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M1 개런드 소총
가장 성공적이었던 반자동소총
  • 남도현
  • 입력 : 2020.11.06 08:35
    M1 개런드는 전성기는 길지 않았지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반자동소총이다. < (cc) Armémuseum at Wikimedia.org >
    M1 개런드는 전성기는 길지 않았지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반자동소총이다. < (cc) Armémuseum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17년 4월 6일, 마침내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1차 대전에 뛰어들었다. 본토 기준 경제력으로 19세기 말에 세계 최강에 오른 미국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더구나 본격적으로 미군이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는 혁명으로 혼란한 소련이 독일과 단독 강화하고 전선에서 이탈한 시점이었다. 결국 연합군 대오가 흔들리던 그 순간에 이루어진 싱싱한 미국의 참전은 전쟁을 매조진 결정타가 되었다.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은 준수한 성능을 발휘했으나 제1차 대전을 경험한 미국은 볼트액션 소총으로 장차전을 대비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은 준수한 성능을 발휘했으나 제1차 대전을 경험한 미국은 볼트액션 소총으로 장차전을 대비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그런데 정작 대서양을 건너가 실전에 돌입한 미군은 몹시 당황했다. 거대한 전쟁을 처음 경험하며 군사 분야에서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었다. 1823년 미주 대륙 이외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먼로주의를 주창한 후 고수해 온 고립주의 덕분에 미군이 전력, 특히 무기 분야가 여타 열강과 비교해서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벌어진 결과였다.

    때문에 많은 무기를 프랑스, 영국으로부터 지원받거나 구매해서 사용했다. 그나마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이하 M1903) 정도만 제 역할을 해주었는데, 이 또한 1898년에 있었던 미서전쟁의 교훈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현실을 깨달은 미국은 종전 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감군과 별개로 무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일반으로 1920년대 들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신예 소총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군 관계자에게 자신이 개발한 M1 개런드 소총을 소개하는 존 개런드(좌) < Public Domain >
    군 관계자에게 자신이 개발한 M1 개런드 소총을 소개하는 존 개런드(좌) < Public Domain >

    기존 M1903도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었으나 끔찍했던 참호전을 경험하면서 일일이 노리쇠를 작동해 단발식 사격하는 볼트액션 방식 소총으로 더 이상 장차전을 대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동소총을 염두에 두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반자동소총으로 개발 방향을 선회했다. 공고가 개시되자 미국 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의 업체들을 포함해 10개 회사가 경쟁에 참여했다.

    그중 스프링필드 조병창 소속 개런드(John Garand)가 제안한 가스압 방식 모델과 레밍턴사의 페더슨이 설계한 블로우 백 방식 모델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기관총, 기관단총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소총을 자동화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정확도와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연사 시 발생하는 반동을 잡는 것이 핵심인데 휴대가 가능해야 하므로 무턱대고 무게를 늘려서는 곤란했다.

    8발 들이 M1 개런드용 엔블록 클립에 장착된 7.62×63mm 스프링필드 탄 < Public Domain >
    8발 들이 M1 개런드용 엔블록 클립에 장착된 7.62×63mm 스프링필드 탄 < Public Domain >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측 모두 새롭게 개발된 7x51mm 페더슨 탄을 사용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1928년 개런드의 T1이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1931년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이던 맥아더가 기존 제식 탄환인 7.62×63mm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T1의 도입을 거부했다. 따라서 만일 페더슨의 제안이 선택되었어도 동일한 탄을 사용했기에 같은 이유로 채택이 거부되었을 것이다.

    그는 기존에 비축된 스프링필드 탄과 별도의 총탄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사실 전략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소모품을 되도록 단순하게 통일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결국 1933년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성능을 개량한 T1E2가 탄생했다. 각종 실험을 거쳐 M1 개런드(M1 Garand)라는 이름으로 제식화되어 1936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제2차 대전에 미국이 전격 참전하면서 M1 개런드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제2차 대전에 미국이 전격 참전하면서 M1 개런드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초도 물량의 인도는 1939년 9월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미군의 상황을 고려하여 기존 M1903을 장기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교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제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경제는 즉각 전시체제로 들어갔고, 전력 증강에 발맞추어 대량 생산한 M1 개런드도 전군에 급속도로 보급됐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미군의 행보는 상당히 미래지향적이었다. 제1차 대전을 경험하며 영국, 프랑스는 방어 제일주의 사상에 빠져서 소총 개량을 등한시했고 재군비가 늦었던 독일은 당장 무장이 급하다 보니 예전 소총을 개량해서 사용하는 대신 다목적기관총으로 화력을 뒷받침하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제2차 대전 당시에 미군은 일선 부대를 반자동소총으로 무장시킨 유일한 군대였다.

    1942년 포트 녹스에서 M1 개런드로 무장하고 훈련 중인 미군 병사 < Public Domain >
    1942년 포트 녹스에서 M1 개런드로 무장하고 훈련 중인 미군 병사 < Public Domain >

    미군은 MG42를 장비한 독일군과의 소부대 전투에서 화력 부족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M1 개런드가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유일한 반자동소총은 아니나 SVT-40, Gew43 등은 야전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다. M1 개런드에 맞먹는 반자동소총은 전후 등장한 SKS 정도지만 돌격소총 시대의 도래로 단명했다. 때문에 성능이나 실전에서 활약상을 놓고 보자면 M1 개런드는 역사상 가장 성공했던 반자동소총이라 할 수 있다.


    특징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여타 주력 소총들과 비교한다면 M1 개런드의 가장 큰 장점은 연사력이다. 볼트액션 소총의 연사력은 사수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지만 대략 분당 15발 정도가 최고 수준이다. 이에 비해 M1 개런드는 어느 정도 훈련만 받으면 무려 3배 정도가 많은 분당 45발 정도를 사격할 수 있다. 기관단총을 제외하고 당시 보병이 휴대할 수 있는 소총으로 M1918 BAR 정도만 이보다 연사력이 뛰어났다.

    정글 속에서 M1 개런드로 사격 중인 미 해병대원. 뛰어난 연사력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 Public Domain >
    정글 속에서 M1 개런드로 사격 중인 미 해병대원. 뛰어난 연사력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 Public Domain >

    더불어 기존 탄환을 사용하므로 화력, 사거리 등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이점은 오늘날 돌격소총과 비교해도 뛰어난 부분이다. 탈부착식 탄창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8발 들이 엔블록 클립으로 장전한다. 때문에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해 5발 정도를 밀어 넣는 기존 소총들보다 더 많은 총탄을 신속히 장전할 수 있다. 사격이 종료되면 빈 클립이 자동으로 배출되어 다음 조치를 곧바로 취할 수 있다.

    엔블록 클립을 이용해 장전하는 모습. 노리쇠의 오작동으로 손 부상을 입는 경우가 흔했다. < (cc) Samf4u at Wikimedia.org >
    엔블록 클립을 이용해 장전하는 모습. 노리쇠의 오작동으로 손 부상을 입는 경우가 흔했다. < (cc) Samf4u at Wikimedia.org >

    물론 여러 단점도 있다. 장전을 할 때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노리쇠가 작동하면서 손가락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졌다. 혹은 반대로 노리쇠가 작동되지 않아 전투 중 애를 먹기도 했다. 볼트액션 소총과 비교할 경우 정확도가 조금 떨어졌고 구조가 복잡해지다 보니 이물질 등이 들어올 경우 오작동이 벌어지고는 했다. 또한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크기가 크고 무거웠다.

    엔블록 클립을 이용해 장전하는 모습. 노리쇠의 오작동으로 손 부상을 입는 경우가 흔했다. < (cc) Samf4u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M1 개런드는 1936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1958년까지 총 5,468,772 정이 생산되었다. M14 자동소총이 채택된 1957년까지 미군의 주력 제식 소총이었는데, 제2차 대전 중에 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미군이 등장한 곳이면 예외 없이 사용한 무기였다. 한국전쟁도 M1 개런드가 전선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주요 전장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전쟁, 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52년 M1 개런드로 사격 훈련 중인 국군 병사 < Public Domain >
    1952년 M1 개런드로 사격 훈련 중인 국군 병사 < Public Domain >

    유럽이 신대륙을 침탈할 때 총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무기였다. 세계사를 바꾼 도구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는 총포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지 양측 모두 비슷한 수준의 무장을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때문에 M1 개런드가 당대 최고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전쟁의 흐름을 바꿀 만큼 엄청난 영향을 남간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특별히 거론할 만한 전과는 없다.

    M1 개런드로 무장한 미 해병 의장대. 1957년 미군의 제식 화기에서 내려왔지만 기타 용도로 일부 사용 중이다. < Public Domain >
    M1 개런드로 무장한 미 해병 의장대. 1957년 미군의 제식 화기에서 내려왔지만 기타 용도로 일부 사용 중이다. < Public Domain >

    M1 개런드는 40여 개국에 공급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는 미국, 터키 다음으로 많이 운용한 나라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 상당량을 치장 물자로 보관했었다. 이처럼 많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식 소총으로써 M1 개런드의 생애는 짧은 축에 속한다. 그 이유는 제2차 대전 종전을 기점으로 소총의 사상이 반자동소총 단계를 뛰어넘고 곧바로 볼트액션에서 자동소총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변형 및 파생형

    T1: 프로토타입
     
    M1: 양산형

    <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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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1C: 저격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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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1D: 저격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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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1E5(T26): 전차승무원용
     
    T20E: 20발이 BAR 탄창 사용 개량형

    <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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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式自動小銃: 7×58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일본 복제형. 250정 시험 제작.

    < (cc) Nytsuga at Wikimedia.org >
    < (cc) Nytsuga at Wikimedia.org >

    베레타(Beretta) BM59: 7.62×51mm 나토탄, 20발 들이 탄창, 양각대 사용이 가능한 이탈리아 양산형

    < (cc) Geckcgt at Wikimedia.org >
    < (cc) Geckcgt at Wikimedia.org >

    M14: M1 기반 7.62×51mm 나토탄 사용 자동소총. (자세한 내용은 M14 소총의 개발사 참조)

    < Public Domain >
    < Public Domain >



    제원

    제작사: 스프링필드 조병창 외
    구경: 7.62m
    탄약: 7.62×63mm 스프링필드
    급탄: 8발 들이 엔블록 클립
    전장: 1,100mm
    총열: 609.6mm
    중량: 4.31~5.3kg
    유효 사거리: 457m
    작동 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M1 개런드 소총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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