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르벨 소총
무연화약 시대를 연 프랑스의 대표주자
  • 홍희범
  • 입력 : 2020.06.17 08:20
    르벨 Mle 1886/93 소총 <출처: Royal Armouries>
    르벨 Mle 1886/93 소총 <출처: Royal Armouries>


    개발의 역사

    1880년대까지, 총과 포의 추진 장약은 흑색화약(Black powder 혹은 gun powder)이었다. 화포가 발명되고 몇백 년간 변함이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흑색화약 자체의 개량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못했다.

    흑색화약은 1880년대까지도 주된 장약이었으나 한계가 많아 대안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흑색화약은 1880년대까지도 주된 장약이었으나 한계가 많아 대안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흑색화약은 숯, 초석, 유황을 기반으로 하는 물질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단점이 있다. 발화점이 낮아 불이 잘 붙는 만큼 보관과 운반이 위험하고, 대량의 연기를 내뿜는 데다 그을음도 심하다. 특히 이 그을음은 초기 연발총이나 자동화기에 고민거리를 제공했다. 게다가 이 그을음은 부식성이 있어 청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총을 녹슬게 한다.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약실 압력도 낮아 탄속도 느리다. 흑색화약 시대의 소총탄들이 10mm보다 아래인 경우가 거의 없는 경우도 탄속이 어차피 낮은 만큼 무거운 탄두로 부족한 운동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흑색화약이 독점하던 시대는 1840년대부터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다.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니트로셀룰로스 등의 합성 물질이 등장하면서 먼저 발파용 화약 분야에서 흑색화약은 빠르게 구식이 된다. 그리고 총의 분야에서도 1884년에 마침내 ‘게임체인저’가 나타난다. 1884년에 프랑스의 발명가 폴 비에유(Paul Vieille)가 니트로셀룰로스를 기초로 만든 무연화약(Smokeless powder)을 내놓은 것이다. 그때까지 다이너마이트 등의 폭약은 총이나 포에 쓰기는 순간적으로 너무 높은 압력을 형성해 안전하지 못했지만, 무연화약은 총포의 추진 장약으로 쓰기에 충분한 수준이라는 점이 큰 차이였다.

    무연화약을 개발한 폴 비에유 <출처: Public Domain>
    무연화약을 개발한 폴 비에유 <출처: Public Domain>

    무연화약은 흑색화약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게임체인저였다. 흑색화약과 비교하면 연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그래서 ‘무연’) 수준이고, 흑색화약에 비해 거의 3배의 추진력을 제공했다. 따라서 적은 양으로도 더 빠른 탄속을 제공할 수 있었고, 덕분에 더 가늘고 작은 탄두로도 높은 위력과 사거리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가늘고 작은 탄두를 빠르게 쏠 수 있다는 점은 공기역학적으로 더 유리한 탄두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라 사거리와 명중률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심지어 그을음마저 훨씬 적기 때문에 자동화기나 연발총을 고장 없이 더 오래 쏠 수 있고, 부식성조차 낮아 총의 수명도 더 길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은 화약이 발명되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주목받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프랑스 정부와 군은 이 새로운 화약의 등장에 당장 화들짝 놀라 이 새로운 화약(프랑스 제식명 ‘B형 화약’)을 사용하는 신형 탄약과 소총의 개발을 서둘렀다.

    무연화약 기술로 개발된 신형 8mm 탄환 <출처: LTC>
    무연화약 기술로 개발된 신형 8mm 탄환 <출처: LTC>

    이미 1885년에는 신형 탄약의 개발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기존 11mm 그라 소총탄의 탄피 주둥이를 좁혀 새로운 8mm 탄두를 끼운 신형탄이 개발되었다. 이제 탄이 개발되었으니 소총을 맞춰 개발하면 됐는데, 처음에는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자국의 설계와 다른 나라의 설계를 비교해서 가장 좋은 것을 검토하는 단계가 진행됐다. 여기까지는 당시의 일반적인 소총 개발 과정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1886년 1월에 신임 전쟁부 장관(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이 취임하면서 갑자기 상황이 바뀐다. 그는 이 새로운 탄약과 그것을 쓰는 총이 등장하면 기존의 소총과 탄약들은 순식간에 구식이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무연화약을 오래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연화약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연구가 진행 중이었으니 다른 나라들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때문에 신임 전쟁부 장관은 불과 5개월 만에 새로운 탄을 쓰는 신형 소총을 완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탄약을 실용화시켜 다른 나라에 대한 우위를 빨리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르벨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르벨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다른 소총과 탄약을 순식간에 구식으로 만들어버린 게임체인저, Mle1886 르벨 소총이 탄생하게 된다.


    특징

    르벨 소총은 사실 총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연발 볼트 액션 소총이라는 특징 자체도 결코 처음은 아니었다. 애당초 프랑스군 자신도 크로파첵 Mle1884 및 Mle1885 소총이라는 신형 연발 볼트 액션 소총을 채택해 대량 생산을 진행하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르벨 소총의 기관부. 실제로는 크로파첵 Mle1885와 큰 차이가 없다. <출처: Public Domain>
    르벨 소총의 기관부. 실제로는 크로파첵 Mle1885와 큰 차이가 없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르벨 소총은 새로 개발했다기보다는 Mle1885 소총을 8mm 르벨 탄약에 맞게 살짝 재설계한 수준에 가까웠다. Mle1885 자체도 그라(Gras) 소총을 개조해 연발총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총이었다. 그야말로 게임체인저인데 설계는 재활용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5개월 만에 신형 소총을 실용적인 수준으로 만들어 제출하라는데 예전에 없던 새로운 설계를 시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애당초 1886년 시점에서 연발 소총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미 프랑스군 자신은 물론이고 독일, 심지어 저 극동의 일본마저 연발총을 개발해 배치를 시작한 시점이니 말이다. 프랑스가 이처럼 서두른 것은 위에도 언급했듯 무연화약(프랑스 명칭 ‘B 화약’)과 이걸 사용한 탄약이었다.

    르벨 소총에 사용된 8mm 르벨 탄약. 가장 처음 나온 것은 맨 왼쪽처럼 탄두 끝이 평평한 것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탄두 끝이 뾰죽한 첨두형 탄두를 채택했다. <출처: Public Domain>
    르벨 소총에 사용된 8mm 르벨 탄약. 가장 처음 나온 것은 맨 왼쪽처럼 탄두 끝이 평평한 것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탄두 끝이 뾰죽한 첨두형 탄두를 채택했다. <출처: Public Domain>

    8mm 르벨 탄약으로도 불리는 8x50mm R형 탄약은 탄두가 기존의 11mm 그라 탄약보다 10g이나 가볍지만(25g 대 15g) 운동에너지는 오히려 800J 가까이 강력했다(2,580J 대 3,364J). 이는 탄속의 엄청난 차이 때문이다. 그라 탄약의 총구 초속이 455m/s에 불과한 반면 르벨은 무려 730m/s에 달했다.

    간단하게 말해, 새로운 무연화약의 등장으로 소총탄은 더 작고 가벼워지면서도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운동에너지 자체부터 차원이 다르게 높아졌고, 또 탄속이 빨라지면서 탄도 곡선이 훨씬 완만해졌다(=덜 휘었다). 즉 먼 거리 표적을 훨씬 쉽게 맞출 수 있었다. 이전의 흑색화약을 쓰던 그라 소총은 가늠자 거리조절 없이 쏠 수 있는 영거리(Zero distance)가 200m였으나 르벨 소총에서는 그 두 배로 늘었다.

    비교를 위한 11mm 그라 탄약. 8mm 르벨은 이 탄약의 탄피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출처: Public Domain>
    비교를 위한 11mm 그라 탄약. 8mm 르벨은 이 탄약의 탄피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출처: Public Domain>

    사거리와 파워만 유리해진 것이 아니다. 무연화약은 연기와 그을음이 훨씬 적다는 것도 실전에서 큰 이득이 됐다. 흑색화약은 부대 단위의 일제 사격을 하면 순식간에 시야가 연기로 가려질 정도로 연기가 심했다. 즉 초기의 일제 사격 후에는 표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연화약은 아무리 많이 쏴도 계속 표적을 보면서 쏠 수 있었다. 여기에 그을음도 훨씬 적어 흑색화약과 달리 오랜 시간 청소하지 않고도 쏠 수 있었다. 특히 기계적 작동 부위가 많은 연발총에서 작동을 방해하는 그을음이 적은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연발총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무연화약이 ‘게임체인저’ 수준으로 엄청난 성능을 발휘하니 프랑스 전쟁부가 한시바삐 채택을 해야 한다고 서둘렀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르벨 소총의 등장은 그 이전에 나온 사실상 모든 소총을 구형으로 만들었고, 다른 유럽 모든 나라들은 1초라도 빨리 무연화약을 쓰는 신형 탄약과 소총을 개발하기 위한 경주에 돌입했다.

    노리쇠를 후퇴시킨 르벨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노리쇠를 후퇴시킨 르벨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서둘러 개발하다 보니 생기는 폐해도 컸다. 일단 탄 자체가 문제였다. 구형인 림드(Rimmed)형 탄피를 사용하는 8mm 르벨 탄약은 나중에 기관총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다른 화기를 설계할 때 골칫거리였다. 탄창이나 급탄기구 설계에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서두르다 보니 기존의 그라 탄피를 8mm 탄두에 맞춰 주둥이를 좁힌 보틀넥(Bottleneck: 병목)형 탄피로 개조한 탓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총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르벨 Mle1886 소총은 크로파첵 Mle1885 소총을 새로운 탄에 맞게 살짝 개조한 정도에 불과했다. 튜브형 탄창을 채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크로파첵이 설계될 시점에만 해도 튜브형 탄창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르벨 소총이 나온 직후 다른 나라 볼트 액션 소총의 대세는 상자형 탄창이 되어버렸다.

    르벨 소총의 단면
    르벨 소총의 단면

    튜브형 탄창은 장탄수가 많다. 8발이 들어가니 리엔필드 소총을 제외한 당시의 다른 모든 볼트 액션식 소총(5연발)보다 대용량이다. 하지만 대용량의 이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단점이 바로 재장전이다. 튜브형 탄창은 한 발씩 탄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반면 상자형 탄창은 클립으로 5발을 한 번에 밀어 넣는다. 재장전 시간에서 르벨이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총의 길이에 따라 탄창 용량도 크게 변한다.

    프랑스군은 이 문제를 1차 대전까지는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장전 시간은 오래 걸려도 전투가 한창 진행될 때 재장전할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프랑스군 교리는 적과의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을 때에는 매거진 컷오프(탄창 차단기)로 탄창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한 발씩 약실에 넣고 단발로 사격하고, 적이 아주 접근할 때에 비로소 탄창 기능을 되돌려 연발로 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8발의 연속 사격 정도면 근거리의 적을 쓸어버리는 데 충분한데, 왜 재장전 시간이 그렇게 중요하느냐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에서 그 이론이 단단히 잘못됐다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났지만 말이다.

    M27의 단면도 <출처: Public Domain>
    M27의 단면도 <출처: Public Domain>

    또 다른 문제는 가격과 생산성이었다. 튜브형 탄창은 상자형 탄창보다 거추장스럽고 무거울 뿐 아니라 가격과 생산성도 낮았다. 게다가 발사 시의 충격으로 탄창 안에서 뒤쪽 탄이 앞쪽 탄의 뇌관을 찔러 폭발 사고가 나는 것도 막는 고려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8mm 르벨 탄약의 초기형 버전은 탄두 끝이 평평하게 잘려 있었고, 나중에 끝이 뾰죽한 D형 실탄이 도입되자 탄두 끝이 앞의 탄 뇌관을 못 찌르게 살짝 기울어져 장전되도록 탄창 내부 설계를 일부 바꿔야 했다.

    참고로 르벨 소총이라는 이름 자체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르벨(Nicolas Lebel, 1838~1891)은 당시 신형 소총 개발 위원회에 참가한 대령으로, 프랑스 육군 사격 수석교관 역할은 했지만 신형 소총 개발에는 부분적으로만 참여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격 실무자라는 이유 때문에 언론에 자주 공개되다 보니 프랑스 언론에서 신형 소총을 ‘르벨 소총’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르벨 본인조차 자기가 개발한 총 아니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르벨 본인은 연발 소총이라는 콘셉트 자체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M27의 단면도 <출처: Public Domain>


    운용의 역사

    르벨 소총의 생산과 배치는 개발만큼이나 속도전이었다. 전시를 제외하면 아마도 역사상 보기 드문 엄청난 속도였을 것이다. 1887년 4월에 제식 채택된 르벨 소총의 생산량은 1894년 연말 무렵에는 거의 300만 정에 달했다- 채택부터 불과 7년 만에, 연평균 약 43만 정을 뽑아낸 것이다. 3개 조병창에서 평상시에 생산한 양으로는, 심지어 19세기 기술로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프랑스는 7년만에 43만 정의 르벨 소총을 생산하며 전군 보급에 열중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는 7년만에 43만 정의 르벨 소총을 생산하며 전군 보급에 열중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를 위해 프랑스는 미국에서 당시의 최첨단 가공 설비를 도입하는 한편으로 철저한 규격화를 달성했다.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규격이 일치해 호환성이 철저하지 않으면 신속한 대량 생산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군이 당시 무연화약 등장의 이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서둘렀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처럼 엄청난 속도전을 치른 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하지 못했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들에 대해 무연화약의 우위를 누린 것은 몇 년 되지 못했다. 1894년 시점이면 이미 영국이나 독일 등 많은 나라들도 무연화약과 소구경 실탄을 배치하는 중이었고, 무엇보다 다들 르벨보다 앞선 총을 생산하고 있었다. 프랑스도 서두르지 말고 2~3년만 더 신중하게 개발을 계속했으면 르벨보다 더 현대적인 소총을 완성했을 것이고, 그 뒤로 수십 년간 훨씬 고생을 덜 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까지 르벨 소총은 프랑스군의 자랑거리였지만 전쟁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출처: Royal Armouries>
    1차 세계대전까지 르벨 소총은 프랑스군의 자랑거리였지만 전쟁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출처: Royal Armouries>

    그래도 1차 세계대전까지 르벨 소총은 프랑스군의 자랑거리였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실전을 겪으면서 프랑스는 개전 후 불과 몇 달 사이에 심각한 소총 소모를 겪었다. 게다가 르벨 소총의 생산 라인은 1904년에 이미 닫혀 있었고, 간신히 1904년까지 생산이 지속됐던 튈(Tulle) 조병창의 생산 라인을 살려 추가 생산을 시작했지만 전장의 소모를 감당하기에는 생산 효율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르벨 소총의 양산을 재개하지 않고, 당시 이미 생산 중이던 베르디에(Berthier) M1907 소총을 M1907-15라는 이름의 개량형으로 만든 뒤 계속 양산하기로 한 것이다. 베르디에 M1907은 원래 식민지 주둔군을 위해 생산되던 총이지만, 더 싸고 생산 속도가 빠른 데다 결정적으로 아직 생산 라인이 가동 중이었다. 따라서 M1907-15는 대전 중 무려 210만 정이 넘는 양이 생산됐지만, 르벨 소총은 대전 중 21만 정이 기존에 보유 중이던 예비 부품을 이용해 조립되는 데 그쳤다.

    프랑스 정부는 1차대전에 대응하여 르벨 대신 양산이 편리한 베르디에 M1907-15 소총을 양산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 정부는 1차대전에 대응하여 르벨 대신 양산이 편리한 베르디에 M1907-15 소총을 양산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무려 3백만 정이 있던 르벨은 대전 기간 내내 일선 주력 소총의 하나로 활용됐다. 특히 M1907-15는 신속한 재장전이 가능한 클립 방식이었지만 탄창 용량이 3발밖에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일선에서는 여전히 르벨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1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르벨은 프랑스군의 상징이자 실질적 주력 소총의 하나로 남았다.

    프랑스군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나 러시아, 벨기에, 세르비아, 이탈리아군 등 동맹군에도 상당한 양의 르벨 소총을 제공했다. 여기에 독일군도 프랑스군으로부터 대량의 르벨을 노획해 후방 부대용으로 사용했다.

    르벨 Mle1886 M93 소총을 지급받고 있는 미군 병사들 <출처: Public Domain>
    르벨 Mle1886 M93 소총을 지급받고 있는 미군 병사들 <출처: Public Domain>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이론적으로는 르벨 소총은 퇴역해야 마땅한 구식 소총이었다. 프랑스군의 주력 소총은 더 생산이 쉽고 재장전도 쉬운 베르디에 계열 소총 -심지어 1차 세계대전 중에는 5연발 클립을 사용하게 개량된- 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넓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국방 예산은 30년대까지 엄청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르벨 소총을 버릴 여건은 아니었다. 2선급 부대나 식민지 주둔군 등은 여전히 무시 못 할 숫자의 르벨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구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나 그 주변의 국가들에는 지금까지도 르벨 소총이 간간이 보일 정도다(최근의 이라크 전쟁에도 목격됐다).

    2차 세계대전에도 르벨 소총은 사용됐다. 비록 주력 소총은 아닌 2선급의 단축형 R35 카빈으로 주로 사용됐지만 1940년에도 사용됐고, 또 이탈리아나 소련 등에서도 목격되곤 했다. 독일군 역시 노획한 다수의 르벨 소총을 국민돌격대용으로 사용하는 등 그 수명은 예상보다 길었다.

    르벨 Mle1886 M93 소총을 지급받고 있는 미군 병사들 <출처: Public Domain>


    파생형

    Mle1886 : 가장 초기형

    르벨 Mle1886 소총. 참고로 현재 남아있는 총의 거의 대부분은 Mle1886 M93형(개량형)이다. <출처: Public Domain>
    르벨 Mle1886 소총. 참고로 현재 남아있는 총의 거의 대부분은 Mle1886 M93형(개량형)이다. <출처: Public Domain>

    Mle1886 M93 : 개량형.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노리쇠와 가늠자 고정부 등 많은 작은 부분에 개량이 가해졌다. 현존하는 르벨 소총의 거의 대부분이 이 규격으로 개조되었다. 1898년에는 탄창 일부분을 개량, 탄두 끝이 뾰죽한 개량형 탄약을 탄창에 장전할 때 탄두 끝이 앞쪽 탄의 뇌관을 찌르지 않게 비스듬히 탄창에 들어가도록 개량되었다.

    르벨 Mle1886 M93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르벨 Mle1886 M93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르벨 저격 버전 : 스코프를 장착한 저격 버전이 1차 대전 중 사용됐다. 장착된 스코프의 종류에 따라 M1915, M1916, M1917로 나뉜다.

    1차 세계대전 중 사용된 저격 버전. 스코프의 종류나 위치 등에 몇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1차 세계대전 중 사용된 저격 버전. 스코프의 종류나 위치 등에 몇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M27(혹은 Mle1886 M27) : 르벨 소총을 1920년대에 개발된 신형 7.5mm 탄약에 맞게 개조한 버전. 길이가 1.1m로 크게 짧아졌고, 탄창도 튜브형이 아니라 5연발 박스형으로 바뀌는 등 현대적으로 개조됐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생산 우선순위에 밀려 1927년부터 1940년까지의 총 생산량은 1,500정 정도에 불과하다.

    르벨 M27. 사용탄을 7.5mm로 바꾸고 탄창도 상자형으로 바꾼 단축형이다.<출처: Public Domain>
    르벨 M27. 사용탄을 7.5mm로 바꾸고 탄창도 상자형으로 바꾼 단축형이다.<출처: Public Domain>

    R35(Mle1886 R35) : 르벨 소총의 유일한 단축형 실전 배치 버전. 양산 초기에 기병용으로 단축형이 고려되기는 했으나 말 위에서의 재장전이 어려워 결국 생산되지 않았다. R35는 1930년대에 포병이나 통신병 등 2선급 병력을 위한 호신용으로 개발된 단축형으로, 기존에 있던 르벨 소총을 재활용하기 위해 만든 거라 사용 탄도 원래의 8mm 그대로이다. 길이가 96cm로 줄면서 탄창 용량은 3발로 줄었으나 원래부터 비전투 병력이 주 대상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1940년까지 개조된 양도 44,000~46,000정 정도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르벨 Mle1886 R35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르벨 Mle1886 R35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제원(기본 보병용)

    길이 : 1.3m
    무게 : 4.41kg
    총열 길이 : 80cm
    탄창 용량 : 8발
    사용탄 : 8x50mm R(8mm 르벨)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르벨 소총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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