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피아트 휴대용 대전차 무기
스피곳 박격포를 소형화한 영국의 휴대용 대전차 무기
  • 최현호
  • 입력 : 2020.08.14 08:40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운용한 휴대용 대전차 무기 피아트 <출처 : defensemedianetwork.com>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운용한 휴대용 대전차 무기 피아트 <출처 : defensemedianetwork.com>


    개발의 역사

    1916년 7월부터 프랑스 동북부 베르됭(Verdun) 북쪽 솜강(Somme River) 인근에서는 독일군과 영국ㆍ프랑스 연합군 사이에 지루한 참호전이 시작되었다. 이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해 9월 15일 영국은 비밀리에 개발해온 마크(Mark) 1 전차를 투입하면서 전쟁에서 전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크 시리즈 전차의 등장은 적국 독일은 물론이고 동맹국 프랑스도 자극을 받아, 경쟁적으로 전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차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장갑을 갖추고 있어 소총탄 정도에는 끄떡없던 전차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포였다. 수류탄을 묶어 던지는 등의 방법도 있었지만, 기관총이나 대포로 무장한 전차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전차의 등장은 포병의 지원을 바로 받을 수 없던 보병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영국이 1937년부터 배치한 보이스 대전차총 <출처 : Public Domain>
    영국이 1937년부터 배치한 보이스 대전차총 <출처 : Public Domain>

    하지만, 독일에서 먼저 보병이 쓸 수 있는 대응 수단이 등장했다. 독일은 1918년부터 탱크게베어(Tankgewehr) M1918이라는 13.2mm 구경 탄을 사용하는 대전차총을 배치했다. 이후 영국 등 많은 국가들이 대전차총을 개발했다.

    영국은 1937년에 영국 왕립 소형 무기 공장 설계사였던 헨리 C. 보이스(Henry C. Boys)가 설계한 보이스(Boys) 대전차총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13.9 × 99 mm 크노츠 & RG .55 보이스탄을 사용하는 보이스 대전차총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등장한 차량에 대해서는 대응이 가능했지만, 점차 장갑이 두꺼워지면서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다.

    총구에 끼워 발사하는 총류탄 형식의 No.68 AT 그레네이드 <출처 : Public Domain>
    총구에 끼워 발사하는 총류탄 형식의 No.68 AT 그레네이드 <출처 : Public Domain>

    보이스 대전차총 외에도 소총을 사용하여 먼로-노이만(Munroe or Neumann) 효과를 이용한 성형 장약(Shaped Charge)탄을 발사할 수 있는 총류탄도 개발했다. 이 무기는 유탄, 소총 No,68 / 대전차(Grenade, Rifle No. 68 / Anti-Tank)로 불렸다. 무게가 156g에 불과했던 유탄은 사수의 숙련도를 필요로 했다.

    이 밖에도 수류탄을 약 250m까지 발사할 수 있는 노스오버 프로젝터(Northover Projector)라는 무기도 1940년부터 개발하여 운용했다. 그러나, 탄이 작고 속도가 낮아 전차를 잡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영국 본토 수비 부대인 홈 가드(Home Guard) 등의 요청으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스피곳 박격포의 일종인 블래커 봄바르드 <출처 : Public Domain>
    스피곳 박격포의 일종인 블래커 봄바르드 <출처 : Public Domain>

    영국군은 새로운 보병용 대전차 무기를 필요로 했다. 1941년 스튜어트 블랙커 중령이 블랙커 봄바드(Blacker Bombard)라고 불리는 29mm 스피곳 박격포(Spigot Mortar)를 개발했다. 스피곳 박격포는 발사봉으로 불리는 직경 29mm의 스피곳이 발사관에 삽입된 탄체의 후방을 때려 격발시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구경을 늘리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탄속이 느리고 사거리가 짧았다. 무엇보다 블랙커 봄바드는 중량이 163kg으로, 운용에 5명이 필요했다. 사거리도 약 90m에 불과하고 재장전에 시간도 많이 걸려 1942년 홈 가드용으로 돌려진다.

    1943년 2월 튀니지의 훈련장에서 피아트 사격 훈련 중인 영국군 <출처 : Public Domain>
    1943년 2월 튀니지의 훈련장에서 피아트 사격 훈련 중인 영국군 <출처 : Public Domain>

    하지만, 블랙커 중령은 발사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성형작약탄을 발사할 수 있는 휴대용 스피곳 박격포를 개발했다. 하지만, 베이비 봄바드(Baby Bombard)라고 불린 이 휴대용 무기는 시험에서 많은 문제를 보였고, 블랙커 중령도 다른 임무로 발령받으면서 군 당국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블랙커 중령의 동료였던 밀리스 제프리스(Millis Jefferis) 소령은 베이비 봄바드 시제품을 약간 손본 후 제프리스 숄더 건(Jefferis Shoulder Gun)으로 불렀다. 블랙커 중령이 개발한 추진장약이 있는 성형작약탄도 손본 후 시연을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

    1943년 2월 튀니지의 훈련장에서 피아트 사격 훈련 중인 영국군 <출처 : Public Domain>

    소형무기학교 포병위원회는 일부 개량 후 이 무기에 PIAT(Projectile, Infantry, Anti-Tank), 우리말로 발사체용, 보병용, 대전차용, 즉 보병용 대전차 발사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PIAT는 영국 육군의 휴대용 대전차 무기로 결정되었고, 1942년 8월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다. 생산은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Imperial Chemical Industries) 등 여러 곳에서 담당했다.

    피아트는 미국과 독일이 개발한 M1 바주카와 같은 대전차 무기와 달리 후폭풍이 없어 건물 내부 등 밀폐된 곳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1943년 시칠리아 침공에 처음 사용된 후, 영국과 영연방 국가 군대에 의해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특징

    피아트 각부 명칭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피아트 각부 명칭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피아트는 후폭풍이 없는 휴대용 대전차 무기로 개발되었다. 기본적인 구조는 강철로 만든 발사관에 조준 및 발사 기구가 결합된 형태다. 발사관은 파이프 형태인 다른 대전차 무기와 달리 포탄 거치대의 윗부분이 없이 노출된 형태이다.

    피아트 내부 모습 <출처 : driveatank.com>
    피아트 내부 모습 <출처 : driveatank.com>

    그 뒤로 발사봉과 스프링 그리고 발사 손잡이가 위치하며, 맨 뒤에 스프링을 당겨 발사봉을 발사 위치로 놓는 역할과 발사 시 견착용으로 쓰이는 가죽과 헝겊 등으로 쌓인 개머리판이 위치한다.

    가늠쇠와 가늠좌를 올린 상태의 피아트(좌)와 50, 80, 110 야드 표시 구멍이 있는 가늠좌(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가늠쇠와 가늠좌를 올린 상태의 피아트(좌)와 50, 80, 110 야드 표시 구멍이 있는 가늠좌(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발사관은 길이 990mm이며, 발사관 직경은 83mm, 중량 14.51kg이다. 발사관 위 쪽은 앞부분에 접이식 가늠쇠가 있고, 그 뒤로 접이식 가늠좌가 있다. 가늠좌에는 50야드(45.72m), 80야드(73.15m), 110야드(100.6m)에 맞추도록 구멍이 3개가 뚫려 있다. 가늠좌 옆에는 곡사로 운용할 경우 발사 각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수평계가 장착된 각도계가 달려 있다.

    길이 조절이 가능한 모노포드(좌)와 좌측에 있는 조준각 조절기의 수평계 (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길이 조절이 가능한 모노포드(좌)와 좌측에 있는 조준각 조절기의 수평계 (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발사관 아래에는 맨 앞에 신축식 모노포드(Monopod)가 달려 있는데, 고정용 볼트를 풀어 방향을 돌릴 수 있다. 모노포드 뒤에는 방아쇠가 있으며, 바로 뒤에 안전장치가 달려 있다.

    방아쇠와 그 뒤에 위치한 안전장치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방아쇠와 그 뒤에 위치한 안전장치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발사되는 포탄은 길이 42.164cm, 중량 1.36kg의 성형작약탄이다. 포구 속도는 76m/s이며, 유효 사거리는 전차를 표적으로 할 경우 115야드(105m), 건물의 경우 370야드(338.3m)다. 포탄은 앞에 신관부, 포탄 몸통, 그리고 꼬리부로 이루어져 있다.

    1945년 영국이 만든 포탄 다이어그램 <출처 : Public Domain>
    1945년 영국이 만든 포탄 다이어그램 <출처 : Public Domain>

    포탄은 운반 시에는 종이로 된 3발들이 통을 사용하며, 신관은 꼬리부에 별도의 통에 보관된다. 신관은 안전장치가 없어 충격을 받으면 폭발할 위험이 높았다. 포탄은 발사 시 연소되는 추진용 장약을 쓰기 때문에 위치를 발견하기 어려워 적에게 발사 위치를 들킬 위험이 적었다. 발사 후폭풍도 거의 없어 건물 내부에서도 발사가 가능하다.

    마개를 뺀 후 스프링을 당겨 발사봉이 안으로 들어간 발사 준비 상태(좌)와 피아트의 어깨받이와 포신 내부에 있는 스프링과 스피곳 모습 (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마개를 뺀 후 스프링을 당겨 발사봉이 안으로 들어간 발사 준비 상태(좌)와 피아트의 어깨받이와 포신 내부에 있는 스프링과 스피곳 모습 (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zCzHvBJ2w 캡처>

    피아트의 발사 과정은 우선 발사봉이 드나드는 입구를 막은 마개를 뺀다. 개머리판을 고정시키고 발사기를 약 반 바퀴 돌린다. 이렇게 돌려야 격발용 스프링을 당길 수 있다. 개머리판을 발로 밟고 손잡이를 사용하여 발사관을 위로 뽑듯이 당긴다. 발사관을 올리면 발사봉 뭉치가 스프링을 누르고, 방아쇠에 걸리게 된다.

    누워서 장전 중인 모습 <출처 : topwar.ru>
    누워서 장전 중인 모습 <출처 : topwar.ru>

    방아쇠가 걸린 것이 확인되면 당겨진 개머리판을 앞으로 밀고, 앞서 돌린 방향의 반대로 돌린다. 부사수가 포탄을 발사관 앞에 놓은 후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기면 눌려 있던 스프링이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발사봉을 밀어내고, 발사봉이 포탄 뒤쪽으로 들어가 추진 장약을 때려서 점화시킨다. 이때 추진 반동으로 다시 발사봉이 밀리면서 스프링이 후퇴하고, 다시 장전 가능 상태가 된다. 이 과정은 누워서도 할 수 있다.

    누워서 장전 중인 모습 <출처 : topwar.ru>



    운용 현황

    피아트의 생산은 1942년 8월부터 시작되었고, 1950년까지 간단한 구조 덕분에 115,000 정이 생산되었다. 개발국 영국 외에 영연방 국가들이 주로 사용했으며, 그 외에 벨기에, 자유 프랑스군,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저항군,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소련 등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용 모습 <출처 : topwar.ru>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용 모습 <출처 : topwar.ru>

    1942년 8월부터 시작되었고, 1950년까지 간단한 구조 덕분에 115,000 정이 생산되었다. 피아트의 실전 데뷔는 1943년 7월 시작된 연합군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침공에서 캐나다군이 사용한 것이다. 이후 영국과 영연방군 그리고 영국이 지원한 저항 세력에 의해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장에서는 영국군과 호주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사용했다.

    피아트는 변형이나 파생형이 없다. <출처 : topwar.ru>
    피아트는 변형이나 파생형이 없다. <출처 : topwar.ru>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일부 사용되었다. 6·25전쟁 당시 호주군이 사용했지만, 미국의 M20 슈퍼 바주카로 교체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직전이던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벌어진 팔레스타인 전쟁에서도 유대인 민병대 하가나(Haganah) 그리고 1948년 건국 후 조직된 이스라엘군(IDF)도 피아트를 사용했다.

    피아트는 변형이나 파생형이 없다. <출처 : topwar.ru>

    이에 앞서 1946년 12월부터 벌어진 베트남 독립전쟁으로도 불리는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무기가 부족했던 프랑스는 영국에서 지원받은 피아트를 사용했고, 베트남 독립조직 비엣민이 프랑스군에게서 노획한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변형 및 파생형

    피아트는 다른 파생형이나 변형이 없다.
     
    피아트(PIAT): 영국이 개발한 스피곳 박격포의 작동 원리를 이용한 휴대용 대전차 무기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1948 박물관에 전시된 피아트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1948 박물관에 전시된 피아트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제원

    구분: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
    생산: 영국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스(Imperial Chemical Industries) 등
    작동 방식: 스프링 격발식
    무게: 14.51kg(발사대) / 1.36kg(포탄)
    구경: 83mm
    길이: 990mm
    포탄: 성형작약탄
    유효 사정거리: 전차 115야드(105m) / 건물 370야드(338.3m)


    저자 소개

    최현호 | 군사 칼럼니스트

    피아트 휴대용 대전차 무기

    오랫동안 군사 마니아로 활동해오면서 다양한 무기 및 방위산업 관련 정보를 입수해왔고, 2013년부터 군사커뮤니티 밀리돔(milidom)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방위산업진흥회 <국방과 기술>, 국방홍보원 <국방저널> 등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고, 기타 매체들에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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