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1.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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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빅커스 Mk. E 전차

개발국에서는 외면당한 모든 경전차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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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커스 Mk. E 전차는 정작 개발국에서 채택하지 않았지만 여러 나라에 판매되었고 소련, 폴란드,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이 개발한 경전차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개발의 역사

해군이라는 그림자가 워낙 커서 간과하는 경향이 많은데 영국 육군도 전통의 강군이다. 현재는 병력이 8만 정도에 불과하나 제1, 2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연합국 승리의 한 축을 담당했다. 냉전이 시작된 후에는 6·25전쟁에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1990년대 중반까지 독일에 1개 기갑군단을 전개시킨 나토의 핵심이었다. 이처럼 강력한 육군을 운용하다 보니 지상군 무기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탱크라는 단어를 정착시켰다. 사진은 Mk IV 피메일(female) 탱크의 모습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전차다. 먼저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를 만들었고 개발 당시에 부여한 Tank라는 암호가 전차를 의미하는 명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정도다. 현재는 주력인 챌린저 2의 생산량이 500여 대에 미치지 못하고 차기 전차 개발도 공표되지 않아 지지부진한 느낌은 있지만 지난 100년 동안 당대를 선도하는 수많은 전차를 만들고 실전에서 사용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영국이 만든 무수한 전차들 중에서 빅커스(Vickers) Mk. E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다. 빅커스 6톤이라고도 많이 불리는 경전차인데, 정작 영국 육군에서는 외면받아 채택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직도입뿐만 아니라 면허 생산이 이루어졌고 기술을 참조해 현지 실정에 맞는 전차들의 탄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대 모든 경전차들의 아버지라고 해도 결코 과함이 없을 정도다.

핀란드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빅커스 Mk. E의 명판에서 알 수 있듯이 빅커스 6톤 전차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양차 대전 사이에 있었던 전간기는 전차 개발 역사에서 다양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다. 전차는 지난 제1차 대전 말기에 등장해서 실전에서 활약했으나 어떤 구조를 갖추고 어떻게 운용해야 효과적인지 아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종전 이후에서야 이와 관련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다만 당시의 기술력만으로 구현이 가능해야 하니 머릿속의 이상을 실현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20년대에 제일 먼저 실용화된 것이 경전차였다. 작고 가벼워서 기동력은 좋았지만 방어력과 공격력은 빈약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탄생을 이끈 구데리안(Heinz Guderian) 같은 경우는 경전차가 전혀 필요 없는 무기라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당시에도 경전차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신속히 전선을 돌파하는 한정된 용도 정도로나 생각했고 중전차 개발에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카든과 로이드가 개발한 Mk. VI형 탱케트. 여기에 채택된 로드휠과 서스펜션은 독일 1호 전차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빅커스의 기술은 수많은 나라의 전차 개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cc) Hiuppo at Wikipedia.org >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초창기 전차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빅커스(Vickers-Armstrongs)의 엔지니어들인 카든(John Carden)과 로이드(Vivian Loyd)의 주도로 1928년 빅커스 Mk. E가 탄생했다. 개발 당시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동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전차들은 언제 어디서 멈출지 예측할 수 없는 결함투성이들이라고 단정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전투 중 전차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단지 좋은 표적에 불과하다. 특히 방어력이 없다시피 한 경전차라면 그 순간이 최후와 다름없다. 전차는 엔진부터 무한궤도에 이르는 계통 중 어느 하나라도 심각한 이상이 발생하면 멈춘다. 그중 원래 저속의 농업용 트랙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초기 전차들의 주행 장치는 고속에 적합하지 않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이를 위해 빅커스는 당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여러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비커스 6톤 전차의 생산 장면 < 출처 : Public Domain >

그중 하나가 이후 등장하는 많은 전차들이 모방한 로드휠이다. 기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로드휠을 소형으로 제작해 4개를 한 세트로 묶어 판스프링 서스펜션으로 묶는 구조를 택했다. 덕분에 신뢰성이 향상되었고 수리도 편리했다. 시속 35km의 최고 속도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이어서 빅커스 Mk. E와 영향을 받은 후속 전차들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정작 육군은 주행 장치, 특히 서스펜션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채택을 거부했다. 외형상으로 약해 보이고 실제로 격파도 잘 되었지만 사실 이는 방어력이 약한 경전차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제2차 대전의 결과를 볼 때 채택 거부는 옳은 판단이라 할 수 있으나 육군이 경전차의 일종인 순항전차를 꾸준히 사용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단지 빅커스 Mk. E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빅커스 Mk. E 전차 B형. 정작 영국에서는 채택하지 않았다. < 출처 : (cc) Hugh Llewelyn at Wikipedia.org >
다만 영국 정부는 대공황의 여파로 경영상 어려움이 심각했던 업체의 사정을 고려해 해외 판매나 기술 제공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에 빅커스가 해외 판촉에 나서자 때마침 기갑부대 창설을 고려하던 중소 국가들과 자력으로 전차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나라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빅커스 Mk. E는 비록 고국에서 외면받았지만 여러 나라의 기갑부대 역사를 열거나 현지 전차의 개발을 이끈 선구자가 되었다.


특징

빅커스 Mk. E는 차체를 리벳으로 조립했는데 이는 당시 전차들의 보편적 제작 방법이다. 장갑이 19~25mm에 불과해 방어력이 상당히 취약하다. 그래서 기술을 제공받아 현지에서 생산되었거나 아니면 참조해서 독자 개발한 전차들도 실전에서 쉽게 격파되었다. 이는 비단 빅커스 Mk. E뿐만 아니라 당대 경전차들이라면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점이었다. 때문에 제2차 대전 초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도태되었다.

B형에 장착된 47mm OQF 3파운더포. 단포신이라 위력이 강력하지는 않았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빅커스 Mk. E는 한 정씩 기관총을 장착하고 각각 좌우로 24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병렬로 부착한 A형과 360도 회전이 가능한 단일 포탑에 단포신 47mm 포와 기관총 1문을 장착한 B형이 있다. 여기에 더해 빅커스는 구매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무장을 변경해 줄 수 있음을 선전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차체가 작아 화력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어 공격력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엔진 과열을 막기 위해 별도의 통풍구를 설치한 폴란드산 7TP. < 출처 : Public Domain >
90마력 정도의 힘을 내던 4기통 푸마 엔진은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었지만 종종 과열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전투기에 사용하던 공랭식 엔진이다 보니 공기 흐름에 이상이 있으면 문제가 발생하고는 했다. 때문에 폴란드에서 제작한 7TP는 차체 양측에 별도의 냉각용 통풍구를 만들었고 벨기에에 판매를 시도한 빅커스 Mk. F에는 6기통 롤스로이스 팬텀 II 수랭식 엔진의 탑재를 제안하기도 했다.
빅커스 Mk. E의 로드휠과 서스펜션은 구조가 단순해서 제작과 유지 보수가 편리하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운용 현황
폴란드는 면허생산형인 7TP를 162대 도입하여 빅커스 Mk.E보다 훨씬 더 많이 채용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빅커스 Mk. E는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총 137대가 생산되었다. 소련 판인 T-26의 10,300여 대는 말할 것도 없고 폴란드 면허 생산형인 7TP의 162대보다도 적은 수량이다. 영국 육군이 테스트 목적으로 도입한 4대를 제외한 전량이 해외에 수출되었음에도 핀란드, 불가리아, 그리스, 태국 같은 중소 국가는 도입량 자체가 많지 않았고 미국, 일본 등은 전차 개발에 참고하기 위해 소량만 구매했기 때문이다.
겨울전쟁에서 노획한 소련제 T-26 포탑을 직도입한 빅커스 Mk. E 차제와 결합한 핀란드 개조형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1932년 남미에서 벌어진 차코 전쟁이 최초의 실전이었다. 당시 3대의 빅커스 Mk. E를 보유한 볼리비아가 파라과이 공격에 사용했으나 1대가 격파당하고 2대가 나포되었다. 1935년 20대를 도입한 중국이 중일전쟁에 투입했으나 전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소련, 핀란드, 폴란드, 그리스, 불가리아, 태국의 직도입분은 제2차 대전에서 사용되었으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이미 구식 전차로 전락한 상황이라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37년 8월 22일 상하이 전투 당시 일본군 방어선을 향해 진격하는 중국군의 빅커스 Mk. E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빅커스 Mk. E Type A: 이중 포탑에 빅커스 기관총 탑재형

빅커스 Mk. E Type A < 출처 : Public Domain >
빅커스 Mk. E Type B: 47mm OQF 3파운더포 장착형
빅커스 Mk. E Type B < 출처 : Public Domain >
빅커스 Mk. F: 6기통 롤스로이스 팬텀 II 수랭식 엔진을 탑재한 벨기에 제안형
 
빅커스 드래건 Mk. IV: 빅커스 Mk. E 차체 기반 야포 견인차
빅커스 드래건 Mk. IV < 출처 : Public Domain >
T-26: 빅커스 Mk. E 기반 소련 경전차
T-26 < 출처 : Public Domain >
T1E4: 빅커스 Mk. E 참조 미국 경전차
T1E4 < 출처 : Public Domain >
95식 경전차: 빅커스 Mk. E 참조 일본 경전차
95식 경전차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7TP: 빅커스 Mk. E 기반 폴란드 경전차
7TP < 출처 : (cc) Hiuppo at Wikipedia.org >
M11/39: 빅커스 Mk. E 참조 이탈리아 경전차
M11/39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업체: 빅커스 암스트롱
중량: 7.3톤
전장: 4.88m
전폭: 2.41m
전고: 2.16m
장갑: 19~25mm
무장: (A형) 빅커스 기관총×2
        (B형) 47mm OQF 3파운더포×1 / 빅커스 기관총×1
엔진: 4기통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공랭식 가솔린 엔진 80~98마력(60~73kW)
추력 대비 중량: 11~13마력/톤
서스펜션: 판스프링
항속 거리: 160km
최고 속도: 35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