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2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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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C-4 카리부

미 육군이 운용했던 하늘의 "두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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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C-4 카리부 수송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2차대전 당시 육군항공대를 보유하고 있던 육군은 1947년 국방조직법과 대통령령 제9877호로 공군이 독립하면서 항공기의 대부분을 잃었다. 특히 미군은 1948년 3월 11일부터 14일 사이 키웨스트 합의(Key West Agreement)를 통하여 각군의 임무가 서로 충돌하거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각군의 기능을 합의함과 동시에 합참의 역할을 강화했다. 여러가지 합의사항 중에서 핵심은 우선 전략 핵폭격능력을 공군이 해군 함재기와 공유할 것과 육군의 요구에 따라 해병대의 규모와 능력에 대한 제한을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자연스럽게 각 군종마다 획득해야할 항공기의 종류를 확정되었다.

키웨스트 합의에 참여한 제임스 설리반 국방장관(가운데)과 각 군 총장 등 수뇌부의 모습 <출처: 미 국방부>
항공기의 상당부분을 잃었지만, 육군은 항공기의 확보에 집중했다. 회전익기는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었지만, 고정익기는 공군과의 합의로 정찰기를 확보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 시기 단거리 이착륙(Short Take-Off and Landing, STOL) 항공기에서는 공군의 제약이 거의 없었으므로, 육군은 곧바로 STOL 항공기들을 확보하기에 나섰다. 육군은 1951년 드해빌랜드 캐나다(DeHavilland of Canada, 이하 DHC)의 DHC-2 '비버(Beaver)'를 L-20 정찰연락기로 채용했으며, 1955년에는 사이즈가 조금 더 큰 DHC-3 '오터(Otter)'를 U-1A로 채용했다.
미 육군은 STOL 고정익기를 공격적으로 도입하면서 DHC에 상당한 신뢰를 보냈다. 사진은 DHC-3 오터로 미 육군에 U-1A로 도입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DHC는 애초에 극한지나 오지 비행(奧地飛行, Bush flight)에 특화된 항공기를 만들어내는 회사였는데, 이러한 지역에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켜야만 하는 미 육군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육군과 DHC의 협력은 긴밀히 이뤄졌다. 한편 미 육군이 STOL 고정익기를 확보하는 이외에도 대형헬기인 CH-47을 획득하여 1세대 헬기전력까지 교체하려고 나서자, 미 공군이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공중기동(air mobility)의 역할을 누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경쟁이 시작되었다.
DHC-4는 몇차례 설계변경을 거쳤는데, 위는 H자형 꼬리날개를 채용한 설계로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출처: DeHavilland>
그러자 육군은 기존의 C-47 수송기의 탑재량에 비버나 오터가 가진 STOL 성능을 결합한 기체를 요구하게 되었다. 육군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던 DHC는 1954년 DHC-4의 개발에 나섰다. 최초의 설계는 자중 13,000파운드에 쌍발 엔진을 장착하며, 고정식 랜딩기어에 화물 적하를 위한 후방 램프를 장착하는 오터의 확장형이었다. 그러나 미 육군의 작전요구성능이 점차 세부화 됨에 따라 초기의 설계안은 폐기되었다. 작전요구성능에 따라 도출된 새로운 설계에서는 CH-47과 탑재량이 동일한 3톤 짜리 STOL 항공기로 만들어졌다.
육군은 신속히 고정익수송기를 도입하고자 하여 설계안 단계에서 DHC-4의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출처: DeHavilland>
한편 DHC-4는 수정된 설계안에서도 2가지 다른 설계를 고려했었다. 하나는 H자형 꼬리날개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형 꼬리날개였는데, 최종적으로는 후자가 선택되었다. 애초에 고정식으로 구상되었던 랜딩기어는 새로운 설계에서는 내부수납형태로 바뀌었다. DHC는 육군이 가장 관심을 가지던 화물칸과 후방램프의 설계를 가다듬었다. 또한 DHC-4는 더블 슬로트 플랩(double-slotted flaps)을 채택하여 STOL 성능을 확보하였다.
DHC-3의 동체 위쪽에 장착되어 시험중인 DHC-4의 축소모델 <출처: DeHavilland>
미 육군은 신형 수송기의 빠른 획득을 위하여, 완성된 기체가 나오기도 전에 설계안만이 완성된 상태에서 계약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1957년 초에 양산전 시험평가기체 5대를 주문하였으며, 이 기체에는 YAC-1 '카리부(Caribou, 캐나다 순록)'로 명명되었다. 카리부는 최대 자중이 26,000파운드로 육군이 보유한 고정익기 가운데 가장 커다란 기체였다. 빠른 개발을 위해 풍동모델을 통해 항공기 특성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한편, 1년만에 스케일 모델을 만들어 항공기 위에 탑재하여 시험평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1958년 7월 30일 초도비행에서 이륙 중인 DHC-4 카리부 시제1호기의 모습 <출처: DeHavilland>
이에 따라 DHC-4 시제1호기(기번 CF-KTK-X)는 1958년 7월 30일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기체에 만족한 육군은 1959년 DHC-4 56대를 주문했으며, 1961년부터 인도가 시작되었다. DHC-4 카리부는 제식명이 AC-1 카리부로 명명되었다가, 분류형식의 변경에 따라 1962년부터는 CV-2A 카리부로 바뀌었다. 1963년에 육군은 카리부 103대를 추가로 발주하였는데, 새로 발주한 기체는 APB-158 기상레이더를 장착하는 등 개량을 가하였으며, CV-2B로 분류되었다.
카리부의 성능에 만족한 미군은 이를 개량한 DHC-5 버팔로의 개발을 지원했다. <출처: Public Domain>
카리부에 만족한 육군은 이를 계속적으로 개량하고자 했다. 미 육군과 캐나다 정부의 출자로 카리부 개량형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카리부의 동체를 연장하고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DHC-5 '카리부II'(추후에 '버팔로'로 개명됨)가 개발되어 1961년 9월 22일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미 육군은 모두 4대의 시제기를 주문하여 YAC-2로 명명하고 1964년 4월부터 비행에 나섰다. 시험평가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미 육군은 추가주문을 하지 않았다. 육군의 수송기들이 모두 공군으로 이전됨에 따라 사업의 추동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부와 버팔로를 인수한 공군은 각각 C-7A/B와 C-8A로 재명명하여 운용하였다.
미군이 보유했던 소수의 DHC-5는 NASA에서 XC-8A 시제기로 개조되어 다양한 시험을 거쳤다. <출처: NASA>
그러나 미국이 버팔로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은 아니어서, NASA(National Aeronautics & Space Administration, 미 항공우주국)는 C-8A를 제트기로 개량한 XC-8A 2종의 시제기를 운용하기도 했다. 첫번째 모델은 XC-8A AWJSRA(Augmented Jet Flap STOL Research Aircraft)로 1972년부터 비행을 시작하여 단거리 이착륙성능의 한계를 시험했다. 두번째 모델은 XC-8A QSRA(Quiet Short-Haul Research Aircraft)로, 1978년부터 비행을 시작하여 키티호크 항모에서 이착륙을 시연했다. XC-8A QSRA에서 수집된 비행데이터는 이후 보잉이 C-17을 개발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특징
DHC-4는 고익 쌍발의 중형 전술 STOL 수송기이다. 사진은 기상레이더를 장착한 C-7B이다. <출처: Public Domain>
DHC-4 카리부는 고익 쌍발의 중형 전술수송 STOL 항공기이다. 엔진으로는 프랫&휘트니의 R-2000-7M2 공랭식 12기통 트윈 와스프(Twin Wasp) 래디얼 엔진 2개를 채용했으며, 이에 따라 최대 346km/h(158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카리부는 STOL 항공기로서 저속성능이 뛰어나 최대탑재중량에서 무려 109km/h(59노트)까지 저속으로 비행을 유지할 수 있었다.
C-7 카리부의 이착륙 거리를 설명하는 도해 <출처: DeHavilland>
카리부는 뛰어난 단거리 이착륙 성능으로 일선의 지지를 받았다. C-7A는 바람이 없이도 최단 이륙거리가 311m(1,020 피트)에 불과했고, 20마일의 뒷바람을 맞으면 이륙거리는 140m(460 피트)에 불과했다. 착륙시에도 최단 착륙거리는 311m로 이륙과 동일했다. C-7B는 최단 이륙거리가 361m(1,185 피트), 최단 착륙거리가 376m(1,235 피트)에 이르러, A형보다 다소 길이가 늘어났으나 여전히 비교할만한 기종이 없었다.
C-7 카리부는 화물캐빈의 다양한 구성이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카리부의 화물캐빈은 CH-47 시누크에 비하여 다소 작은 편으로, 사이즈는 길이 8.76m, 높이 1.9m, 최대폭 2.21m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카리부의 화물캐빈은 차량의 경우 지프 2대를 탑재할 수 있는 크기였다. 병력 32명이나 강하병 26명, 또는 22개의 들것과 부상병 좌석/의무병 좌석 각각 4개 등으로 내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최대탑재 중량은 3,965kg으로 CH-47에 비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C-7 카리부는 CH-47보다 캐빈의 크기가 약간 작았지만 지프 2대를 수납하는 등 실속있는 기종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운용의 역사

미 육군은 1961년부터 AC-1 카리부를 인도받기 시작했다. 기체를 인수하자마자 육군은 카리부를 남베트남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의 전신인 고등연구국) 사업으로 AC-1을 편입하여 불과 1962년에 베트남전선에서 시험평가를 시작했다. 한편 태평양 사령관은 카리부의 베트남 파병을 반대했는데, 이미 공군의 C-123과 육군의 U-1이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기체를 파병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맥나라마 국방장관이 베트남에서 지상군의 공중기동을 높일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1962년 4월 카리부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

AC-1/CV-2A 카리부는 1961년부터 육군에 인도되었으며, 이듬해부터 베트남전선에 투입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카리부는 C-123 프로바이더에 비하여 탑재량은 절반 정도이고 작전반경은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극히도 짧은 이착륙거리로인하여 최전방의 격오지에 대한 전술수송에서는 카리부가 단연 뛰어난 운송능력을 발휘했다. 다만 카리부는 다른 공군기들과는 달리 최대상승한도가 낮은 편이어서 헬기처럼 지형을 따라 저고도비행을 해야만 했으며, 지상의 대공포화와 악천후를 피하여 비행경로를 우회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다.
카리부는 활주로 길이가 짧은 최전방 기지의 보급에서 매우 유용한 기체였다. <출처: Public Domain>
베트남전에 미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이전,  카리부는 그린베레의 지원임무에 애용되었다. 즉 대원들의 침투강하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방의 특수부대 기지에 물자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지형이 허락하는 경우 LOLEX(Low Level Extraction) 투하방식을 사용하여, 그 어느 항공기보다 정확한 물자보급이 가능했다. LOLEX 방식은 추후 LAPES로 발전하면서 수송기 물자투하의 기준이 되었다. 특히 C-123이나 C-130이 착륙할 수 없는 활주로에 카리부가 투입되면서 부족한 CH-47의 소요를 채워주면서 톡톡히 역할을 해냈다.
1964년말 공중급유용으로 개조된 육군의 CV-2B 카리부가 OV-1A 모호크에 공궁급유를 실시하고 있다. <출처: 미 육군>
한편 미 육군과 공군의 합의로 인하여 육군이 보유한 카리브 수송기 144대가 1966년부터 모두 공군에 이관되기 시작했다. 1967년 1월 카리부 전 기체를 육군으로부터 인수한 공군은 카리부에 C-7이라는 분류명을 부여했다. 운용주체가 바뀌었으나, 조종사와 승무원을 그대로 유지되었다. 공군으로 이관되었다고 해서 카리부이 유용성이 무시되지는 않아, 1967년 한해 동안 C-7 카리부는 10만 시간을 넘도록 전투임무에 투입되었다. 카리부는 1968년과 1969년을 합쳐서도 모두 10만 소티의 비행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했다.
1967년 아군이 오인사격한 대공포탄에 피격된 C-7 카리부의 모습. 탑승원 전원이 사망했다.<출처: Public Domain>
한편 1971년부터초부터 미군의 본격적인 철수가 시작되면서 미 공군은 카리부 35대를 남베트남 공군에 이관했다. 그러나 1973년 미군이 전부 철수하자 남베트남 공군은 예비부속의 부족 등으로 더이상 카리부를 운용할 수 없게 되었고, 남은 기체는 대부분 보관처리되었으며 일부 기체가 교육훈련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1975년 공산군이 베트남을 점령했을 때, 카리부 6대가 베트남을 빠져나와 태국의 유타파오 공군기지로 망명했다. 베트남전을 통틀어 미육군/공군의 카리브 수송기는 모두 20대가 파괴되었으며, 조종사와 승조원은 모두 31명이 희생되었다.
C-7 카리부는 다시 육군으로 이전되어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으며, 사진처럼 골든나이츠 전용기체로 투입되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던 카리부 가운데 32대는 미 본토로 보내졌으며, 미 공군 예비군과 주 방위군에 이관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육군이 일부 기체를 회수해왔는데, 육군은 1980년대까지 카리부를 꾸준히 운용했다. 또한 기체중 한 대는 미 육군의 낙하산 강하시범팀인 골든 나이츠(Golden Knights)의 항공기로 사용되면서 마지막을 지켰다.
미국 이외에는 캐나다와 호주가 카리부를 본격적으로 운용했던 국가였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국 이외에도 제작사의 본토인 캐나다에서도 카리부는 운용되었다. 이외에도 호주,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스페인 , 가나, 케냐, 카메룬,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등에서도 카리부를 운용했다. 호주 공군의 경우 베트남전부터 카리부를 사용하여, 투입한 13대 가운데 3대를 소실했으며, 4대가 사고로 손상을 입었다. 호주 공군은 2000년대까지도 카리부를 사용하다가 2009년부터 교체를 시작하여 에어버스 밀리터리의 C-295 터보프롭 수송기를 도입했다.
2019년 시드니 에어쇼에서 비행에 나선 DHC-4 카리부의 모습 <출처: 유튜브>


파생형

DHC-4 카리부

YAC-1: DHC-4 카리부 시제기. 미 육군의 시험평가를 위하여 5기가 제작되었다.

YAC-1 시제2호기 <출처: BAE 시스템>
AC-1/CV-2A: DHC-4의 미 육군 양산형. 미 육군의 초도 도입기체로 모두 56대가 제작되었으며, 1962년 CV-2A 카리부로 재명명되었다.
CV-2A 카리부 <출처: Public Domain>
AC-1A/CV-2B: DHC-4의 개량형. 미 육군의 2차 도입기체로 모두 103대가 도입되었다. 도입시에는 AC-1A로 명명되었다가 추후에 CV-2B로 재분류되었다. CV-2A와의 가장 큰 차이는 AN/APB-158 기상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는 점으로, 기수 부분에 기상레이더용 레이돔이 돌출되어 있다.
CV-2B 카리부 <출처: Public Domain>
C-7A/B: 카리부의 미 공군 소속기체. 미 육군은 공군으로 144대의 카리부를 이전하였으며 CV-2A가 C-7A, CV-2B가 C-7B로 재명명되었다.
C-7B 카리부 수송기 <출처: Public Domain>
CC-108: DHC-4의 캐나다 공군형
CC-108 <출처: Public Domain>
DHC-4T 터보 카리부: 카리부의 터보프롭형. PWC의 PT6A-67T 터보프롭 엔진이 장착되었다.
DHC-4T 터보 카리부 <출처: Public Domain>

DHC-5 버팔로

C-8A: 미군의 DHC-5 도입모델. DHC-4를 바탕으로 동체를 2m 가량 연장했으며, 래디얼 엔진을 제너럴 일렉트릭 CT64-820-4 터보프롭 엔진으로 교체했다. 미 육군이 시제기 4대를 도입하여 YAC-2로 명명했으나, 이 후 공군으로 이관되면서 C-8A로 재명명되었다.

C-8A 버팔로 <출처: Public Domain>
CC-115: 캐나다군의 DHC-5 버팔로
CC-115 <출처: Public Domain>
XC-8A AWJSRA: 버팔로의 STOL 시제기. 롤스로이스 스페이 터보팬 엔진 2개를 장착했으며, 고정식 리딩에지 슬랫과 증강플랩을 장착하였다.
XC-8A AWJSRA <출처: NASA>
XC-8A QSRA: 버팔로의 또다른 NASA 시제기. 라이커밍 F102 터보팬 엔진을 4개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키티호크 항모에 착함중인 XC-8A QSRA 시험기체 <출처: NASA>


제원

기종: C-7B 카리부
제조사: 드해빌랜드 캐나다
형식: 2발 래디얼 엔진 / 전술 수송기
전폭: 29.1 m
전장: 22.12 m
전고: 9.68 m
주익면적: 84.7 ㎡
엔진: 프랫&휘트니 R-2000-7M2 래디얼 피스톤 엔진(1,450마력) x 2 
자체중량: 8,232  kg
최대이륙중량: 27,216 kg
최대화물탑재중량: 3,964 kg
화물캐빈 공간: 8.76 X 1.9 X 2.21 m
속도:  항속 293 km/h (158 kn); 최대 346 km/h (187 kn)
항속거리: 2,104 km (1,136 해리, 45분 예비분 포함 최대연료시)
상승한도: 7,600 m (24,800 ft)
상승률: 6.88 m/s (1,355 ft/min)
이륙거리: 361 m (1,185 피트)
착륙거리: 376 m (1,235 피트)
연료탑재량: 3,100 L (830 US gal)
승무원: 정·부조종사 + 기상적재사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