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오라이언급 전함
현대 전함의 기본을 완성하다
  • 남도현
  • 입력 : 2020.06.12 08:07
    1913년 포츠머스에 정박 중인 오라이언. 20세기 전반 동안 바다의 지배자였던 현대 전함의 기본을 완성한 역사적인 전함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13년 포츠머스에 정박 중인 오라이언. 20세기 전반 동안 바다의 지배자였던 현대 전함의 기본을 완성한 역사적인 전함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06년에 취역한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는 해군 역사를 바꾼 기념비적 전함이었다. 10문의 12인치 함포는 당시까지 존재하던 모든 전함을 일격에 격파할 수 있었고 반대로 방어력은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두터웠다. 거기에다 대형 함 최초로 증기 터빈을 장착해서 순양함과 맞먹는 21노트의 쾌속 항진이 가능했다. 공수주에서 비교 상대가 없을 만큼 성능이 압도적이었다.

    무기사에서 1870년대 이후 등장한 회전식 포탑을 탑재한 중장갑 전투함을 전함(Battleship)으로 구분한다. 드레드노트는 이전의 전함들을 프레드레드노트급(Pre-Dreadnought, 前弩級)으로, 자신이 창조한 규격을 추종한 후속 전함들을 드레드노트급(弩級)으로 나누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물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로 따지자면 아직 경쟁자가 없는 F-22 전투기나 B-2 폭격기 같다고 할 수 있다.

    무기사에 새로운 역사를 개막한 역사적인 전함 드레드노트 < 출처 : Public Domain >
    무기사에 새로운 역사를 개막한 역사적인 전함 드레드노트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정작 드레드노트는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후방에서 2선급 작전만 펼쳤을 정도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드레드노트를 포함한 모든 전함들의 활약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군함은 교전으로 격침되거나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지 않는 한 20년 이상은 현역에서 활동해야 하는 값비싼 무기다. 지금도 선령이 30년 이상 된 주력 함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무기사를 바꿀 정도로 혁신적이었던 전함이 탄생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2선급으로 전락했다면 상당히 의외라 할 수 있다. 운용하다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 결함이 뒤늦게 발견되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제1차 대전 발발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 엄청난 군비 경쟁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과 독일의 건함 경쟁은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레이스 못지않았다.

    순항 중인 전함 콜로서스. 영국은 총 6척의 동급 함을 건조할 예정이었으나 2척 획득 후 나머지는 공격력을 손 본 별도의 개량형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순항 중인 전함 콜로서스. 영국은 총 6척의 동급 함을 건조할 예정이었으나 2척 획득 후 나머지는 공격력을 손 본 별도의 개량형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만일 별다른 경쟁 상대가 없었다면 충분히 최고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드레드노트급은 독일이 동일한 대응 전력 확충에 매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러자 전력의 우위를 계속 점하려던 영국은 1909년부터 순차적으로 획득할 예정인 6척의 콜로서스(Colossus)급 전함 중 아직 건조에 착수하지 않은 4척을 성능이 개량된 별도의 전함으로 설계를 바꾸어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드레드노트급도 이전의 전함과 별개로 구분될 만큼 혁신적이어서 불과 4년 만에 전혀 다른 전함을 다시 내놓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일단 그다지 손볼 필요가 없었던 드레드노트급의 방어력과 운항 능력은 살리고 공격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1910년 탄생한 콜로서스급 후기형 전함 오라이언(HMS Orion)은 군함의 역사를 다시 바뀌었다.

    드레드노트 탄생 후 불과 4년 만에 등장한 오라이언. 이후 전함을 슈퍼드레드노트급이라고도 한다. < 출처 : Public Domain >
    드레드노트 탄생 후 불과 4년 만에 등장한 오라이언. 이후 전함을 슈퍼드레드노트급이라고도 한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은 포구 속도가 빠르지만 포신의 수명이 짧고 흔들림이 커서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12인치(30.5cm) 함포 대신 주포를 포구 속도가 떨어지지만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파괴력이 늘어난 13.5인치(34.3cm) 함포로 변경했다. 드레드노트급은 측면 포탑의 사격 범위에 제약이 많지만 오라이언은 5개의 포탑을 선상에 일렬로 배치해 일제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량되었다.

    때문에 공격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사실 이런 포탑 구조에 대한 연구는 프레드레드노트 시대에 있었던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던 1905년 쓰시마 해전을 경험하며 시작되었다. 함의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기술력 부족으로 드레드노트급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고 오라이언에 와서 실현되었다. 이렇게 4척이 완성된 동급 전함은 콜로서스급과 별도로 구분해서 오라이언급으로 부른다.

    오라이언급 4번 함인 썬더러. 총 4척이 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급 4번 함인 썬더러. 총 4척이 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급은 드레드노트급을 순식간 구닥다리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정도로 성능 향상을 이루었다. 사실 드레드노트급을 개량한 형태여서 많은 자료에서 별도로 구분하지 않지만 당시 영국은 매체를 통해 이를 슈퍼드레드노트(Super-Dreadnoughts, 超弩級)급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렇게 탄생한 오라이언급의 구조와 형태는 최후의 전함인 아이오와급까지 이어진다. 한마디로 현대 전함의 기본을 완성한 향도였다.


    특징

    오라이언급은 주포와 포탑 정도를 제외한다면 선체의 여타 구조 등은 이전 드레드노트급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래서 2개의 연돌 중 선수 방향의 1번 연돌과 가까운 위치에 설치된 마스트에서 승조원들이 근무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 등의 문제점은 개선되지 못했다. 완전히 새로운 함을 개발하거나 이에 준할 정도가 되지 않고는 단순한 개선이나 개량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여서 그렇게 제작되었던 것이다.

    오라이언의 주포 배치도. 이러한 방식은 후속한 조지 5세급에도 적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의 주포 배치도. 이러한 방식은 후속한 조지 5세급에도 적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렬로 배치된 포탑은 선수에서부터 A, B, Q, X, Y 포탑으로 구분한다. A, B 포탑은 전방으로 X, Y 포탑은 후방으로 향해 있으므로 정면 또는 후면 사격 시에 나머지 두 개 포탑은 교전에 참여할 수 없다. 중간에 있는 Q 포탑은 포신을 후방으로 향하지만 사격은 좌, 우 측면으로만 할 수 있다. B, X 포탑은 A, Y 포탑 바로 뒤에 갑판을 높여 장착했다. 때문에 선체를 늘리지 않고도 공격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는 전함의 전형이 되었다.

    오라이언급 썬더러함에 장착된 13.5인치 주포의 모습. 사진은 선수의 A,B 포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급 썬더러함에 장착된 13.5인치 주포의 모습. 사진은 선수의 A,B 포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부무장으로 10.2cm 부포 16문, 21인치 어뢰발사관 3문을 장착했지만 드레드노트급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전함이 원거리에서 주포로 교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 보니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 방어력은 출현 당시 기준으로 최고 수준이었다. 석탄은 물론 중유도 연료로 사용하는데 18개의 보일러에서 생산되는 스팀으로 터빈을 돌려 최고 21노트로 순항할 수 있다.


    운용 현황

    4척의 오라이언급은 모두 본국 함대(Home Fleet)에 배치되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 해군은 지구 곳곳에 식민지가 산재하다 보니 오늘날 미 해군처럼 전 세계를 작전권으로 삼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 본토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독일과의 경쟁이 극심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이 발발하고 유럽에 전운이 급격히 고조되자 스캐퍼플로(Scapa Flow)로 전개되어 독일 해군 견제에 들어갔다.

    제1차 대전 당시인 1915년 함대를 이뤄 출동한 4척의 오라이언급 전함들. < 출처 : Public Domain >
    제1차 대전 당시인 1915년 함대를 이뤄 출동한 4척의 오라이언급 전함들. < 출처 : Public Domain >

    선전포고 후 편성된 대함대(Grand Fleet) 소속으로 바뀌었으나 정작 해전이 순양전함을 위주로 전초 전대 간에 제한적인 교전으로만 진행되어 주로 기지에 머물러 있었다. 워낙 양측의 전력이 막강했기에 영국, 독일 모두 정면 대결을 삼가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런 모습은 1916년에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마찬가지였다. 결국 오라이언급뿐만 아니라 양측 전함 모두 제1차 대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1912년 썬더러 함의 모습을 그린 프레데릭 범포드의 작품. 왕립해군대학 소장. < 출처 : Britannia Royal Naval College >
    1912년 썬더러 함의 모습을 그린 프레데릭 범포드의 작품. 왕립해군대학 소장. < 출처 : Britannia Royal Naval College >

    유틀란트 해전 후 오라이언급은 종전 때까지 주변 해역 제해 임무를 수행했다. 종전 이후 교육함이나 예비 함대의 기함으로 활약하던 중 1922년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에 따라 10년 남짓 밖에 안 된 전함임에도 전량 퇴역했다. 오라이언과 콘커러는 폐선 처리되었고 모나크는 표적함이 되어 포탄 세례를 맞아야 했다. 썬더러는 고철로 팔려가 1926년 해체되었다. 의의에 비해 상당히 아쉬운 마지막이었다.


    변형 및 파생형

    오라이언(HMS Orion (1910))
    건조 1909년 11월 29일
    진수 1910년 8월 20일
    취역 1912년 1월 2일
    퇴역 1922년 3월

    오라이언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오라이언 함 < 출처 : Public Domain >

    모나크(HMS Monarch (1911))
    건조 1910년 4월 1일
    진수 1911년 3월 30일
    취역 1912년 4월 27일
    퇴역 1923년 5월 5일

    모나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모나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콘커러(HMS Conqueror (1911))
    건조 1910년 4월 5일
    진수 1911년 5월 1일
    취역 1912년 12월 1일
    퇴역 1922년 6월

    콘커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콘커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썬더러(HMS Thunderer (1911))
    건조 1910년 4월 13일
    진수 1911년 2월 1일
    취역 1912년 6월 15일
    퇴역 1921년

    썬더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썬더러 함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만재 배수량: 21,922톤
    전장: 177.1m
    선폭: 27.0m
    흘수: 9.5m
    추진 기관: 밥콕-윌콕스 보일러×18 / 27,000마력(20,000kW)
                    4축 스팀 터빈 세트 2기
    속력: 21노트
    항속거리: 6,730마일
    무장: 13.5인치(343mm) 2연장포 × 5
             4인치(102mm) 단장포 × 16
             21인치(533mm) 어뢰발사관 × 5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오라이언급 전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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