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YAK-38 수직이착륙 전투기
‘해리어’에 맞선 공산 진영의 라이벌
  • 윤상용
  • 입력 : 2020.09.01 08:44
    러시아 붉은해군 태평양함대의 키예프(Kiev)급 순양항모인 노보로시스크함에서 수직 이함 중인 YAK-38 전투기. 1984년 경에 촬영됐다. (출처: RIA Novosti/Wikimedia Commons)
    러시아 붉은해군 태평양함대의 키예프(Kiev)급 순양항모인 노보로시스크함에서 수직 이함 중인 YAK-38 전투기. 1984년 경에 촬영됐다. (출처: RIA Novosti/Wikimedia Commons)


    개발의 역사

    냉전(冷戰)의 시작과 함께 서방 자유 진영과 동구권 공산 진영 간의 군비 경쟁이 첨예화 하면서 항공 기술 역시 1950년대 이후부터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동서 양 진영은 활주로가 필요 없는 단거리 이착륙 혹은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항공기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수직이착륙 기술이 구현된다면 활주로 길이가 짧거나 활주로가 아예 없는 지역에서도 항공 전력을 전개하여 운용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1947년대부터 수직이착륙 기술을 개발하면서투르보레트(Turbolet)라는 시험 장치를 제작했으며, 여기에 MiG-19에서 떼어낸 RD-9BL 엔진을 아래 방향으로 설치한 후 수직 이륙이 가능한지 시험했다. 이 장치에는 수직 이륙 시 안정성 통제를 위해 회전식 추력 장치 4개를 비행 틀의 네 곳에 장착했으며 이를 조종하여 방향을 움직였으므로 사실상 오늘날 쿼드콥터(quadcopter) 드론과 유사한 개념이었다. 시험 장치는 성공적으로 헬기처럼 호버링에는 성공했으나 전진 비행을 위한 수평 추진 장치는 없었으므로 실험은 그 상태로 종료했다.

    소련이 개발했던 투르보레트 수직이착륙 시험비행체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이 개발했던 투르보레트 수직이착륙 시험비행체 <출처: Public Domain>

    한편 소련의 OKB-115 “야콜레프(Yakolev)” 설계국은 1957년부터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제트 엔진을 활용한 훈련기 개발에 착수하면서 YAK-104로 명명했으며, 엔진은 AM-5 엔진을 개량한 R5-300을 선택했다가 R5-45 엔진을 개발하여 장착하기로 결정하면서 1957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갔다. 이 설계안은 1957년 7월 소련 공군에게 제출되어 검토에 들어갔으며, 11월에 테스트 모델이 제작되어 풍동(風洞: wind tunnel) 시험을 거쳤다. 1957년 7월 17일에는 YAK-104의 목업(Mock-up) 모델까지 제작됐지만 R5-45 엔진 개발 계획이 급작스럽게 취소됨에 따라 YAK-104 계획도 함께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1958년 7월 31일, 소련 연방장관 회의는 854-404로 명명한 YAK-104 개발 계획을 다시 조건부로 추진하도록 결의하면서 이번에는 RU-19-300 엔진으로 바꿔 설계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YAK-104는 YAK-30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험제작되었으나 사업에서 탈락했다. <출처: Yevgeny Lebedev / russianplanes.net>
    YAK-104는 YAK-30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험제작되었으나 사업에서 탈락했다. <출처: Yevgeny Lebedev / russianplanes.net>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Warsaw Treaty Organization) 가맹국 전체에 공급할 훈련기 도입 계획을 추진했는데, 이때 OKB-115 야콜레프 설계국은 이 WTO 공용 훈련기 사업에서 우선 계약자로 선정돼야 향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을 상대로 전 항공기 분야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YAK-17UTI 설계를 변경한 훈련용 기체 개발에 들어갔다. YAK-104는 앞서 소련 연방장관 회의에서 지정한 RU-19-300 터보 제트 엔진을 기본 엔진으로 장착했으며 별도로 두 대의 RU-19 엔진을 공기 흡입구 사이에 수직으로 설치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총 4대의 시제기(각각 콜사인 “30”, “50”, “80”, “90”기)가 개발되자 야콜레프는 항공기 명칭도 YAK-30으로 변경했으며, 동체 전체에 경(輕) 합금을 사용하여 중량을 낮추고 최대한 제작 공정이 단순하면서도 제작 단가를 낮출 수 있게끔 설계했다. 야콜레프는 기체 피로도 검사를 위한 기체 한 대와 비행 가능한 4대를 제작했으며, 1960년 5월부터 1961년 3월까지 공장 시험을 완성하고 순조롭게 개발을 진행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공용 훈련기 사업은 야콜레프의 YAK-30 외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참여해 폴란드의 PZL사는 TS-11 이스크라(Iskra)를 제안했고, 체코의 아에로(Aero)사는 L-29 델핀(Delfin)을 제안해 3자 경쟁 체제로 들어갔다. 사업은 이스크라가 초기에 탈락하면서 L-29와 YAK-30의 경쟁 구도가 됐으나 YAK-30 쪽이 중량도 가벼운 데다 성능도 우위에 있고 기동성까지 좋았으므로 유리한 입장에서 사업을 리드했다. 하지만 사업의 최종 선정은 정치적으로 내려져 체코제 L-29가 사업에서 선정됨에 따라 델핀이 폴란드를 제외한 전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에 훈련기로 공급되게 되었다. 야콜레프 설계국은 사업 탈락과 동시에 YAK-30의 개발도 전부 폐기했다.

    YAK-38 청사진. (출처: Public Domain)
    YAK-38 청사진. (출처: Public Domain)

    야콜레프 설계국은 이후 수직이착륙 항공기에 대한 관심을 잠시 접었지만 1950년대 말 영국이 추진한 P.1127 항공기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다시 수직이착륙기에 대한 관심이 불붙었다. 훗날 AV-8 해리어(Harrier)의 기본 형상이 된 P.1127 개발이 서방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자 소련 역시 본격적으로 수직이착륙 항공기 개발에 착수했으며, 1961년 소련 정부가 야콜레프와 단좌식 수직/단거리 이착륙(V/STOL) 항공기 개발 계약을 체결하자 야콜레프 설계국은 기수에 대형 엔진 흡입구를 설치한 쌍발 엔진 방식의 항공기를 제안했다. 이 수직이착륙 항공기는 엔진과 회전식 노즐을 모두 동체 전방에 넣고, 각각의 노즐을 각 엔진과 연결해 항공기 중심부의 양옆에서 수직 추진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항공기 개발을 진행했다. 수평비행용 엔진의 추진구에도 추력편향(推力偏向) 기술을 적용해 아래를 향할 수 있게 했으며, 이륙 시의 추진력을 위해 미익과 주익 양 끝에는 압축 공기 추진기를 장착하고, 지향성 기동을 위해 기수에는 뿔처럼 튀어나온 센서가 장착됐다. 소련 정부는 YAK-36(NATO 코드 네임은 “프리핸드[Freehand])”로 명명한 이 항공기를 기술 시연기 성격으로 총 4대를 주문했으며, 이에 따라 4대의 항공기가 1962년에 제작되었다. 소련은 수직 이착륙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장비를 시험하였으며, 이를 통해 수직이착륙 간 안정성과 통제성에 중심을 두고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술의 진전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면서 수직 이륙 후 전진 비행으로 전환하기까지 5년이 걸렸으며, 다시 수직 이륙 후 한 바퀴 비행을 한 뒤 수직 착륙을 하는 비행 경로를 완수한 것은 1966년 3월 24일이었다. 소련 정부는 YAK-36의 성능이 비교적 우수하게 나옴에 따라 고무되었으나, 전투기로 활용하기에는 항속거리와 탑재중량이 너무 적게 나와 실전에서 쓸 전투기는 YAK-36의 기술을 활용하여 별도의 전투기 형상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야콜레프 설계국은 1967년부터 YAK-36을 바탕으로 한 함상 전투기인 YAK-36M의 개발을 추진했다. 특히 당시 소련의 붉은 함대는 1960년대에 취역시킨 모스크바급 헬기 항모를 시작으로 한창 해군 항공 전력을 육성하는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미 해군의 슈퍼캐리어(Super Carrier) 같이 갑판이 긴 초대형 항공모함을 건조하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더더욱 VTOL 항공기 도입에 높은 관심을 가졌다.

    기수에 독특한 형태의 엔진 흡입구를 가진 YAK-36 '프리핸드' 시제기 2번 기. 1967년 7월 도모데도보(Domodedovo) 에어쇼 직전 비행 연습 중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Gos.Levibor)
    기수에 독특한 형태의 엔진 흡입구를 가진 YAK-36 '프리핸드' 시제기 2번 기. 1967년 7월 도모데도보(Domodedovo) 에어쇼 직전 비행 연습 중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Gos.Levibor)

    야콜레프 설계국의 대부분 엔지니어들은 전투기 형상으로 VTOL 항공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해리어와 마찬가지로 수평비행용 엔진과 리프트용 엔진이 일체화된 설계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나, 부수석 디자이너이던 S.G. 모르도빈(Mordovin)은 단일 엔진 대신 한 개의 제트 엔진과 두 개 정도의 리프트 엔진을 하나로 통합한 추진체계를 개발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결국 후자의 주장이 채택되면서 YAK-36M 개발의 기본 방침이 되었으며, 동체 전체도 더 얇고 주익 길이도 짧게 변경했다. 수직 미익은 한 개로 유지된 반면 수평 미익은 아래로 쳐진 형태가 채택됐으며, 수평비행용 엔진과 리프트 엔진이 분리되어 장착됨에 따라 엔진 공기흡입구도 재설계됐다. 항공기는 수평 비행을 실시할 경우 출력이 큰 수평비행용 엔진을 활용하며, 두 개의 소형 리프트 엔진은 기수 조종석 측면에 아래 방향으로 설치되어 순전히 이착륙 시에만 사용하게 했다. YAK-36M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키예프(Kiev)급 중(重) 항공순양함(Тяжелые авианесущие крейсера/Heavy Aviation cruiser)에서 운용하기 위해 개발했으므로 주익을 접을 수 있게 제작했고 항모 착함을 위해 강화된 랜딩기어를 장착하는 등 함재기 용도로 특화된 개조가 가해졌다. 소련 해군이 키예프급으로 모함을 지정한 이유는 이 키예프급 항모가 하이브리드형 함정으로 설계되었으므로 갑판 길이가 살짝 짧은 대신 대잠 전용 헬기나 일반 함정용 무장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어 한 척을 다목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키예프급은 비행 갑판 끝에 스키점프대를 설치하고 VTOL기를 배치함으로써 모자란 비행 갑판 활주 길이를 상쇄했다.

    기수에 독특한 형태의 엔진 흡입구를 가진 YAK-36 '프리핸드' 시제기 2번 기. 1967년 7월 도모데도보(Domodedovo) 에어쇼 직전 비행 연습 중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Gos.Levibor)

    YAK-36M은 소련 정부로부터 수락 승인이 떨어진 후 양산 단계로 넘어갔으며, 기체 제식 번호는 YAK-38로 재지정했다. YAK-38 시제기는 1971년 초에 시험 비행에 성공했으며, 이착륙 절차는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설계해 조종사의 비행 부담을 덜었다. 이후 5년여에 걸쳐 비행 시험을 거친 YAK-38은 시 해리어(Sea Harrier)보다 3년 빠른 1976년 실전 배치에 들어갔으며, YAK-38의 존재를 식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는 식별을 위한 코드네임으로 “포저(Forger: ‘위조범’이라는 뜻)”를 선택했다. 양산용으로 개발된 YAK-38은 해리어와 마찬가지로 아음속 비행까지만 가능했으며, 수직으로 설치한 두 개의 이착륙용 엔진과 한 개의 RD-27 추력편향 엔진이 장착됐다. YAK-38은 1976년 8월부터 소련 해군 항공대에 배치되면서 실전 운용에 들어갔다.


    특징

    A.S. 야콜레프 설계국(ОАО Опытно-конструкторское бюро им. А.С. Яковлева)에서 개발한 YAK-38은 최초 초음속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목표로 했으며, VTOL 이륙 방식은 서방의 경쟁작이던 호커(Hawker) P.1154와 유사하게 설계했다. 하지만 호커 P.1154(및 훗날의 해리어)는 한 개의 엔진을 활용하여 수평 비행과 수직 이착륙을 실시하는 반면, YAK-38은 수직으로 설치된 두 개의 R27-300 엔진을 따로 탑재해 수직 이착륙을 실시했으므로 중량 문제가 더해졌다. 따라서 초음속 비행이라는 개발 목표는 엔진 채택과 함께 제외됐다. 야콜레프 설계국은 목표 최고 속도를 마하 0.95 이하로 잡았다. YAK-38 및 YAK-38M은 모두 앞서 개발한 YAK-36을 기본 베이스로 삼아 개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설계 과정에서 모든 것이 변경되었으므로 YAK-36과 동일한 부분이 거의 없다.

    YAK-38의 수직이착륙 개념도. 수평 비행을 위한 엔진은 추진구의 노즐을 아래 방향으로 꺾을 수 있으며, 기수 전방에는 수직 이륙을 위한 별도의 리프트(lift) 용도의 엔진이 두 기가 실려 있었다. (출처: Tosaka/ Wikimedia Commons)
    YAK-38의 수직이착륙 개념도. 수평 비행을 위한 엔진은 추진구의 노즐을 아래 방향으로 꺾을 수 있으며, 기수 전방에는 수직 이륙을 위한 별도의 리프트(lift) 용도의 엔진이 두 기가 실려 있었다. (출처: Tosaka/ Wikimedia Commons)

    1970년 4월에 완성된 시제기 1번기인 VM-01기는 외관상 해리어와 매우 흡사하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기술과 방식을 사용하여 제작됐다. 우선 엔진 추진구에 추력편향(推力偏向) 기술이 적용되어 엔진 추진구가 하방으로 꺾이도록 했으며, 동체 앞부분에는 오로지 수직이착륙 용도의 엔진을 기수 쪽에 별도로 장착했다. 또한 엔진은 컴퓨터가 통제하도록 설계하여 수직 이착륙 간 정확한 계산에 따라 항공기의 추력이 배분되게 했다.

    아래로 틸트(tilt) 된 YAK-38M의 후방 엔진. (출처: George Chernilevsky/Wikimedia Commons)
    아래로 틸트(tilt) 된 YAK-38M의 후방 엔진. (출처: George Chernilevsky/Wikimedia Commons)

    YAK-38은 사출좌석 또한 독특한 구조로 설계됐는데, 좌석 자체가 기수 전방에 설치된 리프트 엔진과 통합되게 설계하여 항공기가 스톨(stall)에 빠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사출좌석은 수직 추진 엔진과 함께 안전하게 사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이륙용 엔진 중 하나가 오작동을 하거나 조종사 좌석이 60도 이상 기울어지게 되면 조종석이 모두 자동 사출되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리프트 엔진 하나만 고장 나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작동할 경우 항공기가 완전히 한 쪽 측면으로 전복되어 버리는 현상이 발생했으므로 조종사 보호를 위해 채택한 조치다.

    아래로 틸트(tilt) 된 YAK-38M의 후방 엔진. (출처: George Chernilevsky/Wikimedia Commons)

    심지어 YAK-38이 채택한 수직 이착륙도 간단한 운용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키예프함이 처음 YAK-38을 탑재하여 시험 항해에 들어갔을 때에도 시험 기간 후 귀항할 즈음에는 탑재했던 여섯 대의 YAK-38 중 오직 한 대만 운용이 가능한 상태였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지적된 YAK-38의 문제점을 보자면 세 대의 엔진을 장착하면서 발생한 과다한 연료 소모량과 중량 문제, 이에 따른 항속 거리 및 탑재 중량 감소가 가장 치명적이었으며, 폭장량도 작은 항공기가 하드포인트(hardpoint)마저 4개에 불과해 무장 운용에서 심각하게 제약을 받았다. 특히 기체 균형 문제와 공간 문제로 기관포까지 내장하지 않고 포드(Pod)로 하드포인트에 설치하는 방식이었으므로 기관포 탑재 시 운용 가능한 하드포인트가 하나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레이더까지 없었으므로 포저의 사용 용도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어 ‘해리어’와는 사뭇 다른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운용 현황

    키에프 항모에서 운용 중인 YAK-38의 모습 <출처: 미 해군>
    키에프 항모에서 운용 중인 YAK-38의 모습 <출처: 미 해군>

    YAK-36M 초도 생산분 대부분은 항공 훈련 센터가 위치한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 사키(Saki)의 제279 소련 독립 함상 공격 항공 연대에 배치되었다. 1979년 7월, YAK-38이 배치된 제311 독립 함상 공격 항공 연대가 민스크(Minsk)함에 배치되면서 소련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동해(東海) 지역에서 활동했다. 1982년 9월에는 키예프급 3번 함인 노보로시스크(Noborossiysk)함이 취역하자 YAK-38 부대 또한 노보로시스크 함에 배속되어 무르만스크 주에 위치한 세베로모르스크(Severomorsk)에서 출항해 태평양 함대에 합류할 때까지 함께했다. 한편 1982년 12월 16일에는 민스크 함이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 항모(USS Enterprise, CVN-65)와 아라비아 해에서 조우함에 따라 이를 요격할 목적으로 무장 상태로 출격해 소련제 VTOL 항공기가 무장 상태로 미 해군 전투기와 조우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YAK-38은 1983년 9월 민간 로로(Roll-on/Roll-off) 화물선인 아고스티뇨 네토(Agostinho Neto)호에서도 비행 시험을 실시했으며, 또 다른 로로 화물선 니콜라이 체르카소프(Nikolai Cherkasov)호에서도 운용 시험을 실시했다. 두 경우 모두 선박 갑판에 방열판을 깔았으며, 그 외에도 지상 이착륙 시험을 위해 여러 각지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콜레프는 양산형이던 초창기 YAK-38을 한 차례 업그레이드하면서 엔진 효율성이 높은 R-28 엔진으로 교체하고 더 튼튼한 랜딩기어로 교체하면서 YAK-38M으로 명명했다.

    민스크(Minsk)함 갑판에 주기 중인 YAK-38. (출처: Public Domain)
    민스크(Minsk)함 갑판에 주기 중인 YAK-38. (출처: Public Domain)

    YAK-38은 수직이착륙 전투기라는 기본적인 목표는 충족시켰지만, 실전에서 운용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하고 고장이 잦아 운용 기간이 길지 못했다. 우선 엔진을 해리어처럼 한 기가 아니라 별개로 3개를 장착함에 따라 연료 소모량이 컸고, 엔진이 3개 탑재되면서 중량까지 늘어나 항속 거리와 탑재 중량이 제한됐다. 전투 범위는 잘해야 350km 안팎에 불과했고, 스키점프대를 쓰지 않고 수직 이륙을 할 경우에는 연료 소모량이 늘어나 항속 거리와 탑재량이 더욱 줄었다. 소련은 업그레이드 형인 52대의 YAK-38M을 포함하여 231대의 YAK-38을 개발했으나 1991년 소련 붕괴를 전후로 하여 기체 전량을 퇴역시켰다.

    1992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출품된 러시아 해군 소속 YAK-38. (출처: Wolodymir Nelowkin)
    1992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출품된 러시아 해군 소속 YAK-38. (출처: Wolodymir Nelowkin)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할 때까지 YAK-38을 계속 운용했는데, 주로 전투기 상대보다는 적 함정에서 내보낸 해상 초계기를 격추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항모가 적 해안 근처까지 도달하거나 적 함정 근처까지 가면 YAK-38로 제한적인 지상 공격이 가능했으므로 여전히 활용하기에 따라 함재기로는 유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리어와 달리 지상에 설치한 전방 기지에서 운용하기에는 제약이 많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항공기였다. 소련은 1980년 산악 지형 위주인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면서 일부 YAK-38을 지상 기지에 배치시킨 후 무자헤딘(mujahideen) 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투입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저의 RD-37/38 계열 엔진은 고온 환경에서 성능이 떨어졌고, 수직 이륙 시 리프트 엔진이 뿜는 열은 비행장 표면을 파손시켰을 뿐 아니라 엄청난 먼지와 모래 바람을 엔진 흡입구 주변에 일으켜 엔진 고장을 유발했다. 게다가 전투 지역과 가까운 지점에서 대기하다가 이륙시켜 운용하는 개념 치고는 항공기의 전투 범위와 무장 탑재량이 너무 적어 활용 폭이 좁았다. 심지어 간편하게 이륙해 공격하는 개념의 항공기로 YAK-38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공격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쪽이 용이했기 때문에 결국 소련군 지도부는 얼마 후 포저를 모두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철수 시켰다. 이는 약 20년 뒤 항구적 자유작전(OEF: Operation Enduring Freedom)을 실시하면서 영국 왕립 공군과 미 해병대가 산악 지역의 탈레반을 상대하기 위해 똑같은 VTOL 항공기인 AV-8B 해리어 II+를 동일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전개해 효과적으로 운용했던 사실을 비춰본다면 아이러니하다.

    1993년 MAKS 에어쇼에서 촬영된 러시아 해군 소속 YAK-38M. (출처: Rob Schleiffert)
    1993년 MAKS 에어쇼에서 촬영된 러시아 해군 소속 YAK-38M. (출처: Rob Schleiffert)

    YAK-38은 엔진을 수평비행용 엔진과 수직이륙용 엔진을 별도로 썼기 때문에 운용이 복잡한 편이었고, 이런 기기의 복잡성 때문에 사고도 잦았다. 대표적인 사고로는 1978년 10월 26일, 흑해 함대에 속해 있던 YAK-38 한 대가 항모에서 수직 이함 한 후 리프트 엔진이 꺼지지 않는 바람에 기체가 균형을 잃어 그대로 바다에 추락했고, 그 과정에서 기수가 측면으로 60도 이상 기울자 시스템이 자동으로 조종사를 사출시켰으나 사출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어 결국 3일 후에 숨졌다. 1985년 7월 21일에는 노르웨이 해 앞에서 해상 연습 중이던 YAK-38 한 대가 비행 중 오작동을 일으켜 결국 조종사가 항공기를 포기하고 사출했으며, 기체는 그대로 바다에 빠져 소실됐지만 조종사는 노르웨이 남서쪽 128km 지점에서 영국 왕립 해군의 뉴캐슬(HMS New Castle, C76)함에 구조된 사례가 있었다.

    1993년 MAKS 에어쇼에서 촬영된 러시아 해군 소속 YAK-38M. (출처: Rob Schleiffert)

    소련은 YAK-38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더 효율적인 수직이착륙 전투기인 YAK-141(양산기는 YAK-41, NATO 코드네임 “프리스타일[Freestyle]”) 개발에 착수해 총 4대의 시제기가 제작됐으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결성된 독립 국가 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측에서 더 이상 개발비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자 1991년 부로 사업을 취소했다. 이와 함께 소련-러시아의 수직이착륙 전투기 개발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YAK-141(사진 우측)은 YAK-38(좌측)을 대체하기로 계획되었으나 소련의 붕괴로 사업이 취소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YAK-141(사진 우측)은 YAK-38(좌측)을 대체하기로 계획되었으나 소련의 붕괴로 사업이 취소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파생형

    YAK-36M: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코드네임 “포저(Forger)”. 사전 양산 형상으로, YAK-38과 형상이 다르다. 자체 중량은 6,650kg에 불과했으며, 엔진 역시 YAK-38보다 출력이 떨어졌다.
     
    YAK-38: 북대서양조약기구 코드네임 “포저-A”. 초도 양산 형상이며, 1971년 1월 15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1976년 8월 11일부터 소련 해군 항공대에 실전 배치됐다. 총 143대가 양산됐다.

    키예프시 줄하니(Zulhany)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인 YAK-38. (출처: Aeroprints.com)
    키예프시 줄하니(Zulhany)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인 YAK-38. (출처: Aeroprints.com)

    YAK-38M: YAK-38M의 업그레이드 형상. 신형 엔진인 투만스키(Tumansky) R-28V-300 엔진과 리빈스크(Rybinsk) RD-38 엔진이 장착되어 수직 이륙 시 최대 이륙 중량이 10,300kg에서 11,300kg로 증가했으며 활주로를 이용한 단거리 이륙 시에는 12,000kg로 증가했다. 공기 흡입구가 살짝 넓게 재설계 됐으며, 주익 하부 파일런은 910kg까지 무장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강화됐다. YAK-38M은 1985년 6월 이후부터 소련 해군 항공대에 배치됐으며, 총 50대가 양산됐다.

    소련 해군용으로 도색된 YAK-38M. 38M은 업그레이드된 형상으로, 엔진 출력이 증가하고 랜딩기어가 강화됐다. 총 50대가 양산되어 1991년에 최종 퇴역했으며, 이후 모니노(Monino)의 러시아 공군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이다. (출처: Alan Wilson)
    소련 해군용으로 도색된 YAK-38M. 38M은 업그레이드된 형상으로, 엔진 출력이 증가하고 랜딩기어가 강화됐다. 총 50대가 양산되어 1991년에 최종 퇴역했으며, 이후 모니노(Monino)의 러시아 공군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이다. (출처: Alan Wilson)

    YAK-38U: 북대서양조약기구 코드네임 “포저-B”. 복좌형 형상으로, 두 좌석을 넣기 위해 이전 형상들보다 동체 길이가 길어졌다. YAK-38U는 1978년 11월 15일에 실전 배치됐으며, 최종 기체인 38번 기가 1981년에 인도됐다.

    복좌형 YAK-38U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복좌형 YAK-38U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YAK-39: 다목적 VTOL 전투기/공격기 형상으로, 1983년에 개발 계획이 추진됐다. 엔진으로 R-28B-300 한 기와 RD-48 엔진 두 기가 채택됐으며, PRNK-39 항전 장비 세트, S-41D 다목적 레이더가 설치되었고 주익 형상이 커졌다. 연료량도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무장 역시 쉬크발(Shkval) 및 카이라(Kaira) PGM 계열 무기는 모두 운용할 수 있게 설계했으나 실제 제작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제원(YAK-38M 기준)

    제조사: 야코블레프(Yakovlev)
    용도: 수직이착륙 전투기
    승무원: 1명
    전장: 16.37m
    전고: 4.25m
    날개 길이: 7.32m
    날개 면적: 18.5㎡
    자체 중량: 7,385kg
    최대 이륙 중량: 11,300kg
    출력체계: - 15,000파운드 급 투만스키 R-28 V-300 추력편향 터보팬 엔진 x1(리프트용)
                   - 7,200 파운드 급 리빈스크 RD-38 터보 제트 엔진 x2(전방 동체 조종석 뒷면)
    최고 속도: 1,280km/h
    항속 거리: 1,300km
    실용 상승 한도: 11,000m
    상승률: 75m/s
    무장: (기본 무장) GSh-23L 23mm 건포드(GP-9): 주익 외측 파일런 하부에 UPK-250 포드 장착(x~2)
               ㄴ 하드포인트: 4개, 각 2,000kg 장착 가능
               ㄴ 로켓: - 최대 240mm로 다양하게 장착 가능
               ㄴ 미사일: - Kh-23 (AS-7 “케리[Kerry]”) 공대함/공대지 미사일 x2
                                 (Kh-23 장착 시 파일런 한 쪽에 유도 포드 장착 필수)
                               - R-60/R-60M 공대공 단거리 유도미사일(AA-8 “아피드[Aphid]”) 장착 가능
               ㄴ 폭탄: - FAB-500 다목적 폭탄 x 2
                            - FAB-250 다목적 폭탄 x 4
                            - ZB-500 발화폭탄 x 2
                            - RN-28 핵폭탄 x 2
    대당 가격: 1,850만 달러(1996년 기준)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YAK-38 수직이착륙 전투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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