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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톡] 한국판 300전투 영웅, 백선엽에 美장성들 질문이 쏟아졌다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美장성들, 백선엽 장군과 헬기로 낙동강에 간 사연
백선엽에 “戰史에 나오는 분” “살아있는 전설”
입력 : 2020.07.12 11:01
2019년11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 나이로 100세 생일을 맞은 백선엽 장군을 예방한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사진 왼쪽)이 마이클 빌스 8군사령관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백 장군님, 방어선을 강변(江邊)이 아닌 강 가운데에 설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6·25전쟁) 당시 수량이나 강폭이 지금과 같았습니까?” 지난 2002년9월 경북 왜관시 낙동강 철교 옆 둔치. 리온 라포트 당시 주한미군사령관과 남재준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비롯한 한·미 양국군 장성 20여명이 백발이 성성한 82세의 노장(老將)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6·25전쟁 당시 전황과 작전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당시 자리는 6·25전쟁 격전지를 찾아 ‘지형 정찰’과 함께 당시의 전략·작전 등을 ‘현장학습’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마련한 행사였다. 전쟁 당시 1사단장으로 참전해 다부동 전투의 영웅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백 장군이 6·25전쟁의 영웅이자 산 증인으로 초빙된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미 연합사 소속 양국군 장성은 23명에 달했다.

6.25전쟁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 부하들과 작전을 협의하고 있다.


◇'한국판 300' 다부동 전투의 영웅 라포트 사령관 일행은 이어 303고지, 다부동 전적기념비, '볼링 앨리(Bowling Alley)', 1사단 사령부가 있던 D초등학교 등 네 곳을 더 들러 백 장군으로부터 전황 설명을 들었다. 스파르타의 300 용사가 마케도니아 해안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다가 전원 옥쇄한 역사는 영화 '300'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막아낸 1사단의 다부동 전투는 한국의 테르모필레였다. 다부동이 돌파되면 임시수도 대구가 적 포화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고 부산까지 밀릴 가능성이 컸다. 당시 30세 청년 장군으로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은 후퇴하는 한국군을 가로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장병들을 독려, 결국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미군 장군들은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 장군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곤 했다. 이날 주한미군 소속 전사(戰史) 전문가도 동행해 "백 장군이 너무 겸손하게 설명하셨다" "보충설명을 하면 이렇다"며 장성들의 이해를 도왔다. 6시간여 동안에 걸친 '현장학습' 행사가 끝날 무렵 한 한국군 장성은 "과거 역사로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미군들의 노력은 소름 끼칠 만큼 치밀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당시 동행 취재하는 동안 기자는 "미군은 '6·25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을 이렇게 예우하고 실전 교훈을 배우려 노력하는데 정작 한국군은 어떠한가"라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짓눌렀다.

6.25전쟁 때 만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첫 대장이 됐던 백선엽 장군.


◇미군 장군들, '살아 있는 전설' 백장군에 경외감 지난 10일 별세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한국군보다 미군으로부터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로 더 극진한 예우를 받아왔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이·취임식에서 한국군 관계자들을 언급할 때 국방장관 등보다 백 장군을 가장 먼저 호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사령관'으로 위촉해 각종 공식행사 때 주한 미 8군사령관과 같은 예우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마이클 빌스 미 8군사령관 함께 한국 나이로 100세 생일을 맞은 백 장군을 찾아 축하 인사를 하고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백 장군이 미군들로부터 이런 예우를 받아온 데엔 미군 전사책에 나오는 6·25전쟁 참전 한·미 장군들중 사실상 유일한 생존인물이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백 장군은 맥아더, 리지웨이, 밴플리트 장군 등과 미군 전사책에 등장하는 몇 안되는 한국군 장군이었다. 한미연합사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장성은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군 간부들이 사관학교 다닐 때 공부한 한국전 관련 전사책에 나오는 유명 장군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라며 "하지만 한국에 와 전사책에서 보던 백선엽 장군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살아 있는 신화이자 전설'로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11월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백수 행사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가 무릎을 꿇고 휠체어를 탄 백선엽 장군을 맞고 있다.


◇해군 대장 출신 해리스 대사의 극진한 예우 이는 미 태평양사령관(해군대장) 출신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해리스 대사는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 여사를 만나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는 2018년 11월 21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백 장군의 백수(白壽) 행사에서 해리스 대사가 무릎을 꿇고 휠체어를 탄 백 장군을 맞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해리스 대사가 평소 백 장군에 최고의 극진한 예우를 하고 그의 업적을 기려왔음을 알리며 유족을 위로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노 여사에게 "항상 갖고 다니는 사진"이라며 "백 장군을 이렇게 떠나보내니 상심이 크다"고 했다. 해리스 대사는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합중국을 대신해 백 장군의 별세에 나의 가장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는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었고, 리더, 애국자, 전사,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현재의 한미동맹을 구축하는 데도 일조했다.' 주한미군도 이날 트위터에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백 장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했다. 유엔군사령부는 트위터에 "슬프게도 백 장군에게 작별을 고한다"며 추모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애도 성명을 통해 "6·25전쟁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고,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까지 한 백 장군은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고 했다. 백 장군은 만 31세의 나이로 한국군 사상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기록을 세웠고, 33세엔 한국군 최초의 대장이 됐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 대사가 지난 11일 서울아산병원 백선엽 장군 빈소에 남긴 방명록.


◇ 30대 나이에 대장 된 ' 3대장(大將) 시대'의 종언 백 장군이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이 되는 데엔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6·25전쟁 당시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군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는 영어를 잘 해 전쟁 중 미군(유엔군)과의 소통에 역할이 컸고 미군 수뇌부와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는 데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이 절대적이었지만, 미 군부와의 친분을 활용해 미 군부에 처음 이 구상을 제기한 것은 백 장군이었다. 그는 미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국군 증강 계획을 세워 한국군 발전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백 장군의 별세는 이른바 '3대장(大將) 시대'의 종언이라는 의미도 있다. 3대장은 6·25전쟁 무렵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장으로 진급해 한국군의 전설이 된 3명의 장군을 일컫는다. 백 장군이 1953년 만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최초의 대장이 된 데 이어 이듬해 이형근(1920~2002)장군과 정일권(1917~1994)장군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군번 1번'으로 유명했던 이형근 장군은 당시 34세, 국무총리 등을 지낸 정일권 장군은 37세였다.

지난 5월 별세한 '한미연합사 창설의 주역' 류병현 전 합참의장.


군내에선 지난 5월 별세한 ‘한미연합사 창설의 주역’ 류병현 전 합참의장에 이어 백 장군까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이제 한미 안보동맹의 상징적 존재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인물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류 전 의장은 6·25전쟁 때 미 25사단 연락장교 등으로 참전했고 1951년 미 기갑학교 유학 후 귀국해 기갑병과 창설의 주역이 됐다. 해박한 군사지식과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1968년 제1차 한·미 국방장관 회의 때부터 대미 군사외교 일선에서 활약했다. 류 전 의장은 1970년대 중반 한미 안보동맹사의 한 획을 그은 한미연합사 창설을 주도,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될 때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그가 96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류 장군님은 초대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내셨고 오늘날의 연합사를 있게 한 기반을 다지셨다”며 “동북아 안보의 주역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하셨으며 우리 모두는 류 장군님을 진정으로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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