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TBD 뇌격기
대승의 발판을 놓고 사라져간 숨은 주인공
  • 남도현
  • 입력 : 2021.02.08 08:52
    TBD 뇌격기는 좋지 않은 성능으로 말미암아 중요했던 해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당했지만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낸 숨은 주인공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TBD 뇌격기는 좋지 않은 성능으로 말미암아 중요했던 해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당했지만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낸 숨은 주인공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TBD 데버스테이터(Torpedo Bomber Douglas Devastator, 이하 TBD)는 태평양전쟁 초기에 활약한 미 해군의 뇌격기다. 생존성에 의문이 들면서 배치된 지 3년 만에 퇴출이 고려되었고 실제로 전쟁 중에는 피격당한 전과밖에 없을 정도로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작전기보다 역사에 너무나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전쟁의 균형추를 바꾼 미드웨이 해전에서 그들의 희생이 대승의 기회를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제1차 대전 당시에 탄생한 최초의 항공모함 탑재용 뇌격기인 솝위드 쿠쿠(Sopwith Cuckoo) < 출처 : Public Domain >
    제1차 대전 당시에 탄생한 최초의 항공모함 탑재용 뇌격기인 솝위드 쿠쿠(Sopwith Cuckoo) < 출처 : Public Domain >

    작은 전투함이 교전을 포기하고 도주해도 크게 흠을 잡지 않았을 만큼 전통적으로 해전은 함정의 체급 차이가 크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어뢰는 그러한 오래된 패러다임을 깨뜨린 해군의 대표적인 비대칭무기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가야만 했던 이전과 달리 체급이 다르더라도 일단 사용해 볼 수 있는 무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해군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당연히 보다 멀리 그리고 빠르게 목표까지 다가갈 수 있는 항공기에서도 이런 필살기를 운용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제1차 대전 직전에 탄생한 작전기가 바로 뇌격기다. 처음에는 기존 기체를 개량해서 사용했으나 종전 무렵에는 항공모함에 탑재할 수 있는 함상용 뇌격기가 등장했다. 그리고 제2차 대전 당시에는 전투기, 폭격기와 더불어 항공모함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3대 작전기가 되었다.

    미 해군의 뇌격기 사업에 참여했던 보우트의 XSB3U-1. 구시대 스타일의 복엽기여서 서류 검토 단계에서 탈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 해군의 뇌격기 사업에 참여했던 보우트의 XSB3U-1. 구시대 스타일의 복엽기여서 서류 검토 단계에서 탈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순양전함을 개조한 2척의 렉싱턴급을 운용해 본 미 해군은 생각보다 항공모함의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1930년대 중반까지 3척의 신예 항공모함(요크타운급)을 추가로 획득할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기존 구닥다리 복엽기를 대체하고 새로 도입되는 항공모함에도 탑재할 신예 함재기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한 일환으로 실시된 뇌격기 도입 사업에 총 8개 업체가 9개 모델을 제시하며 참여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1934년 6월 30일, 더글라스(Douglas)가 제출한 XTBD-1가 선택되었다. 단순히 기존 복엽기를 개량한 방식이 아니라 미국 최초로 전금속제 단엽기로 설계되었을 만큼 기술적으로 앞선 데다 완전 밀폐 조종석과 유압식으로 작동되는 접이식 날개를 채택한 점도 높게 평가되었다. 이듬해 4월 15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을 만큼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TBD라는 이름으로 1937년부터 배치가 시작되었다.

    1938년 TBD로 편성된 제6뇌격기비행대의 비행 모습. 운용하면서 생존성에 의문이 들자 배치된 지 3년 만에 후속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38년 TBD로 편성된 제6뇌격기비행대의 비행 모습. 운용하면서 생존성에 의문이 들자 배치된 지 3년 만에 후속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적어도 이때만 해도 미 해군은 TBD를 당대 최고의 뇌격기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존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뢰를 투사하려면 해발 고도 15m까지 내려와 속도를 시속 200km 이하로 줄인 상태로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야 했다. 아무리 유도 무기 등장 전이라도 이는 적기나 대공포에 요격 당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고고도로 비행해도 최고 속도가 시속 332km에 불과해서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가상 적국인 일본이 같은 시기에 배치를 시작한 B5N2 뇌격기보다 비행 성능, 폭장량 등에서 전부 열세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뇌격기로 뇌격기를 상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실은 미 해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결국 1940년 4월부터 이를 후속할 TBF 어벤저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TBD는 프로토타입 1기를 포함해 총 130기로 생산을 종료하고 대략 1945년까지 순차적으로 교체될 예정이었다.

    TBD가 일본에 뒤지자 미국은 TBF 어벤저(사진)를 개발했으나, 갑작스러운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TBD가 전면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TBD가 일본에 뒤지자 미국은 TBF 어벤저(사진)를 개발했으나, 갑작스러운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TBD가 전면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급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TBF의 개발 및 양산을 서둘렀지만 일단 TBD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미국은 초전에 주력 전함들이 궤멸되다시피 해서 항공모함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TBD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런 우려대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역사의 한 장을 크게 장식했다.


    특징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설계 당시만 해도 TBD는 상당히 앞서 많은 기술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곧바로 물러날 대상으로 결정된 이유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TBD가 존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Mk.13 공중투하어뢰 초기형의 신뢰성에 문제가 많았다. 예상대로 적에게 요격을 쉽게 당해 생존성이 떨어졌고 설령 어뢰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어도 불발되면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문제가 많았던 Mk.13 공중투하어뢰 발사 훈련 중인 제6뇌격기비행대 소속 TBD. < 출처 : Public Domain >
    문제가 많았던 Mk.13 공중투하어뢰 발사 훈련 중인 제6뇌격기비행대 소속 TBD. < 출처 : Public Domain >

    사실 제한된 조건에서 어뢰를 투하하는 뇌격기가 여타 작전기에 비해 비행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후 보다 높은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어뢰를 투사할 수 있게 되지만 제공권이 장악되지 않은 곳에서의 작전은 위험하다. 다시 말해 뇌격기가 작전을 펼칠 때는 전투기가 엄호를 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전쟁 초기 미국의 함상 전투기인 F4F도 성능이 일본의 A6M에 뒤졌기에 TBD가 그다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전후방에 기관총을 1정씩 장착했으나 방어용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후방에 기관총을 1정씩 장착했으나 방어용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Mk.13 공중투하어뢰의 신뢰성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1942년에 연이어 벌어진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구사일생으로 적의 방공망을 돌파해 어뢰를 투하했어도 대부분 작동되지 않았다. 이런 결과에 분노한 뇌격기 조종사들이 어뢰 대신 폭탄을 달고 출격했을 정도였다. 방어를 위해 전방과 후방에 기관총 1정씩을 장착했으나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운용 현황

    TBD는 1939년까지 총 130기가 제작되어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에 훈련함인 CV-1 랭글리를 제외한 7척의 항공모함에 각 1개 비행대씩 배치되었다. 최초 실전은 1942년 2월 1일에 당시 일본의 통치 지역인 마셜과 길버트 제도에 설치된 군 시설 폭격이었다. 지상 목표여서 이때 CV-5 요크타운에서 출격한 TBD들은 폭탄을 장착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4기를 상실하고 일본도 피해를 심각하게 여길 정도가 아니어서 크게 의미를 둘 만한 작전은 아니었다.

    양산 1호기의 비행 모습. 시제기 포함 2년 동안 130기만 제작되고 생산이 종료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양산 1호기의 비행 모습. 시제기 포함 2년 동안 130기만 제작되고 생산이 종료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해 5월 6일부터 산호해 일대에서 벌어진 사상 최초의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에서 급강하폭격기인 SBD와 함께 일본의 경항모 쇼호를 잡기도 했으나 앞서 언급한 어뢰 문제가 부각되었다. 조종사들은 상당히 심각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기 전인 6월 4일부터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졌다. 이때 출동한 3척의 항공모함에 탑재한 총 41기의 TBD가 전투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전투기의 호위도 받지 못한 상태로 차례차례 일본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 결과 무려 37기를 상실하고 대다수의 승무원이 전사했다. 그 와중에 어뢰 투하에 성공한 기체도 있었으나 불량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잡기 위해 일본 전투기들이 수면 가까이 내려와 있고 대공포들도 조준을 아래를 향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고공에서 전투 공역으로 진입한 SBD들이 일본 함대를 향해 급강하 폭격을 시도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CV-6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 준비 중인 VT-6 소속 TBD. 대부분이 격파 당하고 승조원들이 전사했으나 결정적인 승리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드웨이 해전 당시 CV-6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 준비 중인 VT-6 소속 TBD. 대부분이 격파 당하고 승조원들이 전사했으나 결정적인 승리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TBD의 희생으로 얻은 기회를 이용해 3척의 일본 항공모함들을 순식간 잡아버린 엄청난 반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반나절 후에 남은 1척마저 잡아내면서 태평양전쟁의 균형추가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처럼 TBD는 역사적인 대승의 발판을 놓고 사라져간 숨은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엄청난 희생에 놀라 미드웨이 해전 후 곧바로 잔여 물량의 조기 퇴역이 진행되었고 그 자리를 막 양산에 들어간 TBF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변형 및 파생형

    XTBD-1: 프로토타입. 1기.

    XTBD-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XTBD-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TBD-1: 양산형. 129기.

    TBD-1 양산기 < 출처 : Public Domain >
    TBD-1 양산기 < 출처 : Public Domain >

    TBD-1A: 수상기 개조형. 1기 개조.

    TBD-1A 수상기 < 출처 : Public Domain >
    TBD-1A 수상기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전폭: 15.24m
    전장: 10.67m
    전고: 4.60m
    주익 면적: 39.2㎡
    최대 이륙 중량: 4,213kg
    엔진: 플랫 휘트니 R-1830-64 트윈 와스프 14기통 공랭식, 900마력(670kW)
    최고 속도: 332km/h
    실용 상승 한도: 5,900m
    최대 항속 거리: 700km
    무장: 1× 12.7mm MG2 기관총
            1 × 7.62mm 기관총
            1 × Mk. 13 공중 투하 어뢰 또는 450kg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TBD 뇌격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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