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F7U 전투기
특이했으나 생애가 짧았던 함상 제트전투기
  • 남도현
  • 입력 : 2021.02.10 08:55
    F7U 커틀라스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지녔으나 잦은 사고로 조기 퇴출된 비운의 전투기다. < Public Domain >
    F7U 커틀라스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지녔으나 잦은 사고로 조기 퇴출된 비운의 전투기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커틀라스(Cutlass)라는 애칭의 F7U는 제1세대 전투기 시절에 활약한 미 해군의 함상 전투기다. 1940년대 기술로 개발된 상당히 오래전의 기종이지만 지금 보아도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상당히 인상적인 외형을 지녔다. 2020년 현재까지 실험기나 시제기가 아니라 제식화되어 실전에 배치된 미군의 전술 작전기 중에서 이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모양을 가진 사례라면 F-117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Me 163(좌)과 P.1101(중앙) 등을 개발했던 보이트(우) < 출처 : Public Domain >
    Me 163(좌)과 P.1101(중앙) 등을 개발했던 보이트(우) < 출처 : Public Domain >

    이처럼 인상적인 F7U의 탄생을 이끈 이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메셔슈미트에서 Me 163 로켓전투기를 제작한 보이트(Woldemar Voigt)다. 그는 종전으로 중단되었으나 F-86의 탄생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P.1101 제트전투기를 개발하기도 했던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아직은 패전국 기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자존심 문제였던 시절이어서 제작사는 공식적으로 F7U가 독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F7U의 삼면도. 1940년대 기술로 설계된 기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앞선 모습이다. < 출처 : (cc) Kaboldy at Wikimedia.org >
    F7U의 삼면도. 1940년대 기술로 설계된 기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앞선 모습이다. < 출처 : (cc) Kaboldy at Wikimedia.org >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말, 미 해군은 제트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새로운 다목적 함재기 사업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40,000피트(12,200m) 상공에서 시속 600마일(965km)로 비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에 지금도 최고의 프로펠러 함상 전투기라는 찬사를 받는 F4U를 개발해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보우트(Vought)는 보이트가 설계한 V-346을 당국에 제출했다.

    V-346은 후퇴익에 수평미익을 제거한 독특한 형상의 제트 전투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V-346은 후퇴익에 수평미익을 제거한 독특한 형상의 제트 전투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V-346는 후퇴익에 미 해군 제트함재기 최초로 쌍발 엔진을 탑재해 마하 1에 근접한 시속 1,140km까지 비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수평 미익을 제거하고 주익을 동체 뒤편에 붙인 형태로 설계된 이유는 고속 비행 시 내리흐름 현상으로 조종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1946년 7월, 6개 업체가 제출한 12개 모델이 경쟁을 벌인 끝에 승자로 결정되어 F7U 제식 부호를 부여받고 개발이 시작되었다.

    비행 중인 F7U. 기체가 튼튼했고 속도도 빨랐으나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비행 중인 F7U. 기체가 튼튼했고 속도도 빨랐으나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데 당시 미 해군의 함재기 획득은 한마디로 중구난방이었다. 항공모함에서 제트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많았던 시기여서 일단 여러 기종을 조금씩 발주해서 운용했다. 이후 F9F로 통일되었지만 이런 정책으로 말미암아 제트전투기 초기에는 F7U 외에도 FJ, FH, F2H, F9F 등이 동시에 활약했다. 제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이 끝났음에도 냉전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닥치자 벌어진 현상이었다.

    1954년 CVA-11 인트레피드에서 이함 대기 중인 제83전투비행대 소속 F7U < 출처 : Public Domain >
    1954년 CVA-11 인트레피드에서 이함 대기 중인 제83전투비행대 소속 F7U < 출처 : Public Domain >

    프로토타입인 XF7U-1이 1947년 9월 29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을 만큼 개발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험 중 발생한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개량에 나서야 했다. 더불어 출력이 부족했던 초창기 터보제트엔진의 성능도 고민거리였다. 주익이 기체 뒤에 설치된 구조가 이착함에 나쁜 영향을 끼치자 양력을 높이기 위해 날개 전면 가장자리에 슬래트를 설치하고 노즈 랜딩기어의 길이를 늘렸다.

    F7U는 짧은 기간 운용되다가 ">
    F7U는 짧은 기간 운용되다가 "소위 제거기(Ensign Eliminator)"라는 악명 속에 퇴역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실험 중 조종사가 순직하는 등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발이 완료된 F7U는 1951년 시험비행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배치가 진행되어 1956년에는 총 13개 비행대를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빈번히 사고가 이어지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조종사들이 탑승을 거부할 정도에 이르렀을 만큼 일선에서의 신뢰도는 좋지 못했다. 결국 1957년부터 F8U와 순차적으로 교체되면서 배치된 지 10년도 안 된 1959년 전량 퇴역했다.


    특징

    F7U는 수평 미익이 없고 2개의 수직 미익이 커다란 주익 후위에 붙은 구조여서 종횡비가 낮다. 지금도 이런 형태의 비행체라면 눈에 잘 띌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전투기들 중에서 영국의 드 하빌랜드 뱀파이어(de Havilland Vampire)가 유사해 보이나 일체식 수평 미익을 갖춘 쌍동 기체여서 기술적으로는 별개다. 기체 제어는 유압식으로 이루어지나 신뢰도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노즈 랜딩기어가 상당히 길어서 노면에서 조종석까지의 높이가 14피트에 이르렀다. < 출처 : Public Domain >
    노즈 랜딩기어가 상당히 길어서 노면에서 조종석까지의 높이가 14피트에 이르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조종석이 전방에 위치해 비행 중에는 시야가 좋은 편이나 착함 때는 기수를 9도로 들고 진입해야 하므로 오히려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당연히 사고도 많이 벌어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착함 시 받음각을 높이기 위해 특이할 정도로 긴 노즈 랜딩기어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중형 항공모함에서 운용했던 영국의 F-4K도 노즈 랜딩기어를 최대한 높이 올린 상태에서 이함했다.

    커틀라스는 착함시 기수를 들어야 하므로 사고가 빈번했다. 사진은 사고 직전 기수를 높인 F7U. < 출처 : Public Domain >
    커틀라스는 착함시 기수를 들어야 하므로 사고가 빈번했다. 사진은 사고 직전 기수를 높인 F7U. < 출처 : Public Domain >

    초음속은 아니나 항공모함 배치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빠른 속도를 낸 전투기였다. 빈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외관과 달리 기체는 9G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전기 배선과 유압 라인을 한 곳에 집중시켜 유지 보수가 편리했다. 흥미롭게도 임무별로 특화된 기종을 개발하던 시대였음에도 공대공, 공격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고 후기형은 스패로우 공대공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었다.

    해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F7U. 수납 편의를 위해 주익을 접을 수 있다. < 출처 : (cc) Greg Goebel at Wikimedia.org >
    해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F7U. 수납 편의를 위해 주익을 접을 수 있다. < 출처 : (cc) Greg Goebel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F7U는 1955년까지 총 320기가 생산되어 미 해군에서만 운용되었다. 처음부터 다목적기로 개발되면서 전투비행대뿐만 아니라 공격비행대에서도 주력기로 사용했다. 경우에 따라 비행대의 임무가 바뀌기도 했다. 일선에는 6·25전쟁 휴전 직후였던 1954년 4월 제81전투비행대를 시작으로 배치가 이루어졌는데 베트남전쟁 이전에 전량 퇴역하면서 실전 기록은 없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손실이 많았다.

    1955년 7월 14일, CVA-19 핸콕에 착함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제124전투비행대 소속 F7U. 조종사 알카이어 소령이 사망하고 많은 갑판 요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55년 7월 14일, CVA-19 핸콕에 착함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제124전투비행대 소속 F7U. 조종사 알카이어 소령이 사망하고 많은 갑판 요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특히 착함 때 많이 발생했는데 1955년 CVA-19 핸콕(Hancock)에서 연이어 조종사들이 순직하고 항공모함이 손상을 입자 분노한 함장이 F7U를 전량 하선 조치해 버리기도 했다. 1957년 보우트가 기록을 분석한 결과 55,000 비행시간 동안 78건의 유의미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는 배치된 기체의 25퍼센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는 동 시기에 배치된 해군 작전기 중에서 가장 높은 사고율이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조기 퇴출 될 수밖에 없었다.

    미 해군의 블루엔젤스도 F7U의 홍보를 위하여 2대를 운용했으나, 시범비행에는 운용하지 않았고 그나마 이 기체들도 사고를 겪은 이후 블루엔젤스로부터 퇴출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 해군의 블루엔젤스도 F7U의 홍보를 위하여 2대를 운용했으나, 시범비행에는 운용하지 않았고 그나마 이 기체들도 사고를 겪은 이후 블루엔젤스로부터 퇴출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XF7U-1: 프로토타입. 3기.

    XF7U-1 < 출처 : Public Domain >
    XF7U-1 < 출처 : Public Domain >

    F7U-1: J34-WE-32 엔진 장착형. 14기.

    F7U-1 < 출처 : Public Domain >
    F7U-1 < 출처 : Public Domain >

    F7U-2: J34-WE-42 엔진 장착형. 양산 취소.
     
    XF7U-3: 양산형 프로토타입. 1기.

    XF7U-3 < 출처 : Public Domain >
    XF7U-3 < 출처 : Public Domain >

    F7U-3: J46-WE-8B 엔진 장착 양산형. 180기.

    F7U-3 < 출처 : Public Domain >
    F7U-3 < 출처 : Public Domain >

    F7U-3P: F7U-3 기반 정찰기. 12기.

    F7U-3P < 출처 : Public Domain >
    F7U-3P < 출처 : Public Domain >

    F7U-3M: FAAM-N-2 공대공미사일 운용형. 98기.

    F7U-3M < 출처 : Public Domain >
    F7U-3M < 출처 : Public Domain >

    A2U-1: 전문 공격기형. 양산 취소.

    2000파운드 폭탄 2발을 장착한 F7U-3M의 모습으로, A2U-1의 개발 베이스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2000파운드 폭탄 2발을 장착한 F7U-3M의 모습으로, A2U-1의 개발 베이스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F7U-3M)

    전폭: 12.1m
    전장: 12.586m
    전고: 4.37m
    주익 면적: 46.1㎡
    최대 이륙 중량: 12,174kg
    엔진: 웨스팅하우스 J46-WE-8B 터보제트(4,600 파운드) X 2
    최고 속도: 1,122km/h
    실용 상승 한도: 12,375m
    전투 행동반경: 1.500km
    무장: 20mm 기관포 X 4
            하드포인트 4곳에 2,500kg 폭장
            AAM-N-2 스패로우 X 4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F7U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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