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M551 셰리든 공수전차
군사혁신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미군 최후의 공수전차
  • 양욱
  • 입력 : 2021.01.22 08:53
    M551A1 셰리든 공수전차의 모습 <출처: 미 국방부>
    M551A1 셰리든 공수전차의 모습 <출처: 미 국방부>


    개발의 역사

    미국은 이미 1차대전 때부터 경전차를 운용해왔지만, 미 육군에서 경전차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2차 대전 당시 육군은 37mm 주포를 장착한 M3 스튜어트 전차를 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치했지만, 더욱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갖춘 독일군 전차에 밀려 기껏해야 정찰용으로 쓰이는 데 그쳤다. 1944년말에는 75mm 주포로 화력을 보강한 M24 채피 경전차가 만들어졌지만, 얇디 얇은 장갑으로 독일군 전차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결국 2차대전 당시에 별달리 활약을 못한 채 1950년 6.25 전쟁 초기에 투입된 M24 전차는 북한군의 T-34를 상대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후 76mm 주포로 무장한 M41 워커불독 전차가 등장했지만 연약한 차체와 형편없는 엔진으로 고전을 거듭했고, 결국 미군은 골칫덩이 M41을 남베트남군에게 이관해버렸다.

    2차대전 당시 미 육군은 공수부대용 전차로 T9E1을 개발하여 시험평가를 실시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2차대전 당시 미 육군은 공수부대용 전차로 T9E1을 개발하여 시험평가를 실시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경전차를 필요로 하는 부대는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공수부대를 들 수 있다. 미군은 2차대전 당시 독일 공수부대의 에방에마엘 기습작전이나 크레타 공수작전을 목격하고는 공수가 가능한 전차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 육군 항공대, 기갑부대, 그리고 포병국이 처음으로 공수용 전차의 기술적 요구사항을 검토한 것은 1941년 5월로, T9 항공전차로 불렀다. 당시에는 아직 차량을 투하할 정도의 대형 낙하산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전차를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당시 계획은 공수부대원들이 적절한 공항을 장악하면 수송기에 전차를 실어나른다는 계획이었다.

    T9E1은 M22 경전차로 제식채용되었으며 영국에도 로커스트 전차로 채용되었으나 활약은 미미했다. <출처: Public Domain>
    T9E1은 M22 경전차로 제식채용되었으며 영국에도 로커스트 전차로 채용되었으나 활약은 미미했다. <출처: Public Domain>

    미 육군의 T9에 대한 요구에 맞춰 마몬-헤링턴(Marmon-Herrington)사에서 시제품을 제작했다. 한 차례의 설계 개량 끝에  T9E1 시제차량이 만들어져 평가를 거쳤으나, 기갑위원회는 파워트레인과 터렛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양산에 반대했다. 애초에는 1,900여 대를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830대의 생산으로 끝났고, 1944년 10월에서야 M22 경전차로 제식채용되었다. 결국 M22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M22는 랜드리스로 영국에도 인도되어 로커스트 전차라는 이름으로 활용되었다. 로커스트 전차는1945년 3월 바시티 작전에서 라인 전선에 글라이더 공수로 투입되어 작전을 수행했지만 실망스러운 성과를 낼 뿐이었다.

    M41 워커불독을 대체하기 위하여 신형 경전차로 T92가 개발되었으나 1958년 사업은 취소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41 워커불독을 대체하기 위하여 신형 경전차로 T92가 개발되었으나 1958년 사업은 취소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2차대전 후 미 육군은 로커스트 전차의 실전 사례 등을 교훈삼아 M22를 모두 퇴역시켰다. 이후 M24로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지만, C-82 수송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포탑과 차체를 분리해야만 수송이 가능했다. 이후 C-119 박스카나 C-123 프로바이더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1950년대 미 육군은 더 이상 공수전차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편 M41 워커불독의 후속으로 T92 전차의 개발이 추진됨에 따라 T92를 공수부대용 전차로 검토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1958년 T92사업이 취소됨으로써 새로운 공수전차의 도입은 무산되었다.

    1950년대 공수부대가 보유한 화력장비는 M56 스콜피온 자주포가 유일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50년대 공수부대가 보유한 화력장비는 M56 스콜피온 자주포가 유일했다. <출처: Public Domain>

    공수전차의 계속된 개발실패로 인하여 설계자들은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공중으로 수송할만큼 가벼운 전투차량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갑차량의 3대 요소인 "장갑·화력·기동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으며 3대 요소 중에 한 두가지를 타협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장갑에 의한 보호를 일부 희생한 화력지원차량을 만들어 공수부대에 기동화기를 제공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당시 공수부대가 가진 화력은 M56 '스콜피온' 90mm 자주포가 유일했다. 특히 스콜피온은 너무도 가벼운 무게로 낙하산으로 투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헬기로 견인방식으로 수송할 수도 있었다.

    M56은 헬기로 투입될 만큼 기동성이 좋았지만, 방호력이 전무한 자주포로 일선을 오래지키진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M56은 헬기로 투입될 만큼 기동성이 좋았지만, 방호력이 전무한 자주포로 일선을 오래지키진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1956년 미 육군성은 프로젝트 휩(Whip)을 통하여 "공수용 공격무기체계(Airborne Assault Weapon System)"의 개발을 승인했다. 사업의 목표는 중전차 이상의 화력을 갖지만 중장갑은 제거한 전투차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실제 무기체계의 개발로는 연결되지 못하고 끝났지만, 차기 공수전차의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57년 육군 참모총장 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1901~1987) 대장은 중전차와 중형전차를 통합한 플랫폼과 기갑정찰 및 공수임무에 사용될 수 있는 플랫폼의 개발을 지시하면서 드디어 공수전차가 부활할 기회를 맞이했다.

    소련의 PT-76 경전차는 미 육군으로 하여금 새롭게 경전차를 개발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의 PT-76 경전차는 미 육군으로 하여금 새롭게 경전차를 개발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렇게 새로운 차량의 개발이 추진된 것은 T92 사업이 취소된 영향이 컸다. 소련군의 PT-76 경전차처럼 수륙양용이 가능해야 효율적으로 기갑정찰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T92로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취소되었다. 또한 연구개발 국방차관보 휘하의 연구단인  ARCOVE(Ad Hoc Group on Armament for Future Tanks or Similar Combat Vehicles)는 새로운 전차에 유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었다.

    캐딜락 게이지가 제출했던 AR/AAV 모델의 예상도 <출처: Public Domain>
    캐딜락 게이지가 제출했던 AR/AAV 모델의 예상도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1959년 1월부터 준비가 시작된 AR/AAV(Armored Reconnaissance / Airborne Assault Vehicle, 기갑정찰/공수공격차량) 사업에서 미 육군 전차사령부(Ordnance Tank Automotive Command, 현 TACOM)는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 차량 전체의 무게는 10톤일 것
    ▶ 포탄의 파편이나 12.7mm 기관총탄, 지뢰에 대한 방호력을 갖출 것
    ▶ 2,000m 거리에서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을 것

    XM551 시제전차의 초기모습 <출처: Public Domain>
    XM551 시제전차의 초기모습 <출처: Public Domain>

    또한 당시 MBT-70에 사용이 예정되었던 MGM-51 쉬레일러(Shillelagh) 대전차 미사일의 통합도 최우선 사항이 되었다. 152mm 주포와 쉬레일러 미사일을 채용해야 급격한 중량의 증가가 없이 강력한 화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군의 요구에 따라 제작사들은 모두 12개의 제안을 제출했으며, 육군은 설계안들 가운데 AAI와 캐딜락 게이지(Cadillac Gage)의 안 2개를 선택하여 검토했다. AAI의 설계는 중량을 지켰지만 캐딜락 게이지 설계는 전투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결국 1960년 육군은 캐딜락의 설계를 선정하여 이듬해부터 시제품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1960년에는 6월 AR/AAV에는 XM551 "셰리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저돌적인 공세로 유명했던 북군 장군 필립 셰리든(Philip Henry Sheridan, 1831~1888)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쉬레일러 미사일은 셰리단 전차의 강력한 펀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애초에 M60A2 전차와 MBT-70 사업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결국 셰리단 전차만이 유일하게 쉬레일러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쉬레일러 미사일은 셰리단 전차의 강력한 펀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애초에 M60A2 전차와 MBT-70 사업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결국 셰리단 전차만이 유일하게 쉬레일러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쉬레일러 미사일과 152mm 주포는 신무기체계였기 때문에 개발의 초기에는 포탑에 노력이 집중되었다. M41 워커불독에 시제용 포탑을 장착하여 애버딘 시험장에서 시험평가가 계속되었다. XM551 시제전차는 모두 12대가 만들어져 첫 차량이 1962년 6월 육군으로 인도됐다. 시제단계에서 XM551은 무려 5차례나 주요설계변경을 거쳤는데, 대부분 파도막이에 관한 것이었다. 최종설계사양이 확정되자 쉐리든 전차의 양산단계로 넘어가 1966회계년도의 예산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양산계약은 1965년 4월 12일 제네럴 모터스 앨리슨 디비전이 수주하여 클리블랜드 전차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셰리든 전차는 파도막이의 설계변경 등을 포함하여 양산 이전에 무려 5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쳤다. <출처: Public Domain>
    셰리든 전차는 파도막이의 설계변경 등을 포함하여 양산 이전에 무려 5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쳤다. <출처: Public Domain>

    1966년 5월 육군은 M551 셰리든의 제식화를 결정했다. 그러나 신형 전차는 여전히 문제들이 많아, TECOM(Test and Evaluation Command, 시험평가 사령부)는 제식화 이전에 육군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었다. TECOM은 1967년 6월 파나마에서 열대환경 시험평가를 실시한 후에 탄약의 문제점을 발견해냈고, 이로 인한 추가적 수정작업이 완료되는 1968년초까지 셰리든 전차 수백여 대가 정비창에 대기해야만 했다.

    소진탄피 등 주포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자 육군은 셰리든의 주포를 76mm 바꾸는 등의 변경을 시도했었다. <출처: 미 육군>
    소진탄피 등 주포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자 육군은 셰리든의 주포를 76mm 바꾸는 등의 변경을 시도했었다. <출처: 미 육군>

    NBC 환경에서의 교전을 위해 MBT-70처럼 셰리든도 XM157 소진탄피를 채용했는데, 습기가 가득한 환경에서는 탄피가 완전히 연소되지 않고 약실에 남아 차탄발사시에 폭발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으로 개방 포미 제거장치(open breech scavenger system, OBSS)가 장착되어 잔유물을 포탑내로 처리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는데, 그렇게 되자 포탑내에 적재한 장약이 폭발할 위험성이 생겼다. 결국 폐쇄 포미 제거장치(closed breech scavenger system. CBSS)가 장착되어, 에어컴프레서로 발사후 잔유물을 밀어내는 장치가 장착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그리하여 CBSS가 장착되기 시작하면서 셰리든은 다시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는데, 초대 생산분 700대의 개량은 후순위로 밀려 1969년까지도 수정작업이 계속되었다.

    셰리든 전차는 베트남전에 최초로 실전투입되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운용상 문제는 넘쳐났다. <출처: 미 국방부>
    셰리든 전차는 베트남전에 최초로 실전투입되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운용상 문제는 넘쳐났다. <출처: 미 국방부>

    M551 셰리든 전차는 1970년 말까지 약 1,600여대가 생산되었다. 셰리든 사업 전체에 소요된 비용은 무려 13억 달러로, 애초에 2,426대 획득에 10.5억 달러를 예정했던 데 비하여 무려 80%의 추가비용이 소요되었다. 셰리든은 1967년 최초로 일선에 배치가 시작되었으며, 1969년부터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다. 1971년에서야 본격적으로 해외배치가 시작되어 한반도와 유럽 등에 배치되었다.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는 집중적인 개조와 운용자 훈련을 통하여 셰리든은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M3 브래들리 정찰장갑차의 배치가 예정되자, 미 육군은 1978년 82 공수사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역시키기로 결정했다.

    M551A1 셰리든 전차는 유일한 공수전차로서 1989년 파나마전과 1991년 걸프전에 투입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551A1 셰리든 전차는 유일한 공수전차로서 1989년 파나마전과 1991년 걸프전에 투입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후 셰리든 전차는 82공수사단과 함께 1989년 파나마전쟁과 1991년 걸프전쟁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외에 퇴역한 전차들은 상당수가 육군의 국립훈련센터에 보내져, T-80, BMP 등 가상적군(Opposing Force, OPFOR) 차량으로 개조되어 훈련용도로 활용되었다. 결국 미 육군은 1996년 9월 마지막 운용대대가 해체되면서 셰리든은 현역에서 물러났으며, 2004년 마지막으로 운용중이든 가상적군차량마저 퇴역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다.


    특징

    M551A1 셰리든 전차의 삼면도 <출처: Public Domain>
    M551A1 셰리든 전차의 삼면도 <출처: Public Domain>

    M551 셰리든은 도하와 공수가 가능한 경전차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이에 따라 중량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 되었으며, 이를 위하여 장갑·화력·기동성의 기갑차량 3요소를 모두 추구하지 않고 타협했다. 우선 차체는 7039 알루미늄 합금을 채용하였고, 심지어는 시제전차에서는 휠까지도 알루미늄을 채용했었지만 양산형에서는 재래식 휠로 복귀했다. 152mm 주포와 유도미사일을 채용한 것도 중량을 감소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셰리든의 중량은 15톤으로 애초에 AR/AAV가 제시했던 10톤의 기준을 상회했다. 셰리든은 과거의 경전차들에 비해 다소 장갑이 강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RPG-2나 RPG-7 등 대전차 로켓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셰리든 전차에 채용된 152mm M81E1 주포 <출처: 미 육군>
    셰리든 전차에 채용된 152mm M81E1 주포 <출처: 미 육군>

    셰리든 전차의 개발에서 가장 많은 노력이 집중되었던 것은 포탑이었다. 특히 152mm M81 건 런쳐(Gun Launcher)는 원래 M60A2 전차에 탑재하기 위해 포드 자동차 항공부문에서 개발한 강선포로, 재래식 탄환과 함께 MGM-51 대전차유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 M81은 불과 498kg으로 M41 워커불독에 장착된 76mm 주포와 거의 유사한 중량이었다. 자동장전방식을 채용하여 장전수가 필요없이 전기제어로 약실개폐와 장전이 실시된다.

    M205 소진탄피를 장착한 M401A1 HEAT-MP탄 <출처: 미 육군>
    M205 소진탄피를 장착한 M401A1 HEAT-MP탄 <출처: 미 육군>

    M81이 사용하는 탄환은 M409 HEAT-T-MP(high-explosive anti-tank-tracer-multi-purpose)와 M625 캐니스터 탄이었다. M625 캐니스터탄은 대인 및 소프트스킨 공격용으로 13그레인 무게의 플래챗(flechette) 탄자를 무려 1만 개나 담고 있어 살상력이 뛰어났으며, 베트남전에서 애용되었다. 이외에도 M657A2 HE-T탄, M411 훈련탄, M596 더미탄 등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전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았던 것은 M409와 M625탄으로, 추후 A1 개량을 거쳤다.

    셰리든 전차의 주포와 포탑변경 과정 <출처: Public Domain>
    셰리든 전차의 주포와 포탑변경 과정 <출처: Public Domain>

    특히 이들 포탄은 M157 소진탄피를 채용하여 발사하면 탄피까지 전부 연소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자동장전장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진탄피는 잔유물이 약실에 남는 문제를 남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OBSS(open breech scavenger system)를 장착하였으나 이 또한 포탑 내의 유폭위험이 있어 CBSS(closed breech scavenger system)를 장착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소진탄피도 제3세대 모델인 M205로 교체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렇게 CBSS를 장착한 주포는 M81E1으로 명명되었다.

    쉬레일러 미사일의 발사장면 <출처: Public Domain>
    쉬레일러 미사일의 발사장면 <출처: Public Domain>

    한편 셰리든 전차의 진정한 화력을 제공하는 것은 MGM-51 쉬레일러 미사일이었다. 쉬레일러는 SACLOS(Semi-Automatic Command to Line Of Sight : 반자동시선지령) 유도방식을 채용하여 IR 영상링크에 의한 무선유도로 제어된다. 미사일은 전장 1.1m 직경 15.2cm에 무게는 약 27kg으로, 탄두는 6.8kg의 성형장약을 탑재하여 3.6kg의 옥톨 폭약으로 380mm의 균질압연장갑(Rolled Homogeneous Armour, RHA)을 격파할 수 있었다. 최초모델인 MGM-51A는 최대 2km까지 공격할 수 있었지만, B형부터 사거리가 3km로 늘어났다.

    쉬레일러 미사일은 주포로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포신에 엄청난 부담을 주어 수명이 짧았다. <출처: 미 육군>
    쉬레일러 미사일은 주포로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포신에 엄청난 부담을 주어 수명이 짧았다. <출처: 미 육군>

    그러나 미사일 발사는 주포에 상당한 부담을 주어 주포의 끝 부분에 크랙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포신의 수명은 겨우 100발에 불과했다. 그러나 M81E1부터는 포구 끝부분이 강화되는 등 포신에 개량이 적용됨에 따라 수명은 200발까지 올라갔고, 포신에 부담을 줄이기 위한 MGM-51C형이 등장함에 따라 상황은 다소 나아졌다. 한편 동축기관총으로는 7.62mm NATO 탄을 발사하는 M73이 최초에 장착되었다. 그러나 급탄불량등 문제가 이어지자, M219로 교체되었다가, 결국 1970년대 말에 M240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차장용의 기관총으로 M2 중기관총이 장착되었는데, 후기에는 차장의 보호를 위하여 M113 ACAV에 장착된 것과 동일한 포방패가 장착되었다.

    M551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한 시스템을 채용했으나, 2명이 운용하기에도 포탑내부는 비좁았다. <출처: Public Domain>
    M551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한 시스템을 채용했으나, 2명이 운용하기에도 포탑내부는 비좁았다. <출처: Public Domain>

    셰리든 전차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AN/VVG-1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장착하고 있단 점이었다. 미국산 전차가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장착한 것은 셰리든이 최초로, 이는 M81 주포와 쉐레일러 미사일 때문이었다. 우선 152mm 포탄은 기존의 전차포들과는 달리 탄속이 느린 편으로, 다른 전차에 비해 편차를 더욱 정확히 보정해야만 했다. 또한 쉐레일러 미사일의 정확한 유도를 위해서도 레이저거리측정기는 필요하였기에, 다른 전차들보다 가장 먼저 셰리든이 VVG-1을 장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적외선탐조등이 없이 XM44 영상조준경이 채용되었으나, 무월광 상황등을 위해 레오파드 1 전차에서 채용되었던 AEG XS30U 적외선 탐조등이 장착되기도 했다. 결국 본격적으로 양산이 되면서 AN/VSS-3 적외선 탐조등이 표준으로 장착되었다. 한편 걸프전을 앞두고 개조된 쉐리든 전차는 M60A3 패튼 전차가 운용하던 AN/VSG-2 TTS(tank thermal sight, 전차열상장치)를 탑재하게 되었으며, M551A1(TTS)로 명명되었다.

    셰리든 전차는 기동성이 뛰어났으며 특히 도하도 가능하여 기갑정찰용 차량으로 나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출처: 미 육군>
    셰리든 전차는 기동성이 뛰어났으며 특히 도하도 가능하여 기갑정찰용 차량으로 나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출처: 미 육군>

    15톤의 가벼운 무게와 300마력의 6V53T 6기통 터보챠져 디젤엔진, 그리고 앨리슨(Allison) XTG-250-1A 트랜스미션을 채용하여,  셰리든 전차는 최고 70km/h로 질주할 수 있었다. 이는 동시대 차량으로서는 빠른 편이었다. 연료탑재량은 598 리터(158 갤론)으로 최대 560km를 이동할 수 있었다. 또한 도하도 가능하여 수상에서는 5.8km/h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수상이동을 위해 전방에 "서프보드(surfboard)"라는 애칭의 파도막이 판을 장착했으며, 역류로 인한 침수 등을 막기 위하여 측면과 후방에는 캔바스 스크린을 장착하도록 했다.

    셰리든 전차는 공수전차로서 C-130, C-141, C-5(사진) 등의 수송기에서 투하될 수 있었다. <출처: 미 국방부>
    셰리든 전차는 공수전차로서 C-130, C-141, C-5(사진) 등의 수송기에서 투하될 수 있었다. <출처: 미 국방부>

    공수전차로서 셰리든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공기를 통해 투입될 수 있었다. 제일 안전한 것은 수송기의 착륙으로 내리는 것이었지만, 전투상황에서는 낙하산 투하나 저고도 투하가 가능했다. 특히 C-130과 C-141, C-5 등 수송기가 커지면서 투하는 더욱 안정적이 되었는데, 우선 저고속투하(low-velocity air drop, LVAD) 방식에서는  셰리단 전차를 충격흡수용 허니콤 알루미늄 판으로 포장하고 G-11A 화물용 낙하산 3개를 장착하여 공중에서 투하할 수 있었다. 좀더 극적인 방식으로는 저고도투하인 LAPES(low-altitude parachute extraction system)으로, C-130이 최대한 고도를 내려 저속으로 비행하며 후방램프로 포장된 셰리던 전차를 떨구는 방식이었다. 신속한 전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LAPES는 훨씬더 위험한 방식으로, 정지하기까지 백여 미터를 이동하기에 장애물이 없어야 상대적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셰리든은 C-130 수송기를 사용하면 초저고도에서 LAPES 방식으로 저공투하도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셰리든은 C-130 수송기를 사용하면 초저고도에서 LAPES 방식으로 저공투하도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제원

    제작사: 제너럴모터스
    중   량: 15.2 톤
    전   장: 6.3 m
    전   폭: 2.8 m
    전   고: 2.3 m
    장   갑: 알루미늄 장갑
    무   장: M81E1 152 mm 건 런쳐; 152mm 포탄 20발, MGM-51 쉬레일러 미사일 9발
    부무장 : 7.62mm M73/M219 동축기관총(탄환 3.000발, 추후 M240으로 교체),
                 M2 50구경 중기관총(탄환 1,000발)
    엔   진: 디트로이트 디젤(제너럴모터스) 6V53T 6기통 터보챠지 디젤 엔진 300마력(220kW)
    트랜스미션: 앨리슨 XTG-250-1A (전진 4단, 후진 2단)
    추력 대 중량: 19.7 마력/톤
    현가장치: 토션바
    항속거리: 560km
    최고속도: 70km/h (도하시 5.8km/h)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M551 셰리든 공수전차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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