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C-5 갤럭시 수송기
2040년까지 현역을 지킬 미군 최대의 '하늘의 창고'
  • 양욱
  • 입력 : 2021.01.25 12:14
    C-5 갤럭시 수송기 <출처: Lockheed Martin>
    C-5 갤럭시 수송기 <출처: Lockheed Martin>


    개발의 역사

    미국의 군사적 역량은 얼마만큼 해외로 병력을 빨리 그리고 많이 보낼 수 있냐에 달려 있다. 접경국가 중에 적국이 존재하지 않으며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동떨어진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미국은 안보면에서는 거대한 섬나라와도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로 국제정치경제를 이끄는 리더국가로서, 특히 냉전시절 소련과 경쟁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자국군을 주둔시키거나 신속히 병력을 파병해야만 했다.

    케네디 행정부가 억제전략으로 유연반응전략을 채용하면서 항공수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출처: Public Domain>
    케네디 행정부가 억제전략으로 유연반응전략을 채용하면서 항공수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출처: Public Domain>

    특히 미소핵균형으로 인하여 핵을 통한 억제에 의존하기 어려워지자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는 공산진영의 국지전에 대하여 유연반응전략을 채택했다. 유연반응전략의 교리에 의하면 빠른 시간내에 결정적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재래전력을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투입할 수 있어야만 했다. 특히 바르샤바 조약군의 전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미국 본토에서 주전력이 해상으로 증강될때까지 빠르게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고, 그 능력은 다름아닌 공군의 공수역량에 달려있었다.

    미 공군이 운용한 전략수송기 가운데 마지막 터보프롭 기종이었던 C-133 카고마스터. <출처: Public Domain>
    미 공군이 운용한 전략수송기 가운데 마지막 터보프롭 기종이었던 C-133 카고마스터. <출처: Public Domain>

    항공수송은 통상 전술수송(tactical airlift)과 전략수송(strategic airlift)으로 구분된다. 전술수송은 자산과 물자를 특정한 장소에 정확히 투입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전략수송은 무기체계와 병력, 물자 등을 전구(theater of operations)나 대륙 간처럼 매우 긴 거리에 걸쳐 옮기는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전략수송은 화물이 탑재능력과 항속거리가 중요한 요소이며, 당연히 전략수송기는 전술수송기보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전술수송기는 C-123 프로바이더(Provider)나 C-130 허큘리스(Hercules)를 들 수 있다.

    더글러스가 제안한 CX-4 설계안. CX-4 설계안은 엔진을 6개 장착한 것이 특징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더글러스가 제안한 CX-4 설계안. CX-4 설계안은 엔진을 6개 장착한 것이 특징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1960년대초 미군이 보유했던 전략수송기는 C-133 카고마스터(Cargomaster)와 C-141 스타리프터(Starlifter)가 주류였다. C-141의 등장으로 전략수송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었지만, 운송할 수 있는 무기체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기존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항공기가 필요했기에 요구가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 우선 항공수송의 수요자인 육군은 시차계획에 따라 공수해야만하는 무기와 병력, 물자 등을 특정하여 공군에게 알렸다. 그 결과 C-141 수송기보다 중량은 2배, 부피는 5배 정도를 나를 수 있는 자중 60만 파운드(300톤)급의 수송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공군은 이를 정리하여 1961년 10월 6일 질적작전요구조건(QOR; Qualitative Operational Requirements, 1967년부터 ROC로 명칭 변경)을 발행했다.

    록히드가 제출했던 CX-4의 설계안. 기본적으로 C-141을 확대한 수준으로 공군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록히드가 제출했던 CX-4의 설계안. 기본적으로 C-141을 확대한 수준으로 공군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미 공군의 군사항공수송단(Military Air Transport Services, 추후 Military Airlift Command로 개편)은 CX(Cargo Experimental)-4 항공기를 1963년 6월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항공기제작사들이 CX-4 설계안을 제안하였다. CX-4 항공기는 67.5톤 이상을 탑재하고 급유없이 4,000마일을 비행할 것이 요구되었으나, 육군의 수송소요를 충분히 통합하지 못함에 따라 공군은 요구조건을 다시 손보기로 했다. 동년 말 CX-4 설계안을 보완한 CX-X 설계안이 도출되었고, 요구성능은 56톤의 탑재하고 8.000마일까지 비행할 수 있을 것이 요구되었다. 작전요구조건을 확정한 공군은 1964년 4월 27일 CX-HLS(Cargo Experimental - Heavy Logistic System, 중수송체계)의 요구제안서(Request for Proposal, RFP)를 발행하였다.

    CX-HLS와 당시대의 기존항공기들과 크기를 비교한 도해. C-141 수송기나 B-36 폭격기에 비하여 전장이 늘어난 것 이외에는 전폭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CX-HLS와 당시대의 기존항공기들과 크기를 비교한 도해. C-141 수송기나 B-36 폭격기에 비하여 전장이 늘어난 것 이외에는 전폭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RFP에 업계는 즉각 반응하여 5월까지 보잉, 더글라스, 제너럴 다이내믹스, 록히드, 마틴마리에타 등이 항공기 플랫폼을 제안했고, 제너럴 일렉트릭, 커티스-라이트, 프랫&휘트니가 엔진을 제안했다. 공군은 항공기는 보잉, 더글라스, 록히드의 3사를, 엔진은 GE와 PW를 선정하여 제0단계로 1년짜리 연구계약을 체결하였다.  CX-HLS는 이전의 어느 항공기보다 더욱 효율적인 수송에 집중하여, 후방램프는 물론 기수부분도 노즈도어로 화물을 탑재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이에 따라 모든 설계안들은 전방 화물칸의 한참 위쪽에 조종석을 두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다.

    보잉이 제출한 CX-HLS 설계안. 보잉은 이 설계경험을 바탕으로 보잉 747 여객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보잉이 제출한 CX-HLS 설계안. 보잉은 이 설계경험을 바탕으로 보잉 747 여객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CX-HLS의 IOC(Initial Operational Capacity, 초도운용능력) 목표시기는 1969년이었기에 사실 개발 시간은 너무도 촉박했다. 공군은 기체개발을 위한 세부 ROC를 설정하여 무려 1,500페이지짜리 요구문건을 만들어 기체제작사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따라 1964년 12월부터 사업은 사업개념정의(Project Definition) 단계에 접어들어 항공기제작사는 각 710만 불, 엔진제작사는 각 200만 불의 비용으로 시제개발을 시작했다. 새롭게 개발될 CX-HLS 기체에는 C-5 갤럭시(Galaxy)라는 제식명칭이 부여될 터였다.

    더글라스사의 CX-HLS 제안형이었던 D920 모델. CX-4에서 제안했던 D906 모델처럼 측면으로 노즈도어가 열리는 형식이지만 조종석은 움직이지 않는 형태였다. <출처: Public Domain>
    더글라스사의 CX-HLS 제안형이었던 D920 모델. CX-4에서 제안했던 D906 모델처럼 측면으로 노즈도어가 열리는 형식이지만 조종석은 움직이지 않는 형태였다. <출처: Public Domain>

    특히 CX-HLS 사업의 특징은 미 국방부가 최초로  TPP(Total Package Procurement) 개념을 적용한 개약이었다. TPP 방식은 계약자에게 사업 전체 비용을 선지급하면, 이후 사업자는 사업관리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운용주기에 걸쳐 재정적 위험까지 모두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TPP에는 사업자가 사업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면 인센티브를 챙겨갈 수 있어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국방부가 이러한 계약방식을 채택한 것은 최신 무기체계의 개발에 들어가는 총비용을 아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맥나라마 국방장관이 추진했던 국방개혁의 일환이기도 했다.

    록히드는 C-141처럼 T자형 꼬리날개의 고익기 형상을 제시하였다. <출처: Lockheed Martin>
    록히드는 C-141처럼 T자형 꼬리날개의 고익기 형상을 제시하였다. <출처: Lockheed Martin>

    기체에 대한 평가 결과 항공기로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보였던 것은 역시 대형기체의 다양한 생산경험이 있던 보잉이었다. 그러나 TPP의 사업관리요소가 결합되자 결과가 달라졌다. 기체설계에서 다소 위험요소가 있었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이나 군수지원 등을 요소가 평가되었다. 이에 따라 보잉이 제시한 패키지는 약 20억 5천5백만 불, 더글라스가 17억9천3백만 불, 록히드가 17억1천4백만불로, 1965년 9월 30일 록히드가 승자로 선정되었다. 한편 엔진에서는 1965년 8월 5일 PW에게 더 이상 개발비용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서 자연스럽게 GE가 선정되었다.

    조립이 끝난 C-5A 1호기 동체의 모습 <출처: Lockheed Martin>
    조립이 끝난 C-5A 1호기 동체의 모습 <출처: Lockheed Martin>

    C-5A 초도기는 1968년 3월 2일 롤아웃되었으며, 린든 존슨 대통령까지 참석하면서 당대 가장 큰 군용기의 등장을 축하했다. 이 기체는 동년 6월말일에 초도비행을 실시했다. 그러나 기체의 개발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특히 주익 구조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당장 1969년 7월 비행에서 150%의 하중을 버텨야 하는 주익이 124% 하중에서 윙 루트 스킨에 크랙이 발생했다. 록히드는 곧바로 설계변경에 들어갔지만, 이미 이때 40번째 항공기가 조립되고 있었다. 그러나 설계변경을 한 주익에서도 또 크랙이 발생했다.

    1968년 6월 30일 C-5A 1호기의 초도비행 장면 <출처 : Code One Magazine>
    1968년 6월 30일 C-5A 1호기의 초도비행 장면 <출처 : Code One Magazine>

    1970년 1월에는 294시간을 비행한 3번기의 날개 보에서 10인치의 크랙이 발견되었다. 우선 긴급조치로 결국 최대허용하중은 애초 계획했던 100톤에서 86톤으로 하향되었다. 동년 3월 시험에서는 126% 하중에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주익의 피로수명이 1만9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기체는 79대의 기체 가운데 10%에 불과할 것으로 관측되었다. 게다가 1970년 5월과 10월 C-5A 기체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특히 10월화재로 소실된 기체는 C-5A의 1호기였다. 애초에 충분한 시간과 검증을 확보할 수 없었던 촉박한 일정으로 인하여 개발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던 것이다.

    C-5A는 짧은 개발기간과 설계상 한계로 주익의 하중에서 커다란 한계를 겪었다. <출처: Lockheed Martin>
    C-5A는 짧은 개발기간과 설계상 한계로 주익의 하중에서 커다란 한계를 겪었다. <출처: Lockheed Martin>

    잇단 사고로 개발일정이 늦춰짐에 따라 비용도 같이 상승했고, C-5는 개발비용이 10억불이 넘는 최초의 획득사업이 되었다. 결국 의회는 C-5A의 개발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까지 했고, 게다가 록히드 조지아 공장의 생산관리담당자였던 헨리 더헴(Henry M. Durham)이 내부고발을 통해 C-5A의 생산에 인증되지 않은 소재가 쓰였다는 폭로를 함에 따라 정부회계국까지 조사에 나섰다. 사면초가에 몰린 록히드는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기 시작했고, L-1011 민항기의 실패에 C-5A 사업관리 실패까지 겹치면서 1971년에 이르러서는 결국 C-5A의 생산이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략수송기가 필요했던 미 국방부와 공군은 사업을 꾸준히 추진했고, 결국 미 정부가 록히드에 운용자금을 대여해줌으로써 생산은 계속되었다. 록히드 뿐만 아니라 GE도 개발비용을 초과하면서 TPP 사업방식은 실패로 돌아갔고, 국방부는 결국 TPP 계약방식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을 실시하고 있는 C-5A 2호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을 실시하고 있는 C-5A 2호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결국 공군은 C-5A는 애초에 계획했던 115대 구매를 대신하여 기존에 확보한 81대에서 그쳐 1973년 1월 31일 C-5A 마지막 기체가 공군에 인도되는 것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실전배치 이후 C-5A는 계속 주익 하중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80%의 탑재중량 제한이 계속되었고, 심지어 1980년에 이르러서는 평시 작전에는 운용하중을 23톤으로 제한하기까지 했다. C-5A는 1976년부터 중기수명연장사업을 거쳤고, 새로운 주익설계가 검증된 후 1980년부터 87년까지 교체가 완료되었다.

    C-5 갤럭시는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2대나 수송할 수 있는 미군 최대의 전략수송기이다. <출처: 미 공군>
    C-5 갤럭시는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2대나 수송할 수 있는 미군 최대의 전략수송기이다. <출처: 미 공군>

    비록 문제가 많은 기체였지만, C-5A가 제공했던 수송능력은 미국으로서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었다. 차기 전략수송기인 C-17 글로브마스터III가 완성되기까지 전략수송역량의 부족은 계속되었고, 결국 미 공군의 요청에 따라 의회는 1982년 7월 여태까지의 문제점을 개량한 C-5B 50대의 추가발주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C-5B는 1989년까지 50대가 모두 미 공군에 인도되어, 기존에 남아있던 C-5A 77대와 함께 미군 전략수송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미 공군은 C-5 갤럭시를 반세기 넘게 운용해왔으며, C-5M 개수를 통해 2040년까지 운용할 예정이다.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은 C-5 갤럭시를 반세기 넘게 운용해왔으며, C-5M 개수를 통해 2040년까지 운용할 예정이다. <출처: 미 공군>

    C-17이 대량으로 도입되면서 C-5에게 부과되었던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미군은 AMP 사업이나 REPR 사업을 꾸준히 실시하면서 기체를 유지해왔다. 새롭게 개조를 거친 기체들은 C-5M 슈퍼갤럭시(Super Galaxy)로 2008년부터 배치가 시작되었으며, 2040년까지 현역을 지킬 예정이다.


    특징

    C-5는 최대한 하중을 지지하기 위하여 T형 꼬리날개에 고익기 형태의 설계를 취했다. <출처: 미 공군>
    C-5는 최대한 하중을 지지하기 위하여 T형 꼬리날개에 고익기 형태의 설계를 취했다. <출처: 미 공군>

    C-5는 T형 꼬리날개를 채택한 대형 고익기이다. 록히드는 C-141 스타리프터(Starlifter) 수송기부터 이러한 형상을 채용해왔으며, 이러한 설계는 추후 보잉의 C-17 글로브마스터(Globemaster) III에도 영향을 주었다. 동체 길이는 무려 75m에 이르며, 전고만 해도 거의 20m로 6층 건물의 높이에 이른다. 항공기는 자체중량이 172톤, 전비중량이 381톤으로 엄청난 중량으로 기체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C-5 수송기는 전방과 후방 도어가 모두 열리는 구조로 지상장비의 빠른 전개가 가능하다. <출처: 미 공군>
    C-5 수송기는 전방과 후방 도어가 모두 열리는 구조로 지상장비의 빠른 전개가 가능하다. <출처: 미 공군>

    화물을 탑재를 위한 도어는 전방과 후방에 모두 장착되어 있어, 신속한 적재와 하역이 가능하다. 특히 전방의 노즈도어가 위로 올라가는 형식이어서, 공군에서는 '기사의 차양(Kight's visor)'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후방 도어가 모두 열리므로, 차량의 경우 후방도어로 적재하고 전방도어로 하역하면 착륙 후에 쉽게 전개할 수 있다. 이착륙시 기체의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C-5는 랜딩휠을 28개나 장착하고 있는데, 적재와 하역시 편의를 위하여 랜딩기어를 조절하여 기체의 자세를 낮출 수 있다.

    넓은 화물칸으로 인하여 C-5 갤럭시는 CH-47 시누크 같은 대형헬기도 운반이 가능하다. <출처: 미 공군>
    넓은 화물칸으로 인하여 C-5 갤럭시는 CH-47 시누크 같은 대형헬기도 운반이 가능하다. <출처: 미 공군>

    수송능력은 1982년 An-124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를 자랑했다. C-5A/B형은 전시 최대탑재중량이 131톤에 이르렀으며, 고질적 기체의 문제점이 해결된 이후 통상 탑재중량은 108톤에 이르렀다. 잇단 개량을 거친 최종형인 C-5M은 127톤을 최대탑재중량으로 한다. 화물 탑재공간은 길이 37m, 높이 4.1m, 폭 5.8m로 용적은 880m3에 이른다. 이는 미군이 보유한 수송기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으로 463리터 마스터 팔레트를 36개나 탑재할 수 있다.

    C-5A 갤럭시의 단면도. 아래 메인 캐빈에는 화물이 상부에는 조종석과 병력용 캐빈이 위치한다. <출처: 미 공군>
    C-5A 갤럭시의 단면도. 아래 메인 캐빈에는 화물이 상부에는 조종석과 병력용 캐빈이 위치한다. <출처: 미 공군>

    좀더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M551 셰리든 공수전차 4대, 또는 M2 브래들리 장갑차 6대를 동시에 수송할 수 있다. UH-60 블랙호크 헬기 2대나 M1 에이브람스 전차 2대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CH-46 같은 대형헬기도 그대로 수납이 가능하다. 수송할 수 있는 것은 육군 자산에 한하지 않는다. 해군의 마크5 특수작전정(Mk V Special Operations Craft)을 통째로 운반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미익을 제외한 C-130 수송기의 동체를 송두리째 나를 수도 있다. F-5와 같은 경량 전투기 동체 4대를 실어나르는 것도 가능하다.

    C-5 갤럭시는 C-130 수송기 동체를 내장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출처: 미 공군>
    C-5 갤럭시는 C-130 수송기 동체를 내장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출처: 미 공군>

    병력의 탑승도 엄청난 수준이다. C-5는 별도의 승객용 캐빈이 동체 상부층에 준비되어 73명의 승객과 2명의 승무원을 위한 좌석이 장착될 수 있다. 또한 화물캐빈도 승객 탑승용으로 개조될 수 있어 270명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항공기좌석이 장착될 수 있다. 따라서 좌석만으로 치면 350명에 가까운 인원을 수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객수송용 사양으로 사용되는 예는 거의 없다. 비상시에는 이러한 좌석 없이 병력을 밀어넣는 것이 가능하므로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탑승할 수 있다.

    C-5A의 상부 승객캐빈(좌)과 승객좌석을 장착한 메인 화물캐빈(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C-5A의 상부 승객캐빈(좌)과 승객좌석을 장착한 메인 화물캐빈(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이렇게 엄청난 수송능력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GE사의 TF39 터보팬 엔진 덕분이었다. 무려 8:1에 이르는 바이패스 비를 자랑하는 TF39는 무려 43,000파운드가 넘는 추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워낙 강력한 추력으로 인하여 TF39는 이후 CF6 터보팬 엔진으로 진화하여, 해군함정을 추진하는 표준엔진으로 자리잡은 LM2500 가스터빈의 기본이 되었다. TF39 엔진은 C-5A의 퇴역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남아있는 C-5 갤럭시는 신뢰성향상 및 엔진교체사업(Reliability Enhancement and Re-engining Program, RERP)으로 CF6의 군용인 F138-GE-100엔진으로 교체하면서 C-5M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개량형인 C-5M는 기존의 A/B형이 장착한 TF39보다 더욱 강력한 F-138 엔진을 장착하였다. <출처: Lockheed Martin>
    개량형인 C-5M는 기존의 A/B형이 장착한 TF39보다 더욱 강력한 F-138 엔진을 장착하였다. <출처: Lockheed Martin>

    C-5 갤럭시는 통상 7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되는데, 정·부조종사, 기상정비사(flight engineer) 2명, 화물적재사(loadmasters) 3명으로 구성된다. 최소 인원으로 비행할 경우 화물적재사를 제외한 4명으로도 일단 운항은 가능하다. C-5A의 조종석은 1960년대 기체답게 매우 복잡했으나, 1998년 항전장비 현대화 사업(Avionics Modernization Program, AMP)을 거치면서 항법장비와 자동조종장비, 그리고 글래스콕핏을 갖추게 되었다.

    글래스콕핏으로 개조된 C-5M 슈퍼갤럭시의 조종석 <출처: Lockheed Martin>
    글래스콕핏으로 개조된 C-5M 슈퍼갤럭시의 조종석 <출처: Lockheed Martin>



    운용 현황

    C-5A는 애초 배치예정보다 6개월 늦은 1969년 12월 17일 최초의 C-5 배치부대인 제56공수비행대대에 첫 기체가 인도되었다. 초도운용능력을 제일 먼저 인증한 것은 찰스턴 공군기지의 제3공수비행대대로, 동년 9월에 IOC 인증을 마쳤다. 이후 제60공수비행단이 동해안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제436공수비행단이 서해안에서 유럽과 중동지역을 담당했다.

    C-5 수송기는 베트남전에 투입되면서 최초로 실전을 경험했다. <출처: 미 국방부>
    C-5 수송기는 베트남전에 투입되면서 최초로 실전을 경험했다. <출처: 미 국방부>

    최초의 실전임무는 1970년 7월 9일 베트남전장에 대한 수송임무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미 미군이 지상군을 감축하던 시기로 C-5 수송기의 역할은, 닉슨의 베트남화에 따라 남베트남군을 무장시키기 위한 무기체계와 물자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특히 1972년 4월부터 6월까지 C-5는 80%의 탑재운용제한을 풀고 전시태세로 탑재중량을 최대로 높이며, 매 소티마다 M41 전차 3대나 M48 전차 2대를 수송했다. 당시는 완전 전시태세로 램프를 내리고 차량이 수송기에서 내릴때까지 불과 7분이 소요되었으며, C-5가 착륙해있는 시간은 32분에 불과했다. 특히 베트콩에 포위된 도시를 지원하기 위하여 5월 중 11일간 10회의 비행을 통해 825톤을 수송하기도 했다. C-5 수송기들은 베트남 전구에 투입된 동안 109소티를 비행하면서 5,450톤의 장비와 물자를 수송했다.

    C-5 갤럭시는 욤-키푸르 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엄청난 전략수송능력을 과시했다. <출처: Lockheed Martin>
    C-5 갤럭시는 욤-키푸르 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엄청난 전략수송능력을 과시했다. <출처: Lockheed Martin>

    베트남전 이외에도 갤럭시의 전략적 역량이 빛났던 것은 1973년의 욤키푸르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이 기습공격으로 심각한 전력부족을 겪자, 결국 미국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스라엘을 위한 공수지원작전인 니켈그래스 작전(Operation Nickel Grass)이 시작되자마자, C-5 첫 기체가 97톤을 싣고 10시간 만에 첫 비행에 나섰다. 작전 기간동안 C-5는 무려 145소티를 비행하면서 전차와 헬기 등 무기체계와 물자를 합쳐 전부 1만여 톤을 수송했다.

    C-5 갤럭시는 미 공군 최대의 수송기로 2040년까지 일선을 지킬 예정이다. <출처: 미 공군>
    C-5 갤럭시는 미 공군 최대의 수송기로 2040년까지 일선을 지킬 예정이다. <출처: 미 공군>

    이외에도 C-5는 애초에 의도했던 것처럼 냉전시절 미국의 동맹국을 지키는 핵심전력으로 기여해왔다. C-5는 NATO의 방어연습에 신속대응전력을 싣고 이동하는 역할로 꾸준히 훈련에 참가했으며, 한반도의 방어연습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냉전시기의 마지막 전쟁인 걸프전에서 C-5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하고 있는 이라크군에 대항하여 사상 최대의 공수작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는 특수작전부대와 자산을 전세계로 보내는데 역할을 했으며, 9.11테러가 이후 대테러전쟁 국면에서는 전략수송의 주력이 된 C-17과 함께 여전히 수송전력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C-5의 미니트맨 I ICBM 투하장면 <출처: 미 국방부>
    C-5의 미니트맨 I ICBM 투하장면 <출처: 미 국방부>

    한편 C-5는 냉전시절 핵전력으로 투입되는 것이 검토되기도 했다. LGM-30A 미니트맨 I ICBM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공중발사탄도미사일의 플랫폼으로 C-5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C-5 014번기가 1974년 10월 24일 43톤짜리 미니트맨 I 미사일을 싣고 태평양 상공을 비행했다. 2만피트 상공에서 C-5는 후방램프를 열고 미니트맨 I을 떨구었으며, 미사일은 낙하산에 실려 강하하면서 속도를 줄이다가 로켓모터가 점화되면서 탄도비행을 시작했다.

    이외에도 C-5 갤러시는 다양한 비닉사업의 지원임무에 투입되었다. 미국 최초의 공격용 스텔스 시연기체인 해브블루의 시연기를 록히드 스컹크웍스에서 네바다 사막의 에어리어 51로 수송하는 비닉임무도 C-5의 역할이었다. C-5의 넉넉한 공간 덕분에 해브블루의 주익을 해체하지 않고도 수송할 수 있었다. 또한 해브블루의 실제 양산기체인 F-117A 나이트호크 스텔스 공격기의 수송임무도 C-5의 역할이었다.

    C-5A 2대가 C-5C로 개조되어 NASA와 국방부의 우주사업 지원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출처: 미 공군>
    C-5A 2대가 C-5C로 개조되어 NASA와 국방부의 우주사업 지원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출처: 미 공군>

    또한 스페이스 셔틀이나 아틀라스 IIA 로켓 섹션을 운반하기 위해 개조된 수송기도 C-5였다. 개조된 C-5C 수송기는 로켓 부품 뿐만 아니라 위성이나 기타 탑재장비를 특수한 "우주용 컨테이너"에 탑재하여 수송할 수 있었다. 한편 C-5는 1989년 딥 프리즈 작전(Operation Deep Freeze)의 지원을 위하여 미 정부의 장비와 과학자들을 싣고 남극으로 향하기도 했다. 72명의 인원과 UH-1N 헬기 2대를 포함한 84톤의 물자를 실은 C-5는 남극대륙의 얼음위에 가설된 활주로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파생형

    C-5A: C-5 갤럭시 수송기의 최초 생산형.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모두 81대가 미 공군 공수사령부로 전달되었다. 설계결함으로 주익 구조상의 문제가 빈번함에 따라 1980년부터 주익교체사업이 이루어져 모두 77대가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개수를 거쳤다. 2010년대 중반까지 미 공군 예비역 사령부 휘하에서 10여대가 운용되었으나, 2017년 9월 7일을 마지막으로 A형은 전부 퇴역하였다.

    C-5A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A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B: C-5A의 개량형. 주익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TF39-GE-1C 엔진을 장착하였다. 미 공군은 1982년모두 50대를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1986년 1월부터 1989년 3월까지 배치를 마쳤다. 거의 모든 기체가 AMP와 RERP 개수를 거쳐 C-5M 슈퍼 갤럭시로 개조되었다.

    C-5B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B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C: C-5의 특수화물 운반모델. 사고로 손상을 입은 C-5A 2대(68-0213번기와 68-0216번기)를 개수하여 내부 화물칸을 확장한 모델로, 인공위성 같은 대형 특수화물을 수송하는 용도로 개조되었다. 공간의 확보를 위하여 내부의 승객 캐빈을 제거하고 후방에 이동가능한 벌크헤드를 장착했다. C-5C로 분류되나 공군교범상으로는 C-5A(SCM)으로 분류되는데, SCM은 Space Cargo Modified의 약자이다. C-5C 2대는 현재 모두 C-5M 사양으로 개수되었으며, 캘리포니아의 트래비스 공군기지에 배속되어 NASA와 미 국방부 우주사업의 지원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C-5C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C 갤럭시 <출처: 미 공군>

    C-5M 슈퍼 갤럭시: C-5 갤럭시의 최종개량형. C-5B 49대와 C형 2대, 그리고 A형 1대, 모두 52대가 M 사양으로 개수되었다. RERP 개수로 TF39 엔진이 F138엔진으로 교체되면서 출력은 22%, 단거리 이륙능력은 30%,  상승률은 58%가 향상되었다. 또한 탑재량이 증가함은 물론 항속거리도 증가했다. AMP 개수를 거쳐 신형 항전장비와 자동항법장치, 글래스콕핏이 채용되었다.

    C-5M 슈퍼 갤럭시 <출처: Lockheed Martin>
    C-5M 슈퍼 갤럭시 <출처: Lockheed Martin>

    L-500: C-5 갤럭시의 민수형 제안모델. L-500은 록히드마틴의 C-5 수송기 분류명으로, L-500은 화물기와 여객기 2가지 형태로 설계되었다. 특히 여객기는 다층구조로 최대 1,000명의 승객을 탑승할 수 있도록 구상되었다. 초기 구상 당시 항공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낮은 연비로 경제성을 보장할 수 없는데다가 1970년대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결국 고객을 찾지 못했다. CX-HLS 사업에서 경쟁자였던 보잉이 패배한 모델로 만들었던 보잉 747 여객기와 시장에서 겨루었으나 비싼 가격으로 패배했다.

    L-500의 화물기 제안형. 록히드는 피아트와 폭스바겐 같은 소형차는 120대, 링컨 컨티넨탈 등 대형차는 63대를 L-500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출처: Lockheed Martin>
    L-500의 화물기 제안형. 록히드는 피아트와 폭스바겐 같은 소형차는 120대, 링컨 컨티넨탈 등 대형차는 63대를 L-500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출처: Lockheed Martin>



    제원

    기종: C-5M 슈퍼갤럭시
    제조사 : 록히드 마틴
    형식: 4발 터보프롭 엔진 / 대형 수송기
    전폭: 67.89 m
    전장: 75.31 m
    전고: 19.84 m
    주익면적: 576 m2
    엔진: F-138-GE100 제네럴 일렉트릭 엔진(추력 51,250 파운드) x 4 
    자체중량: 172,371 kg
    최대이륙중량: 381,024 kg
    최대화물탑재량: 127,460 kg
    화물 캐빈 공간: 4.11 x 5.79 x 43.8 m
    최대 팔레트탑재량: 36개
    속도:  항속 833 km/h (450 노트); 최대 855 km/h (462 노트)
    최대항속거리:  화물 54톤 탑재시 최대 8890 km (4,000 해리); 화물 비탑재시 12,964 km (7,000 해리)
    익면하중: 610 kg/m2 (120 lb/ft2)
    추력 대 중량비: 0.26
    상승률: 9.5 m/s (2,100 ft/min)
    이륙거리: 1,600 m (5,400 ft )
    착륙거리: 1,100 m (3,600 ft )
    연료탑재량: 193,600 L (51,150 US gal)
    승무원: 총 7명 (정·부조종사, 기상정비사 2명, 화물적재사 3명)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C-5 갤럭시 수송기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