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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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23 프로바이더

야전에 특화되었던 하늘의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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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23K 프로바이더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2차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공군의 전신)는 전용 수송기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간극을 메워준 것은 다름 아닌 글라이더였다. 특히 적지로의 수송에서 착륙과 귀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수송기보다 글라이더가 병력과 장비를 나르는 일회용 수단으로 애용되었다. 미군이 애용한 글라이더는 웨이코(Waco)사의 CG-4A로, 1943년 7월 시실리 침공을 비롯하여 1944년 6월 디-데이 공격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2차대전 미군 항공수송의 주역이었던 CG-4A 글라이더 <출처: 미 육군>
1943년 뉴욕에서 창립된 체이스(Chase) 항공기 제작사는 XCG-14 공격 글라이더를 처음으로 만들면서 육군 항공대와 계약했다. 이후에는 체이스는 미군의 요구에 따라 XCG-14를 바탕으로 더욱 크고 강력한 XG-18 글라이더를 개발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동체를 전부 금속으로 만든 글라이더였다. 체이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48년에 이르러 더욱 커다란 크기의 글라이더인 XG-20까지 개발했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이미 1949년 경에 이르자 미 공군은 더이상 글라이더는 군용으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으로 수송기를 개발하였다.
체이스가 개발한 XG-18(좌)와 XG-20(우) 공격용 글라이더 <출처 : 미 공군>
당연히 체이스도 미 공군의 방침에 따라 기존의 글라이더에 엔진을 장착하고 수송기로 전환을 시작했다. 우선 XG-18A에 래디얼 엔진을 장착한 YC-122가 개발되어 시제기 9대가 제작되었다. 미 공군은 성능에 만족했지만 소형 수송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획득사업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결국 시제기들은 그대로 아드모어 공군기지(Ardmore AFB)에 배치되어 단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운용되었다.
착륙성능의 시험평가를 실시중인 YC-122 시제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한편 XG-20도 수송기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는데, XG-20은 미군이 개발했던 최대의 글라이더였기에 수송기로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 XG-20 초도기에 PW R-2800 엔진을 장착하여 XC-123으로 개발되었으며, XG-20 시제2호기에는 J47 터보젯 엔진이 장착되어 XC-123A로 개발되었다. XC-123A는 1951년 초에 시험비행에 성공하며,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제트 수송기로 기록되었다. 터보프롭 수송기인 XC-123은 1949년 10월 14일 초도비행에 성공하면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성능에 만족한 공군은 XC-123 300대를 획득하고자 했다.
XC-123 프로펠러수송기 시제기(좌)와 XC-123A 제트수송기 시제기(우) <출처: 미 공군>
이렇듯 XC-123의 미래는 밝은 듯 보였다. 여기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는데, 미국 조선업계의 대부인 헨리 카이저(Henry J. Kaiser)였다. 리버티 보급함으로 이름을 떨쳤던 카이저는 1945년 카이저-프레이저(Kaiser-Frazer)사를 만들어 차량 제작에도 나섰는데, 2차대전 당시 항공기 제작공장이었던 생산시설에서 군용기를 제작하여 납품하기도 했다. 카이저-프레이저는 발전 가능성이 높았던 체이스 항공의 주식을 전부 사들이면서 XC-123 수송기 사업을 주도하고자 했다.
리버티급 지원함(우)의 건조신화를 만든 헨리 카이저(좌)는 체이스 항공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당시 카이저는 페어차일드(Fairchild)사의 C-119 수송기를 하청으로 생산하고 있었는데, 페어차일드 제작기체보다 카이저의 기체가격이 높자 의회에서 조사에 나섰다. 청문회의 결과 카이저 측의 문제가 부각되었고, 결국 카이저가 수주했던 C-119와 C-123의 구매계약은 모두 취소되었다. 공군은 이미 3천만불을 C-123의 양산준비에 사용했고, 생산부품 구매에 4천만불을 할당하여 1953년부터 이미 양산이 시작되었지만 체이스/카이저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따라서 C-123 구매계약은 재입찰에 붙여졌으며, 결국 1953년 10월 페어차일드가 선정되어 C-123은 겨우 양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C-123은 1950년대 후반 배치되어 베트남전에서 활약한 이후 C-130에게 전술수송을 맡기고 퇴역했다. <출처: Public Domain>
페어차일드는 XC-123의 설계를 가다듬어 양산형인 C-123B를 선보였다. 애초에 체이스는 C-123B에 애비트룩(AVITRUC)이란을 이름을 붙이고자 했으나, 페어차일드로 양산권한이 넘어가면서 이름은 프로바이더(Provider)로 바뀌었다. 공군이 C-123을 채용한 것을 필두로 해안경비대도 채용하는 등 C-123은 당대 최고의 전술수송기로 활약을 시작했다.


특징

C-123은 고익과 고미익을 특징으로 하는 쌍발 수송기이다. 동체는 트러스 구조로 애초에 글라이더로 개발되었던 역사를 반영한다. 동체의 전방부분은 입체 트러스로 강화되었는데, 조종석이 위치하는 전방동체가 급격한 착륙에도 손상을 입지 않고 떨어지는 화물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같은 이유에서 조종석은 화물칸보다 0.8m 높게 위치하고 있다.

C-123은 상대적으로 짧은 동체에 고익과 고미익을 특징으로 하는 전술수송기이다. <출처 : 미 공군>
주익은 2개의 스파(spar, 날개보)로 구성되는데, 메인 프론트 스파(main front spar)와 보조 리어 스파(auxiliary rear spar)다. 조종면은 전형적인 구성으로 커다란 플랩과 에일러론, 엘리베이터(승강타)와 러더로 구성된다. 플랩은 유압식이며, 400hp 컴프레서 2개로 작동한다. 플랩면적은 11.9㎡, 에일러론은 7.74㎡이다. 항공기의 동체와 플랩 표면은 두랄루민으로 만들어진 반면, 에일러론은 인화성 보강재와 실란트로 코팅된 린넨 소재이다.
C-123K는 PW R-2800 래디얼 엔진에 더하여 J85 부스터 터보젯 엔진까지 장착했다. <출처: 미 공군>
엔진은 프랫 & 휘트니사의 R-2800 PD 계열의 래디얼 엔진을 채용했다. 시제기에는 R-2800-23 엔진이 장착되었지만, 양산형에서는 최대 2,300마력의 R-2800-99W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엔진의 출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추력을 내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이 지속되었는데, 우선 C-123B 10대에 페어차일드 J44 터보젯 엔진이 윙팁에 장착되어 C-123J로 명명되었다. 이 발상은 상당히 유용한 것이어서 J85 터보젯 엔진을 포드 형식으로 날개 아래 장착하는 개수가 C-123B 180대에 실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C-123K이다.
C-123은 후방램프를 통하여 화물을, 좌측 후방의 도어로 공수병을 강하할 수 있었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화물 캐빈의 바닥은 무거운 화물을 탑재할 수 있도록 강화되어 1평방미터 당 1,220kg까지 지지할 수 있다. 화물캐빈의 크기는 11.2 X 2.79 X 2.49 m로 대부분의 소프트스킨 차량을 탑재할 수 있으며, 최대 11톤의 화물이나 승객 50명 또는 들것 50개를 탑재할 수 있다. 후방두어는 2중 램프도어로 구성되어 외부램프가 하역을 위하여 아래로 열리며, 내부램프는 개방시 동체 내부로 수납된다. 이외에도 동체에는 3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동체 좌우 전방과 동체 후방 좌측에 위치한다.
C-123은 최대 11톤의 병력과 장비를 급조활주로에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출처: 미 공군>


운용의 역사

시제기인 XC-123은 이미 1949년에 초도비행을 실시했지만, 카이저 스캔들 등으로 인한 양산지연으로 양산형인 C-123B는 1954년 9월 1일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1955년 7월 아드모어 공군기지의 제309 병력운송단이 C-123B 초도분을 인수함으로써 최초의 실전배치 부대가 되었다. C-123은 비포장 단거리 활주로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공군사령부(Strategic Air Command, SAC)로부터 주목받아 약 60여대가 배속되었다. SAC는 특히 폭설로 육로 보급이 어려운 지역에 있는 공군시설에 대한 지원용도로 C-123B를 애용하여 1958년부터 1966년까지 운용했다.

C-123은 카이저 스캔들에 따른 계약취소와 지연으로 인하여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될 수 있었다. <출처: 미 공군>
뛰어난 야전전술수송능력에도 불구하고 공군은 애초에 C-123을 베트남전쟁에 투입하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미 육군이 CV-2 카리부를 투입하고 C-8 버팔로를 주문하는 등 자체 수송기전력의 증강을 꾀하자, 공군은 이를 막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C-123이 베트남전쟁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야전의 급조활주로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C-123의 능력은 일선에서 크게 환영받았고, 공군은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돌입하여, 결국 J-85 터보젯 엔진 2개를 이륙시 보조출력장치로  채용한 C-123K가 등장했다.
C-123은 육로 수송이 불가능한 혹한지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여 일선에서 호평받았다. <출처: Public Domain>
C-123K는 미 공군의 의도에 따라 야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베트남 전쟁이 가열되던 1968년에는 케산전투에서 전방의 전투기지들을 지원작전에서 C-130 허큘리스의 운용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C-123K만은 운용을 계속하여, 무려 179소티의 수송임무를 성공 리에 수행하면서 그 능력을 과시했다. 이외에도 C-123은 고엽제 살포를 위해 내부 대형탱크와 살포장치를 장착하여 UC-123B/K로 개조되어, 고엽제 살포임무인 "랜치 핸드(Ranch Hand)" 작전과 적군의 곡물 파괴임무인 "트레일 더스트(Trail Dust)" 작전에 투입되었다.
C-123 프로바이더는 베트남전쟁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호평을 얻었지만, 고엽제살포 등의 임무에 투입되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출처: 미 공군>
이외에도 특수작전에서 C-123이 활약하기도 했다. 일반수송형의 C-123을 운용하면서 케산전투를 지원했던 유일한 고정익부대가 바로 제315 특수작전비행단이었다. 또한 특수감시임무를 위하여 C-123K 2대가 NC-123K로 개수되었는데, 이들 기체는 LTV의 주도로 기수 부분에 야간 감시가 가능한 "블랙 스팟" 센서들을 장착하고 야간 감시임무에 투입되었다. 또한 C-123은 CIA가 위장운용하던 항공운송회사였던 "에어 아메리카"에 배속되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지에서 각종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C-130의 성능이 안정되면서 C-123은 점차 입지를 잃었으며, 베트남전이 끝남과 동시에 공군 예비역부대로 넘겨져 운용되다가 1980년대 초에 전부 퇴역하였다.
야간감시 등 특수임무를 위하여 NC-123K와 같은 특수기체도 만들어져 베트남전에서 활용되었다. <출처: 미 공군>
C-123을 애용한 것은 미 공군 뿐만이 아니다. 해안경비대도 C-123을 도입하여 HC-123으로 탐색구난임무에 사용했다. HC-123은 APB-158 수색레이더를 장착하고 구난 임무를 수행했으며, 미국 본토의 주요지역은 물론이고 하와이, 알래스카, 괌과 나폴리 등에 배치되었다. 미국 이외에도 다양한 사용국들이 있는데, 남베트남이 C-123 상당수를 인도받았고,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대만, 사우디 아라비아, 베네주엘라, 엘살바도르 등에서도 운용했다.
대한민국 공군은 1973년 최초로 C-123K를 도입하기 시작하여 모두 16대를 운용했다. <출처: 미 국방부>
C-123은 물론 대한민국 공군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했다. 공군은 1970년대 초까지 C-54SD와 C-46D 등 노후한 수송기를 운용했는데, 이를 대체하기 위하여 율곡게획의 일환으로 C-123K(J형도 일부 도입)를 도입했다. 1963년 6월 15일부터 도입이 시작되어 모두 16대가 도입되어 1970년대와 80년대의 주력 수송기로 활용되었다.
C-123은 제주도 추락사고와 청계산 추락사고 등으로 인하여 C-130이 도입된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퇴역하였다. 사진은 팀스피리트 훈련에서 도로를 활용한 비상활주로에 착륙중인 우리 공군의 C-123 수송기이다. <출처: 대한민국 공군>
이런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 추락사고(1982년 2월 5일)와 청계산 추락사고(동년 6월 1일)였다. 제주도 추락사고에서는 C-123J(기체번호 미상)가 추락하여 대통령 경호 지원임무를 위해 투입되던 707부대원들 47명과 공군 6명이 희생되었으며, 청계산 추락사고에서도 C-123J(등록번호 56-4391)가 추락하여 공수기본을 마친 후 자격강하를 실시하던 특전교육단 교관/교육생 49명과 공군 4명이 희생되었다. 잇달은 사고로 국방부는 C-123을 대신하여 C-130 허큘리스 수송기의 도입을 가속했다.
C-123 추락사고를 추모하는 충혼비가 한라산 관음사에 위치하여 특전대원들의 추모가 매년 계속된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파생형

체이스 XG-20: 체이스에서 제작한 시제 글라이더. 원래 XCG-20으로 불렸다가 추후에 XG-20으로 재분류 되었다. 모두 2대가 만들어져, 시제 1호기가 XC-123, 2호기가 XC-123A로 개수되었다.

체이스 XG-20 글라이더 <출처: Public Domain>
체이스 XC-123: XG-20 글라이더 시제1호기의 수송기 개조 모델. 2,200마력의 R-2800-23 래디얼 엔진 2개를 장착했다.
체이스 XC-123 시제수송기 <출처: Public Domain>
체이스 XC-123A: XG-20 시제2호기의 제트수송기 시제기. B-36과 B-47에서 채용한 J47-GE-11 터보젯 엔진 4개를 장착하였다.
XC-123A 시제 제트수송기 <출처: Public Domain>
C-123B: XC-123의 양산형. 5대가 체이스에서 생산되었으며, 나머지 302대는 페어차일드에서 생산되었다.
C-123B <출처: Public Domain>
UC-123B: C-123B의 개수형으로 고엽제 등의 살포임무용으로 사용되었다.
고엽제를 살포 중인 UC-123B <출처: 미 공군>

VC-123C: XC-123A 제트기에 바탕한 VIP 수송기. 실제로 제작되지는 못했다.

스트루코프 YC-123D: STOL 성능 시험을 위한 시제기. 체이스 항공을 만들고 C-123을 개발한 마이클 스트루코프(Michael Stroukoff)가 카이저 스캔들 이후 다시 설립한 스트루코프 항공이 개발을 담당했다.

YC-123D는 스트루코프가 만든 YC-123A(사진)의 개량형이었다. <사진: NASA>
스트루코프 YC-123E: 스트루코프에 의해 개발된 시제기. 핀과 러더, 동체 하부가 개조되었으며, 플로트를 사용하여 수상기로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스트루코프 YC-123E <출처: Public Domain>
YC-123H: J85 부스터 엔진을 장착한 시제기
YC-123H <출처: Public Domain>
C-123J: C-123B 개수형. 윙팁에 페어차일드의 J44-R-3 부스터 엔진을 장착했으며, 모두 10대의 B형이 개수되었다.
윙팁에 J44 부스터 엔진을 장착한 C-123J <출처: Public Domain>
C-123K: C-123B의 개량형. 포드 형태의 J85 엔진을 보조출력 장치로 주익 아래에 장착하여 출력을 높였으며, 주익의 크기를 확장했다. 모두 183대가 개조되었다.
C-123K <출처: Public Domain>
AC-123K/NC-123K: C-123B의 특수개조모델. "블랙스팟" 특수센서를 장착하여 야간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모두 2대(기체번호 54-0691과 54-0698)가 동 사양으로 개조되었다.
NC-123K <출처: Public Domain>
C-123L: STOL(단거리 이착륙) 제안형. T-64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주 랜딩장치의 휠이 강화되었다.
페이차일드 힐러의 C-123L 광고 <출처: Public Domain>
C-123T: 태국공군용 C-123 제안형.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하므로 "터보 프로바이더"로 불렸다. 앨리슨의 T56-A-7 터보프롭 엔진으로 개량하는 등 본격적인 개수가 실시되어 1980년 10월 24일 시제기의 초도비행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양산은 기술적 문제와 예산부족으로 취소되었다.
개수 중 폐기된 태국 공군의 C-123T 시제기 <출처: airhistory.net>
HC-123B: 미 해안경비대용 수색구난형. AN/APN-158 수색레이더를 전방 레돔에 장착하였다.
HC-123B <출처: Public Domain>
UC-123K: C-123K의 화학약품 살포기체. 랜치 핸드(Ranch Hand) 제초 임무에 투입되어 소위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하는 기체로 활약했다. 모두 34대가 동 사양으로 개조되었다.
UC-123K <출처: 미 공군>
VC-123K: C-123K의 귀빈 수송용. 베트남에서 C-123K 한 대(기체번호 56-4375)를 개조하여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얀색의 VIP 전용기 도색으로 인하여 "흰고래(The White Whale)"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UC-123K <출처: 미 공군>
스트루코프 YC-134: 스트루코프가 제작한 C-123B 기반의 시제기. 단거리 이착륙 능력등의 향상을 중점에 두었으나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스트루코프 YC-134 <출처: Public Domain>
YC-136: YC-134의 개량형. 실제 기체가 제작되기도 전에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제원

기종: C-123K 프로바이더
제조사: 페어차일드
형식: 2발 래디얼 엔진 / 전술 수송기
전폭: 33.5 m
전장: 23.2 m
전고: 10.4 m
주익면적: 113.6 ㎡
엔진: 프랫&휘트니 R-2800-99W 래디얼 피스톤 엔진(2,500마력) x 2  
        [보조추력용 부스터엔진] 제너럴 일렉트릭 J85-GE-17 터보젯(12.7kN) 엔진 x 2
자체중량: 16,042  kg
최대이륙중량: 27,216 kg
최대화물탑재량: 11,000 kg
화물캐빈 공간: 11.2 X 2.79 X 2.49 m
속도:  항속 278 km/h (150 kn); 최대 367 km/h (198 kn)
항속거리: 5,280 km (2,850 해리, 화물 비적재시)
상승한도: 6,400m (21,100 ft)
상승률: 6.2 m/s (2,600 ft/min)
이륙거리: 356 m (1,167 ft )
착륙거리: 549 m (1,800 ft )
연료탑재량: 5,530 L (1,462 US gal)
승무원: 총 4명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