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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안보동맹 상징이 사라졌다" 美軍도 애도 행렬
[백선엽 장군 사망]

입력 : 2020.07.13 03:25

지난 10일 별세한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에 대한 각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백 장군은 6·25 때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미군에 '살아 있는 전설이자 신화'로 통했다. 전후엔 한미 안보 동맹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그런 백 장군의 죽음을 맞아 주한 미국 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은 조문과 추도 성명을 통해 애도했다.

조문하는 이해찬 대표… 美대사·주한미군사령관도
조문하는 이해찬 대표… 美대사·주한미군사령관도 "존경"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위 사진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2018년 11월 주한 미군이 주관해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백 장군 생일 파티에서 백 장군을 무릎 꿇고 맞이하는 모습. 오른쪽 아래 사진은 지난해 한국 나이 100세를 맞은 백 장군을 예방한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 사령관과 마이클 빌스 8군 사령관이 백 장군과 사진을 찍는 모습. /이태경 기자·남강호 기자·주한미군

1950년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막아낸 1사단의 다부동 전투는 스파르타의 300용사가 마케도니아 해안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막다가 전원 옥쇄한 전사(戰史)와 비교된다. 다부동이 북한군에 뚫리면 임시 수도 대구가 적 포화의 사정거리에 들어갈 상황이었다. 당시 30세의 나이로 1사단을 이끈 백 장군은 후퇴하려는 한국군 병사들을 가로막고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 백 장군의 독려에 장병들은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백 장군의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 후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한 부대가 됐다. 미군 1기병사단, 24보병사단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 전쟁 중 국군 1사단은 미군들 사이에서 "가장 잘 싸운 한국군 부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백 장군은 6·25전쟁 중 국군과 경찰 유자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백선 유아원'도 세웠다. 1951년 11월엔 야전전투사령관에 임명돼 지리산 빨치산 소탕 작전 등에도 공을 세웠다.

백선엽 장군 일대기 연표

전란 중이던 1952년 7월 백 장군은 제7대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최연소였다. 이듬해 1월엔 만 33세 나이로 한국군 최초의 4성(星) 장군이 됐다. 정전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내고 이듬해 5월 예편했다.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백 장군은 생전 본지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장병들과 함께 평양에 첫발을 들여놨던 1950년 10월 19일을 꼽았다.

백 장군은 1952년 12월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 앞에서 한국군 전력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했다. 이후 그는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임하며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하는 결실을 거뒀다. 1957년엔 두 번째로 육군참모총장(10대)을 지냈다. 2년 후 합참의장이 됐다가 그 이듬해 전역했다.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평양사범학교를 거쳐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다. 만주국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백 장군은 1945년 해방 직후 평양에 돌아왔다.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권력을 잡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월남 직후 군사 영어학교에 들어간 백 장군은 1946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창군 원년(元年) 멤버가 됐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사령관'으로 위촉해 공식 행사 때 현역 미 8군사령관과 같은 예우를 했다. 주한미군 장성들은 백 장군을 헬기에 태워 낙동강 격전지까지 가 6·25 전황을 듣는 '현장 학습'도 했다. 작년 1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 나이로 100세 생일을 맞은 백 장군을 찾아 축하했다. 미 태평양사령관 출신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2018년 11월 백 장군의 백수(白壽) 행사에서 휠체어를 탄 백 장군을 무릎을 꿇은 채 맞으며 예를 다했다. 지난 11일 백 장군 빈소를 찾은 해리스 대사는 당시 장면을 찍은 사진을 품에서 꺼내며 고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백 장군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군 내부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구명(救命)했다. 백 장군 유족으로는 부인 노인숙씨, 아들 백남혁·백남흥씨, 딸 백남희·백남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례는 육군장(葬)으로 거행된다. 장의위원회 관계자는 "운구 차량은 백 장군과 함께 싸운 장병 11만명이 잠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앞을 지난다"며 "미 8군의 협조를 받아 평택 미 8군 사령부에도 잠시 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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