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C-141 스타리프터 수송기
냉전시기 미국 항공수송의 중추였던 세계 최초의 수송전용 제트기
  • 양욱
  • 입력 : 2021.01.26 08:45
    C-141B 스타리프터 수송기 <출처: US National Archives>
    C-141B 스타리프터 수송기 <출처: US National Archives>


    개발의 역사

    1차대전에서 항공기가 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최초에는 정찰과 공중전에 특화되어 군용기가 발달되었다. 한편 항공기를 수송에 활용한 것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기술발달로 이전보다 큰 기체가 등장하고 민간항공이 발달하면서부터였다. 여전히 병력수송의 핵심은 철도와 선박이었고, 항공을 수송에 활용하는 것은 극히 제한되었다.

    2차대전 당시는 수송기 전용으로 개발된 기체는 드물었고, 민항기나 폭격기를 개조한 기체가 주류였다. <출처: Public Domain>
    2차대전 당시는 수송기 전용으로 개발된 기체는 드물었고, 민항기나 폭격기를 개조한 기체가 주류였다. <출처: Public Domain>

    간전기에 군에서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던 대형항공기는 역시 폭격기였다. 따라서 군용 수송기도 별도로 개발하기보다는 폭격기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당시 민간항공용의 여객기를 전용하여 활용했다. 그 결과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주력수송기로 활용했던 C-47 스카이트레인(Skytrain)이나 C-53도 실은 DC-3 민항기에 바탕한 것이었다. B-24 폭격기는 C-87 리버레이터 익스프레스(Liberator Express)나 C-109 수송기로 개조됐고, B-17 폭격기는 소량이나마 C-108 수송기로 개조됐다.

    C-74 글로브마스터가 등장하면서 미 공군은 처음으로 전략적 수송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C-74 글로브마스터가 등장하면서 미 공군은 처음으로 전략적 수송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물론 2차대전이 계속되면서 수송의 용도에 특화된 항공기가 개발되었다. 1942년부터 C-82 패킷(Packet) 수송기가 개발되어 1944년부터 배치되었는데, 42명의 병력이나 화물을 싣고 약 6,200 km를 비행할 수 있었다. C-74 글로브마스터(Globemaster)도 1942년 설계안이 만들어졌지만 전쟁이 끝난 1945년 9월에서야 초도비행을 했고 겨우 12대가 만들어진 게 전부였다. 그러나 C-74는 22톤의 화물을 싣고 11,600km를 이동할 수 있어 미군의 전략수송역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1950년 C-124 글로브마스터 II가 뒤이어 배치되면서 전략적 공수능력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C-124 글로브마스터II는 1950년대 미 공군 전략수송의 핵심전력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C-124 글로브마스터II는 1950년대 미 공군 전략수송의 핵심전력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1950년대에 걸쳐 미국은 전략적 공수능력의 중요성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프로펠러 수송기로는 급격히 증가하는 수송 소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특히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가 유연반응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전략적 공수는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군사항공수송단(Military Air Transport Services, 추후 Military Airlift Command로 개편)의 요구는 강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MATS의 사령관이 윌리엄 터너(William H. Tunner, 1906~1983) 중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2차대전 당시 공수 개념을 확립했으며 1948년 베를린 공수를 계획하고 이끈 공중수송의 선구자로, 1957년부터 MATS 사령관으로 취임하고 있었다.

    윌리엄 터너 장군(좌)은 베를린 공수(우)를 기획하는 등 공중수송의 개념을 확립시킨 선구자였다. <출처: Public Domain>
    윌리엄 터너 장군(좌)은 베를린 공수(우)를 기획하는 등 공중수송의 개념을 확립시킨 선구자였다. <출처: Public Domain>

    풍부한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한 터너는 차세대 수송기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의 말에는 무게가 실렸다. 차세대 수송기는 트럭의 화물칸 높이에서 적재와 하역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동체의 전후방에서 동시에 작업할 수 있을 것, 거대한 크기의 화물을 분해작업이 없이 그대로 탑재할 수 있도록 충분히 큰 동체일 것, 그리고 적절한 크기의 화물은 캘리포니아에서부터 극동까지 상당한 크기의 화물은 하와이까지 급유없이 비행할 수 있을 것을 요구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C-133B 카고마스터가 대형화물수송기의 잠정전력으로 C-5 갤럭시의 등장 이전까지 활약하면서 전략적 수송역량을 보장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60년대에 이르러 C-133B 카고마스터가 대형화물수송기의 잠정전력으로 C-5 갤럭시의 등장 이전까지 활약하면서 전략적 수송역량을 보장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59년 MATS는 공군 본부에 수송기 지원사업의  운용요구조건(QOR; Qualitative Operational Requirements, 현 ROC)을 제시했다. 터너 장군은 운용요구조건을 발행하면서 더욱 큰 기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추후 C-5 갤럭시 같은 초대형의 수송기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문제는 수송기 전력에 할애할 예산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공군본부와 MATS는 협의를 통하여 우선순위를 정했다. 일단 C-133 수송기로 대형화물을 운반할 수 있으므로 이를 잠정 수송전력으로 활용하고, 우선 중형급 수송기를 먼저 확보하기로 결정하였다. 실제로 중형급 수송기의 전력부족은 심각하여 1960년 공군은 잠정전력으로 민항기에 바탕한 보잉 C-135 스트레토리프터 50대를 발주했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전략수송능력이 지극히 한계를 보이자 공군은 우선 민항기 기반의 C-135를 도입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전략수송능력이 지극히 한계를 보이자 공군은 우선 민항기 기반의 C-135를 도입했다. <출처: Public Domain>

    공군은 SOR(Specific Operational Requirement) 제182호 문건을 발행하여 전략수송과 전술수송이 모두 가능한 기종을 확보하고자 했다. 전략 임무에서는 27톤의 화물을 6,500km까지 운송할 수 있을 것을 요구했다. 전술임무를 위하여 저공비행으로 물자투하와 공수병 강하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함도 물론이었다. 그냥 여객기를 사라면서 일부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군으로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의회는 공군의 새로운 전략수송기사업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공군은 개발명령(Development Directive) 제415호를 통하여 신형 수송기를 개발할 것을 밝혔고, 특히 새 기체는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제트기여야 한다고 확정했다. 당시 미 대선후보였던 공화당 닉슨과 민주당 케네디는 모두 공군의 노력에 지지의사를 표시했다.

    최초의 수송전용 제트기로 록히드사가 제안한 L-300 모델. <출처: Lockheed Martin>
    최초의 수송전용 제트기로 록히드사가 제안한 L-300 모델. <출처: Lockheed Martin>

    1960년 12월 21일 공군본부는 제안요청서(RFP)를 보잉, 더글라스, 콘베어, 그리고 록히드 4개의 회사에 발송했다. 이들 가운데 록히드 사가 제안한 모델 300 설계안이 기존의 여객기 형상들과는 다른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기체를 제시했다. 결국 1961년 3월, 공군은 록히드 설계안을 새로운 제트수송기로 채용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했던 최초의 국방관련 업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로운 수송기의 계약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체는 C-141 스타리프터(Starlifter)라는 이름이 부여 되었다.

    C-141A 초도기(록히드 제작번호 6001)의 동체 제작장면 <출처: Lockheed Martin>
    C-141A 초도기(록히드 제작번호 6001)의 동체 제작장면 <출처: Lockheed Martin>

    미 공군은 공군 소유의 조지아주 제6공장을 록히드에 임대해주고 있었는데 C-141의 조립도 여기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이 공장은 애초에 B-29 폭격기를 제작하기 위한 공장으로 당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제작 설비였다. 2차대전 후 사용되지 않던 이곳은 B-29의 재제작을 록히드가 맡으면서 임대되었으며, 이후 B-47 폭격기, C-130 수송기 등이 생산되었다. 기체 조립을 위해 주요한 부품들이 제6공장에 도착한 것은 1962년 9월 경이었다. C-141의 엔진으로 사용될 TF33은 1958년에 개발되어 B-52와 KC-135 등 이미 5개의 다른 기종에도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부드럽게 통합될 수 있었다. C-141은 당대의 첨단기술을 모두 모은 기체인 반면 첨단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지 않고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한계를 정했다. 통상 항공기의 개발과정에서 기술설계변경 사항이 150여개 이상이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C-141은 오직 50개의 기술설계변경이 제안되었으며, 공군은 그 중의 딱 절반만을 받아들였다.

    C-141A 초도기(기체번호 61-2775)는 기록적인 시간내에 생산되어 1963년 8월 22일 출고되었다. 이 기체의 초도비행은 약 4개월 뒤인 1963년 12월 17일에 실시되었는데, 이 날은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 인력비행을 성공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C-141 사업은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시제기 없이 양산기체로 시험평가를 실시하기로 하여, 공군은 양산기 5대를 투입하여 집중적인 시험평가를 실시하였다. 시험평가는 순조롭게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를 적용한 양산기가 공군에 인도된 것은 1965년 4월경이었다. 이후 3년 동안 록히드는 시험평가용 5대를 제외하고 284대의 C-141을 생산하여 공군으로 인도했으며, 1968년 2월 생산을 종료하였다.

    C-141A(사진 위)의 추력이 여유롭다는 점에 착안하여 동체를 늘린 C-141B(사진 아래)로 개수되었다. <출처: 미 공군>
    C-141A(사진 위)의 추력이 여유롭다는 점에 착안하여 동체를 늘린 C-141B(사진 아래)로 개수되었다. <출처: 미 공군>

    한편 C-141은 충분한 추력으로 인하여 화물을 더 실을 여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동체의 크기가 제한된다는 점이었다.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하여 미 공군은 C-141A의 동체를 연장하기로 결정하고 1977년부터 개수를 시작했다. 개수는 동체의 7m 연장과 공중급유용 연료주입구의 장착 등이 이뤄졌으며, 모두 270대가 개수되어 C-141B가 되었다. 한편 1990년대에는 항전장비와 항법장비 등의 현대화가 이루어져 63대가 C-141C로 개수되었지만, 2006년 모두 퇴역을 맞이하면서 미 공군 최초의 수송전용 제트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징

    C-141 스타리프터는 미 공군 최초로 초음부터 수송용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진 제트 수송기이다. 주익은 25도 후퇴각으로 만들어져 속력을 내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주익에 리딩엣지를 적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완만한 후퇴익으로 인하여 저속 비행조종성이 우수했기 때문에 굳이 플랩이나 슬랫을 사용하지 않았도 되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원형 동체에 T자형 꼬리날개를 장착한 고익기로 이후 수많은 수송기들의 설계에 영감을 주었다.

    C-141 스타리프터는 T자형 꼬리날개에 고익을 채용하여 제트수송기 설계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출처: 미 공군>
    C-141 스타리프터는 T자형 꼬리날개에 고익을 채용하여 제트수송기 설계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출처: 미 공군>

    C-141의 동체는 원형으로, 근본적으로는 C130과 같은 직경이다. 동체가 원형이므로 기내 여압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주익은 익폭이 무려 160피트(48.7m)로 더치 롤(dutch roll)을 막기 위하여 익단(wing tip)의 높이가 익근(wing root)에 비하여 42인치나 낮게 만들어졌다. 한편 주익이 동체 위쪽으로 달리는 고익기이므로 당연히 랜딩기어를 날개에 장착할 수 없어, 동체 아랫 쪽에 장착했다.

    C-141은 페달도어를 채용하였으며, 이는 비행특성의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나, 투하에는 번거로웠다. <출처: 미 공군>
    C-141은 페달도어를 채용하였으며, 이는 비행특성의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나, 투하에는 번거로웠다. <출처: 미 공군>

    화물을 수납하기 위해 C-141은 후방에 좌우로 열리는 형식의 페달도어(pedal door)를 장착했다. 페달도어가 좌우로 열리면 램프가 확장되어 살짝 아래 각도로 내려온다. 이를 통하여 펠릿이나 컨테이너 등 화물을 공중에서 투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방도어를 램프로만 만들지 않고 굳이 페달도어로 만든 것은 그만큼 비행성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후방 좌우에 공수부대원 강하를 위한 출입문이 마련되어 있다.

    C-141의 동체 내부 화물 캐빈의 특징 <출처: 미 공군>
    C-141의 동체 내부 화물 캐빈의 특징 <출처: 미 공군>

    화물캐빈은 길이 31.7m(B형)은  폭 3.1m 높이 2.74m의 크기이다. C-141은 최초로 463L 물자취급체계(material handling system)을 갖춰 463L 팔레트로 편리하게 화물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최대 13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상당한 길이로 UH-1이나 UH-60 헬기는 물론, MGM-30 미니트맨 ICBM도 수송이 가능했다. 그러나 탑재중량의 한계로 인하여 주력전차를 싣는 건을 불가능했다. 응급후송용으로 개조할 경우 모두 103개의 들것을 수납하거나 환자 113명을 실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C-141의 캐빈 높이가 지상에서 불과 1.3m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하여 지상에서 적재나 하역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트럭에서 곧바로  수송기로 물자를 옮기는 것도 용이해졌다.

    C-141은 화물적재와 하역이 용이하도록 지상고 1.3m로 화물캐빈의 높이를 맞추었다. <출처: 미 공군>
    C-141은 화물적재와 하역이 용이하도록 지상고 1.3m로 화물캐빈의 높이를 맞추었다. <출처: 미 공군>

    C-141은 프랫&휘트니의 TF33-P-7 터보팬 엔진을 4개 장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력은 기체 사이즈에 비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편으로, 최대속력은 무려 마하 0.89까지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마하 0.825를 초과하면 기체가 과도한 압력을 받으므로 절대 넘지 말 것이 권고되었으며, 통상 마하 0.7로 비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이러한 추력의 여유로 인하여 동체가 연장되면서 C-141B형으로 개조되었다. 연구결과 최대 37피트까지 연장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으나 실제로는 23.3피트 연장에서 그쳤으며, 연장부는 주익 앞부분의 화물칸에서였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 C-141B가 너무도 노후하자 첨단 항전장비와 글래스콕핏을 채용한 C-141C가 등장했다. <출처: 미 공군>
    1990년대 말에 이르러 C-141B가 너무도 노후하자 첨단 항전장비와 글래스콕핏을 채용한 C-141C가 등장했다. <출처: 미 공군>

    C-141은 1960년대 기체답게 조종석이 매우 복잡했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대대적으로 개량을 거쳤다. 무엇보다도 GPS 항법장비가 통합되어야만 했으며, 지상충돌방지장치나 기타 자동항법장치 등이 장착되어야만 했다. 개수된 대수와 사용된 시기도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C-141C는 현대화된 조종석으로 퇴역시기까지 묵묵히 활약했다.


    운용의 역사

    C-141은 미 공군 공중수송의 핵심전력으로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말까지 대활약을 했다. 미 공군은 1965년 4월부터 C-141A를 인도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마침 미군이 베트남으로 증강되던 시기로, C-141은 곧바로 바쁘게 병력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전시임무 가운데 하나가 블루라이트 작전(Operation Blue Light)으로, 하와이에 주둔하는 제25사단 3여단 병력을 베트남으로 전개시키는 임무였다. 제61 수송비행단 소속의 C-141 12대와 C-133 카고마스터가 임무에 투입되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12월 24일에 임무를 받은 비행단은 3천명이 넘는 병력과 2천~4천톤에 이르는 물자를 1월초까지 베트남으로 수송하는데 성공했다.

    C-141A는 실전배치와 동시에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어 맹활약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C-141A는 실전배치와 동시에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어 맹활약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베트남 전 기간동안 C-141은 매우 다양한 활약을 해왔는데, 특히 의무 후송이 주된 임무였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1968년에는 매달 9천여 명의 부상자들을 후송하기도 했다. 1965년 7월부터 1972년 12월까지 C-141은 부상자 후송임무를 위해서만 무려 6천 소티나 비행했다. 또한 특별임무에도 투입되어 북베트남에서 석방된 미군 포로를 데려오기도 했다. 이 임무에 최초로 투입된 기체에는 "하노이 택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또한 남베트남의 패전이 짙어지면서 다른 수송기들과 함께 투입되어 375 소티를 통해남베트남 국민 5만명을 소개시키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C-141의 주된 임무중의 하나는 부상자 후송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트남 전쟁에서 C-141의 주된 임무중의 하나는 부상자 후송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을 맞이하여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을 돕기 위한 니켈그래스 작전에도 C-5 갤럭시와 함께 투입되었다. C-141은 422소티를 비행하면서 10,754톤의 물자와 장비를 운송했다. 또한 해외 긴급전개상황이 되면 C-141이 맨 앞장에 섰다. 대표적으로 1976년 8월 20일 북한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2명의 미군 장교를 살해하자, 미국은 전투기 전력을 대거 오산, 군산, 대구 등에 전개했으며, 이때 지원병력을 싣고 전투기를 따라온 것도 C-141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포로를 북베트남부터 귀환시킨 첫 기체인 ">
    베트남전 당시 포로를 북베트남부터 귀환시킨 첫 기체인 "하노이 택시"의 퇴역전 비행모습. <출처: 미 공군>

    한편 1975년경에 이르로 C-141A 수송기들은 평균 2만 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했는데, 이는 애초에 예정했던 기체수명의 2/3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977년부터 C-141에 대한 개수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C-141B형으로 교체되어 1979년 12월부터 1982년까지 270대가 모두 인도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응하여 사우디 아라비아로 대규모의 수송작전이 시작되었는데, C-141이 그 핵심전력이 되었다. 사막의 방패와 사막의 폭풍 양대 작전에 걸쳐 C-141은 8,536소티로 144,661톤의 장비 및 물자와 93,126명의 병력을 이동시켰다.

    C-141은 결국 2004년 현역에서 물러나고 2006년 전량이 퇴역함으로써 40년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출처: 미 공군>
    C-141은 결국 2004년 현역에서 물러나고 2006년 전량이 퇴역함으로써 40년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출처: 미 공군>

    그 결과 걸프전이 끝나고 나자 C-141은 평균 3만시간의 기체수명에 거의 도달하고 있었으며, 이를 대체할 C-17 글로브마스터III의 도입이 시급해진 상황이 되었다. 1990년대말이 되자 C-141B의 노후한 항전장비와 항법장비를 개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C-17의 본격적인 도입이 예정되었으므로 본격적인 수명연장과 개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C-141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 전략수송의 중핵으로 맹활약했다. <출처: Lockheed Martin>
    C-141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 전략수송의 중핵으로 맹활약했다. <출처: Lockheed Martin>

    결국 미 공군은 2004년 현역으로 남아 있던 C-141을 모두 예비역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미 공군 예비군 소속의 제445 공수비행단이 모든 기체를 인도받아 2004년부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작전의 지원임무를 맡아, 주로 응급후송을 수행했다. 그러나 2005년 제445 비행단이 C-5 갤럭시를 운용하게 됨으로써 2006년 C-141 스타리프터는 드디어 미 공군에서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퇴역하였다.


    파생형

    C-141A: C-141 스타리프터의 최초 모델. 154명을 탑승시키거나, 공수부대원은 123명, 또는 들것 80개와 부상병 16명을 탑승시킬 수 있었다. 463L 팔레트 체계를 최초로 도입한 기체로 최대 10개의 팔레트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최대탑재중량은 28,400kg이었다. 1965년부터 도합 284대가 미 공군으로 인도되었다.

    C-141A <출처: Public Domain>
    C-141A <출처: Public Domain>

    C-141B: C-141A의 동체연장형. 애초에 C-141의 추력이 충분한 여분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탑재중량과 공간이 제약됨에 따라 기체의 잠재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동체를 연장한 모델이다. 개수사업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게속되었으며 모두 270대의 A형이 B형으로 개수되었다. 또한 항속거리를 연장시키기 위해 공중급유용 연료주입구(receptacle)도 장착했다. 연장된 동체 길이는 7.11m로 이로 인하여 탑승객 205명, 강하병 168명, 또는 들것 103개로 탑재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C-141B <출처: US National Archives>
    C-141B <출처: US National Archives>

    SOLL II: C-141의 특수작전용 모델. SOLL은 Special Operations Low-Level의 약자이다. C-141B형 13대가 1994년 개수되었으며, FLIR를 장착하는 등 저공야간비행능력을 확보했고 항법장비를 개수하는 한편 채프/플레어 등 방어장비를 확보했다. 기본적으로 항공수송사령부의 관할이었지만 공군 특수전사령부와 공동으로 운용하였다.

    SOLL II <출처: Public Domain>
    SOLL II <출처: Public Domain>

    C-141C: C-141의 최종개수모델. C-141B 63대를 개수했다. 첨단 항전장비와 GPS 항법장비를 채용했으며 지상충돌방지장비를 장착하는 한편, 조종석을 글래스콕핏화 하였다.

    C-141C <출처: Public Domain>
    C-141C <출처: Public Domain>

    AWACS 제안형: C-141은 개발당시부터 다양한 플랫폼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는데, 폭격기, 미사일 발사플랫폼, 항법 훈련기, 수색구난기, 공중급유기, 공군기상대용 항공기, 항공촬영기, 통신중계기, 공중지휘통제기, 전자전 기체 등 다양한 사양으로 제안되었다. 심지어는 AWACS용 기체로도 제시되었으나, 그 어떤 것도 채용되지 못했다.

    L-300 AWACS 제안모델 <출처: Lockheed Martin>
    L-300 AWACS 제안모델 <출처: Lockheed Martin>

    L-300: C-141의 민수형. C-141의 록히드 모델명은 L-300으로, 록히드는 개발초기부터 이를 민항기로 전용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따라 공군을 설득하여 1대를 민수용 항공기로 만들었고, 시험평가 단계부터 FAA를 포함시켜 민항기 인증까지 동시에 수행하였다. 그러나 막상 민항사에서는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고, 유일한 기체는 NASA로 인도되어 우주관측용 항공기인 카이퍼 항공관측소(Kuiper Airborne Observatory, KAO)로 활용되었다. NASA에서 활동할 때 기체의 제식명은 NC-141A였다.

    NC-141A <출처: NASA>
    NC-141A <출처: NASA>


    제원

    기종: C-141B 슈퍼갤럭시
    제조사: 록히드 마틴
    형식: 4발 터보팬 엔진 / 대형 수송기
    전폭: 48.77 m
    전장: 51.3 m
    전고: 12.07 m
    주익면적: 300 m2
    엔진: 프랫&휘트니 TF33-P-7 터보팬 엔진(추력 20,250 파운드) x 4 
    자체중량: 65,542 kg
    최대이륙중량: 147,000 kg
    최대화물탑재량: 41,313 kg
    화물캐빈 공간: 31.76 x 3.11 x 2.74 m
    최대 팔레트 탑재량: 463L 팔레트 13개
    속도:  항속 837 km/h (마하 0.7); 최대 885 km/h (마하 0.74)
    항속거리:  최대 10,279 km (5,550 해리, 화물 비적재시)
    익면하중: 490 kg/m2
    추력 대 중량비: 0.25
    상승률: 13.2 m/s (2,600 ft/min)
    이륙거리: 2,072 m (6,800 ft )
    착륙거리: 1,143 m (3,750 ft )
    연료탑재량: 89,650 L (23,592 gal)
    승무원: 총 6명 (정·부조종사, 기상정비사 2명, 화물적재사 2명)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C-141 스타리프터 수송기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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