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3호 돌격포
결국 전차 역할까지 담당한 숨은 주연
  • 남도현
  • 입력 : 2020.12.22 08:26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3호 돌격포. 지금까지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기갑장비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3호 돌격포. 지금까지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기갑장비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개발의 역사

    1935년 히틀러가 재군비를 선언하고 난 후부터 독일군의 팽창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이미 준비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 불과 4년 만에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개시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독일은 제1차 대전 패전 후 연합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으나 농사용 장비 등을 개발한다는 식으로 비밀리에 무기 개발에 나섰고 장차전을 대비한 이론 정립과 훈련에도 힘썼다.

    1940년 5월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로 진격 중인 독일군 기갑부대. 제1차 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독일은 이후 전격전으로 불리게 되는 고속 기동전을 실현시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0년 5월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로 진격 중인 독일군 기갑부대. 제1차 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독일은 이후 전격전으로 불리게 되는 고속 기동전을 실현시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때 반면교사가 되었던 것은 당연히 제1차 대전이었다. 4년간 이어진 잔인한 참호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방어가 최선이라는 사상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독일과의 국경에 마지노선 같은 철옹성이 건립되었다. 반면 패한 독일은 전선이 고착화되기 전에 신속히 돌파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공군의 엄호 하에 집단화된 기갑부대가 돌파구를 열면 후속한 보병이 전과를 확대해 가는 전략이 창안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는 제2차 대전 초기에 독일의 연승을 이끈 전격전(Blitzkrieg)으로 빛을 발했다. 그런데 구데리안(Heinz Guderian) 같은 소장파가 이를 처음 주장했을 때 군부의 대다수가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전차를 한곳에 몰아 운용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드러낸 이들이 많았다. 가뜩이나 독일은 1930년대 돼서야 전차 개발에 착수한 상황이어서 경쟁국과 비교하면 전차의 질도 떨어지고 수량도 많지 않은 상태였다.

    소장파의 주장에 반대했지만 만슈타인의 건의 받아들여 돌격포 생산을 이끈 육군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 반 나치였던 그는 1944년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지만 거사가 실패하면서 자결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소장파의 주장에 반대했지만 만슈타인의 건의 받아들여 돌격포 생산을 이끈 육군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 반 나치였던 그는 1944년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지만 거사가 실패하면서 자결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따라서 전차를 기갑부대에 몰아준다면 당연히 보병부대에 배치될 물량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나섰을 때 전차처럼 적의 방어 진지를 제압할 수단이 필요했던 보병에게 소장파의 주장은 당연히 맘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육군참모총장 베크(Ludwig Beck)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여담으로 이처럼 군부의 대다수가 반대했을 때 소장파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 이는 히틀러였다.

    집단화된 기갑부대의 창설이 어려울 것처럼 보이자 소장파의 리더 중 하나였던 육군최고사령부 작전부장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이 베크에게 보병과 함께 행동하며 화력 지원을 할 수 있는 별도의 기갑장비인 돌격포(Sturmgeschütze)의 개발을 제안했다. 그는 포탑을 제거한 전차 차체에 대구경 직사 화기를 장착해서 운용하면 그럭저럭 보병이 원하는 쓸 만한 기갑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구경장 7.5cm KwK 37포를 장착한 초기형 4호 전차. 때문에 3호 돌격포는 3호 전차 차체에 4호 전차의 주포를 결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24구경장 7.5cm KwK 37포를 장착한 초기형 4호 전차. 때문에 3호 돌격포는 3호 전차 차체에 4호 전차의 주포를 결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대단히 아끼던 수하인 만슈타인의 의견을 베크가 받아들이면서 1936년 6월 15일, 다임러벤츠(Daimler-Benz)에 개발 의뢰가 내려졌다.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존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막 양산을 시작한 1호, 2호 전차는 차체가 작아서 주포 장착이 곤란해 플랫폼으로 개발 막바지 단계였던 3호 전차 차체가 선정되었다. 여기에 한창 개발 중이던 4호 전차의 24구경장 7.5cm KwK 37포를 개조해서 장착하기로 했다.

    이처럼 차체와 주포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개발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돌격포의 생산은 알케트(Alkett)에서 담당하기로 결정했고 1차적으로 5대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각종 실험을 거쳐 1940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갔고 그해 5월에 있었던 프랑스 침공전에 투입되었으나 물량이 극소수였던 데다 독일이 쉽게 이기면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때만 해도 특별한 구분 없이 돌격포라고 불렀고 운용도 포병이 담당했다.

    1942년 9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작전 중인 3호 돌격포. 이때만 해도 그냥 돌격포로 불렸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2년 9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작전 중인 3호 돌격포. 이때만 해도 그냥 돌격포로 불렸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제2차 대전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사상 최대의 전쟁인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기갑부대가 돌파의 중핵으로 앞으로 달려갔고 돌격포는 개발 의도대로 보병부대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소련 전차가 등장하면 돌격포라고 대결을 피할 수는 없었다. 24구경장 7.5cm StuK 37포는 보병 지원에는 충분했지만 기갑전, 특히 T-34와의 대결은 어려웠다.

    그런데 화력 부족은 돌격포뿐만 아니라 3호, 4호 전차도 해당되는 문제였다. 개별 전차의 성능 열세는 6호 전차가 등장하면서 해결되지만 수적으로 충분하지 않아 돌격포, 3호, 4호 전차의 화력 증강도 필요했다. 결국 1942년 포구 속도가 향상된 43구경장 7.5cm StuK 40포를 장착하면서 돌격포도 소련 전차와의 대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돌격포 고유의 목적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1942년 9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작전 중인 3호 돌격포. 이때만 해도 그냥 돌격포로 불렸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전쟁이 격화되고 전선에 공급되는 전차의 수량이 항상 부족해지자 상대적으로 생산이 쉬운 돌격포가 본격적으로 전차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연합국의 폭격으로 알케트 공장이 파괴되자 1943년 4호 전차 차제를 기반으로 한 돌격포를 서둘러 개발했는데, 이때부터 별도로 구분하기 위해 3호 돌격포(Sturmgeschütz III)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종전 시점까지 오만 역할을 다 담당하면 부단히 활약했다.


    특징

    3호 돌격포는 포탑을 제거한 차체를 개조해 포를 탑재한 형태다. 현재 이런 형태의 기갑장비는 사용되지 않는다.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3호 돌격포는 포탑을 제거한 차체를 개조해 포를 탑재한 형태다. 현재 이런 형태의 기갑장비는 사용되지 않는다.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3호 돌격포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탑 없이 차체에 포를 탑재한 형태다. 이런 구조는 전쟁 중 개발된 소련의 일부 자주포, 전후 등장한 서독의 카노넨구축전차(Kanonenjagdpanzer), 스웨덴의 Stridsvagn 103 등도 채택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일견 자주포와 외형이 비슷하지만 전선 돌파 임무를 담당했으므로 승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체 상부를 밀폐식으로 제작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전차 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되었다.

    7.5cm 구경 주포는 3호 돌격포의 제작 기반이 되었던 초기형 3호 전차의 3.7cm 주포보다 강력했다. 3호 전차가 기갑전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공격력은 3호 돌격포가 앞섰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최초 탑재된 24구경장 단포신으로는 기갑전을 치르기 어려웠고 장포신으로 환장된 이후부터는 전차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행력은 3호 전차와 차이가 없었다.

    쉬르첸을 둘러 측면 방어력을 강화한 후기형 3호 돌격포. < 출처 : (cc) Stahlkocher at Wikimedia.org >
    쉬르첸을 둘러 측면 방어력을 강화한 후기형 3호 돌격포. < 출처 : (cc) Stahlkocher at Wikimedia.org >

    초기형은 전면 장갑이 50mm였으나 기갑전에도 투입되면서 80mm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대전차포에 쉽게 관통되는 수준이어서 쉬르첸(Schürzen)처럼 추가 장갑을 부착하기도 했다. 대신 포탑이 없는 만큼 전고가 낮아 피탐성이 좋았다. 이는 장점이기도 했지만 포탑이 없다 보니 공격에 나설 경우 조준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승무원 승차 여건이 나빠 피로도가 높았고 3호 전차보다 적은 4명이 근무해서 근무 강도도 높았다.


    운용 현황

    핀란드군에 공급된 3호 돌격포 G형. < 출처 : Public Domain >
    핀란드군에 공급된 3호 돌격포 G형. < 출처 : Public Domain >

    3호 돌격포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총 10,086대가 제작되었다. 1943년에 단종된 3호 전차는 물론 현재까지 탄생한 독일의 모든 기갑장비 중에서 가장 많은 수량이다. 오늘날 APC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했던 Sd.Kfz. 251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이는 기갑장비가 아니라 기동성이 좋은 트럭일 뿐이다. 이렇게 많이 생산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생산성도 좋고 성능이 무난했기 때문이다.

    전쟁 내내 무기 부족에 시달렸던 독일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3호 돌격포는 무난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초 실전은 1940년에 있었던 프랑스 침공전이었으나 명성을 올린 현장은 독소전쟁이었다. 다만 월등한 성능으로 상대를 압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수적으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독일 외에 추축국이나 친독 국가들에 일부 물량이 공급되었다.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노획한 시리아의 3호 돌격포 G형. 가장 마지막으로 실전에서 사용된 3호 돌격포다. < 출처 : (cc) Bukvoed at Wikimedia.org >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노획한 시리아의 3호 돌격포 G형. 가장 마지막으로 실전에서 사용된 3호 돌격포다. < 출처 : (cc) Bukvoed at Wikimedia.org >

    독일의 기갑장비는 제2차 대전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전격전의 신화는 전차 같지도 않은 1호, 2호 전차들이 이끌었고 길이 전해지는 명성은 5호, 6호 전차가 썼다. 그리고 3호, 4호 전차는 마당쇠처럼 활약하며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그에 비해 3호 돌격포는 전차로 취급받지 않고 유명세도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생산되어 전차 역할까지도 담당하며 전쟁 내내 쉼 없이 활약했다. 한마디로 숨은 주연이라 할 만하다.


    변형 및 파생형

    StuG: 3호 전차 B형 기반. 연철로 제작한 프로토타입. 5대.
     
    Ausf. A: 3호 전차 F형 기반. 50mm 전면 장갑. 75mm StuK 37 L/24 주포 탑재 선행 양산형. 36대.

    StuG III Ausf. A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A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B: 변속기, 전륜, 궤도 등을 개선한 개량형. 320대.

    StuG III Ausf. B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B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C: 조준기의 위치를 변경한 개량형. 50대.

    StuG III Ausf. C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C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D: 인터콤을 장착한 개량형. 150대.

    StuG III Ausf. D < 출처 : (cc) 120mm at Wikimedia.org >
    StuG III Ausf. D < 출처 : (cc) 120mm at Wikimedia.org >

    Ausf. E: MG34 기관총이 탑재. 무전기 위치가 변경된 개량형. 272대.

    StuG III Ausf. E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E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F: 75mm StuK 40 L/43 주포 탑재 개량형. 359대.

    StuG III Ausf. F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F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F/8: 7.5cm StuK 40 L/48 주포 탑재 개량형. 250대.

    StuG III Ausf. F/8 < 출처 : Public Domain >
    StuG III Ausf. F/8 < 출처 : Public Domain >

    Ausf. G: 3호 전차 F형 기반. 80mm 전면 장갑. 실내가 개조된 최종 양산형. 7,893대.

    StuG III Ausf. G < 출처 : (cc) ALukáč Peter at Wikimedia.org >
    StuG III Ausf. G < 출처 : (cc) ALukáč Peter at Wikimedia.org >

    StuH 42: 10.5cm leFH 18 포를 탑재한 파생형. 1,299대.

    StuH 42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StuH 42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Sturm-Infanteriegeschütz 33B: 15cm sIG 33 포를 탑재한 개조형

    Sturm-Infanteriegeschütz 33B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Sturm-Infanteriegeschütz 33B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제원

    생산업체: 알케트, MIAG
    중량: 23.9톤
    전장: 6.85m
    전폭: 2.95m
    전고: 2.16m
    장갑: 16~80mm
    무장: 7.5cm StuK 40 L/48×1
             7.92mm MG34 기관총×1~2
    엔진: 마이바흐 HL120 TRM 12기통 가솔린 엔진 300마력(220kW)
    추력 대비 중량: 12마력/톤
    서스펜션: 토션바
    항속 거리: 16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3호 돌격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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