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티란 전차
아랍의 전사에서 유대의 전사로 새로 태어나다
  • 윤상용
  • 입력 : 2020.08.13 08:17
    티란 Ti-67 전차 <출처: Public Domain>
    티란 Ti-67 전차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더 벨푸어(Arthur Belfour) 영국 외무장관이 유대인들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추후 독립을 약속한 ‘벨푸어 선언(Belfour Declaration)’ 때부터 독립국가 수립의 강한 열망을 가진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 건립 작업을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중 6백만 명의 유대계 민간인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치 독일에 살해당한 유대인 대학살, 통칭 ‘홀로코스트(Holocaust)’가 알려짐에 따라 유대인들의 국가 건립 운동인 ‘시온운동’이 관심과 동정을 얻게 되었다. 이에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시작하면서 건국 준비에 들어갔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영국 식민 지배 상태이던 주변 아랍계 세력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아랍-유대 두 세력은 1945년~1947년 기간 동안 치열하게 충돌했다.

    이스라엘은 하가나를 구성하여 독립을 대비했는데, 그 준비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스라엘은 하가나를 구성하여 독립을 대비했는데, 그 준비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독립국가 수립의 강한 열망을 가진 유대인들은 훗날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s, IDF)의 모태인 ‘하가나(Haganah)’를 비롯한 강력한 자경 조직을 구성하는 등 뛰어난 조직력을 발휘하는 한편 영미권 유대계 부호들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었고,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협력한 아랍권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이스라엘의 독립은 물살을 타게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인적, 물적 피해를 극심하게 입은 ‘대영제국’이 쇠락함에 따라 영국의 전 세계 식민지 통치권도 약화했고, 이에 중동 지역에서는 반 유대주의를 기치로 내건 아랍계 국가들이 단결하기 시작해 ‘아랍 연맹(the Arab League)’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1948년 건국과 함께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전쟁을 치워야만 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48년 건국과 함께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전쟁을 치워야만 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1945년 10월 24일에 법적으로 독립한 시리아는 건국 후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 타도’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주변 아랍 국가와 연합하면서 1945년 3월부터 결성이 시작된 아랍 연맹(Arab League)에 가입했다. 아랍 연맹은 국제연합(UN)이 팔레스타인 내의 지역별 인구 비례에 따라 이스라엘-아랍 국가가 각각 분할 독립하라는 ‘분할 계획(Partition Plan)’을 권고하자 이를 거부했으며, 이스라엘의 건국을 막기 위해 팔레스타인 영내로 침공했다. 이 전투에서 요르단만 일부 승리를 거두었으나 아랍 연맹의 주축이던 이집트와 시리아는 대패했으며, 결국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는 1949년 이스라엘과 휴전 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사실상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함 셈이 되었다.

    시리아와 이집트는 T-54와 T-55 전차를 도입하는 등 군비증강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준비했다. <출처: Public Domain>
    시리아와 이집트는 T-54와 T-55 전차를 도입하는 등 군비증강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준비했다. <출처: Public Domain>

    7개국 연합군이 패퇴하는 치욕을 당한 아랍 연맹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막지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크나큰 타격을 입었으며, 심지어 시리아는 이스라엘 독립전쟁(1차 중동전) 패퇴가 이유가 되어 후스니 알-자임(Husni al-Za’im, 1897~1949) 대령이 주도한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됐다가 사미 알-히나위(Sami al-Hinnawi, 1898~1950) 대령에 의해 역 전복됐으며, 히나위 정권은 아딥 시샤클리(Adib Shishakli, 1909~1964) 대령에 의해 다시 전복될 정도로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의회 제도가 사실상 철폐되고 강경한 군국주의 국가가 된 시리아는 이스라엘 타도를 위해 적극적인 군비 증강을 진행했으며, 한편으로는 중동 지역에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 소련과 전략적으로 제휴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시리아는 1961년 주력전차로 T-54 전차 350대와 1963년 T-55 전차 150대 도입을 시작으로 850대가 넘는 T-54를 60년대 말~70년대 초에 도입했고, 총 700대가량의 T-55를 1960년대 말까지 도입하면서 지역 내 전차 강국으로 등극했다. 이집트 역시 1961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1,200대의 T-54와 700대가량의 T-55를 주로 체코 생산라인에서 도입하면서 기갑 자산을 증강했다. 설욕의 기회를 노리던 아랍 연맹은 1967년 초 이집트 낫세르(Gamal Abdel Nasser, 1918~1970) 대통령의 주도로 이스라엘로부터 시나이(Sinai)반도 옆 아카바(Akaba)만의 티란(Tiran) 해협을 차단하고, UN 정전감시단(UNEF)을 무시하고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에 병력을 전진 배치하면서 사실상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위협을 방지하고자 선제공격을 일으켰다. <출처: Public Domain>
    이스라엘은 1967년 위협을 방지하고자 선제공격을 일으켰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랍 연맹군이 조율을 끝내 사방에서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가해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1967년 6월 5일 자로 먼저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불과 6일에 걸쳐 26만의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55만의 아랍 연맹군이 충돌하여 대혈전을 벌인 3차 중동전쟁, 통칭 ‘6일전쟁(Six-Day War)’은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렸을 뿐 아니라 이집트로부터는 가자(Gaza) 회랑과 시나이반도, 시리아로부터는 골란(Golan) 고원, 요르단으로부터는 서안(西岸, West Bank)과 동(東) 예루살렘을 얻었다. 특히 이스라엘은 6일전쟁 중 이집트와 시리아군으로부터 대량의 T-54와 T-55 전차를 노획했는데, 6일 동안 이집트 하나만을 상대로 T-54 820대와 T-55 82대를 격파 혹은 노획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전쟁 중 노획한 대부분의 T-55는 이집트군으로부터 나포했으며, 시리아군으로부터 노획한 전차도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센추리언 Mk. V를 개조한 쇼트 전차를 주력으로 6일 전쟁을 수행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스라엘은 센추리언 Mk. V를 개조한 쇼트 전차를 주력으로 6일 전쟁을 수행했다. <출처: Public Domain>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영국제 센추리언(Centurion) Mk. V를 개조한 쇼트(Sho’t) 전차를 주력으로 삼아 소모전(War of Attrition, 1967~1970) 기간 중 아랍 연맹의 T-54/55를 격파하긴 했지만, 이들의 엄청난 기갑 물량의 공세를 겪은 후 전차 수량의 열세를 놓고 고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승무원들이 방기(放棄)한 상태로 도주해 온전하게 나포한 대량의 T-54 및 T-55를 우군 전차로 활용하는 ‘티란(Tiran: 히브리어로 ‘초심자’라는 뜻/이집트-이스라엘 국경의 티란 해협과 중의적 의미)’ 계획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T-54, T-55 두 전차를 묶어 자체적으로 Ti-67이라는 제식 번호를 지정했으며, 최초에는 나포한 T-54를 “티란-1”, T-55를 “티란-2”로 불렀다. 하지만 노획한 상태 그 자체로 운용하기에는 우선 전차 설계가 오래된 50년대 설계라는 점이 문제가 됐고, 장갑도 얇아 생존성도 좋지 못한 데다가 장착된 장비류의 질도 좋지 못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제 전차 특성상 정비 소요가 적고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노획한 수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일부 부분에 대한 개선과 업그레이드만 실시하면 충분히 우군 전력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센추리언 Mk. V를 개조한 쇼트 전차를 주력으로 6일 전쟁을 수행했다. <출처: Public Domain>

    지상전 장비 개발을 주도하는 이스라엘 방위군 병기단(IDF Ordnance Corps)은 이에 T-54와 T-55를 단계적으로 개조했으며, 우선 통신 장비와 헤드램프 등 편의에 따른 장비만 교체해 전선에 투입했다. 이후 실전을 겪으면서 발견된 노하우를 기초로 본격적으로 개조 작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티란 전차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던 소련제 100mm 주포를 미국제 105mm 주포로 교체했으며, 이 사양으로 기갑전이 전쟁의 큰 몫을 한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에도 투입했다. 전후에도 이스라엘 방위군은 두 형상의 “티란” 전차를 개조하여 1차 레바논 전쟁 등에서 운용했으며, 이스라엘이 자체 제작한 전차인 “메르카바(Merkava)” 시리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티란 시리즈는 센추리언 Mk.V 등과 함께 이스라엘 방위군의 주요 기갑 전력으로 큰 몫을 해냈다.


    특징

    이스라엘 방위군은 대량의 T-54와 T-55를 개조하여 우군 전차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에 따라 두 종류의 전차를 이스라엘 방위군 편의에 맞게 개조 및 현대화했다. 이는 T-54, T-55 두 전차가 비교적 실전에서 효과가 나쁘지 않다는 평가에 따른 것인데, 실제로 1970년 요르단 내전 당시에 투입된 시리아군 T-55 전차대대 하나는 요르단군의 센추리언 부대와 정면으로 격돌해 T-55는 10대, 센추리언은 19대가 격파된 사례가 있었다. 이스라엘군 정보기관은 요르단 내전에 투입된 200대의 요르단군 전차 75~90대가 대부분 시리아군의 T-55에게 격파 당한 것으로 분석했다.

    티란-5의 기본이 된 이집트 육군의 T-55 전차. 해당 영상은 1985년에 촬영된 다국적 합동군 연습인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 간 촬영된 것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촬영됐다. (출처: U.S. Department of Defense)
    티란-5의 기본이 된 이집트 육군의 T-55 전차. 해당 영상은 1985년에 촬영된 다국적 합동군 연습인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 간 촬영된 것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촬영됐다. (출처: U.S. Department of Defense)

    하지만 T-54/55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력이 약하고 사격 시 포신 흔들림이 커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1967년 6일전쟁 이후부터는 T-54/55의 100mm 강선포의 위력이 전장에서 크게 떨어졌는데, 이는 당장 이스라엘만 해도 센추리언 Mk.V 전차 및 미제 M60A1 전차에 영국 왕립병기단(Royal Ordnance)제 L7 105mm 강선포가 장착되어 화력에서 T-54/55의 주포가 밀렸지만 그래도 일부 T-55는 소련제 HEAT 3БК5 탄을 사용하면서 이스라엘 방위군 전차에 꽤 큰 타격을 입혀 전차 자체의 운용 가치는 여전히 높다고 판단됐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몇 차례 업그레이드를 통해 ‘티란-4’와 ‘티란-5’에서 기존에 장착되어 있던 소련제 D-10 100mm 포신을 제거하고 주포를 기존 센추리언(이스라엘 방위군 제식 명칭 ‘쇼트[Sho’t]’) Mk.V 전차와 M48 패튼(Patton) 전차에 장착된 L7이나 M68(L7의 미국 면허 생산판) 주포로 교환해 105mm NATO 스탠더드 탄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티란은 소련제 100mm 주포를 대신하여 L7이나 M68 105mm 포를 장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티란은 소련제 100mm 주포를 대신하여 L7이나 M68 105mm 포를 장착했다. <출처: Public Domain>

    엔진 출력과 안정성도 개선하기 위해 이스라엘 병기단은 소련제 디젤 엔진을 제거하고 미제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사의 엔진을 대신 장착했으며, 비교적 장갑이 얇은 T-54/55의 문제도 개선하기 위해 포탑 부분에 공동주입(空洞注入) 방식으로 장갑을 강화했다. 또한 장전수와 조종수 해치를 개선하고, 예비 탄약 적재함을 설치했으며, 무장 강화를 위해 60mm 박격포를 하나 설치하고 전차장과 장전수 좌석에도 30구경 M1919A1 기관총을 장착했다. 포탑 옆에는 예비 수납공간을 설치해 이스라엘 방위군용 수납통 4~5개를 실을 수 있게 했으며, 차체 후부에도 별도의 수납용 거치 바구니를 만들어 응급처치용 의료 기구 등을 담을 수 있게 했다. 그 외에 신형 통신 장비와 유폭을 막기 위해 안전성을 강화한 연료 탱크가 설치되었고, 이스라엘군 패턴의 헤드램프를 설치하고 무한궤도 옆에는 고무로 제작한 흙받이를 달아 차륜 방어도 어느 정도 겸할 수 있도록 했다.

    티란-5 도저의 포탑 상부 모습. (출처: Bukvoed/Public Domain)
    티란-5 도저의 포탑 상부 모습. (출처: Bukvoed/Public Domain)

    하지만 이스라엘이 T-54/55를 활용한 ‘티란’ 시리즈 대신 메르카바(Merkava) 전차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데에는 이 ‘티란’ 시리즈의 바탕이 된 T-54, T-55가 처음부터 구 시대의 유물인 1세대 전차였기 때문이다. 우선 성능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징집 후 통상 체격이 작은 병사 순서로 기갑병과에 배치하는 소련의 방침에 따라 개발됐기 때문에 T-54와 T-55는 차체 내부가 심하게 좁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는 훗날 T-54, T-55 및 티란 시리즈를 중(重)보병수송 장갑차로 개조한 ‘아크자리트(Achzarit)’ 재설계 때에도 대두되는 문제인데, 이스라엘 병기단은 훗날 아크자리트 개조 때에는 아예 전차 내부를 전부 들어 내버린 후 새로 내부 구획을 리모델링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T-54를 기본으로 한 티란-4 전차. 현재 이스라엘 야드 라-시리온(Yad la-Shiryon)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T-54를 기본으로 한 티란-4 전차. 현재 이스라엘 야드 라-시리온(Yad la-Shiryon)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이스라엘 방위군은 1973년 4차 중동전 때 시리아 군이 장비하고 있던 신형 소련제 2세대 전차인 T-62를 소량 노획했으며, 이 또한 티란-6으로 개조하여 운용할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개조하여 운용하기에는 노획한 수량이 너무 적었고, 이 시기부터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소련 견제를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군수 지원을 대대적으로 실시해 대량의 M60 전차가 도입됨에 따라 티란-6 개발 계획은 무산됐다. T-62를 활용한 티란-6의 시제 차량이 소량 제작되긴 했으나 실제로 실전에서 운용된 기록은 없다.

    T-54를 기본으로 한 티란-4 전차. 현재 이스라엘 야드 라-시리온(Yad la-Shiryon)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운용 현황

    “티란”이 처음 데뷔전을 치른 전투는 1969년 9월 8일에 실시된 “라비브(Raviv)” 작전으로, 이스라엘 방위군은 수에즈(Suez) 운하를 가로질러 건너 상륙 작전을 실시하면서 3대의 티란-4와 6대의 BTR-50 보병수송차를 사용해 이집트군의 후방을 기습 공격했다. 티란 전차는 이스라엘 전 국경에 걸쳐 전개됐지만 주로 이집트와 마주 보는 수에즈 방면에 집중 배치되었으며, 1973년 4차 중동전쟁, 통칭 “욤 키푸르” 전쟁이 터졌을 때는 이집트군의 T-54/55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도 전개했다. 하지만 티란 시리즈와 T-54, T-55의 차체 실루엣이 동일했기 때문에 이는 피아를 막론하고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티란-4는 1969년 최초로 실전에 데뷔했으나, 적 차량과 동일한 외관으로 전장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출처: Public Domain>
    티란-4는 1969년 최초로 실전에 데뷔했으나, 적 차량과 동일한 외관으로 전장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출처: Public Domain>

    이스라엘군은 초창기 나포한 T-55는 거의 개조를 가하지 않고 운용하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성능 개량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개조된 일부 티란 전차는 기독교 계열로 친 이스라엘계 성향인 남 레바논군(South Lebanon Army) 민병대에게 지급하기도 했으나, 이들 차량 일부는 다시 2000년경 이스라엘 방위군이 남부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약 4~5대가 이란계 반군단체인 헤즈볼라(Hezbollah) 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반미 성향의 시아파 국가로 탈바꿈한 이란 이슬람 혁명군이 상당수의 티란을 이스라엘로부터 구입해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티란은 이스라엘이 이라크에 공여했던 것을 노획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남부 레바논에서 촬영된 방기 된 상태의 티란-5 전차. 친이스라엘 계열 레바논 민병대가 운용하던 전차로 추정된다. (출처: Eternalsleeper/Public Domain)
    남부 레바논에서 촬영된 방기 된 상태의 티란-5 전차. 친이스라엘 계열 레바논 민병대가 운용하던 전차로 추정된다. (출처: Eternalsleeper/Public Domain)

    이스라엘 방위군은 1980년대에 ‘메르카바’ Mk.1의 실전 배치가 시작되고, 최근에는 메르카바 Mk.4까지 실전 배치가 이루어짐에 따라 1990년 초부터 티란을 단계적으로 퇴역시켰으나 일부 차량은 아직도 예비 자산으로 보유 중이거나 예비군용으로 운용 중이다. 퇴역한 티란 중 일부는 재판매 된 것으로 보이며, 그 중 남미의 우루과이가 1997년 티란-4SH와 티란-5SH를 총 15대 도입해 2006년까지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레바논 믈리타(Mleeta)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인 격파된 상태의 티란 전차. 남 레바논 민병대가 운용하던 전차로 추정된다. (출처: Frode Bjorshol/Public Domain)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레바논 믈리타(Mleeta)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인 격파된 상태의 티란 전차. 남 레바논 민병대가 운용하던 전차로 추정된다. (출처: Frode Bjorshol/Public Domain)

    이스라엘 방위군은 1990년까지 최대 488대에 달하는 티란 시리즈를 운용했으나 2008년까지 261대로 줄였으며, 대부분 다 예비군용 예비 전차로 비축 중이다. 퇴역 후 예비 물자로 전환된 티란 전차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스라엘 방위군 예비군 훈련 때 동원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처분하지 않은 퇴역 티란 계열 전차 일부와 기본 비축 중이던 T-54, T-55 일부의 포탑을 제거한 후 장갑차 형상으로 개조하여 “아크자리트(Achzarit)” 장갑차로 운용 중이다. 특히 아크자리트는 기본 차체가 전차의 차체이기 때문에 중량은 무겁지만 장갑이 튼튼하여 생존성에 중심을 두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방침에 맞게 개발됐다.


    파생형

    티란-1: 이스라엘 방위군이 아랍 연맹군으로부터 나포한 T-54의 제식 명칭.

    티란-2: 이스라엘 방위군이 아랍 연맹군으로부터 나포한 T-55의 제식 명칭.

    티란-4: T-54를 베이스로 개조한 전차. T-54와 외관상 차이가 크지 않으나 포탑 뒤에 수납통 보관용 거치 바구니가 설치되었고, 통신 장비가 업그레이드됐으며, 일부 형상은 차륜 옆에 스커트(흙받이)가 설치되었다. 부무장으로 30 구경 기관총이 한 정 설치됐다. 후기형 중에는 포탑에 안테나 수납함과 헤드램프가 장착되어 전기형 티란과 외관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T-54를 기본으로 한 티란-4 전차. 현재 이스라엘 야드 라-시리온(Yad la-Shiryon)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T-54를 기본으로 한 티란-4 전차. 현재 이스라엘 야드 라-시리온(Yad la-Shiryon)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티란-4 Sh: 티란-4의 대규모 업그레이드 형상. 포신을 러시아제 100mm 주포에서 미제 105mm M68로 교체했으며, 7.62mm 공축기관총이 장착됐다. 일부 차량에는 30구경 기관총과 50구경 기관총이 전차장과 급탄수 해치 앞에 설치됐다. 셔먼(Sherman) 전차와 동일한 표적획득장치가 장착됐으며, 화재진압장치와 미제 헤드램프 등이 추가되었다. 대부분 4차 중동전쟁 발발 전에 개조가 완료되어 욤 키푸르 전쟁 때 투입됐다.

    티란-5: 초기 T-55는 T-54와 비교할 시 100mm 포신 끝부분에 포연 제거 장치가 추가되어 있으며, 이스라엘군은 이를 105mm 포로 교체하면서 포연 제거 장치가 포신 중간에 설치됐다. 주로 소모전(War of Attrition) 기간에 실전 배치됐다.

    티란-5 전차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티란-5 전차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티란-5 Sh: 러시아제 D-10 100mm 주포 대신 미제 105mm M68 강선포로 교체했으며, 7.62mm 공축기관총이 설치됐다. 일부 차량에는 30 구경 기관총이나 50 구경 기관총이 전차장과 급탄수 해치 앞에 설치됐으며, 야간 전투능력을 위해 신형 화력통제체계가 장착됐다. 협소한 내부 공간 문제 때문에 실내 설계도 일부 수정을 가했으며 신형 통신 장비가 설치됐다.

    T-55를 기본으로 한 티란-5Sh 전차. 포신을 미제 105mm로 교체하면서 포연 제거 장치가 포신 끝에서 중간으로 온 것이 기존 티란-5와 차이점이다. (출처: Public Domain)
    T-55를 기본으로 한 티란-5Sh 전차. 포신을 미제 105mm로 교체하면서 포연 제거 장치가 포신 끝에서 중간으로 온 것이 기존 티란-5와 차이점이다. (출처: Public Domain)

    Ti-67S 업그레이드(Upgrade): 기본적으로 Ti-67은 T-54/55를 총칭하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식별 번호지만, 그중 Ti-67S는 전 부분에 걸쳐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실시된 형상이다. 신형 컴퓨터가 적용된 ‘마타도르(Matador)’ 화력통제체계와 야간 전투 장비, 포신 안정 장치가 장착됐고, 현가장치와 변속장치가 개선되었으며 화재 진압 시스템이 추가됐다. 또한 기동성 향상을 위해 디트로이트(Detroit) 디젤 8V-71T 엔진이 설치되었고 조종석 역시 운용자 편의에 맞게 개선됐다. 외장에는 탈부착이 가능한 블록형 블레이저(Blazer) 반응장갑(ERA)을 설치하는 등 몇 가지 개선이 가해졌다. 티란-5S, Ti-67S라고도 불린다.

    티란-5 KMT: 티란-5에 지뢰제거용 롤러를 설치한 공병용 형상. 소량만 제작됐으며 주로 1980년대까지 레바논 남부에서 운용했다. 2000년 이스라엘 방위군의 레바논 철수 후 레바논군이나 헤즈볼라가 일부 운용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티란-5 도저(Dozer): 티란-5와 사양은 동일하나 톱니 모양의 공병 삽날을 차체 전면에 장착했다.

    티란-6: T-62를 기본으로 개조된 전차. 차체에 장갑을 추가했으며, 포탑 크기를 늘리고 60mm 박격포와 포탑 양옆에 수납통 수납용 거치대를 설치했다. 양산될 정도로 수량이 많지 않아 실전에 투입된 기록은 없다.

    시제 차량 개발 후 사업을 취소한 티란-6 전차. 당초 4차 중동전 중 시리아군에게서 노획한 T-62를 기반으로 하여 개조를 가할 예정이었다. (출처: Bukvoed/Public Domain)
    시제 차량 개발 후 사업을 취소한 티란-6 전차. 당초 4차 중동전 중 시리아군에게서 노획한 T-62를 기반으로 하여 개조를 가할 예정이었다. (출처: Bukvoed/Public Domain)

    사모바르(Samovar) 1, 2: 티란 전차에 메르카바 기술을 접목시켜 업그레이드한 형상. 시제 차량만 두 대 제작되었으나 양산되지는 않았다. 1980년대에 계획이 입안되면서 엔진이 교체되고, 사격 간 과열로 인한 주포의 형틀 변형을 막는 열상 슬리브(Thermal Sleeve)가 추가되었으며 반응장갑(ERA), 10연장 연막탄 발사기, 측면 스커트, 신형 큐폴라, 메르카바용 포탑 후부에 거치용 바구니 등이 추가되었으나 이스라엘 방위군이 메르카바 전차 양산에 집중하면서 개발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아크자리트 중보병수송장갑차(HAPC): T-54 및 T-55의 차체 부분만 활용한 중(重)보병수송 장갑차. 아크자리트는 히브리어로 "잔인하다"라는 의미이다. 소련 기갑병 징집 제도에 맞춰 협소하게 설계된 내부를 완전히 뜯어내고 다시 설계했으며, 엔진과 장비류도 모두 현대화된 장비로 교체했다. 1990년대부터 퇴역한 티란 전차 일부도 아크자리트로 개조되었다. 메르카바 Mk.IV 전차의 차체를 활용한 ‘나메르(Namer)’ 중보병전투장갑차가 도입되면서 이스라엘 방위군의 주력 장갑차의 자리를 내주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나메르의 생산 수량이 적어 아직까지 이스라엘 방위군의 중핵 자산으로 운용 중이다.


    제원(티란-5 Sh)

    제조사: 소련 OKB-520 설계국(現 우랄바곤자보드[UralVagonzaVod])/이스라엘 방위군 병기단(IDF Ordnance Corps)
    용도: 주력전차
    승무원: 4명(전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전장: 6.04m(차체)
    전고: 2.4m+(큐폴라까지)
    전폭: 3.27m
    최저 지상고: 0.43m
    중량: 37톤
    접지압: 0.84kg/㎠
    차륜 바퀴: 무한궤도 차체에 보기륜 5개, 전방 아이들러, 후방 드라이브 스프로킷으로 구성
                    (길이 84m/폭 0.58m/높이 2.64m)
    출력체계: 580마력 V-55 V12 디젤 엔진
    현가장치: 토션 바(Torsion bar)
    변속장치: 전진 5단, 후진 1단
    최고 속도: 50km/h(도로 주행 시)
    항속 거리: 450km
    연료 적재량: 960리터
    출력 대비 중량: 15.7 마력/톤
    등판력: 60%
    수직 장애물 극복 높이: 0.8m
    참호 통과 깊이: 2.7m
    도섭 가능 심도: 1.4m/5m(도하용 스노클 장착 시)
    주요 장비: 화생방 방호장비, 야시경 장착, 디젤 연소 저감장치
    장갑: 강철 플레이트
    주무장:  ㄴ100mm D-10T2S 강선포(기본 T-54/55) x 43발 적재 가능
                 ㄴ 105mm L7 강선포(후기형)
    포신각: -5˚~+18˚/포탑 회전 범위 360˚, 초당 17˚ 회전
    부무장: 형상/조합에 따라 다름
               ㄴ .30 M1919A4 공축기관총
               ㄴ 12.7mm M2HB 중기관총
               ㄴ .30 M1919A4 포탑 설치 기관총/수동회전식, 100발 장전
    대당 가격: 불명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티란 전차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