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T28 초중전차
때를 놓쳐 등장하지 못한 강철의 괴수
  • 윤상용
  • 입력 : 2020.10.05 08:50
    1946년 10월 3일, 에버딘(Aberdeen) 시험장에서 촬영된 T28 초중전차. (출처: US Army Signal Corps)
    1946년 10월 3일, 에버딘(Aberdeen) 시험장에서 촬영된 T28 초중전차. (출처: US Army Signal Corps)


    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돌입하던 1944년 8월,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노르망디(Normandy) 상륙에 성공하면서 그동안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서유럽에 다시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제 독일 본토로 역습을 가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반도를 중심으로 서 유럽권 탈환 준비에 들어가자 히틀러는 일찍이 1930년대에 프랑스 마지노(Maginot) 선에 대항하여 구축했던 서벽(西壁), 통칭 “지그프리드(Siegfried)” 방어선을 마저 완성 시킬 것을 명령했다. 독일은 20,000명이 넘는 강제 노역자와 14세~16세 소년들로 이루어진 국가노동봉사단(Reichsarbeitsdienst)을 투입해 방어선을 재정비했으며, 전선을 따라 세운 방벽, 용치(龍齒: 대전차 방호시설), 대전차 호, 벙커 시설 등을 손 보았다.

    오늘날 남아있는 지그프리드 라인의 일부 모습. (출처: Ralf Houven/Wikimedia Commons)
    오늘날 남아있는 지그프리드 라인의 일부 모습. (출처: Ralf Houven/Wikimedia Commons)

    미군 역시 사전에 이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므로 향후 유럽 대륙으로 진공하게 될 경우 독일군이 독일 본토 방어를 위해 지그프리드 라인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며, 이 방어선 돌파를 위한 전투가 가장 처절한 격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미 육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돌파용 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 육군은 갈수록 독일군 전차 장갑이 두터워지고 있었고, 유럽 본토에 발을 디디게 되면 요새화된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으므로 이에 대항할 강력한 중화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구경 포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4.1인치(105mm) 구경의 T5E1 강선포의 개발이 거의 완료되고 있었으므로 미 육군은 이를 전선에서 활용하고자 했다.

    지그프리드 라인은 1940년대 독일의 본토 서쪽 방어선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의 마지노 선과 마주 보고 있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지그프리드 라인은 1940년대 독일의 본토 서쪽 방어선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의 마지노 선과 마주 보고 있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미 육군은 105mm 포를 얹어 적 진지와 요새, 방어선을 돌파할 강력한 화력을 가진 돌격전차(Assault Tank) 도입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차 제식 번호로 T28을 부여했으며, 기동성은 다소간 포기하더라도 최대한의 화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미군은 앞서 개발 중이던 105mm T5E1포를 시험하면서 성능에 만족했으며, 특히 콘크리트를 상대로 파괴력이 뛰어나 적 요새를 격파하는 데 효과가 탁월할 것으로 예상했으므로 최대한 T5E1포를 활용하고자 했다. 한편 연합군은 1944년 8월 말부터 지그프리드 라인과 맞닥뜨렸으며, 아헨(Aachen) 동남쪽 20km 지점의 휘르트겐 삼림(Hurtgenwald) 지대를 중심으로 양군이 대대적으로 충돌했다. 특히 1944년 9월 19일부터 치러진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 미군은 거의 14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음에도 방어선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구경 포를 갖춘 전차 도입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미 육군은 신형 돌격전차 개발을 서둘렀으며, 총 25대의 차량을 양산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개발비나 운용 효과 등을 놓고 미 병기단과 미 육군 수뇌부가 이견을 보임에 따라 1944년 3월 양측이 회의를 실시해 총 5대 도입으로 수량을 줄였으며, 제조업체로는 중장비 차량 제조업체인 퍼시픽 카 앤드 파운드리(Pacific Car & Foundry, 現 PACCAR)가 선정됐다.

    지그프리드 라인은 1940년대 독일의 본토 서쪽 방어선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의 마지노 선과 마주 보고 있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약 1년에 걸쳐 설계와 개발을 진행한 퍼시픽 카 앤 파운드리 사는 1945년 3월 최종 설계를 육군에 제출했으며, 미 육군은 이 “T28” 돌격전차의 설계 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연합군이 지그프리드 라인을 돌파해 T28의 도입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사실상 1945년 4월부터 독일의 패배가 거의 확실시되자 미 육군은 방침을 바꿔 T28 전차를 일본군이 미 서부 해안에 상륙할 경우를 대비한 방어용으로 운용하기로 해 퍼시픽 카 또한 1945년 8월까지 차체 제작을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퍼시픽 카는 당초 계약대로 8월까지 첫 시제 차량을 완성했으나 8월 중순을 기해 일본이 사실상 항복함에 따라 전쟁이 끝나버렸고, 이와 동시에 T28의 도입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미 육군은 이미 업체가 개발비를 들여 전차를 제작하고 있었으므로 다섯 대를 도입하기로 했던 것을 두 대로 나마 줄여 획득하기로 했다. 퍼시픽 카는 1945년 말까지 두 대의 차량을 모두 완성하여 미 육군에 납품했지만, 이미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T28이 환영받을 곳은 없었다. 특히 전쟁 기간 중 엄청난 전비를 지출한 미 정부는 1947년을 기점으로 초중전차 및 중전차 개발을 전면 중단했으며, 뿐만 아니라 냉전이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전차의 기술과 개념이 한층 발달했으므로 더 이상 T28이 설 전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징

    켄터키주 포트 녹스(Fort Knox)의 패튼 박물관에서 촬영한 T28 전차의 좌측면 모습. 차체와 포탑이 일체화된 독특한 설계이다. (출처: Mark Holloway/Wikipedia.org)
    켄터키주 포트 녹스(Fort Knox)의 패튼 박물관에서 촬영한 T28 전차의 좌측면 모습. 차체와 포탑이 일체화된 독특한 설계이다. (출처: Mark Holloway/Wikipedia.org)

    T28의 기본 구조와 골격은 미 육군이 앞서 76mm 포와 수평 볼류트(volute) 스프링 현가장치(Horizontal Volute Spring Suspension, HVSS) 및 토션 바(Torsion Bar)를 시험했던 T23 전차 설계에서 가져왔으며, 최초 계획으로는 시제 차량 5대와 양산 차량 25대를 개발해 유럽 전선, 특히 지그프리드 라인에 투입하고자 했다. 워낙 중량이 많이 나가는 전차였으므로 접지압(接地壓)을 낮춰 궤도가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만들기 위해 좌우 캐터필러를 2중으로 설치했으며, 각각의 캐터필러는 최대한 포와 포탑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앞뒤로 길게 설계했다. 하지만 주행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기 때문에 철도를 이용하여 전차 수송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두 줄의 캐터필러 중 바깥쪽 캐터필러는 약 두 시간이면 간단하게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바깥 캐터필러가 제거되면 바퀴는 고정시킨 상태로 뒤에서부터 견인이 가능했다.

    T28 전차의 뒷면. 2중으로 된 캐터필러가 독특한 설계로, 이는 전차의 중량 때문에 접지압이 높아져 차륜이 잘 굴러가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하중을 분산시킨 것이다. 바깥쪽 캐터필러는 쉽게 탈부착이 가능하다. (출처: Greenscag/Wikipedia.org)
    T28 전차의 뒷면. 2중으로 된 캐터필러가 독특한 설계로, 이는 전차의 중량 때문에 접지압이 높아져 차륜이 잘 굴러가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하중을 분산시킨 것이다. 바깥쪽 캐터필러는 쉽게 탈부착이 가능하다. (출처: Greenscag/Wikipedia.org)

    T28은 중량이 100톤에 육박하는 ‘괴물’이었으므로 기동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엔진으로는 가솔린식 500마력 급 포드 GAF V-8 엔진을 설치해 무거운 중량에 비해 출력이 심하게 낮았으므로 기동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최고 속도는 13km/h에 불과해 사실상 장애물 극복이나 도하(渡河)는 불가능했으며, 당대의 기술로 만든 임시 가교도 T28의 중량을 버틸 수 없었다. 따라서 T28을 수송할 경우 철도를 이용하더라도 중간에 가교 등의 구조물은 100톤 하중을 버티기 힘든 곳이 많아 실질적으로 야전에서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초중전차를 해외로 수송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았으므로 양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미 육군은 T28의 효용성에 의문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단 시제 차량까지만 만든 후 성능과 효과를 보고 양산 단계로 넘어갈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까이에서 본 T28 전차의 포탑 부분. 맨틀 부분이 원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다. (출처: Pahcal123/Wikipedia.org)
    가까이에서 본 T28 전차의 포탑 부분. 맨틀 부분이 원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다. (출처: Pahcal123/Wikipedia.org)

    T28에는 다른 일반 전차와 같은 회전식 포탑을 채택하지 않았으며, 대신 독일군의 야크트판저(Jagdpanzer) 계열처럼 차체와 일체형으로 설계한 포대형 포탑을 채택해 전차의 실루엣이 덜 드러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T28의 주포는 105mm T5E1포를 설치했으며 맨틀(mantle: 포탑과 포신 연결부)은 원형으로, 포탑 전면부는 반원형으로 설계했다. 주포인 105mm의 T5E1 강선포는 중량이 2,383kg를 자랑하며, 사격 속도는 분당 6발, 포구 속도는 945m/s, 최대 사거리는 1,829m까지 도달했다. T28에 회전포탑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초중전차의 개념 자체가 무거운 중량과 강력한 주포를 장착해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가 적 요새나 방어선을 돌파할 목적이었으므로 포신을 회전시키기보다는 안정성을 택했으며, 포신은 좌우로 약 10도, 위로 19.5도, 아래로 -5도 정도만 움직일 수 있었고 포탑 회전 시 포신은 무조건 최고각으로 들어 올린 채로 회전했다. 주무장 외에는 0.5구경 브라우닝(Browning) M2 중기관총이 승무원 해치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차는 보통 5명의 승무원(전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무전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T28은 현대의 전차와 동일하게 무전수를 뺀 4명이 탑승하도록 설계했다.

    T28 초중전차의 내부 도해 <출처: Public Domain>
    T28 초중전차의 내부 도해 <출처: Public Domain>

    T28의 속도를 저해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장갑이다. T28의 장갑은 당대 전차와 비교해 매우 두터운 편으로, 전면 장갑 두께만 305mm에 달했다. T28의 전차 포 무게와 차체 자체 무게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졌으므로 아예 기동을 최소화하여 공격에만 집중하는 동안 독일군 전차와 구축전차가 주력으로 활용한 88mm 포를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차체의 하부 전면 장갑 두께는 130mm, 측면 장갑은 64mm에 달했으며 차체 하부와 현가장치는 100mm 두께의 강철 스커트로 감쌌다.

    T28 초중전차의 내부 도해 <출처: Public Domain>


    운용 현황

    T28이 종전 후 양산 및 실전 운용되지 못한 이유는 복잡한 설계에 따른 유지 관리 비용 문제, 그리고 낮은 엔진 출력에 따른 느린 속도와 100톤에 달하는 중량 때문에 이동성에 제약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포탑이 회전하지 않는 T28은 ‘전차’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에 1945년 말에 전차 제식 번호를 재 지정했다. 미 육군은 T28을 구축전차 계열로 분류하면서 “T95 자주포(Gun Motor Carriage)”로 명명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1946년에는 ‘구축전차’ 분류마저 T28의 특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구분이라는 지적이 뒤따랐으며, 이 전차는 특수한 무장과 중(重)장갑이 더해진 유일무이한 종류의 전차였으므로 이 전차 자체를 독립적으로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초중전차(超重戰車: Super heavy tank)”로 분류하고 제식 번호도 1946년 6월부로 다시 T28로 환원시켰다.

    최초 T28은 지그프리드 라인을 돌파하기 위해 개발됐다. (출처: Public Domain)
    최초 T28은 지그프리드 라인을 돌파하기 위해 개발됐다. (출처: Public Domain)

    제조사인 퍼시픽 카 앤 파운드리사는 두 대의 시제 차량을 완성했으며, 이들 차량은 미국 메릴랜드 주의 애버딘(Aberdeen) 시험장 및 켄터키 주 포트 녹스(Fort Knox)로 이전되어 1947년까지 시험 평가를 진행했다. 하지만 1947년 애리조나 주 유마(Yuma) 시험장에서 시험 평가 중이던 시제 차 한 대의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차량이 파손됐고, 미 육군은 결국 화재 차량의 수리를 포기하고 고철 상태로 폐기 처분했다. 이후에도 한 대 남은 T28로 시험 평가는 계속 진행했으나 미 육군이 T28에 대한 시험 평가를 끝냈을 무렵에는 이미 초중전차라는 개념의 전차는 자리 잡을 곳이 없었고, 전차 설계도 노후한 1930년대 말 설계였기 때문에 미 육군이 마저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T28의 유지 보수 비용이 엄청나 예산 부담이 예상됐고, 중량 또한 100톤이 넘어 해외 수송도 어려웠으므로 실질적으로 운용할 장소도 마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구성은 워낙 튼튼한 전차였으므로 전차에 들어갈 구성품의 내구도 시험용으로는 적합해 남은 기간 동안 한 대 남은 시제 차량은 전차 구성품 개발 및 테스트용으로 활용됐다. 미 육군은 T28 외에도 포탑 장착형 중전차인 T29나 86톤 급 T30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으나 1947년 10월 자로 미 전쟁부(1947년 미 육군부로 개청했으며, 상위 기관으로 국방부를 설치)가 중(重)전차급 이상의 개발을 모두 취소하기로 하면서 T28, 29, 30의 개발 사업이 모두 중지됐다.

    1947년 에버딘 시험장에서 기동 중인 T30 전차의 모습 <출처: US Army>
    1947년 에버딘 시험장에서 기동 중인 T30 전차의 모습 <출처: US Army>

    이후 T28의 존재는 모두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혔으나 초중전차 사업이 중단된 지 27년 뒤인 1974년 버지니아주 포트 벨부아(Fort Belvoir)에서 방치된 차량 한 대가 수풀 속에 위장된 상태로 녹슨 채 발견됐다. 해당 차량은 켄터키 주 기병 및 기갑 박물관(Museum of Cavalry and Armor)으로 이전되어 전시하다가 2011년에 조지아 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으로 옮겨 새로 조성한 패튼 공원(Patton Park) 내에 전시했다. 하지만 2017년 1월, 차량 보수를 위해 공원에서 이동하고자 오쉬코쉬(Oshkosh) M1070 HET 전차 수송 트레일러로 옮기던 중 경사로에서 안전장치가 풀려 차량이 트레일러 밖으로 빠져나와 배수구 속으로 전복됐다. 해당 전차는 이 사고로 일부 파손됐으나 수리를 거친 후 다시 전시 중이다.

    패튼(Patton) 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T28의 모습. 2007년 6월 경에 촬영된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패튼(Patton) 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T28의 모습. 2007년 6월 경에 촬영된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파생형

    T28: 최초 지정된 초중전차의 제식 번호.

    T28 전차의 초기 모습 <출처: Public Domain>
    T28 전차의 초기 모습 <출처: Public Domain>

    T29: 1944년부터 개발이 진행된 전차로, 사실상 T28과 동일한 개념의 전차였으나 포탑 회전이 불가능한 T28과 달리 회전포탑을 채택했고 중량이 64.2톤으로 T28보다 가벼웠다. T26E3/M26 “퍼싱(Pershing)” 전차가 독일군의 티거(Tiger) II 전차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개발이 진행됐다. 1947년 미 전쟁부에서 중전차 이상의 개발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사업이 종료됐으며, 시제 차량만 8대가 개발됐다.

    T28보다 가볍게 설계했으며, 포탑을 회전식으로 제작한 T29E3 중전차. (출처: Wikimedia.org)
    T28보다 가볍게 설계했으며, 포탑을 회전식으로 제작한 T29E3 중전차. (출처: Wikimedia.org)

    T30: 1944년부터 개발에 돌입한 중전차로, 독일국방군의 티거 I, II 및 야크트티거(Jagdtiger)에 대항하기 위해 T29와 병행하여 개발이 진행됐으며, 차체 자체는 T29와 동일한 설계였다. T28과 T29에는 105mm 주포가 장착된 반면 T30에는 155mm 주포가 설치됐으며, 중량도 86톤으로 T29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출력이 큰 엔진이 설치되어 크고 무거워진 주포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총 두 대의 시제 차량이 개발되었다가 한 대만 자동급탄장치를 설치한 T30E1으로 개량했으나 1947년 중전차 사업 모두를 전면 중단하면서 개발이 중지됐다. 시제 차 한 대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Fort Benning, GA)에, 다른 한 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포트 잭슨(Fort Jackson, SC)에 전시되어 있다.

    155mm 주포를 장착한 T30 시제전차 (출처: Public Domain)
    155mm 주포를 장착한 T30 시제전차 (출처: Public Domain)

    T95 105mm포 자주포: T28을 자주포로 분류하면서 1945년 말에 지정했던 제식 번호.

    T95로 재분류된 이후 촬영된 모습 (출처: Public Domain)
    T95로 재분류된 이후 촬영된 모습 (출처: Public Domain)

    T28 초중전차: T95를 별도 등급의 “초중전차”로 분류하면서 1946년에 다시 변경한 제식 번호.

    T28 초중전차. 사진은 1951년 애버딘 시험장에서 촬영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T28 초중전차. 사진은 1951년 애버딘 시험장에서 촬영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제원

    제조사: 퍼시픽 카 앤드 파운드리(Pacific Car and Foundry, 現 PACCAR)
    용도: 구축전차/초중(超重)전차
    탑승 인원: 4명(전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전장: 11.1m
    차체 길이: 5.84m
    전폭: 4.39m
    전고: 2.84m
    중량: 95톤
    출력체계: 포드(Ford) 500마력 GAF V-8 가솔린 엔진(372kW)
    현가장치: 더블 트랙, 수평 볼류트 스프링 현가장치(HVSS)
    출력 대비 중량: 5.8마력/톤
    항속 거리: 160km
    최고 속도: 13km/h
    장갑: 305mm
    주 무장: 105mm T5E1포(62발 적재)/최대 사거리 1,829m(2,000야드)
    부 무장: 12.7mm 브라우닝(Browning) 중기관총(660발)
    포신 각: 좌우 10˚, 상하 +19.5˚ ~-10˚
    제작 대수: 2대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T28 초중전차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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