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일리야 무로메츠 폭격기
최초의 4발 폭격기
  • 남도현
  • 입력 : 2020.12.28 08:50
    최초의 4발 폭격기인 일리야 무로메츠.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폭격기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최초의 4발 폭격기인 일리야 무로메츠.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폭격기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 1호가 12초 동안 36.5m를 날았다. 작은 도약에 불과했지만 비행기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들도 있었다. 사실 인간이 하늘을 날고자 했던 것은 호기심보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부도 비행기가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깨달은 집단 중 하나였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연락, 정찰용으로 비행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폭격의 모습. 효과가 입증되면서 폭격 전용 작전기가 등장했다. < 출처 : (c)IWM (Q 67695) >
    초창기 폭격의 모습. 효과가 입증되면서 폭격 전용 작전기가 등장했다. < 출처 : (c)IWM (Q 67695) >

    그리고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로 전투를 벌이는 시대가 열렸다. 특히 폭격은 대단히 유용한 공격 방법이었다. 지금도 공중전을 펼치는 전투기를 하늘의 주인공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공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상이나 해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으로 어림잡아 조준한 후 손으로 폭탄을 던지는 수준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임무에 특화된 폭격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레저 용도로나 사용될 수준의 당시 비행기에 폭탄을 탑재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더 많은 폭탄을 장착하고 보다 멀리까지 날아가려면 그만큼 기체가 크고 튼튼해야 하므로 이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엔진이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생각만큼 개발이 쉽지 않았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엔진을 여러 개 장착하는 것이었다.

    제1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가장 강력한 폭격기였던 영국의 핸들리 페이지 < 출처 : Public Domain >
    제1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가장 강력한 폭격기였던 영국의 핸들리 페이지 < 출처 : Public Domain >

    제1차 대전 중반인 1916년에 등장한 독일의 고타(Gotha) G.IV, 영국의 핸들리 페이지(Handley Page) 같은 초기의 폭격기는 쌍발 엔진을 장착했다. 엔진을 많이 달면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대신 제어가 어렵고 무게가 많이 나가며 기동력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1930년대 탄생한 B-17 이전의 폭격기는 대부분 쌍발이었다. 그래서 4발 폭격기는 제2차 대전 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4발 폭격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오히려 앞에 언급한 고타 G.IV나 핸들리 페이지보다 빠른 1914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시콜스키(Igor Sikorsky)가 개발한 일리야 무로메츠(Ilya Muromet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물론 엔진이 많다고 반드시 비례해서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후에 등장하는 쌍발 폭격기보다 뒤지지만 그래도 제1차 대전 초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과를 올렸다.

    2015년 발행된 기념우표에 등장한 일리야 무로메츠. 소련-러시아 항공기 역사에 길이 빛날 자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2015년 발행된 기념우표에 등장한 일리야 무로메츠. 소련-러시아 항공기 역사에 길이 빛날 자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처럼 전쟁과 동시에 모습을 즉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1913년에 시콜스키의 설계로 개발된 세계 최초의 4발 항공기인 루스키 비탸즈(Russky Vityaz)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승무원 포함 최대 16명이 탑승하는 루스키 비탸즈는 비행 중 승객이 이동이 가능할 만큼 커다란 객실에 난방, 전기 조명이 공급되고 화장실도 갖춘 고급 여객기로 1914년에 당대 최장 거리인 1,200km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키예프를 왕복 비행했다.

    처음 보도가 나왔을 때 서방은 러시아가 그런 기술력을 보유했을 리 없다며 거짓으로 매도했을 만큼 시대를 앞선 업적이었다.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폭격기 제작에 착수했다. 폭탄을 투하하는 용도 이외에 특별히 요구되는 사항이 없어 개발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고 슬라브 신화 속의 기사의 이름인 일리야 무로메츠로 명명되어 1914년 12월 10일부터 작전에 투입되었다.

    모스크바 인근 모니노 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리야 무로메츠 재현품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모스크바 인근 모니노 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리야 무로메츠 재현품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특징

    일리야 무로메츠는 시콜스키가 1911년에 설계한 르 그랑(Le Grand)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익 상부익이 2.5m 아래에 설치된 하부익보다 긴 복엽기로 골격과 날개의 대부분은 목재로 제작되었다. 애초 르 그랑은 2기의 엔진을 장착했으나 예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해 2기가 더 추가되면서 루스키 비탸즈가 되었다. 엔진은 주익 하부익 앞에 당시 가장 일반적이었던 견인식(Tractor configuration) 형태로 배치되었다.

    일리야 무로메츠의 기반이었던 르 그랑 쌍발기 < 출처 : Public Domain >
    일리야 무로메츠의 기반이었던 르 그랑 쌍발기 < 출처 : Public Domain >

    루스키 비탸즈나 일리야 무로메츠 모두 항공기 역사에서 해당 분야 최초의 4발기라는 커다란 흔적을 남겼지만 속도계, 나침반, 연료계, 고도기처럼 기본적 장비만 장착되었다. 여객용 편의 장치는 폭격기로 바뀌면서 대부분 제거되고 최대 800kg의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받침대와 9기의 방어용 기관총을 곳곳에 설치했고 엔진 보호를 위해 5mm의 장갑판을 덧대었다. 추후 전과를 살펴보면 상당히 방어력은 좋은 편이었다.

    전면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일리야 무로메츠 230호기와 승무원들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전면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일리야 무로메츠 230호기와 승무원들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일리야 무로메츠는 제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10기의 기존 루스키 비탸즈 중 2기를 개조한 것을 시작으로 1917년까지 76기가 생산되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개조된 것까지 포함해 85기가 제작된 것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일리야 무로메츠는 부품의 조달이나 작업 상황에 맞춰 마치 가내 수공 방식처럼 제작이 되어 생산 시기별로 기종의 차이가 많은 편이다. 따라서 성능이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기체 외부에 이동용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기체 외부에 이동용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15년 2월 12일에 독일 진지를 폭격하며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러시아 공군은 전반적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일리야 무로메츠를 이용해서는 대규모 편대 폭격, 야간 폭격, 폭격 후 전과 확인 정찰들을 실시하며 항공전사에 커다란 획을 남겼다. 총 400여 회 이상 출격해 65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기록상으로 90퍼센트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다.

    리페츠크 역사관에 그려진 일리야 무로메츠의 활동 약사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리페츠크 역사관에 그려진 일리야 무로메츠의 활동 약사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덩치가 크고 속도가 느려 전투기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지만 손상을 입고도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고 1916년에서야 처음으로 피격기가 나왔을 만큼 방어력이 좋았다.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영국과 프랑스에 면허 생산 권리를 팔았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후에는 내전에서 백군과 적군 모두 중요하게 취급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여객기로 임무를 바꾸어 1922년까지 사용되었다.


    변형 및 파생형

    No. 107: 1913년 실험기 100마력 아거스(Argus) 엔진 4기 장착
     
    No. 128: 1914년 실험기 140마력 아거스 엔진 2기, 125마력 아거스 엔진 2기 장착.

    세계 최초의 4발 비행기인 루스키 비탸즈 < 출처 : Public Domain >
    세계 최초의 4발 비행기인 루스키 비탸즈 < 출처 : Public Domain >

    S-22 타입 A: 훈련기
     
    S-23 타입 B: 1914년 제작분 폭격기

    1914년 제작된 초기형에 장착된 아거스 엔진 < 출처 : (cc) Mightyhansa at Wikimedia.org >
    1914년 제작된 초기형에 장착된 아거스 엔진 < 출처 : (cc) Mightyhansa at Wikimedia.org >

    S-23 V: 148마력 선빔 크루세이더 V8 엔진 장착
     
    S-24 G-1: S-23 V 기반 무장 개량형
     
    S-25: 1915년 제작분

    켈젠키르헨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형 < 출처 : (cc) Krassotkin at Wikimedia.org >
    켈젠키르헨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형 < 출처 : (cc) Krassotkin at Wikimedia.org >

    S-25 G-2: 150마력 RBVZ-6 엔진 장착
     
    S-25 G-3: 220마력 르노 엔진 2기, RBVZ-6 엔진 2기 장착
     
    S-26 D-1 DIM: 1916년 제작분. 150마력 선빔 엔진 장착

    1916년 라트비아 다우제바 폭격 당시 손상을 입고 귀환한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1916년 라트비아 다우제바 폭격 당시 손상을 입고 귀환한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S-27 E: 르노 엔진 4기 장착


    제원(S-23 V)

    형식: 4발 중폭격기
    전폭: 29.8m
    전장: 17.5m
    전고: 4m
    주익 면적: 125㎡
    최대 이륙 중량: 4,600kg
    엔진: 선빔 크루세이더 V8 엔진(148마력)×4
    최고 속도: 110km/h
    실용 상승 한도: 3,000m
    전투 행동반경: 300kg 폭장 후 5시간 비행
    무장: 최대 800kg 폭장
            각종 기관총 5~9문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일리야 무로메츠 폭격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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