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AK-47 소총의 개발사
현대사를 바꾼 자동소총의 탄생과정
  • 양욱
  • 입력 : 2020.08.03 08:15
    AK-47 소총의 개발사

    AK-47은 현대사를 바꾼 자동소총으로 불린다. 1947년 최초로 등장한 이후, 공산권과 제3세계, 그리고 분쟁지역에는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총이 되었다. 내년이면 등장한 지 75주년을 맞는 AK 소총은 전세계적으로 1억정 이상 생산되어 보급된 베스트셀러 소총이다. 이하에서는 AK-47의 개발과정을 소개한다.


    러시아 자동소총의 역사

    러시아의 첫 자동소총은 6.5mm 탄을 사용한 M1916 표도로프 자동소총이었다. 개발자인 표도로프(Владимир Григорьевич Фёдоров, 1874~1966)는 제정러시아의 포병장교로 이미 1906년 7.62x54mm R탄을 사용하는 반자동 시제소총을 개발한 바 있다. 그러나 7.62mm R탄은 당시 기술로서는 연사를 이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표도로프는 사용탄환으로 당대 소총탄보다 화력이 약했던 일본군의 6.5x50mm '아리사카' 탄과 거의 유사한 6.5mm 표도로프탄을 채용하여 시제총기를 1912년 개발을 완료했다.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자동소총으로 주장하는 M1916 표도로프 자동소총 <출처: Royal Armouries>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자동소총으로 주장하는 M1916 표도로프 자동소총 <출처: Royal Armouries>

    그리고 1913년부터 러시아군은 표도로프 반자동소총의 시험평가를 시작했는데, 이듬 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러시아군도 쇼사 경기관총과 같은 연발소화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표도로프는 기존의 설계를 자동으로 바꾸었으며, 이에 따라 1916년 개발된 시제자동소총이 M1916 "아프타마트 표도로바(Автомат Фёдорова, '표도로프 자동소총'이란 뜻)"이 채용되었다. 애초에 러시아군은 2만5천여 정의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요구했지만,  실제 만들어진 것은 3,200여 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표도로프 자동소총은 단연발의 선택이 가능하고 25발의 탄창을 채용했으며, 다소 위력이 약한 탄을 사용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돌격소총(Assault Rifle)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SVT-40 반자동소총은 보병소총으로보다는 저격총으로 적합했다. <출처: WW2 Colourised Photos @ facebook.com>
    SVT-40 반자동소총은 보병소총으로보다는 저격총으로 적합했다. <출처: WW2 Colourised Photos @ facebook.com>

    한편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반자동소총과 관련된 기술들이 무르익자, 드디어 소련에서도 이제 7.62mm R탄을 사용한 반자동소총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모노프의 AVS-36과 토카레프의 SVT-38/40 반자동소총이 등장했다. 그러나 장비의 기동화로 더 이상 지리멸렬한 참호전이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본격적인 소총탄을 사용하는 반자동소총은, 보병의 기본화기라기보다는 저격소총처럼 활용되는 일이 더 잦았다.


    돌격소총의 등장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유럽 전역을 석권하던 독일군은 거듭되는 보병전투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보병전투가 이뤄지는 거리는 대게 400m 이하였고, 실제로 당대 보병소총의 표준이던 고위력 대구경탄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도출되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오히려 엄폐물 뒤에 숨은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연발을 쏟아부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되었다. 장거리의 표적에 대한 정확한 사격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400m 이상의 거리는 경기관총이나 중기관총으로 제압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MKb.42 소총의 발사장면. 사진 속의 인물은 폴란드군으로 추정된다. <출처: Public Domain>
    MKb.42 소총의 발사장면. 사진 속의 인물은 폴란드군으로 추정된다. <출처: Public Domain>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반영하여 새롭게 등장한 탄환이 바로 7.9x33mm 쿠르츠(kurz, 짧다는 뜻)으로, 1940년 발매되었다. 이 새로운 탄환을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총기는 자동카빈(Maschinenkarabiner; MKb)으로 불렸으며, 그 최초모델이 바로 MKb.42였다. 독일의 유력한 총기회사인 발터(Walther)와 헤넬(Haenel)이 각각 MKb.42를 개발했는데, 휴고 슈마이저(Hugo Schmeisser, 1884~1953)가 설계한 헤넬의 모델이 더욱 높은 신뢰성을 자랑하면서 시범적으로 채택되었다. 우선 7,800정이 시범생산되었는데,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서  MKb.42(H)의 추가 생산은 중지되었다. 히틀러는 MKb.42를 싫어하여 생산을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관단총과 기관총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기관단총이란 명목으로 생산을 유지해오던 MP43/44는 돌격소총으로 인정받아 StG.44로 진화했지만 독일이 2차대전에 패배하면서 종전과 함께 운명을 맞이했다. <출처: Public Domain>
    기관단총이란 명목으로 생산을 유지해오던 MP43/44는 돌격소총으로 인정받아 StG.44로 진화했지만 독일이 2차대전에 패배하면서 종전과 함께 운명을 맞이했다. <출처: Public Domain>

    MKb.42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육군병기국(Heereswaffenamt)은 이 총기를 더 이상 자동카빈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관단총(Machine Pistole)으로 분류하여 개발과 생산을 속행했다. 이에 따라 MKb.42의 개량형은 1943년 MP43으로 생산되었으며, 결국 히틀러의 승인으로 개량형인 MP44가 양산되었다. 특히 상황이 어려웠던 동부전선에서 MP44와 같은 연발화기의 요구가 높아지자, MP44는 약간의 개수를 거친 후에 슈트름게베어(Sturmgewehrm, 돌격소총이란 뜻)로 분류되어 StG.44로 일선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소련판 돌격소총을 개발하라

    소련은 PPSh-41 슈파긴 기관총을 애용했지만, 화력과 사거리의 부족에 목말랐다.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은 PPSh-41 슈파긴 기관총을 애용했지만, 화력과 사거리의 부족에 목말랐다. <출처: Public Domain>

    소련군은 1943년 7월에서야 독일군의 최신 소총인 MP43을 노획했다. 소련은 새로운 개념의 독일 소총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까지 소련 보병이 기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연발화기는 덱탸료프나 슈파긴 기관단총 정도였다. 두 기관단총 모두 7.65x25mm 토카레프 권총탄을 사용했지만 관통력이나 살상력이 매우 부족했고, 사거리가 100m를 넘어가면 위력은 더욱 떨어졌다. 결국 독일과 마찬가지로 소련도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과 강력한 대구경탄을 사용하는 소총의 중간적 존재로 위치하는 중거리 교전용 연발화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벌킨의 AB-44 시제 돌격소총. 브렌건과 유사한 상부급탄방식으로 차기소총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벌킨의 AB-44 시제 돌격소총. 브렌건과 유사한 상부급탄방식으로 차기소총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소련군의 무기개발을 관장하던 연방 인민 무장위원회는  그해 가을 신형 7.62x41mm M1943탄(추후에 7.62x39mm탄으로 변경됨)에 바탕한 소련판 '돌격소총'을 개발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소련을 대표하는 설계자들은 속속 다양한 시제소총을 선보였는데, 1944년의 시험평가까지 수다예프의 AS-44, 토카레프의 AT-44, 코로빈의 AK-44, 슈파긴의 AS-44, 벌킨의 AB-44 등 모두 10종의 시제소총이 제출되었다. 이 가운데 소련군의 주목을 받은 것은 수다예프 자동소총이었다.

    슈파긴이 제출한 AS-44 시제 돌격소총 <출처: Public Domain>
    슈파긴이 제출한 AS-44 시제 돌격소총 <출처: Public Domain>

    사실 1944년 5월의 첫 시험평가에서는 출품된 시제총기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소련군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 유력한 설계자들의 소총들도 탈락을 면하지 못했는데, 탈락한 이유들도 다양했다. 벌킨의 AB-44는 탄창을 위에서 결합하는 낡은 방식으로 새로운 총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토카레프의 AT-44는 탄피차개 등 부품 등이 낮은 신뢰성을 보이면서 연사기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슈파긴 모델은 신형 7.62x39mm 탄환을 설계에 포함시키지 못해 탈락했다.

    토카레프가 설계한 AT-44 시제 돌격소총 <출처: Public Domain>
    토카레프가 설계한 AT-44 시제 돌격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나마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수다예프의 시제총기였다. 동년 8월에도 추가적인 시험평가가 시행되었는데, 역시 부족한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인 것이 수다예표 소총이었다. 결국 시험평가 후에 성능을 개량한 이후 이듬해인 1945년 봄에 시험평가가 속행되기로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험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독일을 향한 마지막 공세가 끝난 직후였다.

    수다예프의 AS-44가 결국 최초의 시험평가에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추천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수다예프의 AS-44가 결국 최초의 시험평가에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추천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AS-44는 1945년 봄에 시험평가를 위하여 소량이 생산되어 그해 여름 야전평가를 거쳤다. 시험평가를 위해 선행양산총기를 지급받은 야전부대들은 AS-44의 성능을 높이 평가했다. PPSh-41보다 먼 거리의 표적에 교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중률도 높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반면에 무게가 무려 5kg을 넘었기에 개인화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시험평가위원회는 시험평가를 계속하기로 하고 추가적인 시제총기의 출품도 받기로 했다.


    칼라시니코프의 등장

    젊은 시절의 칼라시니코프 <출처: Public Domain>
    젊은 시절의 칼라시니코프 <출처: Public Domain>

    돌격소총의 개발과 함께 소련은 반자동소총의 개발도 동시에 진행했다. 소련군이 2차대전 동안 운용했던 SVT-40 반자동소총은 7.62mm R탄을 사용하여 위력과 사거리가 우수했지만, 지나친 반동과 기계적 한계로 막상 전장에서 신뢰성은 그다지 높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병사들은 SVT-40을 선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SVT-40은 무리한 사용보다는 저격총과 같은 제한된 용도로 더욱 선호되기도 했다. 사실 SVT-40은 총 자체의 개념이 문제라기 보다는 사용탄환인 7.62mm R 탄환이 가져오는 엄청난 반동이 문제였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차기소총의 탄환으로는 1943년 개발했던 7.62x41mm탄을 다시 개량한 7.62x39mm M1943탄을 채용하기로 하고, SVT-40과 모신나강 등 기존의 제식소총을 대체하기 위하여 신형탄환을 사용하는 반자동 카빈소총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신형 카빈의 개발에 참여한 설계자 가운데는 시모노프(Сергей Гаврилович Симонов, 1894~1986)와 같은 당대 최고의 장인도 있었지만, 칼라시니코프라는 젊은 설계자도 있었다.

    칼라시니코프가 최초로 설계한 7.62x25mm 구경 기관단총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가 최초로 설계한 7.62x25mm 구경 기관단총 <출처: Public Domain>

    미하일 칼라시니코프(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 1919~2013)는 원래 전차부대의 부사관으로 T-34 전차의 단차장이었지만, 1941년 9월 브랸스크 전투(Battle of Bryansk)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6개월 간의 휴가 동안 회복을 기다리던 그는 소화기의 개발에 전념했다. 애초에 기계설계의 소질을 보여 엔진 타코미터를 개량하기도 했던 칼라시니코프는 기차제작정비소의 지원을 받아 1942년에 7.62x25mm 차기 기관단총 선정사업의 시제총기를 제출했다. 칼라시니코프의 시제기관단총은 모스크바 항공연구소에서 시제총기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지만 결국은 채용되진 못했다.

    칼라시니코프가 1943년 개발했던 경기관총은 결국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가 1943년 개발했던 경기관총은 결국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비록 설계가 실용화되진 못했지만, 칼라시니코프의 재능을 파악한 소련군은 추가적인 직무교육훈련을 시킨 이후에, 그를 NIPSMVO(Научно-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й полигон стрелкового и минометного вооружен, 소화기·박격포 연구시험장)으로 발령했다. 여기서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의 기관단총 설계를 바탕으로 1943년 경기관총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역시 채용되지 못했다.

    칼라시니코프가 최초로 개발한 소총인 제1호 반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가 최초로 개발한 소총인 제1호 반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이후 칼라시니코프는 1944년경부터 소총으로 눈을 돌려 앞서 언급했던 반자동소총 사업에도 시제소총을 출품하였다.  "제1호 자동총기"라고 불렸던 이 소총은 미국 M1 개런드 소총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칼라시니코프의 첫 소총설계이기도 했는데, 결국 시모노프가 제작한 SKS 소총에 패배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첫 소총의 개발경험은 칼라시니코프에게 새로운 개념의 돌격소총에 대한 커다란 영감을 안겨주었다.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의 등장

    한편 1946년부터 다시 시작된 돌격소총 사업에는 커다란 변경이 생겼다. 일견 차기소총으로 확정되었던 것 같았던 AS-44 소총의 개발자인 알렉산더 수다예프(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Суда́е, 1912~1946)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에 따라 AS-44의 추가개발은 중지되었고, 이제 AS-44를 표준으로 이보다 뛰어난 소총을 개발하는 것으로 사업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벌킨(Алексей Алексеевич Булкин)은 AB-46(제작모델명 TKB-415)을, 코로빈은 불펍 형태의 AK-45를, 드멘티예프는 AD-46(제작모델명 KBP-410)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시제소총들이 출품되었다.

    칼라시니코프의 첫 시제 돌격소총인 AK-46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의 첫 시제 돌격소총인 AK-46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도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간의 경험을 살려 만든 신작인 AK-46을 출품했다. 1946년 12월부터 NIPSMVO에서 실시된 시험평가에서는 AB-46, AD-46, 그리고 AK-46이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3개의 후보총기를 놓고 벌어진 2차 시험평가에서 AK-46은 탈락하게 되었다. 쇼트스트로크 가스피스톤 작동방식을 채용함에 따라 작동부품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탈락의 이유였다.

    AK-46은 쇼트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용했지만 작동부품이 많다는 이유로 평가에서 탈락했다. <출처: Public Domain>
    AK-46은 쇼트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용했지만 작동부품이 많다는 이유로 평가에서 탈락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NIPSMVO 소속이던 칼라시니코프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하여 여러 지인들을 통하여 AK-46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재고를 요청했다. 결국 시험평가 담당관인 바실리 뤼우티 소령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AK-46을 다음의 시험평가에 포함시키는 대신 18가지의 개선사항을 지적하면서 개량을 요구했다. 칼라시니코프는 이에 응하여 곧바로 새로운 시제소총인 AK-47을 만들게 되었다.


    치열했지만 공정하진 않았던 선발경쟁

    AK-47의 최초 시제총기 <출처: Public Domain>
    AK-47의 최초 시제총기 <출처: Public Domain>

    3차 시험평가에 칼라시니코프는 AK-46을 개량한 AK-47을 들고 참가했다. 사실 개량형인 AK-47은 결코 칼라시니코프 혼자서 만든 게 아니었다. 시험평가관이던 뤼우티 소령을 비롯하여 NIPSMVO의  또다른 설계자인 블라디미르 데이킨도 참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칼라시니코프의 부인 예카테리나도 설계를 조력했다. 심지어는 포로로 잡혀와 소련의 총기개발을 도와야했던 독일 총기제작사 헤넬의 설계자이자 MKb.42·MP43/44·StG44의 개발자였던 휴고 슈마이저까지도 AK-47의 개발에 동원되었다. AK-47의 완성도가 높아지자, 차기 소총사업에 자신의 모델을 제출했던 덱탸료프 장군은 자신의 시제모델을 폐기했다고 알려진다.

    드멘티예프의 AD 시제소총 <출처: Public Domain>
    드멘티예프의 AD 시제소총 <출처: Public Domain>

    3차 시험평가는 1947년 12월부터 시작되어 1948년 1월 11일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시험평가가 이뤄진 것은 NIPSMVO였다. AK-47, AB-46, AD 등 시제소총 3종이 제출되었으며, 각 총기는 목재 개머리판을 장착한 보병용과 철제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한 모델 등 2가지로 만들어졌다. 제출된 3개 기종은 각기 독특한 특징이 있었지만, 공통점도 많았다. 모두 롱스트로크 가스피스톤 작동방식을 채용했고, 회전식 노리쇠로 약실을 잠구었으며, 단발과 연발이 가능했고, 리시버는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어지며, 30발들이 복열탄창을 채용했다.

    AK-47 소총의 개발사


    벌킨의 AB-46(위)와 개량형 AB-47(아래) 소총. 과거 제출했던 AB-44와는 완전히 다른 설계였다. <출처: Public Domain>
    벌킨의 AB-46(위)와 개량형 AB-47(아래) 소총. 과거 제출했던 AB-44와는 완전히 다른 설계였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가장 유력해보이던 총기는 벌킨의 AB-46이었다. 칼라시니코프는 AK-46에서는 쇼트 스트로크 가스피스톤을 채택했지만, 결국 AB-46의 롱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AK-47을 만들었다. 피스톤과 결합된 AK-47의 노리쇠 형태도 실은 AB-46이 먼저 구현했던 것을 복제해온 것이었다. 따라서 시험평가에서 AK-47과 가장 호적수였던 상대는 AB-46(마지막 시험평가에 제출된 벌킨의 개량형은 AB-47로 불리기도 한다)이었다. 그러나 시험평가 감독관이던 뤼우티 소령까지 AK-47의 설계를 돕는 가운데 시험평가가 어느 정도 공정성을 확보했을지는 미지수인 점도 있다.

    AB-47 소총의 작동부품들. 피스톤과 결합된 노리쇠 부분은 오히려 AB-46이 오리지널임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AB-47 소총의 작동부품들. 피스톤과 결합된 노리쇠 부분은 오히려 AB-46이 오리지널임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최후의 승자

    칼라시니코프의 AK-47 보병용 기본모델(좌)과 공수부대용 접철식 모델(우) <출처: Public Domain>
    칼라시니코프의 AK-47 보병용 기본모델(좌)과 공수부대용 접철식 모델(우) <출처: Public Domain>

    시험평가에서 사실상의 최종 후보는 AK-47과 AB-47이었다. AK-47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지만, 연발시 정확성 면에서는 부족함을 보였다. 그러나 AB-47은 야전 신뢰성에서 부족함을 보였던 반면, 연사시 정확성은 AK-47보다 우위에 있었다. AB-47의 야전 신뢰성 부족은 부품의 내구성 부족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설계변경을 해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벌킨의 AB-47 보병용 기본모델(우)과 공수부대용 접철식 모델(좌) <출처: Public Domain>
    벌킨의 AB-47 보병용 기본모델(우)과 공수부대용 접철식 모델(좌) <출처: Public Domain>


    AK-47 소총의 개발사

    평가위원회는 고민에 빠졌다. 신뢰성과 내구성을 우선할 것이냐 정확도를 우선할 것이냐를 놓고, 결국 야전 신뢰성을 우선으로 삼았다. 정확하지만 험한 러시아의 자연환경에서 발사되지 않는 총보다는 정확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무조건 발사되는 총이 더 좋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연사시에만 제어의 어려움으로 정확성이 떨어질 뿐, 총 자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AK-47의 선정은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AB-47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설계자 자신이었다. 불같은 성격으로 군의 요구사항에 저항했던 벌킨은 결국 군의 수정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과 AB-47은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시험평가위원회는 1948년 1월 10일 다음과 같이 선정평가를 발표했다.

    M1943탄을 사용하는 7.62mm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연발사격, 부품 내구성, 작동특성 등에서 전술 및 기술요구사항
    제3131호를 가장 충족하므로, 계열양산과 동시에
    군용적합성 시험평가를 진행할 것을 권고한다.
    벌킨과 드멘티예프의 7.62mm 돌격소총은
    기술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여
    야전시험평가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따라 AK-47은 드디어 소련군의 미래를 짊어질 돌격소총으로 채용되었다. AK-47의 시제총기들은 러시아 외곽에 위치한 코브로프(Ковро́в)시의 병기국 제74호 공장에서 만들어졌지만, 대량생산은 이젭스크(Иже́вск)의 제524호 공장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코브로프에 거주하던 칼라시니코프는 1948년 초에 이젭스크로 이주했으며, AK-47의 양산은 1948년 중반부터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949년 소련군은 AK-47 기본형을 제식명 "7.62mm 아프토마트 칼라시니코바(AK),  러시아 원어표기 7,62-мм 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 (АК)"로 채용했으며, 접철식 모델은 "7.62mm 아프토마트 칼라시니코바 소 스클라디바유심샤 프리클라돔(AKS), 러시아 원어표기 7,62-мм 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 со складывающимся прикладом (АКС)"으로 명명하여 채용했다.


    계속되는 칼라시니코프의 시대

    AK-47은 제식채용되면서도 개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군 내부의 시험평가를 거치는 과정에서 연구진은 시제총기를 사격한 장병들에게 꼼꼼한 인터뷰를 실시하면서 장단점을 파악해나갔다. 특히나 어떤 상황에서도 발사될 수 있는 신뢰성 높고 내구성 높은 총기를 만들기 위하여 작은 부품 하나하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무려 596건의 설계세부 변경이 있었는데, 그 중 228건이 총기의 강성에 관한 것이었고, 214건은 기술적 내용이었으며, 나머지 154건은 일부 수정에 관한 것이었다.

    AK-47은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도 오히려 철저한 수요군 시험평가를 통해 성능을 개선해나갔다. <출처: Public Domain>
    AK-47은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도 오히려 철저한 수요군 시험평가를 통해 성능을 개선해나갔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양산 방식도 문제였다. 최초에는  리시버와 총몸을 모두 판금 프레스가공으로 생산하였는데, 가이드와 이젝터 레일을 용접하는 과정에서 불량률이 너무도 높았다. 이에 따라 리시버는 절삭가공방식으로 전환했는데, 생산방식이 바뀌어서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에 이르러서였다. 생산방식이 바뀐 총기는 AK-49로 불렸지만, 외부에는 '제2형 AK-47'이란 명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또한 생산방식의 변경에 따라 가공시간과 인력이 더욱 증가하게 되어, AK-47은 1956년까지도 일선에 본격적으로 배치되지 못했다.

    AK-47 소총의 개발사

    AK는 1959년 개량형인 AKM, 즉 아프타마트 칼라시니코바 모데르니지로반니(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 Модернизированный,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업그레이드 모델의 뜻)에 이르러서야 안정적인 총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1974년에는 소구경탄인 5.45x39mm을 채용한 AK-74로 기존의 AK-47·AKM을 교체해나감으로써 차세대 AK를 구현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주력소총으로 사용 중이다. 그리고 2018년에 이르러서는 AK-74의 현대화 모델인 AK-12와 AK-15로 교체가 발표되었다. 칼라시니코프는 2013년 12월 23일 작고했지만,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21세기에도 계속 그 명맥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AK-12는 시험평가를 완료해가고 있으며 실전배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AK-12는 시험평가를 완료해가고 있으며 실전배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AK-12는 시험평가를 완료해가고 있으며 실전배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저자소개

    양욱 | National Security Consultant

    AK-47 소총의 개발사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다. 현재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신안산대 경호경찰행정학과의 겸임교수로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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