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M1942 ZiS-3 사단포
소련의 승전을 이끈 야포
  • 남도현
  • 입력 : 2020.12.09 08:43
    러시아 체복사리의 노천 공원에 전시 중인 M1942 ZiS-3 사단포. 뒤에 함께 전시된 T-34와 더불어 러시아에서는 '조국을 구한 무기'로 불린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러시아 체복사리의 노천 공원에 전시 중인 M1942 ZiS-3 사단포. 뒤에 함께 전시된 T-34와 더불어 러시아에서는 '조국을 구한 무기'로 불린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연사력과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주퇴복좌기를 최초로 채택해 1897년부터 일선에 배치된 프랑스의 Canon de 75 modèle 1897(이하 M1897)은 흔히 현대 야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후 등장한 미국의 3인치 M1902, 독일의 7.7cm FK 96 n.A. 등처럼 75mm 구경(혹은 3인치) 포들이 당연히 M11897의 구조를 따랐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성능과 크기가 당대 표준이라 할 수 있었다.

    러시아제국 시절 개발된 M1902 사단포. 76mm 구경을 채택한 러시아 최초의 야포로 193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러시아제국 시절 개발된 M1902 사단포. 76mm 구경을 채택한 러시아 최초의 야포로 193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포는 구경이 크고 포신이 길면 화력이 강하지만 반대로 무게가 늘어나 이동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영토가 거대해서 작전 반경이 넓은 러시아에서 이는 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러시아가 화력도 준수하고 무게도 적당한 75mm 구경 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해서 1902년 76mm(정확히 76.2mm) 구경의 M1902 사단포(이하 M1902)를 개발해 포병의 주력으로 삼았다.

    제92야포공장의 엔지니어로 ZiS-3의 개발을 주도한 바실리 그라빈 < 출처 : Public Domain >
    제92야포공장의 엔지니어로 ZiS-3의 개발을 주도한 바실리 그라빈 < 출처 : Public Domain >

    최초의 실전인 러일전쟁에서 훈련 부족으로 말미암아 전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M1902 자체는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76mm는 이후 등장하는 야포, 전차포, 대전차포, 대공포처럼 각종 포들이 따르는 러시아의 표준이 되었다. 이는 소련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소련군은 1930년대 개발된 M1936 F-22 사단포(이하 F-22)나 M1939 USV 사단포(이하 USV)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M1902보다 복잡한 구조로 말미암아 정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무게도 무거워 야전에서 운용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았다. 1939년 폴란드 침공전, 핀란드 침공전 당시에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일선에서 대책을 요구했다. 이를 접한 제92야포공장 소속 엔지니어 그라빈(Vasiliy Grabin)은 1940년부터 새로운 76mm 야포 개발에 착수했는데 아직은 당국의 명령이 없었기에 단지 개념 연구 단계였다.

    무능한 포병감독관 쿨리크가 채택을 거부했지만 독소전쟁의 발발로 양산이 결정된 ZiS-3은 전쟁 내내 종횡무진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무능한 포병감독관 쿨리크가 채택을 거부했지만 독소전쟁의 발발로 양산이 결정된 ZiS-3은 전쟁 내내 종횡무진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라빈은 F-22 포신을 57mm 구경 ZiS-2 대전차포의 포가에 얹는 방식으로 새로운 76mm 야포를 선보였다. 하지만 평소 76mm 야포가 화력이 부족하다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포병감독관 쿨리크(Grigory Kulik)의 반대로 채택이 불발되었다. 그런데 테스트를 위해 투입된 일선에서 사용해 본 후 호평이 이어지자 약 1,000여 문이 비공식적으로 제작되어 공급되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개전 후 석 달 동안 소련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참패를 연이어 당했다. 무려 500여만의 병력과 이들을 무장시킨 장비와 무기를 잃었다. 이때 수많은 야포들도 파괴, 망실, 노획 당했는데 각종 76mm 야포만도 10,000여 문 정도에 이르렀다. 어지간한 국가라면 항복했을 만한 피해였지만 소련은 거대한 국토와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항전을 이어갔다. 일단 소모된 것을 보충해야 했다.

    관통력이 뛰어난 평사포지만 곡사 사격도 가능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관통력이 뛰어난 평사포지만 곡사 사격도 가능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앞서 언급한 것처럼 F-22, USV는 구조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일선에서 가동률이 낮았고 생산성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생산도 쉬운 그라빈의 신예 76mm 야포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하며 간신히 한숨을 돌린 직후인 1942년 2월 13일, M1942 ZiS-3 사단포(이하 ZiS-3)라는 제식명을 부여받고 본격 양산이 시작되었다.

    관통력이 뛰어난 평사포지만 곡사 사격도 가능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라빈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복잡한 부품은 숙련공들이 제작하고 단순 조립은 컨베이어 조립 라인을 도입해서 비숙련공들이 담당하는 방식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양산이 이루어진 3년 동안 10만 문 이상이 일선에 공급되었고 전선 곳곳에서 활약했고 성능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ZiS-3는 T-34 전차와 더불어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의 승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로 취급되고 있다.


    특징

    ZiS-3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거친 소련 환경에서 다루기 쉬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ZiS-3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거친 소련 환경에서 다루기 쉬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단순히 생각하자면 ZiS-3은 무게를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F-22 포신을 ZiS-2 대전차포의 포가에 결합한 것이다. 각각의 포신과 포가는 이미 성능이 검증된 것이지만 마치 3,000cc 엔진을 경승용차에 결합한다고 무조건 좋은 성능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손봐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일단 사격 시 발생하는 충격을 ZiS-2의 주퇴복좌기가 견디기 어려웠다. 지속 사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전복될 위험도 있었다.

    ZiS-3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거친 소련 환경에서 다루기 쉬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라빈은 주퇴복좌기를 유압식으로 바꾸고 포구에 머즐 브레이크 장착해서 반동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탄피가 자동으로 배출되도록 폐쇄기를 반자동으로 개량해서 F-22, USV보다 10발 정도 많은 분당 최대 25발의 고속 사격이 가능했다. 또한 조준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각도 조절 핸들을 포의 좌측에 집중시켰다. 이처럼 구조를 단순화해서 양산이 쉬었고 야전에서 정비도 쉽게 할 수 있었다.

    ZiS-3은 보병과 함께 이동하며 화력을 지원하던 SU-76 자주포의 주포로도 사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ZiS-3은 보병과 함께 이동하며 화력을 지원하던 SU-76 자주포의 주포로도 사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소련의 76mm 야포는 6호 전차 이전의 모든 독일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 따라서 ZiS-3의 화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와 다름없었다. 더해서 독일군이 몹시 곤혹스러워할 정도로 명중률이 뛰어났다. 특히 전작들보다 무게가 1.6톤 정도 가벼운 점은 상당한 이점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ZiS-3은 전차의 주포, 대전차포 등의 기반이 되었고 독일군도 노획해서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운용 현황

    ZiS-3은 1941년부터 종전이 이루어진 1945년까지 103,000문 이상 생산되었다. 고속의 포구 속도를 바탕으로 관통력이 뛰어난 평사포지만 곡사 사격도 가능하다. 따라서 대전차전뿐만 아니라 보병 지원용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소련군이 있는 곳이면 항상 같이하며 든든하게 화력 지원을 해주던 마당쇠 같은 존재로 스탈린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1945년까지 생산되었고 지금도 일부에서 사용 중이지만 ZiS-3은 독소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사용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5년까지 생산되었고 지금도 일부에서 사용 중이지만 ZiS-3은 독소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사용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전쟁 후반기에 들어서 각종 중전차들이 등장하고 기존 전차들의 방어력도 향상되면서 대전차포로는 효과가 떨어졌다. 때문에 이를 대체할 D-44 85mm 야포, BS-3 100mm 야포 등의 개발이 촉진되었다. 다만 단기간 동안 워낙 많이 제작되고 보급되어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마디로 ZiS-3는 독소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사용되었으며 전성기를 누린 야포라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설치되었던 북한군의 ZiS-3 < 출처 : Public Domain >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설치되었던 북한군의 ZiS-3 < 출처 : Public Domain >

    ZiS-3는 종전 후 수많은 나라에 공여되어 현재도 상당수가 사용되고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과 2015년 중부전선 포격 사건처럼 북한군도 주요 사용자다. 야포는 오래전에 개발되고 생산되었더라도 작동하고 포탄 수급에 문제가 없다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무기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해도 포를 이용해서 교전을 벌일 상황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ZiS-3는 이를 입증하는 야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형 및 파생형

    Zis-3: 양산형

    Zis-3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Zis-3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76 K 42: 노획 후 핀란드군이 부여한 제식명

    76 K 42 < 출처 : Public Domain >
    76 K 42 < 출처 : Public Domain >

    75mm Reşiţa Model 1943: 루마니아 복제형

    75mm Reşiţa Model 1943 < 출처 : (cc) Sorin.91sinner at Wikimedia.org >
    75mm Reşiţa Model 1943 < 출처 : (cc) Sorin.91sinner at Wikimedia.org >



    제원

    무게: 2,150kg
    포신: 3.4m
    전폭: 1.6m
    전고: 1.37m
    구경: 76.2mm
    앙각: −5°~ +37°
    선회각: 54 °
    발사 속도: 분당 25발
    유효 사거리: 13.29k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M1942 ZiS-3 사단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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