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2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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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4호 돌격포

필요할 때 등장했으나 불합리의 상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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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포즈난 전쟁박물관에 전시 중인 4호 돌격포. < (cc) Maciej Boru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독일이 대단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19세기 말에서야 뒤늦게 통일을 이루었음에도 급속히 강대국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관념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선입관과 달리 제2차 대전 중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불합리한 정책을 남발했는데 특히 무기 분야가 결정판이었다.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했다.

물론 전쟁에서 패했기에 그런 문제점이 부각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무기의 생산 및 공급에 있어 난맥상이 엄청났다. 기계, 화학 공업의 선도국답게 보편적으로 독일제 무기의 성능은 좋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총체적인 생산력에서 미국, 소련에 뒤지기도 했지만 공급 능력을 스스로 제약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남발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작전 중인 4호 전차와 6호 전차 티거. 이처럼 독일은 여러 종류의 장비들을 동시에 운용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산 및 유지 보수에 어려움이 많았다. < Public Domain >

기갑장비를 예로 들면 일단 종류부터 많았다. 물론 작전 목적에 맞는 장비가 있어야 하나 독일은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것저것 만들었다. 반드시 이 때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정작 필요한 장비의 생산량이 부족했다. 전차의 경우 미국의 M4나 소련의 T-34는 성능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수만 대씩 전선에 공급되었던 반면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는 4호 전차마저 1만 대도 되지 않았다.

무기의 종류가 많다 보니 필연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졌고 배치된 후에는 보급과 정비도 어려웠다. 하다못해 볼트, 너트도 호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구형 전차나 노획 장비를 재사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많은 이들의 이해타산 등으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장비들을 계속 만들면서 생산 능력이 저하되는 사례가 흔했다. 4호 돌격포(Sturmgeschütz IV)도 그러한 난맥상을 보여준 무기 중 하나다.

4호 돌격포의 탄생 자체는 상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불합리했던 독일의 무기 체계를 상징하는 장비가 되었다. < Public Domain >

이후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 4호 돌격포의 탄생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돌격포의 시작은 1940년부터 배치된 3호 돌격포다. 3호 전차 차대에 4호 전차의 7.5cm KwK 37포를 직접 결합한 형태로, 최초 명칭은 그냥 돌격포였으나 이후 4호 돌격포가 등장하며 별도로 구분하기 위해 3호 돌격포로 바뀐 것이다. 애초 개발 목적이 보병을 근접에서 지원하는 것이어서 운용도 포병에서 담당했다.

그런데 1941년 독소전쟁이 벌어진 후 대규모 기갑전이 일상이 되고 독일의 전차 공급량이 부족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련 전차와도 대결을 펼쳐야 했다. 때문에 포구 속도가 향상된 7.5cm StuK 40포를 장착해 화력을 강화하기에 이르렀고 의외로 일선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다. 특히 1943년에 벌어진 크루스크 전투에서 기대를 모았던 5호 전차가 신뢰성 부족으로 애만 먹였던 반면 3호 돌격포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기갑전 전용으로 개발된 4호 구축전차. 장포신을 장착한 후기형은 적 전차 요격에 많은 전과를 올렸다. < Public Domain >

낮은 전고 덕분에 3호 돌격포가 방어에 유리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히틀러는 이를 참조해 4호 전차를 기반으로 기갑전에 특화된 4호 구축전차(Jagdpanzer IV)의 개발을 지시했다. 당시 수적으로 주력을 담당하던 4호 전차의 성능이 열세였기에 벌인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4호 구축전차의 배치가 이루어지면 4호 전차의 생산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3호 돌격포도 보병 지원으로 다시 회귀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개발이 진행되던 중 1943년 11월에 3호 돌격포를 생산하던 알케트 공장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파되었다. 아직 4호 구축전차의 개발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에 12월 6일, 히틀러가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 알케트 공장의 복구 또는 4호 구축전차의 양산이 시작되기 전까지 4호 전차 차체에 3호 돌격포 G형 전투실을 결합한 4호 돌격포를 만들어 전력 공백을 막기로 결정했다.

히틀러는 무기의 개발 및 배치에 일일이 관여했다. 이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무기 체계가 중구난방으로 복잡해진 원인들 중 하나로 작용했다. < Public Domain >

약간의 개조를 거쳐 기존 부품을 결합하는 형태였으므로 불과 열흘 만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약간의 테스트를 거친 후 즉각 양산에 들어갔다. 방어력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어차피 몇 개월 동안 임시 대타를 담당할 예정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신속한 개발과 배치 과정만 놓고 본다면 당시 독일은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알케트 공장이 복구되어 3호 돌격포의 생산이 재개되고 4호 구축전차의 양산이 시작된 후에도 4호 돌격포의 생산은 계속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운용해보니 예상보다 성능이 뛰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3호 돌격포, 4호 구축전차의 양산을 포기하고 4호 돌격포에 올인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이런 어이없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 데는 병과 간의 알력 때문이었다.

부족한 방어력을 늘리기 위해 측면에 쉬르첸을 부착한 모습. < Public Domain >

포병은 자신들의 자산이라고 생각한 3호 돌격포를 기갑부대가 사용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던 중 4호 구축전차가 본격 양산되자 위치가 어중간해진 4호 돌격포에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4호 돌격포는 종전 직전까지 생산되었다. 결국 독일은 4호 돌격포 외에 같은 주포를 장착하고 비슷한 목적에 사용되는 3호 돌격포, 4호 전차, 4호 구축전차를 모두 만들어서 사용하는 비효율의 극치를 보였다.

일선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장비를 지급해 주었어도 비슷한 결과를 낼 수는 있었다. 설령 많은 부품이 공유된다 해도 별개의 장비이므로 생산, 운용 과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전시이고 가뜩이나 독일이 불리했던 전쟁 말기이므로 어느 하나에 집중해 최대한 생산을 늘리는 것이 당연히 좋았다. 한마디로 4호 돌격포는 사서 고생을 했던 당시 독일군의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3호 돌격포와 4호 돌격포의 해설영상 <출처 : 유튜브 geesusdb 채널>


특징

앞서 언급처럼 4호 돌격포는 4호 전차의 차체에 3호 돌격포의 전투실을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3호 돌격포의 전투실이 4호 전차를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포탑이 제거된 4호 전차인 셈이다. 차체가 커져 승무원의 거주 여건은 3호 돌격포보다 조금 더 좋았지만 개발 당시에 임시 대타로 취급했기에 전면 장갑 등이 생략되어 오히려 무게는 1톤 정도 가벼웠다. 때문에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4호 돌격포는 7.5cm KwK 40포를 장착하여 화력면에서는 부족했다. < Public Domain >
급하게 만들었음에도 균형이 잘 맞아 기동성이 좋았다. 판스프링 서스펜션 구조여서 승차감은 3호 돌격포보다 뒤졌지만 정비가 수월했다. 같은 주포를 사용했기에 4호 구축전차 초기형과 공격력은 동일했다. 장포신 7.5cm KwK 42를 탑재한 4호 구축전차 후기형에 비하면 화력이 확연히 밀렸다. 화력을 강화하는 대신 4호 전차나 4호 구축전차를 더 생산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에 아무리 중구난방이었던 독일도 결국 개량을 포기했다.
전쟁 말기에 배치된 관계로 길목에 매복해서 적 전차를 요격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 (cc) Maciej Boruń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4호 돌격포는 1943년 말부터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인 1945년 4월까지 총 1,108대가 제작되었다. 비교 대상인 3호 돌격포가 독일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기갑장비였고 4호 전차가 역시 가장 많이 제작된 전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의미를 둘 만한 수량은 아니다. 하지만 유명한 6호 전차 티거가 1,347대가 만들어진 것에서 보듯이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제 기갑장비의 전반적인 생산량을 고려한다면 적은 것도 아니다.

노르망디 인근에서 격파된 4호 돌격포. < Public Domain >
독일만 사용했고 보병사단에 속해 활약했다. 4호 돌격포가 배치되었을 때는 독일의 쇠퇴기여서 수세적 임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돌격포가 공세를 염두에 두고 탄생한 무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목적대로 사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상황이었다. 주로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주요 목표인 적 전차 요격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벌였고 간헐적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지만 전술적 무기다 보니 전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2차대전 당시 4호 돌격포의 운용장면 <출처 : 유튜브 Panzer Insight 채널>


변형 및 파생형

Sturmgeschütz IV: 4호 돌격포

Sturmgeschütz IV < Public Domain >
PzKpfw IV Ausf. H: 4호 돌격포의 기반이 된 4호 전차 H형
PzKpfw IV Ausf. H < Public Domain >
Jagdpanzer IV: 4호 구축전차
Jagdpanzer IV < (cc) Banznerfahrer at Wikimedia.org >


제원

생산업체: 크루프 외
중량: 23톤
전장: 6.7
전폭: 2.95m
전고: 2.20m
장갑: 10mm(차체 하부)~80mm(전면), 탈부착 쉬르첸(Schürzen)
무장: 75mm StuK 40 L/48 ×1
         7.92mm MG34 기관총×1
엔진: 마이바흐 HL120 TRM 12기통 가솔린 엔진 300마력(220kW)
추력 대비 중량: 12마력/톤
서스펜션: 판스프링
항속 거리: 21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