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2호 자주보병포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들소
  • 남도현
  • 입력 : 2021.02.10 08:23
    개조된 2호 전차 차체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장착한 2호 자주보병포 비존(Bison) < 출처 : Public Domain >
    개조된 2호 전차 차체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장착한 2호 자주보병포 비존(Bison)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40년 봄에 독일은 불과 6주 만에 프랑스를 정복해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20년 전 제1차 대전 당시에 4년 동안 수백만의 인명 피해를 입고도 패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었다. 공군의 엄호를 받는 집단화된 기갑부대가 전선을 신속히 가르고 들어가면 후속한 보병부대가 전과를 확대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이후 전격전이라 칭하게 된 이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집중과 속도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지만 독일은 침공 직전까지도 자신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반신하고 있었다. 1년 전에 있었던 1939년 폴란드 전역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였으나 프랑스는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공군을 제외하고 독일군은 프랑스, 영국의 연합군에 전력이 뒤졌다. 때문에 폴란드 침공 당시 경험한 전훈을 참고해서 전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재편했다.

    전차와 차량화 보병은 전격전의 핵심이다. 보병포도 이들과 함께 작전을 펼치려면 자주화되어야 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차와 차량화 보병은 전격전의 핵심이다. 보병포도 이들과 함께 작전을 펼치려면 자주화되어야 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새로운 무기를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기존 무기를 개량하는 방법도 동원했다. 기갑부대에서 전차, 차량화보병과 함께 이동하며 작전을 펼칠 목적의 1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도 그렇게 탄생한 무기들 중 하나였다. 전력 외로 분류된 1호 전차 차체에 15cm sIG 33(이하 sIG 33) 보병포를 얹고 장갑을 둘러 급조한 자주포로 침공 직전까지 38문을 생산해 6개 기갑사단에 각 1개 포대씩 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활약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단 차체로 쓰인 1호 전차의 주행 성능이 좋은 편이 아니었던 데다 크기에 비해 탑재한 포가 커서 사격 시 반동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선봉에 선 3호, 4호 전차와 비교한다면 강력한 화력만큼은 매력적이었다. 때문에 종종 위험을 무릅쓰고 정체된 최전선까지 출동해 공격에 가담하고는 했다.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당시의 1호 자주보병포. 성능이 미흡했지만 자주보병포가 기갑부대에게 효과적인 장비임이 확인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당시의 1호 자주보병포. 성능이 미흡했지만 자주보병포가 기갑부대에게 효과적인 장비임이 확인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프랑스 전역 종료 후 전훈을 분석한 결과 자주보병포가 기대를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그럭저럭 쓸 만한 장비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1호 자주보병포의 단점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후속작 개발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일단 1호 자주보병포는 단순히 sIG 33을 1호 전차 차체에 상차 시킨 것에 불과해서 전고가 높고 오픈 탑이어서 커다란 포방패를 둘렀어도 방어에 취약했다.

    그래서 1호 자주대전차포(Panzerjäger I)처럼 바퀴, 차축, 트레일러를 제거하고 포신과 주퇴복좌기만 장착한 형태로 개조해 전고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sIG 33이 중(重)보병포여서 사격 시 발생하는 충격을 받아내려면 좀 더 큰 차체가 필요했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2호 전차였다. 사실 2호 전차도 기본적으로 경전차여서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유휴 장비 중에서는 그나마 1호 전차보다 나았다.

    2호 전차 차체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장착한 테스트용 2호 자주보병포 프로토타입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전차 차체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장착한 테스트용 2호 자주보병포 프로토타입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15cm sIG 33 auf Fahrgestell Panzerkampfwagen II (Sf)' 즉, 2호 자주보병포(Sturmpanzer II)로 명명된 후속작 개발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1941년 2월 시제작이 탄생했다. 차체 내부에 포를 삽입한 형태여서 전고를 대폭 낮추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전작보다 효과적으로 지형지물을 이용한 은폐가 가능했다. 하지만 전투실이 여전히 오픈 탑인데다 포방패마저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작아 방어력은 상당히 취약했다.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한 육군은 1호 자주보병포보다 좋지만 추후 상황을 고려한다면 좀 더 성능이 향상된 다른 자주보병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성능이 부족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었다. 이에 2호 자주보병포는 소량만 생산해 직전에 북아프리카 전역에 참전한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하 DAK)에만 공급하기로 결정되었다. 때문에 2호 자주보병포는 종류가 많은 독일 기갑장비 중에서 대단히 희귀한 레어 아이템이다.

    2호 자주보병포는 1호 자주보병포와 더불어 비존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자주보병포는 1호 자주보병포와 더불어 비존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출처 : Public Domain >

    sIG 33을 탑재한 기갑 장비 중에는 이후 탄생한 Sturm-Infanteriegeschütz 33B, Grille 등도 있다. 원론적으로 동일한 주포이므로 공격력이 같고 각각의 장비는 주행력이나 포탄 탑재량 정도만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역시 같은 주포에 다른 차체를 사용하지만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주대전차포 마르더(Marder) 시리즈와 달리 1호, 2호 자주보병포에만 비존(Bison, 들소)라는 별칭이 붙는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특징

    2호 자주보병포의 개발에 착수했을 때 당연히 1호 자주보병포가 반면교사였으므로 2호 전차 차체면 크기가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전고를 낮추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조되면서 여전히 내부가 좁았다. 테스트 과정에서 운용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차체의 폭을 38cm 넓히고 길이도 60cm 늘리면서 이로 인해 보기륜이 1개 더 추가되었다. 때문에 2호 자주보병포는 별개의 차체를 사용한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2호 자주보병포 양산형은 차체가 커지면서 보기륜이 1개 더 추가되었다. 이처럼 예상보다 개조 범위가 커지면서 소량 생산에 그쳤다.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자주보병포 양산형은 차체가 커지면서 보기륜이 1개 더 추가되었다. 이처럼 예상보다 개조 범위가 커지면서 소량 생산에 그쳤다. < 출처 : Public Domain >

    사실 이 정도면 1호 자주보병포처럼 단순 개량이 아닌 완전히 별개의 자주포를 만드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유휴 장비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실패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획기적으로 성능을 늘리는 데 실패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DAK 공급용으로 소량만 생산하기로 결정되었다. 다만 사막 환경에 맞춰 엔진 냉각 효과를 늘리기 위해 뒤편 데크에 대형 해치를 장착하는 등의 추가 개조가 실시되었다.

    2호 자주보병포의 삼면도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자주보병포의 삼면도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아무래도 사막이 독일에 생소한 곳이다 보니 운용 중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15분 정도만 주행해도 엔진이 과열되기 일쑤였고 모래 먼지가 열려 있는 해치를 통해 내부로 유입되면서 툭하면 고장이 발생했다. 그런데 사실 이는 2호 자주보병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독일군, 연합군 할 것 없이 제2차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에 뛰어든 장비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겪었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운용 현황

    2호 자주보병포는 총 12문이 만들어져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별동대라 할 수 있는 DAK 예하 2개 사단에 6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씩 배치되었다. 이처럼 적게 제작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애초 기대했던 성능 구현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제2차 대전이라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성능이 좋았다면 대량 제작을 마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화력보다 기계적 신뢰성이 떨어졌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2호 자주보병포는 12문 전량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했다. 작전 환경이 열악하여 운용하는 데 애를 많이 먹은 것으로 알려진다.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자주보병포는 12문 전량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했다. 작전 환경이 열악하여 운용하는 데 애를 많이 먹은 것으로 알려진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고가 낮아 사막전에 유리한 면도 있어 1943년 DAK이 항복할 때까지 북아프리카 전선의 곳곳을 누비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방어력이 없다시피 한데다 교전 장소가 주로 개활지여서 1호 자주포와 달리 전선 바로 뒤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무기와 소모품의 공급량이 절대 부족했던 DAK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전쟁 당시에 이집트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1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으로부터 노획한 2호 자주보병포 < 출처 : (cc) Willem van de Poll at Wikimedia.org >
    1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으로부터 노획한 2호 자주보병포 < 출처 : (cc) Willem van de Poll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15cm sIG 33 auf Fahrgestell Panzerkampfwagen II (Sf): 2호 자주보병포

    2호 자주보병포 < 출처 : Public Domain >
    2호 자주보병포 < 출처 : Public Domain >

    Panzer II: 기반이 되었던 초기형 2호 전차

    2호전차 초기형 < 출처 : Public Domain >
    2호전차 초기형 < 출처 : Public Domain >

    Marder II: 2호 전차 차체를 이용한 자주대전차포

    Marder II < 출처 : Public Domain >
    Marder II < 출처 : Public Domain >

    Wespe: 10.5cm leFH 18/2 L/28 장착 자주포

    Wespo < 출처 : (cc) Mike1979 Russia at at Wikimedia.org >
    Wespo < 출처 : (cc) Mike1979 Russia at at Wikimedia.org >



    제원

    생산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1년
    생산 대수: 12문
    중량: 11.2톤
    전장: 5.41m
    전폭: 2.6m
    전고: 1.9m
    무장: 1×15cm sIG 33/1
             1×7.92mm MG34
    엔진: 마이바흐 HL62 TRM 수랭식 6기통 가솔린엔진 140마력(103kW)
    추력 대비 중량: 15.7마력/톤
    항속 거리: 19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2호 자주보병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