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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장교 기근…육군 뿌리가 흔들린다
초급 장교 자질과 리더십, 사기와 전투 승패에 결정적인데
ROTC 반 토막에 학사장교 급감… 개선커녕 상황 악화일로
“무능 간부 적보다 무서워”… 복무 기간 단축 등 대책 시급
입력 : 2021.01.06 03:00

20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 등이 제작한 ‘밴드 오브 브러더스(Band of Brothers)’는 2차 대전 당시 미 101 공수사단 이지 중대의 실화를 토대로 한 인기 미니 시리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 드라마엔 상반된 성격의 초급장교(중대장) 소블 대위와 윈터스 소령이 부각된다. 신병 훈련 책임을 맡은 소블 대위는 신병들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달성하도록 가차 없이 밀어붙였다. 하지만 능력은 떨어져 부하들을 효율적으로 지휘하는 데 미숙했고 독도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지도를 들고서도 방향을 찾지 못했다. 독단적으로 전술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다 그 결정의 대부분은 틀리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부하들에게 무능한 장교의 대명사로 찍혀 항명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윈터스 소령은 비범한 리더십을 발휘, 용기 있고 유능한 지휘관이었고 모든 면에서 부대원들의 귀감이 돼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밴드 오브 브러더스에는 무능한 중대장 때문에 중대원들이 거의 전멸할 뻔한 상황에 처한 사례도 등장한다.


밴드 오브 브러더스는 초급장교의 자질 등 리더십이 군의 사기와 전투력, 전쟁의 승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초급장교의 중요성은 우리 군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10년 전 한 예비역 대장이 한국군의 초급 간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직격탄’을 날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지낸 김병관 예비역 대장은 2011년 5월 국회 세미나에서 “우리 분·소대장들은 상황 변화에 따른 판단과 결단을 기대할 수 없다”며 “심하게 표현하면 주어진 임무 수행을 위한 기본 지휘 활동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군 초급 간부 지원자의 자질 저하와 불충분한 교육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군 내에선 초급장교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듯하다. 그 대표적인 징후는 초급장교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ROTC(학군사관) 지원율 급락(急落)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임관한 소위의 73%, 전방 경계 담당 초급장교의 70%가 ROTC다. 지난 2014년 ROTC 지원 경쟁률은 6.1대 1이었지만 지난해 ROTC 지원 경쟁률은 2.3대 1을 기록, 반 토막이 났다. 그동안 후보생 정원을 대폭 축소했지만 일부 대학은 정원 미달 사태까지 생기고 있다. 교육대학의 경우 전국 10개 교대 중 춘천교대가 올해부터 ROTC를 폐지키로 함에 따라 ROTC를 운용하는 교대는 경인교대 한 곳만 남게 됐다.

ROTC는 지난해 9월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하고 현 정부 들어 비육사 출신들이 진급 등에서 배려를 받으면서 ‘신주류’로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지원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일까? 무엇보다 복무 기간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ROTC 의무 복무 기간은 28개월이다. 1968년 이후 52년간 변화가 없었다. 반면 병사들의 복무 기간은 1968년 36개월에서 이젠 절반인 18개월로 줄었다. ROTC 복무 기간이 병사들보다 10개월이나 길게 된 것이다. 복무 기간 외에 병사보다 23배나 많았던 월급과 대기업 등 취업에 유리했다는 점 등도 과거 ROTC 인기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병사 월급이 60만원(병장 기준)에 달하게 됐고 취업률도 크게 떨어졌다. 육군학생군사학교가 ROTC 미지망 대학생 19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ROTC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로 복무 기간(47%), 군사 훈련(29%), 취업 준비(14%)의 순서로 응답이 많았다.

ROTC뿐 아니라 학사장교의 경우도 적신호가 커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1500~2000명에 달했던 학사장교는 지난해 6월 임관자의 경우 540여 명대로 크게 줄었다. 학사장교의 복무 기간은 38개월로 육군 병사(18개월)의 2배에 달한다. 군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급 간부 실태도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5~2019년 5년간 군대 내 장병의 극단적 선택 280건 중 간부(장교·부사관) 비중은 절반 이상(155건)이었다. 그중에서도 초급 간부(소위·중위·하사·중사) 사례가 91건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우선 복무 기간 단축을 꼽는다. 군인사법상 국방장관이 1년 범위 내에서 복무 기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ROTC의 경우 4~8개월가량 복무 기간을 줄이자는 의견이 적지 않다. 병사 월급이 2025년까지 100만원 수준까지 인상될 예정이어서 단기 복무 장교들에게 지급하는 장려금도 크게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대량 획득→단기 활용→대량 손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장교 인력 구조를 ‘소수 획득→장기 활용’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은 “무능한 간부는 적보다 더 무섭다”고 강조했다. 군 복무 시절 함께 근무했던 소대장·중대장 등 초급장교들은 현역 복무한 우리나라 남성들의 군에 대한 이미지를 평생 좌우하다시피 한다. 첨단 무기 도입보다 중요한 것이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이고, 초급장교 문제는 단순히 인력 수급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군 수뇌부는 초급장교 문제가 평상시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전시(戰時)엔 승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라는 인식을 갖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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