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미라주 G 가변익 기술시연기
최고가 될 수도 있었던 유럽 최초의 가변익 항공기
  • 윤상용
  • 입력 : 2020.06.15 08:01
    비행 중인 미라주 G. (출처: Dassault Aviation)
    비행 중인 미라주 G. (출처: Dassault Aviation)


    개발의 역사

    가변익(可變翼, Variable Wing) 설계는 이미 1920년대부터 등장했으나, 제작상의 복잡성 때문에 널리 활용되지 못하다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가 메서슈미트(Messerschmitt)사의 Me P.1101 전투기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처음으로 가시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 독일은 1944년 7월부터 “비상 전투기 사업(Emergency Fighter Program)”의 일환으로 Me P.1101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 전투기는 오늘날의 가변익 항공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비행 전 날개 각도를 조정하여 후퇴익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변익 전투기의 효시(嚆矢)로 간주한다. P.1101은 약 80%만 완성된 상태로 오벨암메르가우(Oberammergau) 산업단지에서 미군에게 압류되었으며,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상태로 미국 라이트-패터슨(Wright-Patterson) 공군기지로 이송되었다가 벨(Bell)사의 공장이 있던 뉴욕주 버펄로(Buffalo, NY)로 보내졌다. 향후 이 기체는 벨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가변익 전투기인 X-5에 반영되었다. 특히 P.1101은 비행 전에 날개 각도를 조정해야 했던 것과 달리 X-5는 비행 중 주익 각도를 변경할 수 있던 최초의 항공기였다.

    가변익기의 효시로 평가되는 Me P.1101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가변익기의 효시로 평가되는 Me P.1101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미국이 이렇게 독일 기술에 기반하여 가변익 분야에서 처음으로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자, 세계 주요 항공 선진국들 또한 가변익 연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터보 제트(Turbo Jet) 엔진과 로켓 추진 항공기술이 등장하면서 항공기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바꿔 놓았는데, 여기에 필요에 따라 고속 기동성과 안정적인 저속 비행 핸들링을 결합하는 가변익 개념은 차세대 항공기 개발에 매우 적합한 개념이 될 것으로 보였다. 전 세계 주요 항공 선진국은 1960년대 초부터 가변익 개념 설계에 돌입했으며, 우선 미국의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사가 1961년부터 초음속 중거리 요격기와 전술 폭격기의 개념을 결합한 F-111 아드바크(Aardvark) 개발에 들어갔고, 소련 역시 가변익 개념에 관심을 가지면서 1963년부터 수호이(Sukhoi) 설계국이 가변익을 채택한 전폭기 용도의 Su-17 개발을 시작했다. 또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도 미국과 소련의 뒤를 이어 가변익 항공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소련이 1960년대초 F-111(좌)과 Su-17(우) 등을 개발하자, 가변익기의 열풍이 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국과 소련이 1960년대초 F-111(좌)과 Su-17(우) 등을 개발하자, 가변익기의 열풍이 불었다. (출처: Public Domain)

    그중 이미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가변익 개념에 관심을 가져온 영국은 1964년 프랑스 정부에 합동 프로젝트 형태로 가변익 항공기 공동 개발 사업을 제안하여 가변익 항공기의 영-불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정식 명칭으로 영-불 가변익 전투기 합작사업(AFVG: Anglo-French Variable Geometry)으로 명명된 이 사업에서 영-불은 지상공격기/훈련기와 전투기 형상으로 두 종류의 항공기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으며, 전자는 프랑스 업체가, 후자는 영국 업체가 사업을 리드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부는 1965년 5월 17일에 국제공동개발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결국 훗날 세페캇 재규어(SEPECAT Jaguar)가 된 프랑스 브레게사의 설계는 Br.121 ECAT(“전술 전투지원 훈련기”)로 명명됐으며, 후자는 함상용 전투기로 개발하기로 하면서 삼각익 항공기 개발 경험이 있는 프랑스의 다소(Dassault) 항공이 추가로 참여했다. 이 기체에는 M45 터보팬(Turbo Fan) 엔진을 개발해 장착하기로 하면서 양국은 각각 엔진 업체인 프랑스의 스네크마(SNECMA: 現 사프란)와 영국의 브리스톨-시들리(Bristol-Siddley)사를 선정했다.

    영불이 공동개발을 추진했던 AFVG의 개념도 (출처: Public Domain)
    영불이 공동개발을 추진했던 AFVG의 개념도 (출처: Public Domain)

    양국은 1965년 7월 13일 자로 두 사업에 대해 타당성 검사를 실시한 후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자 했으나, 사업에 참여한 다쏘의 창업주인 마르셀 다쏘(Marcel Dassault, 1892~1986)는 두 사업에서 다쏘가 사업 주도권을 쥐지 못한 것이 훗날 장기적으로 BAC(British Aircraft Company, 現 BAE 시스템즈) 같은 업체에게 사업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다쏘는 AFVG 사업과 별도로 사비를 털어 넣어 영-불 공동 개발 항공기에 대항할 기체 개발에 들어갔고, 이에 가변익을 채택한 미라주(Mirage: ‘신기루’라는 뜻) III-G와 고정익을 채택한 작은 몸집의 미라주 F1 개발에 착수했다. 사실 AFVG 사업도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선 프랑스는 이 사업을 통해 요격기를 도입하고자 희망했으나 영국 측은 전폭기를 원해 양국이 요구도에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1967년 6월부로 예산 문제를 이유로 들어 공동 개발 취소를 선언하고 AFVG 사업에서 철수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해군용 단거리 항모 등에서 운용할 목적으로 활주 거리가 짧은 항공기 도입을 희망했는데, 이에 VTOL기나 가변익 항공기 중 하나를 선택하고자 했다. 하지만 VTOL기는 매력적인 개념에도 불구하고 수직이착륙을 위한 “리프트 제트(Lift Jet)” 엔진 개발 비용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개발을 하더라도 아직 충분한 추력을 낼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판단됐다. 특히 VTOL기는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엔진과 리프트 제트를 동시에 탑재해야 하므로 무장을 장착할 탑재 중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연료 탱크 수납공간도 줄어 항속 거리도 짧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체 가격도 높아질 가능성이 컸으므로 프랑스 국방부는 VTOL기 개발에 흥미를 잃어 1966년에 VTOL 개발 계획을 중단하였다. 이를 지켜본 다쏘는 정부의 개발 방침에 맞춰 앞서 개발을 시작한 가변익기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명칭을 미라주 G로 단순화했다. 여기에 프랑스 공군 역시 단발 엔진을 장착한 저공 침투기 도입을 위해 타당성 검토를 하고 있었는데, 삼각익 항공기는 어프로치(approach) 속도가 지나치게 높아 이를 후퇴익으로 낮출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다쏘는 이 개념을 적용한 항공기를 개발하면서 미라주 F2로 명명한 뒤 두 기종의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했다.

    미라주 G와 사실상 동일한 동체 설계의 미라주 F2. (출처: Dassault-Aviation)
    미라주 G와 사실상 동일한 동체 설계의 미라주 F2. (출처: Dassault-Aviation)

    다쏘는 우선 미라주 F2의 개발에 집중해 1966년 6월 12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나 프랑스 공군이 채택하지 않아 시제기 1대만 완성한 상태로 사업을 취소했다. 하지만 미라주 F2의 개발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나 기술을 사장시킬 수 없던 다쏘는 이를 그대로 자매 사업인 미라주 G에 반영했으며, 이에 따라 미라주 G는 미라주 F2의 동체를 기본 베이스로 삼아 가변익을 채택한 개념으로 진행했다. 다쏘는 1965년 파리 에어쇼에 가변익기 목업(Mock-up)을 내놓았으며, 이를 토대로 1965년 말 프랑스 국방부와 1대의 시제기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시제기로 개발한 미라주 G는 미국 프랫 앤 위트니(Pratt & Whitney)사의 TF-306 엔진을 장착하여 1967년에 정식으로 출고되었다. 하지만 초도 비행은 곧장 실시되지 못했는데, 비행 실시 전 일련의 기술 문제에 따른 설계 변경 소요가 발생해 설계를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미라주 F1 시제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체형 수평 미익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졌으므로 이를 채택한 미라주 G도 비행이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미라주 G는 설계 변경 후 서서히 단계별로 테스트를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가변익 성능은 시험하지 않고 직선익 상태로만 비행했다. 다쏘는 1967년 11월 18일에 결국 미라주 G의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이로써 미라주 G는 유럽에서 제작한 항공기 중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가변익 항공기로 기록됐다.

    1967년 11월 18일 미라주 G는 유럽에서 제작한 가변익 항공기 중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67년 11월 18일 미라주 G는 유럽에서 제작한 가변익 항공기 중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G는 11월 24일에 주익을 55도 상태로 하여 처음 음속 돌파에 성공했으며, 12월에는 삼각익(三角翼) 상태로 비행 중 날개를 접어 마하 2까지 돌파에 성공했다. 미라주 G는 1968년 중순까지 계속 시험 비행을 실시했으며, 이후 진행된 모든 시험 평가에서 성능 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양호한 성능 평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방부는 미라주 G의 양산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는데, 이는 프랑스 정부가 1966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기구에서 탈퇴함에 따라 외산 방산 물자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운용할 항공기에 미제 엔진을 장착했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고, 공군과 해군 역시 유지관리비가 높은 가변익 항공기를 굳이 새로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항공기의 유지 쪽을 택했다. 결국 프랑스 공군은 미라주 G가 도입될 때까지 임시로 도입했던 미라주 F1을 한동안 주력기로 운용해야 했으며, 다쏘는 차기 전투기로 계획을 잡고 있던 미라주 2000 개발 계획을 앞당겨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후 미라주 G는 몇 차례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실전에서는 영영 창공을 누벼보지 못했다.

    1967년 11월 18일 미라주 G는 유럽에서 제작한 가변익 항공기 중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Public Domain)


    특징

    미라주 G는 기본적으로 함께 개발했던 미라주 F2와 동일한 동체 형상을 갖고 있으나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가변익을 채택한 주익으로, 미라주 G의 가변익은 날개를 최대 펼칠 경우 20도, 접을 경우 70도까지 접히도록 설계했으며, 사전에 4개의 각도가 입력되어 20도(완전히 펼친 경우), 30도, 55도, 70도(삼각익 상태) 중에서 필요에 따라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엔진으로는 초창기 프랫앤위트니(Pratt & Whitney)/스네크마(SNECMA)의 TF-306 터보팬 엔진을 채택하여 장착했으나, 나중에 개발을 진행했던 미라주 G4와 G8은 스네크마의 아타르(Atar) 9K50을 장착했다.

    미라주 G 실루엣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G 실루엣 (출처: Public Domain)

    초창기에 개발했던 미라주 G는 단발 엔진을 넣었으며, 반원형 공기 흡입구를 기수 양 측면에 하나씩 설치하여 엔진으로 공기가 모이게 설계했다. 날개 뿌리 쪽에는 날개를 수납하는 윙 박스를 동체 중앙에 설치해 날개를 접었을 경우에는 삼각익의 일부가 되고, 펼쳤을 경우에는 리딩에지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미익은 통상적인 설계의 수직 미익을 하나만 달았으며 수평 미익은 부분이 나누어져 있지 않고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일체형 수평 미익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가변익에서도 나타나듯 미라주 G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는 날개의 가변에 따른 내구도 문제와 복잡한 정비 소요, 그리고 날개에 가해지는 피로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다쏘 항공에서 제작한 미라주 G 홍보 포스터. (출처: Dassault Aviation)
    다쏘 항공에서 제작한 미라주 G 홍보 포스터. (출처: Dassault Aviation)

    랜딩기어는 전형적인 삼륜 방식을 채택해 기수에 하나, 동체에 두 개가 설치됐다. 조종석은 복좌식으로 설치되어 탠덤(tandem) 방식으로 기수에 좌석이 배치됐으며, 기수에는 노즈콘(nose cone)의 내부를 비워 두어 추후 양산기부터는 이 안에 레이더를 수납할 예정이었다.

    정면에서 촬영한 미라주 G8-01 기수 부분. (출처: Ronald Turner/Wikimedia Commons)
    정면에서 촬영한 미라주 G8-01 기수 부분. (출처: Ronald Turner/Wikimedia Commons)

    프랑스 공군이 미라주 G의 양산 계약을 거부한 뒤 별도로 추진한 사업을 위해 개발한 미라주 G8은 기존 G형과 설계가 다른데, 우선 공군 요구도에 따라 쌍발 엔진을 채택한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G8은 두 대의 시제기가 개발되었으며, 한 대는 비행 성능 테스트를 위해 복좌식으로 개발했고, 다른 한 대는 무장 테스트를 위해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후방석을 제거했다.

    정면에서 촬영한 미라주 G8-01 기수 부분. (출처: Ronald Turner/Wikimedia Commons)


    운용 현황

    다쏘는 프랑스 국방부와의 계약 실패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계약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1971년까지 계속 시험 비행을 진행해 총 316소티(sortie) 400시간을 소화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1971년 1월 13일에 최종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단 하나뿐인 미라주 G의 시제기가 시험 비행 중 추락하여 조종사는 사출했지만 기체는 완전히 소실됐기 때문이다.

    미라주 G 기술시연기는 400시간의 시험비행을 실시했으나 비행중 추락으로 기체가 소실되었다.(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G 기술시연기는 400시간의 시험비행을 실시했으나 비행중 추락으로 기체가 소실되었다.(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 정부는 미라주 G의 양산 계약은 거부했으나, 1968년에 핵무기 투발을 위한 전술 전폭기 도입을 고려하면서 다시 한번 미라주 G에 관심을 보였다. 미라주 G는 안정적으로 항모에서 이함 한 후 적 방공망을 돌파해 핵 투발을 실시한 후 고속 비행으로 목표 범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다쏘는 미라주 G의 설계를 변경해 프랑스 공군의 요구도대로 쌍발 엔진을 장착하기로 하면서 이를 “미라주 G4”로 명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사업을 곧 중지시켰는데, 이는 1968년 5월부터 프랑스 ‘68운동’으로 불리는 학생 봉기와 총 파업이 발생하여 프랑스 경제에 타격이 발생하자 프랑스 정부 측에서 우선 G4 형상의 양산 개발의 보류를 요청했다. 특히 프랑스 공군은 최초 핵 투발용 전폭기를 약 60대 정도 도입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G4의 양산 가격이 공군이 예상했던 도입 가격을 크게 상회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자 프랑스 국방부는 핵 투발용 전폭기 대신 요격기 도입을 우선순위로 돌렸다. 이에 따라 다쏘는 G4의 개발을 중단했으며, G4를 핵 투발 전폭기 대신 요격기로 개발하기로 방침을 변경하였다. 따라서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던 G4 시제기 두 대의 설계를 급히 변경해 “미라주 G8” 형상으로 명명했으며, 시제기 두 대는 각각 복좌식인 G8-01과 단좌식인 G8-02로 기체 번호를 부여했다.

    편대 비행 중인 미라주 G8. 위는 복좌형 G8-02기, 아래는 단좌형 G8-01기. (출처: Dassault Aviation)
    편대 비행 중인 미라주 G8. 위는 복좌형 G8-02기, 아래는 단좌형 G8-01기. (출처: Dassault Aviation)

    다쏘는 G8-01을 1971년 5월에, G8-02는 1972년 7월에 초도 비행을 성공시켰으며 1971년 5월 13일 4차 소티 때 시험 비행 조종사인 장-마리 사제(Jean-Marie Saget, 1929~)가 모는 G8-01기가 주익 각도를 70도로 접은 상태로 마하 2.03을 돌파했다. 한편 단좌식으로 개발한 G8-02기는 후방석을 들어낸 후 스네크마 9K50 터보 제트 엔진을 장착했으며, 간단한 무장을 장착하여 무장 테스트 기체로 활용했다. 2번기는 74차 소티인 1973년 7월 13일에 서유럽에서 개발한 항공기 중 최고 속도인 마하 2.34를 고도 42,000피트(약 12,800m)에서 달성했으며, 이 기록은 1995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라주 G8 역시 예산 문제로 프랑스 공군이 양산 계약 체결을 거부함에 따라 1976년 부로 사업을 종료하였고, 이것이 가변익 미라주 G 시리즈의 쓸쓸한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미라주 G8-02기.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G8-02기. (출처: Dassault Aviation)

    한편 미국의 링-템코-보우트(LTV: Ling-Temco-Vought, 2000년 도산)는 미 해군이 발주한 해군 전투기 시험사업(VFX: Naval Fighter Experimental) 참여를 검토하면서 미라주 G 개발에 성공한 다쏘와의 협력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양사는 1968년 양사 공동협력 계약과 가변익 공동 개발 계약서를 각각 체결했다. 우선 VFX 사업을 위한 항공기는 미라주 G 설계를 바탕으로 삼아 개발에 들어갔으며, 기체 명칭은 LTV L-507로 명명했다. LTV와 다쏘는 미 해군체계사령부(US NAVAIR)가 1968년 7월에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발행하자 곧장 입찰에 응했지만 1968년 12월에 최종 후보에 들어가지 못하고 탈락했으며, VFX 사업은 1969년 1월부로 그루먼(Grumman)사가 제출한 설계가 채택되어 F-14 톰캣(Tomcat)으로 명명됐다. LTV는 이후 미 공군이 1972년에 경량형 전투기 사업(LWF: Lightweight Fighter)을 시작하자 다시 한번 L-507 설계를 제안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별도의 기술을 사용한 L-1100을 제안했다. LTV는 LWF 사업에서도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하고 탈락했으며, 이 사업에서는 제네럴 다이내믹스사의 YF-16(훗날의 F-16)이 최종 기종으로 선정됐다.


    파생형

    미라주 G : 미라주 시리즈의 가변익 기술시연기. 미국 프랫앤휘트니사의 TF-306 엔진 한 기를 장착하여 시제기로 단 한 대가 완성됐다. 다쏘의 장 꾸로(Jean Coureau, 1928~1997)가 시험 비행 조종사를 맡아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나, 프랑스의 NATO 군사기구 탈퇴에 따라 미국산 방산 물자 의존도를 낮추려는 드골 행정부의 방침 때문에 도입에 제동이 걸렸으며, 복잡한 가변익의 유지 관리 문제와 정비 비용 문제 등으로 양산 계약 체결이 무산되었다.

    미라주 G는 제일 처음 단 1대만 만들어진 기술시연기로 엔진을 1기만 장착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G는 제일 처음 단 1대만 만들어진 기술시연기로 엔진을 1기만 장착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G4 : 쌍발 엔진 설계 제안. 1967년 9월 15일부터 다쏘의 장-끌로드 브라방(Jean-Claude Brabant, 1942~2017)이 개발팀을 이끌어 쌍발 엔진을 장착한 가변익 전투기 형상으로 개발했다. 1968년 프랑스 국방부가 두 대의 시제기 개발을 주문함에 따라 복좌식에 프랑스 국산 엔진인 스네크마 아타르 9K50 엔진 두 발을 장착한 핵 투발용 장거리 전폭기 형상으로 개발에 들어갔으나 프랑스 국내 경기 악화에 따라 정부 측의 요청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최초 설계 당시 최고 속도는 마하 2.2였으나 설계 구조 자체는 마하 2.5까지 비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예측했다. 엔진은 이후 스네크마에서 개발이 완료되면 M53 엔진으로 교체시킬 예정이었다.

    미라주 G8 : 미라주 G4의 설계를 변경한 요격기 형상으로, 장거리 폭격이나 저공 침투에 필요한 고성능 레이더나 항법, 항전 장비를 모두 제거하여 가격을 낮추었다. 복좌식인 G8-01기와 단좌식인 G8-02의 시제기 두 대가 제작됐다. 이들 기체는 마하 2.34까지 기록하면서 서유럽 개발 항공기 역사상 최고 속도를 달성했으나, 당시 프랑스 공군이 신규 요격기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양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장됐다. 미라주 G8-01은 프랑스 파리 인근 르부르제(Le Bourget) 공항 남동쪽에 위치한 파리 항공우주박물관(Musée de l'air et de l'espace)에 야외 전시되어 있으며, G8-02기는 프랑스 남동부 몽텔리마르(Montélimar)시에 위치한 유럽 전투기 박물관(Musée Européen de l'Aviation de Chasse)에 전시되어 있다.

    파리 르부르제(Le Bourget)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미라주 G8. (출처: Duch.seb/Wikimedia Commons)
    파리 르부르제(Le Bourget)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미라주 G8. (출처: Duch.seb/Wikimedia Commons)



    제원

    제조사 : 다쏘 항공(Dassault Aviation)
    용도 : 가변익 다목적 전투기 기술시연기
    승무원 : 1명 / 2명(G8-01)
    전장 : 15.4m
    전고 : 5.35m
    날개 길이 : 15.4m (접은 경우 8.7m)
    날개 면적 : 33.5㎡~41㎡
    자체 중량 : 14,740kg
    탑재 중량 : 21,000kg
    최대 이륙 중량 : 23,800kg
    추진 체계 : 11,020파운드 급 스네크마 아타르(Atar) 9K50 애프터버너 터보 제트 엔진 x 1
    최고 속도 : 마하 2.3
    항속 거리 : 3,850km
    실용 상승 한도 : 18,500m
    상승률 : 13,980 m/min
    무장 : 없음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미라주 G 가변익 기술시연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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