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IL-80 맥스돔 공중 지휘통제기
러시아 ‘최후의 날’을 각오한 핵전쟁용 지휘통제기
  • 윤상용
  • 입력 : 2020.12.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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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80 "맥스돔" 공중 지휘통제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후 ‘초강대국’ 지위에 올라선 소련과 미국은 지구를 양분한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을 이끌면서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충돌하는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소련은 1960년 중반부터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기술 과시에 들어갔으며, 특히 미국과 서방이 200인승 이상의 대형 민항기를 개발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적할 수 있는 대형 민항기 개발에 돌입했다. 사실 이러한 대형 민항기의 개발은 당시 러시아로서는 불필요한 개발에 가까웠으나, 소련 지도부는 소련의 항공 기술이 서방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는 프로파간다 목적을 위해 개발을 추진했다. 소련의 민항사인 아에로플로트(Aeroflot)는 국가적 시책에 따라 향후 10년간 연간 여행객을 예측한 결과 약 1억 명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고, 소련 지도부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삼아 대형 항공기 개발에 돌입했다. 하지만 연간 1억 명은 고사하고 소련 역사상 1억 번째 항공기 승객이 1976년 12월 29일에야 나왔다.

    대형민항기 개발에서 최초에 제안되었던 724인승의 An-22P 모델 <출처: Public Domain>
    대형민항기 개발에서 최초에 제안되었던 724인승의 An-22P 모델 <출처: Public Domain>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설계를 맡은 올레그 안토노프(Oleg Antonov, 1906~1984)의 OKB-153 설계국은 최초 An-22 수송기를 기반으로 한 724인승 항공기를 제안했다. 이 계획은 1969년까지 계속 추진됐지만 이후 목표 좌석 수가 605석으로 감소하면서 상부 데크에 383석, 하부에 223석을 설치한 설계로 변경됐다. 하지만 이 설계대로 항공기가 제작될 경우, 동체 크기 때문에 소련 내 대부분의 공항이 해당 기체를 수용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유사한 문제를 겪은 서방은 공항 자체를 크게 증설하는 방법으로 대응했으나, 소련 측은 가급적 공항 자체를 손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 시설에 맞춰 항공기 설계가 변경되었고, 기체 하중을 견디기 위해 다중 차륜이 깔린 랜딩기어가 채택됐다. 또한 기체 탑재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해 승객 짐을 별도의 수납공간에 수납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차처럼 "각자의 짐을 들고 타도록" 조치했는데, 이 때문에 소련의 항공 여행가인 킴 바크슈미(Kim Bakshmi)에 따르면, "승객들은 항공기 이륙 5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을 사 탑승했으며, 코트는 옆에 빈자리에 걸어놓고, 짐은 좌석 주변 어딘가에 놓은 채로 이륙했다"라고 적었다.

    1977년 가을 Il-86 양산 초도기가 출고되면서 곧바로 아에로플로트에서 운용시험에 들어갔다. <출처: Public Domain>
    1977년 가을 Il-86 양산 초도기가 출고되면서 곧바로 아에로플로트에서 운용시험에 들어갔다. <출처: Public Domain>

    러시아 정부는 1967년 10월 자로 대형 항공기, 통칭 "아에로버스(Aerobus)"의 취항을 허락했으며, 해당 항공기는 350석에 항속 거리 3,600km, 탑재 중량 40톤 이하로 제한했다. 항공기는 소형 활주로에서 이륙이 가능해야 했으며, 2,600m 활주로에서 운항이 가능할 것을 의무로 했다. Il-86으로 명명된 이 민항기는 1976년부터 시제기 없이 양산에 들어갔다.

    미국이 핵미사일의 공중지휘소인 룩킹글래스를 실전배치하자 소련도 긴급히 대응에 나섰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국이 핵미사일의 공중지휘소인 룩킹글래스를 실전배치하자 소련도 긴급히 대응에 나섰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미국은 서방 선진국 뿐 아니라 소련, 중국 등도 차례로 핵을 보유하기 시작하자 다음 번 세계 규모의 전쟁은 핵전쟁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으며, 이에 따라 핵전략을 본격적으로 조율하면서 공중지휘소 개념의 '룩킹 글래스(Looking Glass)'를 1963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 역시 1960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을 겪으면서 미국의 핵전략에 대응할 방안을 수립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공중 지휘통제용 항공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

    미국이 핵미사일의 공중지휘소인 룩킹글래스를 실전배치하자 소련도 긴급히 대응에 나섰다. <출처: Public Domain>

    구체적인 공식 자료는 거의 없지만 소련 측의 기록에 따르면 소련 정부는 대형 와이드바디 항공기인 IL-86을 '공중지휘통제기'의 베이스 항공기로 선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류신(Ilyushin) 설계국이 주도하여 IL-86VKP를 개발했고, 1985년 5월 29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일류신은 초도 비행이 성공하자 이 기체에 지휘통제 장비와 다양한 항전 장비를 탑재한 후 1987년 3월 5일에 비행을 실시해 성공시켰다. 소련은 1992년에 해당 기체를 최종 실전 배치하기로 했으나, 일부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체는 1995년 혹은 1997년까지도 시험 비행을 계속 실시했다고 한다. Il-80은 1992년 경에 처음 서방 사진가들에 포착되면서 그 존재가 자유세계에도 알려지게 됐다.

    IL-80 맥스돔 기체는 모두 4대가 만들어졌다. <출처 : Yevgeny Volkov / russianplanes.net>
    IL-80 맥스돔 기체는 모두 4대가 만들어졌다. <출처 : Yevgeny Volkov / russianplanes.net>

    Il-80은 총 4대가 개조되었으며, 완성 후 모스크바 인근 츠칼로프스키(Chkalovsky) 공군기지에 주둔한 소련 공군 제8 특수목적 항공사단에 인도됐다. 통상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해당 지휘통제기를 "맥스돔(Maxdome)"으로 일컫고 있으나, 일부 자료에서는 "캠버(Camber)"로 호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 측에서는 '아이마크(Aimak, 몽고어로 일개 유목지를 공유하는 사회 집단을 일컫는 단어)'로 명명한 바 있다.


    특징

    이륙 중인 Il-80. 독특하게도 동체의 창문을 모두 없앴으며, 조종석 상부의 독특한 덮개가 특징적이다. (출처: Dmitry Terekhov/Wikimedia Commons)
    이륙 중인 Il-80. 독특하게도 동체의 창문을 모두 없앴으며, 조종석 상부의 독특한 덮개가 특징적이다. (출처: Dmitry Terekhov/Wikimedia Commons)

    IL-80은 러시아군 총참모부가 공중 지휘통제소로 제작한 항공기로, 만약 러시아가 핵전쟁에 돌입하게 될 경우 러시아군을 안전한 장소에서 지휘하기 위해 개발한 기체이다. 러시아 항공기 개발 절차에 따라 설계는 일류신(Illyusin) 설계국에서 설계했으며, 생산은 보로네츠(Voronezh) 생산국에서 담당했다. 기체의 기본 설계는 일류신에서 개발한 화이드바디(Widebody) 민수용 항공기인 IL-86이며, 이 때문에 IL-86에 기반한 지휘통제기를 IL-87로 언급한 자료도 있다.

    Il-80의 측면 모습. (Alex Beltyukov/Wikimedia commons)
    Il-80의 측면 모습. (Alex Beltyukov/Wikimedia commons)

    기내에 장착한 하드웨어는 300종류가 넘으며 통상적인 이륙 중량은 거의 200톤에 육박한다. 항공기에는 총 4기의 13,000kg 급 NK-86 엔진이 장착됐으며, 최고 속도는 850km/h, 항속 거리는 3,600km, 실용 상승 한도는 11,000m에 달한다. 이 기체에 대한 자세한 부분은 대부분 비공개이며, 소련 붕괴 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직까지도 기밀 해제가 안 된 소수의 항공기에 속한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Il-80. 주익 안쪽으로 독특한 페어링(fairing)이 보인다. (출처: Kirill Naumenko/Wikimedia Commons)
    아래에서 올려다 본 Il-80. 주익 안쪽으로 독특한 페어링(fairing)이 보인다. (출처: Kirill Naumenko/Wikimedia Commons)

    기내에 설치된 에어콘은 필터 장치가 되어 있어 핵전쟁 상황에서 방사능 낙진을 걸러내도록 설계했다. 또한 대부분의 항전 장비는 번개나 전자기 파장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같은 목적으로 핵폭발의 열이나 전자기파로부터 승객을 방호하기 위해 외부 창을 모두 없앴다. 또한 캐빈으로 들어가는 문도 모두 없애고 상부 데크의 전방 좌우 도어만 원래 디자인을 유지했다.

    Il-80은 여전히 기밀이 해제되지 않은 항공기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이 기밀이다. 사진은 Il-80의 원형인 Il-86 민항기의 조종석 모습. (출처: Aleksandr Markin)
    Il-80은 여전히 기밀이 해제되지 않은 항공기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이 기밀이다. 사진은 Il-80의 원형인 Il-86 민항기의 조종석 모습. (출처: Aleksandr Markin)

    조종석 유리창 측면에는 방지판 블럭이 깔린 점도 독특한데, 이는 EMP나 RF를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로 보인다.

    기체 상부의 돌출부는 SATCOM 장비의 덥개로 대형 안테나가 장치되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기체 상부의 돌출부는 SATCOM 장비의 덥개로 대형 안테나가 장치되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IL-80은 기체 상부에 돌출된 위성통신(SATCOM) 덮개가 특징적이다. 덮개 양옆에는 대형 안테나 두 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동체 상부 측면의 수직 안정판 주변에는 소형 페어링(fairing)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미익에는 견인식 VLF 안테나 수납을 위한 윈치가 설치되어 있어 전략핵잠수함과 교신 시에만 안테나를 늘어뜨릴 수 있다. 조종성 좌측 아래에는 공중 급유용 파이프(프로브)가 설치되어 있어 주익 내 연료탱크까지 파이프가 통한다. Il-80이 민수용 Il-86과 다른 부분은 터빈 동력의 전기 발전기 포드가 안쪽 엔진실 쪽의 파일런에 설치된 점이다. 포드 형태로 설치된 발전기는 9.5m 길이에 지름이 1.3m 정도이다.

    기체 상부의 돌출부는 SATCOM 장비의 덥개로 대형 안테나가 장치되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운용 현황

    Il-80 맥스돔은 기본적으로 유사시 소련 서기장을 탑승시킨 상태로 비행하면서 핵전쟁을 지휘하는 전시 지휘소 성격으로 제작한 항공기다. 이는 미국의 E-4 나이트워치(Nightwatch)와 동일한 목적으로, 통상 Il-80이 공중 지휘소로 운용될 상황이면 사실상 러시아 최후의 일전이 될 수도 있는 핵전쟁 상황이므로 이 항공기는 ‘최후의 날(Doomsday)’ 항공기 중 하나로 꼽힌다. 소련은 총 4대의 Il-80 지휘통제기를 도입했다. 소련이 붕괴한 뒤 러시아로 변경된 뒤에도 Il-80은 계속해서 러시아 연방군이 운용했으며, 정확하게 이들 기체가 어떤 상태로 운용 중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세 대가 민간 기체 번호인 RA-86147, 86148, 86149로 등록되어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무늬로 도장이 되어 여전히 운용 중이라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며, 86147기는 사진으로 촬영된 적도 있지만 엔진이 제거되어 있었으므로 퇴역시킨 기체가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러시아 공군 소속 Il-80이 2차 세계대전승전기념일 연습을 위해 모스크바 상공을 비행 중인 모습. (출처: Leonid Faerberg)
    러시아 공군 소속 Il-80이 2차 세계대전승전기념일 연습을 위해 모스크바 상공을 비행 중인 모습. (출처: Leonid Faerberg)

    그러던 중 불과 얼마 전인 12월 7일, 러시아발 리아 노보스티(Ria Novosti)지는 정비 중이던 러시아 공군의 Il-80 기체에 누군가 침입하여 통신 장비 일부를 뜯어간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기체는 로스토프 지역에 있는 타간로크 공항이었으며, 해당 기체는 베리에프사 공장에서 유지 정비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버홀(overhaul) 작업 후 출입구 등을 완전히 밀폐 시켜놨던 기체 뒤로 누군가가 침입해 장비를 뜯어냈으므로 러시아 측은 내부자 소행이거나 내부자 협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해외 정보기관의 공작이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에도 Il-80은 여전히 운용 중임이 확인되었으며, 일부 러시아 국내 에어쇼 등에도 간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Il-80의 현대화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계속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추측된다.

    비행 중인 Il-80의 실루엣. (출처: Dmitry Terekhov/Wikimedia Commons)
    비행 중인 Il-80의 실루엣. (출처: Dmitry Terekhov/Wikimedia Commons)



    파생형

    Il-86: 일류신에서 설계하고, 보로네츠(Voronezh) 항공기 생산협회에서 제작한 와이드바디(Wide-body) 민항기. 1980년부터 취역해 106대가 제작되었으며, 최대 350명이 탑승 가능하다. 아에로플로트(Aeroflot), 시베리아 항공, 크라스(Kras) 항공, 도나비아(Donavia) 항공 4개사에서 운항했다.

    Il-80의 원형인 Il-86 민항기. 1984년 9월에 촬영된 사진으로, 구 소련 시절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항공 기체이다. (출처: Mike Freer/Touchdown-Aviation)
    Il-80의 원형인 Il-86 민항기. 1984년 9월에 촬영된 사진으로, 구 소련 시절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항공 기체이다. (출처: Mike Freer/Touchdown-Aviation)



    제원(Il-86 기준)

    제 조 사 : 일류신/보로네츠
    용     도 : 공중지휘통제기
    탑승인원 : 3~4명(비행갑판) / 11명
    전    장 : 60.21m
    전    고 : 15.68m
    날개면적 : 300㎥
    최대 이륙중량 : 215,000kg
    자체중량: 117,500kg
    탑재중량: 40,000kg
    추진체계 : 13,000kg급 쿠즈네소프(Kuznetsov) NK-86 x 4
    순항속도: 871km/h
    항속거리: 5,000km
    최소이륙거리: 2,800m
    최소착륙거리: 1,200m
    최대상승률: 15m/s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IL-80 맥스돔 공중 지휘통제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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