은 허용된 전력 이외의 함정들을 폐기하거나 건조를 중단해야 했다. 그런데 기존 함정의 일부는 항공모함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었다. 총 66,000톤을 전환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영국은 커레지어스급을 항공모함으로 바꾸었다. 이미 3번 함인 퓨리어스(Furious)는 1917년에 선수와 선미의 포탑을 제거하고 비행갑판을 만들어 함재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커레지어스(좌)와 퓨리어스. 같은 순양함을 기반으로 개조가 이루어졌으나 모양이나 구조가 상이했다. < Public Domain >

1번 함 커레지어스와 2번 함 글로리어스(Glorious)는 1924년에 개장 작업에 들어가 1928년, 1930년에 각각 완성되었다. 당시는 전함, 순양전함이 여전히 바다의 주인공으로 행세하던 시기였고 항공모함의 운용 기법이나 전술 등이 정립되지 않았다. 또한 어떤 구조가 적합한 지 알지 못한 데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초창기 항공모함의 형태도 중구난방이었다.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커레지어스급도 각각 모양이 달랐다.

1939년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영국은 커레지어스급 3척을 포함해 총 7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 일본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미국, 일본에 비해 전쟁 중 영국 항공모함의 활약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이나 타란토 공습이 있었으나 아무래도 주적인 독일, 이탈리아 해군의 전력이 빈약해서 함대 간 대결 같은 인상적인 해전은 많지 않았고 그만큼 항공모함의 활약도 적었던 것이다.

커레이저스급은 항모 도입 초기의 시험작 중 하나로 블랙번 샤크 등 다양한 항공기를 운용했다.
그러나 영국의 항공모함들은 역사상 최초와 두 번째로 격침당했다. 세계 해군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가히 망신살이라 할 수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커레지어스급이었다. 1939년 9월 17일에 커레지어스가 독일 잠수함의 기습에 격침되었고 이듬해 6월 8일에는 글로리어스가 독일 함대와의 정면 대결에서 완패하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커레지어스급은 시대를 선도했으나 비극적이었던 항공모함이었다.


특징

1917년 1차 개장 당시의 퓨리어스는 선미에 갑판만 설치한 일종의 실험 함이었다. 이렇게 얻은 운용 결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모든 구조물을 제거하고 평갑판을 갖춘 항공모함으로 탈바꿈했고 곧이어 커레지어스와 글로리어스도 개조되었다. 상부는 착함용으로, 하부는 격납고 및 이함용으로 나누어 사용하도록 비행갑판이 2층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런 구조는 제2차 대전을 경험하며 사라졌다.

이착함이 분리된 2층 구조의 갑판을 갖추었으나 실전을 거치며 효과가 없자 이들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 IWM >
커레지어스급은 착함하는 함재기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상부 갑판의 경우 선수에서 선미 쪽으로 3/4 정도 되는 부분부터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격납고와 상부 갑판을 2개의 승강기가 연결하고 있는데, 선체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함재기를 옮기는 동안 이착함을 할 수가 없다. 퓨리어스는 36기, 커레지어스와 글로리어스는 48기의 함재기를 운용할 수 있었고 방어용 무장으로 16문의 4.7인치 포를 장착했다.
커레지어스급은 순양전함을 개조한 것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이렇게 얻은 노하우가 있었기에 오늘날 항공모함이 등장할 수 있었다. < HMS Courageous Association >
지금도 재래식 동력을 사용하는 한 연돌은 항공모함에서 상당히 골치 아픈 구조물이다. 더구나 커레지어스급은 순양전함을 개조한 것이기에 함교가 위치한 우측으로 연돌을 옮기고 엔진과 덕트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만큼 내부 공간이 줄어들었고 배기가스로 인해 착함하는 항공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승무원들의 거주 여건도 나빴다. 만재 배수량이 5천 톤가량 증가하면서 속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30노트의 고속 항진이 가능했다.

운용 현황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 중인 커레지어스. < Public Domain >
1번 함 커레지어스는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헌터킬러전대(Hunter-killer Group)을 이끌고 U보트를 찾아 격침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전쟁에 뛰어든 지 보름 만에 아일랜드 근해에서 독일의 U-29가 발사한 어뢰 두발을 맞고 역사상 최초로 격침된 항공모함이자 제2차 대전에서 침몰한 최초의 영국 군함이 되었다. 이에 놀란 영국은 항공모함을 동원해 잠수함을 추격하는 임무를 중단했다.
커레지어스 항모의 침몰을 알리는 당시 뉴스 <출처: 유튜브>
제2차 대전 발발 당시 인도양에서 작전을 펼치던 2번 함 글로리어스는 1940년 1월 본국으로 이동해 초계 임무를 벌였다. 그러던 4월 9일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출동해서 두 달 가까이 북해 인근에서 작전을 펼쳤다. 그러던 6월 8일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가 이끄는 독일 함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면서 역사상 두 번째로 격침된 항공모함이 되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 활동하던 1940년 5월의 글로리어스. 한 달 후 격침되었다. < Public Domain >
반면 3번 함 퓨리어스는 전쟁 내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노르웨이 전역의 나르빅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고 영국이 위기였던 1940년에는 대서양을 오가는 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정부가 보유한 금괴를 안전지대인 캐나다로 옮기기도 했다. 이후 지중해로 건너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활동하는 영국 원정군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치다 노후화가 심각해 1944년 예비역으로 돌려졌고 종전 후 폐기되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퓨리어스에서 1944년 8월 엘리베이터를 통해 갑판으로 옮겨지는 씨파이어 전투기.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커레지어스(HMS Courageous)

< Public Domain >

건조 1915년 3월 26일
진수 1916년 2월 5일
취역 1916년 11월 4일
개조 1924년~1928년
격침 1939년 9월 17일


글로리어스(HMS Glorious)
< Public Domain >

건조 1915년 5월 1일
진수 1916년 4월 20일
취역 1916년 12월 31일
개조 1924년~1930년
격침 1940년 6월 8일


퓨리어스(HMS Furious)
< Public Domain >
건조 1915년 6월 8일
진수 1916년 8월 15일
취역 1917년 6월 26일
개조 1921년~1925년
퇴역 1945년 4월


제원(항공모함 개조 후)

만재 배수량: 26,990톤
전장: 239.8m
갑판: 224.1m
선폭: 27.6m
흘수: 8.5m
추진기관: 야로우 보일러×18 / 90,000마력(67,000kW)
4축 스팀 터빈 세트 4기
속력: 30노트
항속 거리: 6,630마일
무장: 4.7인치(120mm) 대공포 × 16
         함재기 × 48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