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베르디에 소총
우연히 주력이 된 소총
  • 홍희범
  • 입력 : 2020.07.01 08:29
    베르디어 Mle1907-15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어 Mle1907-15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프랑스는 르벨 소총의 도입으로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소총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 기세는 몇 년 이어지지 못했다. 르벨 소총 도입을 위해 엄청나게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르벨 도입 이후 수년 안에 독일과 영국 모두 르벨보다 나은 총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르벨소총은 튜브형 탄창으로 대용량을 제공했지만 기병총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르벨소총은 튜브형 탄창으로 대용량을 제공했지만 기병총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게다가 과도하게 서두른 부작용은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가 탄창이었다. 르벨의 튜브형 탄창은 분명 8발이라는 대용량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많은 부작용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작용은 길이를 줄이면 탄창 용량도 길이에 따라 그대로 줄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즉 기병대용의 짧은 기병총(카빈)을 만들면 탄창 용량이 상당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기병대가 생각한 문제는 탄창 용량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재장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탄창 용량이 줄어드는 그 자체는 재장전이 편하다면 극복이 가능했다. 문제는 한 발씩 탄피 배출구를 통해 직접 넣어 탄창을 채워야 하는 르벨은 말 위에서 재장전하기도 매우 불편했다. 게다가 르벨은 원래 무거운 총이라 길이를 짧게 해도 기병대가 쓰기에는 좀 무거울 거라는 불평도 있었다.

    프랑스군은 1차 세계대전 초반까지도 기병에 의한 돌파전법을 시도했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군은 1차 세계대전 초반까지도 기병에 의한 돌파전법을 시도했었다. <출처: Public Domain>

    결국 프랑스군은 기병대용의 단축형 르벨을 포기했다. 하지만 기병대용 총기를 연발로 바꾸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냥 연발총도 아니고, 보병이 신형 무연화약을 도입한 이상 기병도 같은 화약을 쓰는 신형 탄약을 쓰는 총으로 도입해야 했다. 이는 프랑스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었다. 프랑스군은 1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기병에 의한 돌파전법에 큰 기대를 걸었고, 또 실질적 기마보병인 용기병(Dragoon)을 적극 운용해 전통적인 기병 전술과는 별개로 일종의 기동 예비대적인 부대를 많이 운용하려 했다. 이들이 계속 단발총으로 무장하는 것은 프랑스군 입장에서는 기동전력을 현대화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여기에 기병뿐 아니라 짧은 총을 원하는 병과는 포병 등 적지 않았다. 이처럼 르벨을 대신해 채택될 짧은 총을 찾다가 나온 것이 바로 예비역 보병 장교이자 철도 기관사이던 앙드레 베르디에(Andre Berthier)라는 인물의 설계안이었다.

    베르디에 Mle1890 기병총(카빈)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 Mle1890 기병총(카빈)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의 설계안은 르벨 소총의 노리쇠는 살리되 탄창은 튜브형 대신 고정식의 상자형 탄창을 쓰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클립을 이용해 장전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클립 방식이라고 하면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만리허가 만든 일체형(En-Bloc) 클립을 쓰는 방식이었지만, 이것만 해도 튜브형 탄창보다 압도적으로 신속한 재장전이 가능했고 총의 무게와 생산성에도 크게 유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 내부에서는 이 방식을 쓸 것인지, 다른 방식을 쓸 것인지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 논란을 멈추게 한 것은 1888년에 독일이 같은 방식 탄창을 채택한 Gew88을 도입한 사건이었다. 프랑스군은 결국 베르디에의 설계안을 도입하기로 했고, 이것이 1890년에 정식 채택된 베르디에 기병총(카빈) 이었다.

    독일이 Gew88을 도입하자 프랑스도 서둘러 클립 탄창방식의 베르디에 기병총을 도입했다. <출처: Public Domain>
    독일이 Gew88을 도입하자 프랑스도 서둘러 클립 탄창방식의 베르디에 기병총을 도입했다.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는 어디까지나 기병 등 일부 병과에 쓰이는 총이고 보병의 주력은 르벨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뒤 어떤 반전이 있을지는 이 총이 처음 도입될 때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특징

    베르디에는 원래 3연발 탄창을 갖췄다. 당시의 사실상 모든 소총이 5연발 탄창을 갖췄는데 왜 굳이 프랑스는 3연발로 만들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탄약의 디자인 탓이 크다.

    Mle1890/1892 등 3연발 탄창을 가진 베르디에의 단면 <출처: Public Domain>
    Mle1890/1892 등 3연발 탄창을 가진 베르디에의 단면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의 8mm 르벨 탄약은 탄피 바닥 부분의 테두리가 밖으로 심하게 튀어나온 림드(Rimmed) 탄피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원래 11mm 용으로 만들어진 탄피를 거의 그대로 쓰다 보니 치수 자체도 꽤 크다. 그러다 보니 복렬 탄창 설계도 쉽지 않고, 단열 탄창으로 설계하면 5연발 탄창으로도 꽤 부피가 나온다.

    베르디에용 3연발 클립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용 3연발 클립 <출처: Public Domain>

    사실 다른 나라들은 같은 림드 탄피를 사용해도 5연발 탄창을 쓴 경우가 수두룩하다. 오스트리아의 만리허, 러시아의 모신 나강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영국의 리엔필드는 숫제 10연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3연발 탄창을 고집한 이유는 총을 등에 비스듬히 가로질러 메고 다니는 기병대에게는 탄창이 튀어나오면 등을 찔러 불편하다는 이유였는데, 이것이 정말 큰 문제였을지는 알 수 없다.

    베르디에 계열 소총은 일체형 클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전시에 클립까지 같이 탄창에 다 넣는다. 다 쓴 클립은 탄창 아래의 구멍으로 떨어진다.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 계열 소총은 일체형 클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전시에 클립까지 같이 탄창에 다 넣는다. 다 쓴 클립은 탄창 아래의 구멍으로 떨어진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3연발이라는 작은 용량은 채택 당시의 프랑스군에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보병이 연발총을 쓰는 와중에도 단발총인 그라 사용을 강요당하던 기병대에게는 3연발만 해도 감지덕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재장전의 편의성은 르벨보다 나았기 때문에 시간당 화력 자체는 생각만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Mle M16용 5연발 탄창. 상당수의 베르디에 계열 소총들이 5연발로 개조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le M16용 5연발 탄창. 상당수의 베르디에 계열 소총들이 5연발로 개조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다만 이 탄창 용량은 나중에 문제가 되고, 결국 5연발 탄창으로 개량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베르디에가 또 다른 주력 소총이 되고 그에 따른 개량을 겪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적인 독일군이 5연발 소총을 쓰는 와중에 3연발로 만족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Mle1907-15 M34는 사용탄을 신형 7.5mm로 바꾸면서 클립도 벗겨내기식으로 바꾸었다. <출처: Public Domain>
    Mle1907-15 M34는 사용탄을 신형 7.5mm로 바꾸면서 클립도 벗겨내기식으로 바꾸었다. <출처: Public Domain>

    얼핏 보기에 외관상으로 두 총은 전혀 다른 총처럼 보인다. 금속제 리시버가 외부에 노출된 르벨과 달리 베르디에는 리시버가 목제 스톡 안에 수납되어 있고, 장전손잡이도 르벨은 옆으로 뻗어 나와 있지만 베르디에는 기병총이라 아래로 꺾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은 두 총은 탄창을 빼면 큰 차이가 없다. 위에도 언급했듯 처음부터 르벨 소총의 노리쇠 구조를 응용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편이 훈련이나 유지 보수에 훨씬 유리하다.

    5연발 탄창 버전의 절개 모델 <출처: Public Domain>
    5연발 탄창 버전의 절개 모델 <출처: Public Domain>

    원래의 기병총 버전은 착검이 되지 않았다. 기병은 기병도(사브르)나 기병창을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 시대였고, 그렇다면 백병전을 위한 총검을 따로 준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다른 병과를 위한 베리에이션이 여럿 등장하면서 이들에게는 착검 장치가 추가되었다.

    5연발 탄창 버전의 절개 모델 <출처: Public Domain>


    운용의 역사 : 조연에서 주연으로

    베르디에는 원래 기병대가 사용하는 총이었다. 프랑스군이 기병을 중요시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조차 전장의 주연은 보병이었다. 아무리 기병대가 위세 좋게 달려가 적진을 돌파해도 결국 그곳을 점령해 깃발을 꽂는 것은 보병이니 말이다. 따라서 베르디에는 기병대라는 조연을 위한 소도구에 불과했다. 적어도 원래 생각은 그랬다.

    베르디어 기병총은 최초에는 기병대의 보조장비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다.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어 기병총은 최초에는 기병대의 보조장비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영화에도 주연보다 조연이 더 많은 법이다. 더 많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시 못 할 숫자의 조연이 있게 마련이다. 기병대 뿐 아니라 포병 등 짧은 총이 필요한 병과는 프랑스군 안에 적지 않았고, 여기에 전통적으로 짧은 기병총에 착검 장치만 달아서 사용해 온 국가헌병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인도차이나반도 등에는 체구가 작은 현지인들로 구성된 부대도 있었다. 짧은 총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1904년에 르벨 소총의 생산이 종료된 것도 베르디에의 생산에 영향을 끼쳤다. 1907년, 아프리카의 식민지 현지인 부대원들을 위한 소총으로 베르디에 기병총의 길이를 보병총 수준으로 늘린 베르디에 Mle1907 식민지용 보병총의 생산이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르벨 소총은 값이 비싸고 생산성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수년 전에 생산이 종료된 것을 굳이 되살릴 필요는 없다고 여겨졌다. 반면 베르디에는 그 시점에서 여전히 이런저런 바리에이션들이 생산 중이었다. 어느 모로 봐도 르벨이 아니라 베르디에의 파생형을 만들어 아프리카 식민지군용으로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고가의 르벨을 대신하여 베르디에 소총이 계속 양산되어 식민지군 무장을 위해 지급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고가의 르벨을 대신하여 베르디에 소총이 계속 양산되어 식민지군 무장을 위해 지급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처럼 1914년까지 베르디에의 각종 파생형은 약 100만 정이 생산되는 등 조연치고는 상당한 생산량을 보였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곧 ‘주연을 밀어내는 조연’이 된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프랑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져든다. 원래 프랑스는 장기적인 전면전에 휘말릴 것은 예상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3백만 정의 르벨 소총 수요가 충족되자 1904년에 생산 라인을 닫았다. 그런데 1914년부터 소총의 소모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 때문에 프랑스는 소총을 새로 생산해 전선에 보내야 했다.

    1차대전이 격화되면서 유일하게 양산되던 베르디에 소총은 프랑스의 주력 소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1차대전이 격화되면서 유일하게 양산되던 베르디에 소총은 프랑스의 주력 소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르벨은 앞서 언급했듯 생산라인이 닫혀있었고, 튈(Tulle) 조병창이 유일하게 재고 부품을 조립해 약간의 르벨을 출고하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 베르디에는 식민지용으로 Mle1907 버전 등을 계속 생산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르벨 소총의 생산라인을 다시 설치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베르디에 Mle1907을 약간 고친 Mle1907-15를 대량으로 생산해 일선에 보급하기로 한다.

    그 결과 베르디에, 특히 Mle1907-15의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원래의 Mle1907이 겨우 2만 4천여 정 생산된데 반해 1907-15는 무려 214만 정 가까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르벨 소총은 여전히 일선의 주력이었지만 급격한 소모로 인해 오래지 않아 베르디에가 또 다른 주력 소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프랑스의 우방국들에 대해서도 생산 중이던 베르디에 소총이 상당수 지원되었다.

    Mle1907-15 소총은 무려 200만 정 이상이 생산되어 전선에 지급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le1907-15 소총은 무려 200만 정 이상이 생산되어 전선에 지급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1차 대전 중의 베르디에 소총 생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16년 후반에는 탄창을 5연발로 개량한 버전인 Mle M16형이 개발되어 1917년 후반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Mle M16에는 총열이 긴 보병총과 짧은 카빈(기병총) 버전이 있었으나 그중 기병총 쪽이 가장 먼저 생산이 시작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 시점에서 기병은 이미 중요도가 크게 떨어졌지만, 참호전에서 길이가 짧은 소총의 필요가 높아지면서 생산 우선순위가 기병총 쪽에 맞춰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르디에 소총과 기병총은 프랑스군의 주력으로 바뀌게 된다. 르벨 소총은 상당수가 전장에서 소모됐고 베르디에는 여전히 생산 라인과 재고 부속이 남아있는 데다 실제 남아있는 숫자도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3연발 베르디에 버전은 5연발로 대부분 개조되었고, 남은 르벨은 예비용으로 돌려지거나 분대당 1정씩 총류탄 발사용으로 남겨졌다.

    1차대전 이후 베르디에 소총은 2선급 무장으로 돌려졌지만 M16 카빈은 꾸준히 생산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1차대전 이후 베르디에 소총은 2선급 무장으로 돌려졌지만 M16 카빈은 꾸준히 생산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르디에 계열 소총들의 생산은 1940년까지 대체로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Mle M16 카빈은 1940년까지 49만 정이 넘는 양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34년에는 새로운 7.5mm 탄을 쓰도록 개조된 Mle 1907-15 M34라는 개량형도 등장했다.

    이처럼 다양한 베르디에 계열 총기들이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군의 실질적인 주력 소총이었다. 원래 프랑스군은 2선 급 부대들은 MAS-36 볼트 액션 소총으로, 1선 급 부대들은 1940년부터 보급될 예정이던 MAS-40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40년의 전쟁은 워낙 다급하게 벌어진 상황이라 1선 급 부대들에게 급한 대로 지급됐던 MAS-36소총은 물론 7.5mm로 개량된 M34 베르디에 소총조차 병력 정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병력의 대부분은 베르디에 소총 및 기병총으로 무장하고 싸워야 했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노획한 베르디에 소총들을 대량으로 채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노획한 베르디에 소총들을 대량으로 채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찌감치 패배하고 말았지만, 베르디에 계열 총기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비시 프랑스 정부군이 당연히 이 총을 대량으로 사용했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도 이 총을 대량으로 노획해 2선 급 부대들에게 널리 지급했으며 대전 말기에는 독일 본토의 국민돌격대에게도 지급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베르디에 계열 총기들은 프랑스의 입김이 닿은 많은 지역에 보급되어 꽤 오랫동안 사용됐다. 베트남에서도 베트민 세력이 사용한 노획 총기 중 하나였고, 알제리나 시리아 등에서도 적잖이 볼 수 있었으며 최근에도 중동 등지에서 드물게 목격된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노획한 베르디에 소총들을 대량으로 채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파생형

    Mle1890 : 기본형의 기병총. 길이 945mm로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짧다. 약 20만 정이 생산됐다.

    Mle1890 <출처: Public Domain>
    Mle1890 <출처: Public Domain>

    Mle1890 흉갑기병총 : 흉갑기병, 즉 상반신 보호용 갑옷(흉갑)을 착용하고 돌격하는 기병대를 위한 기병총. 1914년 시점에서 독일이나 러시아는 흉갑기병을 운용은 했지만 흉갑 자체는 퍼레이드에만 사용하는 의장용이었던 반면(실질적인 일반 기병이 됨) 프랑스는 실전용으로도 흉갑을 사용했다. 흉갑기병총은 기본형 Mle1890과 달리 멜빵고리 위치가 아래로 옮겨지고 어깨받이도 금속이 아니라 두터운 가죽으로 바뀌어 갑옷에 흠집이 나지 않게 했다. 참고로 프랑스 흉갑기병의 흉갑은 1차 대전 개전 직후에 사용이 중지됐다. 2만 정 생산.

    Mle1890 흉갑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90 흉갑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90 국가헌병대 기병총 : 국가헌병대용. Mle1890에 착검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버전. 약 8만 정 생산.

    Mle1890 국가헌병대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90 국가헌병대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92 포병단총 : 포병대에서 쓰기 위한 버전. 약 73만 정이 생산되어 포병 및 기타 보병이 아닌 요원들에게 지급되었다. 국가헌병대용 기병총과 매우 비슷.

    Mle1892 포병용 단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92 포병용 단총 <출처: Public Domain>

    Mle1902 인도차이나 단총 : 당시 프랑스 식민지이던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쓰기 위한 버전. Mle1892가 반동과 화염이 체구가 작은 인도차이나 현지인 병사들에게는 너무 강하다는 지적 때문에 나온 것으로, 길이가 약 1.12m로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1920년에는 탄창을 5연발로 늘린 Mle1902 M16형도 등장했고 1929년까지 59,150정이 생산됐다.

    Mle1902를 사용하는 프랑스령 베트남 현지인 부대 <출처: Public Domain>
    Mle1902를 사용하는 프랑스령 베트남 현지인 부대 <출처: Public Domain>

    Mle1907 : 북아프리카 지역 식민지 부대를 위해 1907년에 개발된 버전. 르벨 소총 대신 지급하기 위해 생산된 것으로, 체구가 큰 현지인 병사들을 위한 총이라 길이가 1.3m인 평범한 보병총이 되었다. 1914년까지 약 24,000정 생산.

    Mle1907-15 :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생산된 Mle1907의 파생형. 큰 차이는 없고(장전손잡이가 Mle1907과 달리 옆으로 뻗어있다), Mle1907을 전시 수요에 맞춰 대량생산한 물건이다. 거의 214만 정이 생산되었으며 상당수는 나중에 탄창을 5연발로 개량한 M16 개량을 받았다. 미국 레밍턴사도 생산했으나 그 생산량은 수천 정에 불과하다.

    Mle1907-15. Mle1907과 거의 같은 총이지만 장전손잡이는 아래로 꺾여있지 않고 옆으로 뻗어있다. <출처: Public Domain>
    Mle1907-15. Mle1907과 거의 같은 총이지만 장전손잡이는 아래로 꺾여있지 않고 옆으로 뻗어있다. <출처: Public Domain>

    Mle M16 : Mle1892 기병총 최대의 단점인 3발의 장탄수를 개선하기 위해 5연발 탄창을 장착한 버전. 1918년부터 1940년까지 약 49만 정이 생산되었다. 그전에 만든 총들 중에도 상당수가 탄창이 5연발로 개조되었다.

    Mle M16. 5연발 탄창을 장착한 업그레이드 버전 <출처: Public Domain>
    Mle M16. 5연발 탄창을 장착한 업그레이드 버전 <출처: Public Domain>

    Mle1907-15 M34 : 1934년에 채택된 최종 개량형. 길이 약 1.07m로 Mle1907을 줄인 다음 사용탄을 신형 7.5mm로 바꾼 것으로, 원래의 베르디에보다 훨씬 잘 정돈된 디자인이 되었다.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약 6만 3천 정이 생산되어 프랑스군에서 사용되었다.

    Mle1907-15 M34. 탄창 및 사용탄의 구조 변화로 아래로 튀어나와있던 탄창이 훨씬 슬림 하게 줄었다. 탄창이 복렬장전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출처: Public Domain>
    Mle1907-15 M34. 탄창 및 사용탄의 구조 변화로 아래로 튀어나와있던 탄창이 훨씬 슬림 하게 줄었다. 탄창이 복렬장전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제원

    모델 :

    Mle1890 기병총

    Mle1907-15

    길이 :

    945mm

    1,305mm

    총열 길이 :

    450mm

    800 mm

    무게 :

    3kg

    3.8kg

    탄창 :

    3연발

    사용탄 :

    8x50mm R(8mm 르벨)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베르디에 소총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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