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PPSh-41 기관단총
거대한 전쟁에 짧고 굵게 흔적을 남긴 기관단총
  • 남도현
  • 입력 : 2021.01.19 10:01
    PPSh-41은 소련(러시아)에서는 구국의 기관단총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침략자의 상징인 따발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PPSh-41은 소련(러시아)에서는 구국의 기관단총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침략자의 상징인 따발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기관단총은 제1차 대전의 참호전을 통해 탄생한 무기다. 종전 직전에서야 실전에 투입되었고 기계적 결함도 많아서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향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래서 이후 명품 기관단총을 개발한 핀란드의 라흐티(Aimo Lahti), 독일의 폴머(Heinrich Vollmer)처럼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종전 이후의 상황을 보면 기관단총은 상당히 무시되었다.

    PPD-34 기관단총. 군부 핵심의 무관심과 복잡한 구조로 말미암아 툭하면 작동 불량이 발생해서 군용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PPD-34 기관단총. 군부 핵심의 무관심과 복잡한 구조로 말미암아 툭하면 작동 불량이 발생해서 군용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주요 교전국들 중에서 독일을 제외하면 관심을 둔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총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이들은 기관단총이 사거리, 정확성, 파괴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어처구니없게도 탄의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개발이나 채택을 저지한 이들까지 있었다. 제1차 대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참화를 경험했음에도 병사들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던 것이었다.

    최초로 실전에 사용된 독일의 MP18 기관단총을 참고해서 PPD-34 기관단총을 개발한 데그탸료프(Vasily Degtyaryov)처럼 소련에도 기관단총을 연구하던 이들이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 등으로 군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시험 삼아 소량 생산에 그쳤을 뿐이었다. 특히 소련군 포병총감을 역임하면서 제2차 대전 초기까지 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던 쿨리크(Grigory Kulik)의 입김이 컸다.

    PPSh-41 탄생의 도화선이 되었고 개발에 많은 영향을 끼친 수오미 KP/-31 기관단총. 특유의 드럼탄창은 그대로 복제했을 정도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PPSh-41 탄생의 도화선이 되었고 개발에 많은 영향을 끼친 수오미 KP/-31 기관단총. 특유의 드럼탄창은 그대로 복제했을 정도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소련군 지휘부가 인명을 경시한 측면이 많았지만 쿨리크는 유별날 정도였고 더불어 무능하기까지 했다. 여담으로 그는 군부 내에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 글의 주인공인 PPSh-41 기관단총과 더불어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을 구한 3대 무기로 칭송받는 T-34 전차, ZiS-3 사단포의 개발을 반대하거나 훼방을 놓았던, 마치 내부의 적 같은 인물이었다. 결국 이런 안이함과 오판 때문에 소련은 혹독한 경험을 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다. 이른바 겨울전쟁이었는데, 동원된 55만의 소련군은 핀란드 성인 남성 인구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여서 승리를 낙관했다. 그런데 소련이 승리한 것은 맞지만 단지 서류상이었을 뿐이지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핀란드는 3만의 인명 손실을 보았으나 소련은 무려 10배가 넘는 30만 명이 사상 당하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포병총감이었던 그리고리 쿨릭(좌)의 반대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슈파긴(우)은 신뢰성 높은 기관단총의 개발에 성공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포병총감이었던 그리고리 쿨릭(좌)의 반대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슈파긴(우)은 신뢰성 높은 기관단총의 개발에 성공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침략자들은 핀란드군의 유격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특히 심야에 스키를 타고 은밀히 다가온 후 난사하는 핀란드군의 KP/-31 기관단총에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만큼 기관단총은 소련 병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련도 PPD-34, PPD-40 같은 기관단총이 있었지만 수량도 적은 데다 성능도 많이 떨어졌다. 이에 곧바로 새로운 기관단총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데그탸료프와 DShK 중기관총을 함께 만들어내기도 했던 슈파긴(Georgy Shpagin)은 쿨리크의 무관심도 있지만 PPD-34, PPD-40이 일선에서 외면받는 이유가 툭하면 작동 불량이 발생해서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구조가 원인이었는데, 이 때문에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가격도 비쌌다. 그런 점에서 깔끔한 구조를 가진 KP/-31은 좋은 답안이었다. 슈파긴은 이를 참조해 PPD-40의 단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참고할 대상이 있기는 했지만 PPSh-41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및 배치가 시작되었다. < 출처 : (cc) Lposka at Wikimedia.org >
    참고할 대상이 있기는 했지만 PPSh-41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및 배치가 시작되었다. < 출처 : (cc) Lposka at Wikimedia.org >

    그는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노리쇠와 총열을 제외한 부분을 프레스로 찍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모신나강 소총의 총열을 사용하는 것처럼 기존 부품을 최대한 활용했다. 덕분에 PPD-40과 비교해 부품이 10개가 적고 생산 시간도 절반에 불과한 새로운 기관단총을 개발에 착수한 지 반년 만인 1940년 9월에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경쟁 끝에 12월 신예 기관단총으로 선정되었고 PPSh-41이라는 제식명으로 양산에 들어갔다.


    특징

    PPSh-41의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은 드럼탄창이다. KP/-31의 탄창을 그대로 베낀 것인데 최대 71발의 탄환을 적재할 수 있어 지속 사격 능력이 좋다. 이에 놀란 독일이 탄창 2개를 병렬로 삽입하는 MP40-II를 개발하기도 했다. PPSh-41은 북한군 정찰대의 화기였는데 탄창의 모습이 머리에 짐을 얹을 때 사용하는 ‘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따발총이라 불리는 이유가 되었다. 드럼탄창이 유명하나 그 외에도 다양한 탄창을 사용한다.

    KP/-31의 탄창을 그대로 베낀 대용량 드럼탄창 덕분에 지속 사격 능력이 좋다. < 출처 : (cc) Mark F. Levisay @ Wikimedia >
    KP/-31의 탄창을 그대로 베낀 대용량 드럼탄창 덕분에 지속 사격 능력이 좋다. < 출처 : (cc) Mark F. Levisay @ Wikimedia >

    기관단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연사 속도인데 PPSh-41은 분당 최대 1,000발까지 나온다. 이는 경쟁자인 MP40의 2배 정도이고 지금까지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화력을 집중하는 데 철저히 특화된 기관단총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처럼 제작이 쉬었고 일선에서 유지 보수가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거친 환경에서도 무난하게 작동이 이루어져 독소전쟁 당시에 독일군이 즐겨서 사용하기도 했다.

    PPSh-41은 별도의 제식 부호를 부여해 관리했을 만큼 전쟁 중 독일군도 즐겨서 사용한 무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PPSh-41은 별도의 제식 부호를 부여해 관리했을 만큼 전쟁 중 독일군도 즐겨서 사용한 무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는 기관단총의 공통적인 문제점 중 하나지만 PPSh-41은 유독 심했다. 가늠자가 있어도 조준해서 목표를 명중시킬 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상대방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운 곳에서 난사를 할 때 효과적이었다. 전쟁 후반부에 총열이 크롬 도금 처리되면서 성능이 향상되지만 결국 제2차 대전 이후 자동소총이 대세가 되면서 급격히 도태되는 이유가 되었다.


    운용 현황

    PPSh-41은 1941년부터 1947년까지 약 600만 정 정도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제2차 대전 당시에 생산되었다. 독일이 부사관이나 특정 병과 위주로 선별적으로 MP40을 공급해 준 것과 달리 소련은 일반 보병 중대에 기관단총 소대를 별도로 편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전선이 정체된 후 벌어진 교전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베를린 인근 젤로우 고지에 세워진 PPSh-41로 무장한 소련군 병사 기념비 < 출처 : (cc) Assenmacher at Wikimedia.org >
    베를린 인근 젤로우 고지에 세워진 PPSh-41로 무장한 소련군 병사 기념비 < 출처 : (cc) Assenmacher at Wikimedia.org >

    대부분 독소전쟁 중 소련군이 사용했으나 독일, 핀란드, 루마니아처럼 추축국 병사들도 노획한 PPSh-41을 즐겨 사용했다. 전후에 동유럽 위성국을 위시한 친소 국가에 대량 공여되거나 면허 생산되었다. 북한은 49식이라는 이름으로 면허 생산해서 침략에 사용한 주요 사용국 중 하나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30여 개국에 흘러 들어가면서 베트남전쟁, 중인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 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군은 PPSh-41을 49식 기관단총으로 면허생산까지 하면서 남침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북한군은 PPSh-41을 49식 기관단총으로 면허생산까지 하면서 남침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소련에서는 제2차 대전 종전 후 소련군의 기본 무장이 AK-47로 바뀌면서 급속히 퇴출되었다. 그래서 명성에 비해 전성기는 상당히 짧은 편이다. 물론 작동이 된다면 여전히 살상력은 있지만 전후 등장한 소총들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져서 1선 급 무기로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 한마디로 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짧았지만 굵게 흔적을 남긴 기관단총이라 할 수 있다.


    변형 및 파생형

    PPSh-41: 생산 시기, 공장에 따라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PPSh-41 기관단총 < 출처 : (cc) Swedish Army Museum at Wikimedia.org >
    PPSh-41 기관단총 < 출처 : (cc) Swedish Army Museum at Wikimedia.org >

    MP717 (r): 독일이 노획해 부여한 제식명. 7.63×25mm 마우저탄 사용.
     
    MP41 (r): 독일이 노획해 9mm 패러벨럼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모델

    MP41 (r)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MP41 (r)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50식: 박스형 탄창을 사용하는 중국 면허 생산형

    50식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50식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K-50M: 50식 기반 북베트남 개량형

    K-50M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K-50M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49식: 북한 면허 생산형. '따발총'이라는 명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49식 기관단총 < 출처 : 칠곡호국평화기념관 >
    49식 기관단총 < 출처 : 칠곡호국평화기념관 >

    M49 기관단총: PPSh-41 참조 유고슬라비아 개발 기관단총

    유고 M49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유고 M49 기관단총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구경: 7.62mm
    탄약: 7.62×25mm 토카레프
    급탄: 71발 들이 드럼탄창 외
    전장: 843mm
    총열: 269mm
    중량: 3.63kg
    유효 사거리: 150m
    작동 방식: 블로우백, 오픈볼트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PPSh-41 기관단총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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