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1호 자주보병포
급하게 탄생한 독일 자주보병포의 아버지
  • 남도현
  • 입력 : 2021.01.29 08:35
    1941년 그리스 침공전 당시 독일 제5기갑사단 소속의 1호 자주보병포 비존(Bison)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그리스 침공전 당시 독일 제5기갑사단 소속의 1호 자주보병포 비존(Bison)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보병은 군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병과로 도보로 이동하며 전투를 벌인다.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차량화보병, 기계화보병 등이 보편화되는 추세이나 이들도 교전 상황에서는 하차해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보병이 사용하는 무기는 소총, 기관총, 박격포처럼 휴대가 가능한 것들이어서 투사할 수 있는 화력에 제약이 있다. 그 이상은 포병, 기갑, 항공 같은 별도의 병과가 지원한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보병 근접지원용으로 사용한 7.5cm 18호 경보병포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보병 근접지원용으로 사용한 7.5cm 18호 경보병포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이들도 항상 보병을 따라다니면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특히 전쟁의 규모가 커서 지원을 요청하는 곳이 많을수록 그렇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보병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중화기를 운용했다. 보병포(Infantry guns)는 그러한 무기 중 하나다. 지금은 대구경 박격포, 무반동총, 대전차미사일 등에 밀려서 사라졌지만 제2차 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실 보병포 운용도 포병이 했기 때문에 보병포와 야포를 어떻게 구분하여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때문에 대략 최전선에서 운용하는 사거리가 짧은 포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다. 주퇴기와 복좌기가 실용화된 19세기 말에 탄생한 경량의 야포가 이러한 용도로 사용된 것이 시초인데, 제1차 대전에서 상당히 효과가 좋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이후 필수적인 무장이 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표적인 중보병포인 15cm sIG 33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표적인 중보병포인 15cm sIG 33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1927년 개발에 들어가 1933년부터 제식화된 15cm sIG 33(이하 sIG 33)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운용한 중(重)보병포다. 고각 사격 시 살상 반경이 100m에 이를 정도고 단거리 직사 사격을 할 경우 어지간한 건물을 한 발로 격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서 은폐된 적 제압에 효과적이었다. 다만 일선에서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무게를 줄이려고 1.65m 단포신을 채택하다 보니 최대 사거리가 4,600m에 불과하다.

    그런데 sIG 33은 견인식이어서 이후 전격전으로 불리게 되는 기동전을 연구하던 이들에게 고민이 되었다. 배후에서 지원하는 야포와 달리 보병포는 최전선에서 활약해야 하므로 보병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새로운 전략에서 전선 돌파 임무를 담당하기로 예정된 기갑부대에게 요구된 것은 속도였다. 따라서 기갑부대에 배치된 sIG 33도 함께 움직여야 했는데 1939년 폴란드 전역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포탑을 제거한 1호 전차 차제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얹은 테스트용 프로토타입. 그냥 저 형태에 포방패를 설치한 것이 1호 자주보병포다. < 출처 : (cc) Photo Aviarmor.net >
    포탑을 제거한 1호 전차 차제에 15cm sIG 33 보병포를 얹은 테스트용 프로토타입. 그냥 저 형태에 포방패를 설치한 것이 1호 자주보병포다. < 출처 : (cc) Photo Aviarmor.net >

    이에 1940년 프랑스 침공을 앞두고 sIG 33을 전력 외로 분류된 1호 전차 차체와 결합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제작되어 실전에 투입된 기갑사단용 자주보병포가 '15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I Ausf B'다. 독일군 무기에 붙여지는 특유의 긴 제식명 때문에 흔히 'Sturmpanzer I'으로 불리는데, 글자 그대로 따지면 '1호 돌격전차'로 해석될 수도 있어 종종 돌격포(Sturmgeschütz)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중에 개발되어 Sturmpanzer라고 명명된 기갑장비들은 예외 없이 대구경 포를 장비하고 보병을 지원하는 용도였으므로 전차, 구축전차, 돌격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무기다. Sturmpanzer I도 정식 명칭에 붙은 (Sf)에서 알 수 있듯이 자주포다. 다만 Sturmpanzer를 그대로 번역하면 용도와 어울리지 않아 Sturmpanzer I, Sturmpanzer II, 그릴레(Grille)는 '자주보병포'로 표기한다.

    1호 자주보병포는 무거운 야포를 경전차 차체로 나르면서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1호 자주보병포는 무거운 야포를 경전차 차체로 나르면서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와 반대로 후에 개발된 Sturmpanzer IV는 글자 그대로 '4호 돌격전차'로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단어보다 구조와 용도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의 M7 프리스트(Priest)처럼 당시 여타 국가들도 비슷한 자주포를 개발했으나 이들과 달리 자주보병포는 보병 바로 옆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용도다. 그중 1호 자주보병포는 급조해서 탄생했지만 이후 여러 종류의 후속작을 이끈 특이했던 독일 자주보병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특징

    1호 자주보병포는 포탑을 제거한 1호 전차 B형 차제에 sIG 33을 그대로 거치하고 얇은 장갑으로 전면과 측면에 포방패를 설치한 간단한 구조다. 기존에 사용하던 장비를 그냥 결합한 수준이어서 제작은 쉬웠지만 이종 결합인 만큼 당연히 문제점도 많았다. 일단 차체가 작아 포탄 탑재량이 적었고 균형에 문제가 많아 보일 정도로 상부 구조물이 커지면서 사격 시 반동이 심했다.

    1호 자주보병포는 전면과 측면에 높은 장갑판을 둘렀지만 오픈 탑 구조에 전고가 높아 방어력이 취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호 자주보병포는 전면과 측면에 높은 장갑판을 둘렀지만 오픈 탑 구조에 전고가 높아 방어력이 취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는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차체를 이용했으나 바퀴, 차축, 트레일러를 제거하고 포신과 주퇴 복좌기만 장착한 1호 자주대전차포(Panzerjäger I)와 비교하면 쉽게 차이를 알 수 있다. 견인식 sIG 33보다 1호 자주보병포는 근접전 투입이 많고 경우에 따라 고정 방어물에 막힌 고착된 전선에 돌파구를 여는 임무까지 수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높은 전고와 오픈 탑 구조는 방어에 취약한 요인이었다.

    정비 후 주포를 차체와 적재하는 모습. 급조된 만큼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후속작의 등장을 이끌었을 만큼 가능성은 보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정비 후 주포를 차체와 적재하는 모습. 급조된 만큼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후속작의 등장을 이끌었을 만큼 가능성은 보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결론적으로 1호 자주보병포는 자체 주행력 확보만이 목적이었던 무기다. 그런데 1호 전차 자체가 원래 주행력이 신통치 않았기에 1호 자주보병포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작전을 펼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후속작이 등장했다는 점을 보면 나름대로 가능성을 입증한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1호 자주보병포(사진 왼쪽)의 전고는 무려 2.8m로, 높은 실루엣으로 유명한 소련제 KV-2(전고 3.25m, 사진 오른쪽)와 비견될만했다. <출처 : Public Domain >
    1호 자주보병포(사진 왼쪽)의 전고는 무려 2.8m로, 높은 실루엣으로 유명한 소련제 KV-2(전고 3.25m, 사진 오른쪽)와 비견될만했다.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1호 자주보병포는 현역인 sIG 33이 주포지만 생산이 종료된 유휴 1호 전차가 차체다 보니 대량 생산은 곤란했다. 아무리 전시라도 성능이 기대 이상으로 좋지 않은 한 이미 단종된 장비를 다시 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독일 육군도 처음부터 1호 자주보병포를 임시 대타로 예정해서 총 38문만 제작했을 뿐이다. 주포를 임의로 탈부착 할 수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38대의 1호 전차만 개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당시에 건물에 은폐한 적을 공격하는 1호 자주포. 성능이 미흡했지만 자주보병포가 기갑부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장비임이 확인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당시에 건물에 은폐한 적을 공격하는 1호 자주포. 성능이 미흡했지만 자주보병포가 기갑부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장비임이 확인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6개 기갑사단 예하 독립포대에 각 6문씩 배치했는데 단대 부호가 별도로 제701~706 포대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 이들의 역할에 기대가 컸다는 의미다. 프랑스 침공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발칸 전역에도 투입되었다. 편제 변동 없이 1941년 독소전쟁에 투입되어 순차적으로 소모되었다. 마지막은 1943년 중반 제5기갑사단 소속 제704포대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1호 자주보병포는 전쟁사에서 사라졌다.

    방한복이 지급되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1941년 겨울 동부전선 당시로 추정된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방한복이 지급되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1941년 겨울 동부전선 당시로 추정된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15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I Ausf B: 1호 자주보병포

    15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I Ausf B < 출처 : Public Domain >
    15cm sIG 33 (Sf) auf Panzerkampfwagen I Ausf B < 출처 : Public Domain >

    Pz.Kpfw.I (MG) Ausf B, (Sd.Kfz.101): 기반이 되었던 1호 전차 B형

    Pz.Kpfw.I (MG) Ausf B < 출처 : (cc) Eigenes Werk at Wikipedia.org >
    Pz.Kpfw.I (MG) Ausf B < 출처 : (cc) Eigenes Werk at Wikipedia.org >

    Panzerjäger I: 4.7cm Pak(t) 장착 1호 자주대전차포

    Panzerjäger I < 출처 : Public Domain >
    Panzerjäger I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0년
    생산 대수: 38문
    중량: 8.5톤
    전장: 4.67m
    전폭: 2.06m
    전고: 2.8m
    무장: 1×15cm sIG 33
    엔진: 마이바흐 HL62 NL38 TR 수랭식 6기통 가솔린엔진 100마력(75kW)
    추력 대비 중량: 11.8마력/톤
    항속 거리: 14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1호 자주보병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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