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Kar98k 소총
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활약한 독일군의 주력 소총
  • 남도현
  • 입력 : 2020.10.26 09:04
    Kar98k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가장 많이 사용한 주력 소총이었으나 MG42나 MP40 등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다. < Public Domain >
    Kar98k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가장 많이 사용한 주력 소총이었으나 MG42나 MP40 등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35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무장하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명백한 도발 행위였으나 제1차 대전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던 영국, 프랑스는 강력한 제재를 내리는 대신 히틀러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이후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끌려다녔다. 만일 이때 연합국이 군사 행동까지 불사하고 강력하게 대처했다면 인류사 최대의 비극인 제2차 대전의 발발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

    당시 독일은 제1차 대전 패전 이후 20년 가까이 가해진 제약으로 말미암아 전력이 열세인 상황이었다. 재군비 선언 후 10만으로 제한받았던 병력은 즉각 증강시킬 수 있었지만 개발과 배치에 시간이 걸리는 무기는 그렇지 못했다. 이듬해 히틀러가 비무장으로 설정된 라인란트에 군대를 진주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군부가 아직 때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나섰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나치의 집권 이전인 1932년 베를린에서 퍼레이드 중인 바이마르 공화국군. 이들이 무장한 Kar98b를 기반으로 Kar98k이 개발되었다. < Public Domain >
    나치의 집권 이전인 1932년 베를린에서 퍼레이드 중인 바이마르 공화국군. 이들이 무장한 Kar98b를 기반으로 Kar98k이 개발되었다. < Public Domain >

    사실 독일은 히틀러의 집권 이전부터 비밀리에 각종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으나 재무장을 선언했다고 당장 최신 무기를 쏟아낼 형편은 아니었다. 독일의 국력이나 기술력을 고려할 때 시간만 충분히 준다면 전력 확충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히틀러가 내일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처럼 서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당장 필요하지만 백지상태와 다름없던 전차, 전투기 같은 분야에 투자를 우선해야 했다.

    반면 기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분야는 개량 등을 통해 전력을 확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작 중 하나가 제2차 대전 내내 독일군의 기본 제식 화기로 사용된 Kar98k 소총이다. 히틀러가 재무장을 선언한 바로 그 해 채택되었을 만큼 Kar98k이 속전속결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에 사용하던 Gewehr 1898(이하 Gew98) 소총을 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1898년 제작된 Gew98. 주인공으로 활약한 시대는 다르나 성능상으로 Kar98k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 Public Domain >
    1898년 제작된 Gew98. 주인공으로 활약한 시대는 다르나 성능상으로 Kar98k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 Public Domain >

    Gew98은 유명한 총기 제작자인 파울 마우저(Paul Mauser)가 1895년 만든 볼트액션 소총이다. 1898년부터 독일군에 공급된 Gew98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주변국의 경쟁작들과 비교하면 구조, 기능, 성능에서 상당히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해외에도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미군의 제식 소총인 M1903 스프링필드의 탄생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데 특허권 침해로 소송을 걸어 배상까지 받아냈을 정도였다.

    기병용 소총인 카빈(Carbine)은 기존 보병용 소총의 총신을 단축해 개발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한 방식대로 1899년 Gew98을 기반으로 탄생한 카빈이 Karbiner98, 즉 Kar98이다. 총신이 줄어들어서 말에 탄체 사용하기는 좋았지만 반동 제어가 어려워 곧바로 개량에 들어갔다. 1908년 문제점을 개선한 Kar98az은 제1차 대전 당시에 기병뿐만 아니라 산악병, 공병, 포병, 지원부대 등이 애용하는 소총이 되었다.

    작동 편이를 위해 끝부분이 아래로 꺾인 볼트와 거리별로 목표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탄젠트 조준기의 모습. < (cc) Capttenneal at Wikimedia.org >
    작동 편이를 위해 끝부분이 아래로 꺾인 볼트와 거리별로 목표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탄젠트 조준기의 모습. < (cc) Capttenneal at Wikimedia.org >

    제1차 대전 후, 전훈을 참조해 총열을 늘려 사거리와 정확도를 향상시킨 Kar98b이 개발되었다. 엄밀히 말해 Gew98로 회귀한 셈이었지만 베르사유 조약에서 개발이 용인된 카빈으로 속이기 위한 작명이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재무장 선언 직후 Kar98k가 개발되어 보급이 시작되었다. 기존 탄약과 부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성능도 충분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소총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소총을 개량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돌격소총처럼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소총은 어지간한 성능이면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소총으로 교전을 벌일 상황이나 조건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의 도입을 시작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열강들의 제식 소총이 제1차 대전 당시 사용한 것이나 개량형 정도여서 Kar98k로 전력 균형을 유지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구조가 단순한 편이어서 생산이 용이했고 잔고장이 적어 야전에서 신뢰성이 높았다. < (cc) Mauseraction at Wikimedia.org >
    구조가 단순한 편이어서 생산이 용이했고 잔고장이 적어 야전에서 신뢰성이 높았다. < (cc) Mauseraction at Wikimedia.org >

    다만 연사력이 떨어지는 볼트액션 방식은 독일군의 기본 전략으로 기동전을 연구하는 군부에게 아쉬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독일은 소부대의 기본 화력은 MG34 같은 다목적기관총이 담당하고 Kar98k는 이를 보조하는 전술을 채택했다. 여기에 접근전 등에서는 기관단총이 앞장서는 형태를 가미했다. 일선 보병의 무장과 소모품이 이리저리 나뉘는 단점이 있었지만 당시 여건으로는 어쩔 수 없던 차선책이었다.

    이런 문제는 돌격소총이 등장하면서 정리되지만 제2차 대전 당시에는 비단 독일군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나라 군대의 공통적인 고민이었다. 그래서 Kar98k은 선전물이나 영화 등에서는 시각 효과가 좋은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이 먼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제2차 대전 초기의 대승을 이끌었고 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독일군의 주력이었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진압 당시에 건물에 은폐해서 Kar98k로 사격 중인 독일군 병사. < Public Domain >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진압 당시에 건물에 은폐해서 Kar98k로 사격 중인 독일군 병사. < Public Domain >


    특징

    Kar98k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이나 독일의 영향을 받는 국가들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7.92×57mm 규격의 마우저(Mauser) M98 탄환을 사용한다. 한 발씩 장전할 수도 있지만 대개 5발 장착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한다. 노리쇠는 끝부분이 꺾인 형태로 개선되어 작동하기 편리하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단순한 편이어서 생산이 용이했고 잔고장이 적어 야전에서 신뢰성이 높았다.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해 장탄하는 모습. < (cc) Michael E. Cumpston at Wikimedia.org >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해 장탄하는 모습. < (cc) Michael E. Cumpston at Wikimedia.org >

    볼트액션 소총의 연사력은 사수의 능력에 크게 좌우되지만 Kar98k는 기계적 성능이 우수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연사가 쉬운 소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대 사거리는 2,700m, 유효 사거리가 400~500m 수준으로 탄젠트 조준기를 채택해서 거리별로 사격의 정확도가 뛰어났다. 저격수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스코프를 장착해 정밀도를 높였다. 다만 무게가 3.9kg이어서 휴대가 그리 편리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처럼 제1, 2차 대전을 비교하면 무기 분야에서 괄목상대할 변화가 있었지만 소총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 돌격소총이 1940년대 초반에 탄생했을 만큼 당시에 이미 충분한 기술력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50여 년 전에 개발된 소총을 기반으로 한 Kar98k은 사실 독일군의 상징인 전격전과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소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두가 같은 상황이어서 크게 문제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Kar98k에 4배율 자이스 ZF39 조준경을 장착한 독일군 저격수 < Public Domain >
    Kar98k에 4배율 자이스 ZF39 조준경을 장착한 독일군 저격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Kar98k은 1935년부터 독일이 패망한 1945년까지 약 1,460만 정 이상이 생산되었다. 최초 생산은 개발자인 마우저와 J.P. 사우어 운트 손(J.P. Sauer und Sohn)에서 담당했으나 제2차 대전 발발 후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자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업체를 포함해 총 8개사 10개 공장에서 쉼 없이 만들어 냈다. 당연히 독일군(무장친위대 포함)에 우선 배치되었고 핀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동맹국에도 공급되었다.

    1941년 9월 그리스 전선에서 Kar98k로 무장하고 행군 중인 독일군. < Public Domain >
    1941년 9월 그리스 전선에서 Kar98k로 무장하고 행군 중인 독일군. < Public Domain >

    Kar98k은 소련의 모신나강, 영국의 리엔필드, 미국의 M1 개런드와 더불어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소총이다. 독일군이 활약한 곳이면 반드시 등장한 필수적인 무기였다. 패전 후 독일이 분단되고 각각 NATO와 바르샤바 조약국의 일원이 되면서 제식 소총에서 물러났지만 의장대용 등으로 지금도 일부 사용 중이다. 많은 물량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한국전쟁 당시에 중공군이, 베트남전쟁 당시에 북베트남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1948년 발발한 제1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스라엘군이 Kar98k을 사용했다. 당시 아랍 국가들을 친서방이라고 보았던 소련은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영향력 확장을 위한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기득권을 가진 영국, 프랑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된 무기를 공급했는데 이때 많은 Kar98k이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태인을 탄압했던 나치 독일의 도구가 이스라엘 독립의 수단이 된 것이었다.

    Kar98k로 무장한 독일연방군 의장대 < Public Domain >
    Kar98k로 무장한 독일연방군 의장대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Kar98k: 기본형

    < Public Domain >
    < Public Domain >

    G24(t):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사 생산형

    < (cc) Szuyuan huang at Wikimedia.org >
    < (cc) Szuyuan huang at Wikimedia.org >

    중정식(中正式): 중국 면허생산형

    < (cc) Kampfer Lin at Wikimedia.org >
    < (cc) Kampfer Lin at Wikimedia.org >

    G40k: 산악부대용 총신 단축형

    < (cc) Gebripe at Wikimedia.org >
    < (cc) Gebripe at Wikimedia.org >



    제원

    제작사: 마우저 외
    구경: 7.92m
    탄약: 7.92×57mm M98
    급탄: 5발 들이 스트리퍼 클립
    전장: 1,110mm
    총열: 600mm
    중량: 3.7~4.1kg
    유효 사거리: 500m
    작동 방식: 볼트액션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Kar98k 소총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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