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크로파첵 소총
튜브형 탄창으로 연발소총 시대를 이끌다
  • 홍희범
  • 입력 : 2020.06.09 08:27
    크로파첵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크로파첵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1860~1880년대는 총기의 역사에서 가장 격동기 중 하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장총의 시대이던 것이 갑자기 후장총의 시대로 바뀌고 그것이 또 연발총의 시대로 바뀌었다. 게다가 변화가 한 번 생기면 먼저 변화를 받아들인 쪽이 그렇지 못한 쪽보다 큰 우위를 점하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이 빠른 변화에 서둘러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매우 다양한 종류의 총기와 설계자들이 등장해 역사 속에서 빛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중 하나가 오스트리아의 포병 장교 알프레드 폰 크로파첵(Alfred Von Kropatschek: 1838~1911)이었다. 장성까지 진급해 군인으로서도 나름 성공적으로 살았던 크로파첵은 1870년대에 가장 성공적인 소총 설계자 중 하나가 될 뻔한 인물로, 비록 역사 속에 마우저나 그라 등의 설계자들에 비하면 덜 알려졌지만 나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발명자인 알프레드 리터 폰 크로파첵 <출처: Public Domain>
    발명자인 알프레드 리터 폰 크로파첵 <출처: Public Domain>

    사실 그는 소총 그 자체보다는 탄창으로 더 지명도를 얻었다. 연발총이 막 시대의 대세로 주목받던 시대에 가장 실용적인 탄창 -적어도 1870년대 기준으로는- 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총 자체의 설계는 당시 기준으로도 그렇게 신기할 것은 없는 볼트 액션 구조였다.

    연발 소총은 사실 1850년대에 이미 등장해 남북전쟁에 실전 투입까지 되었고 1869년에는 스위스가 베텔리 제식 소총을 채택하는 등 이미 실용화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각국 군대는 채택에 좀 소극적이었다. 빠른 발사 속도가 주는 이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발총(수동식 연발총.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단발이나 연발이 아닌, 노리쇠 조작을 손으로 하는 Kar98k나 윈체스터 같은 경우.)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이미 1869년에 11발을 수납하는 베텔리 소총을 제식으로 채용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스위스는 이미 1869년에 11발을 수납하는 베텔리 소총을 제식으로 채용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이는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1870년이면 남북전쟁이 끝난 지 불과 5년이고 10년 전만 해도 화약과 탄을 따로 넣고 뇌관 따로 끼우던 전장식 소총이 압도적 대세이던 때다. 그러다가 금속 탄피를 쓰는 후장식 소총이 등장했고, 당대의 군인들이 보기에는 후장식 단발 소총만 해도 경이적인 발사 속도와 높은 은-엄폐 능력(전장총은 서서 장전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후장총은 엎드려서도 쉽고 빠르게 장전 가능)을 가진 판에 굳이 탄약을 낭비하는 연발총을 쓸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다. 먼저 탄약의 가격이 매우 비쌌다. 금속 탄피는 등장 초기에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따라서 예산의 관점에서도 탄약은 최대한 덜 쓰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다른 부분은 야전에서 자칫 탄약이 일찍 소모되어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격은 다수의 병력이 일제 사격으로 하기 때문에 연발총으로 각개 병사가 탄을 마구 낭비하는 것보다는 지휘관의 통제하에 단발총을 일사불란하게 쏘는 편이 낫다고 여겼던 것이다.

    크로파첵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크로파첵 M188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점차 연발총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군 장교들은 유럽 각국에 늘어갔고, 스위스의 베텔리 소총이 채택되면서 서서히 주요 강대국들도 진지하게 연발총 채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877년의 플레브나 전투에서 터키군이 윈체스터 연발총으로 러시아군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면서 분위기는 점점 연발총 채택 쪽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적어도 유럽의 연발 소총 도입 초기에 크로파첵은 나름 이름이 알려진 개발자로서 대접받게 된다. 비록 그 성공은 그다지 오래가지도 못했고 널리 퍼지 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자 총기로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특징

    크로파첵 소총들은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의 정해진 패턴을 가진 총이 아니다. 총 자체로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포르투갈이 채택했지만 세 나라 모두 노리쇠를 포함한 기관부의 설계는 상당히 다른 총을 채택했다. 사실 그의 총에서 핵심은 총 전체보다는 탄창의 설계였다. 나머지는 사용국의 상황에 따라 상당히 자유롭게 바뀐 느낌이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가 채택한 1878년형 크로파첵 소총은 전체적으로 그라 소총에 크로파첵의 탄창을 결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Mle1878/1884의 내부 구조 단면. 지렛대처럼 움직이는 탄창 내 엘리베이터와 튜브형 탄창 등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Mle1878/1884의 내부 구조 단면. 지렛대처럼 움직이는 탄창 내 엘리베이터와 튜브형 탄창 등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크로파첵이 설계한 탄창은 윈체스터 소총에서 힌트를 얻은 튜브형 탄창이다. 지금 보면 왜 굳이 비싸고 생산성이 낮은 데다 야전에서 교체할 수도 없는 튜브형 탄창을 여러 나라가 고집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일단 당시에는 어떤 형태의 탄창이든 비싸고 생산이 어려웠다. 또 상자형 탄창은 아직 1870년대에는 실용의 영역에 도달하기 직전인 반면 튜브형 탄창은 이미 윈체스터 소총을 통해 실용성이 입증된 뒤였고, 클립 등의 장전 보조 수단이 없던 당시에는 장탄수가 많은 튜브형 탄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Mle1878의 디테일. 의도적으로 그라/샤스포 소총과 매우 흡사하게 만들었다. <출처: Public Domain>
    Mle1878의 디테일. 의도적으로 그라/샤스포 소총과 매우 흡사하게 만들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윈체스터의 오리지널 튜브형 탄창 설계는 긴 소총탄에는 맞지 않았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형 송탄기가 있기 때문에 탄의 길이에 따라 기관부의 부피가 커지는 데다 작동 불량이 일어나기 쉬웠기 때문이다. 크로파첵은 이 문제를 송탄기를 상하 수직 작동이 아닌 일종의 회전 작동으로 바꿔 해결했다. 송탄기 부분이 한 축에 고정되는 힌지 구조로 되어있어 탄의 길이에 덜 구애받는 콤팩트한 구조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탄창에서 탄이 딱 정해진 위치에 멈추는 설계도 도입되어 탄이 송탄기에 올라가다 걸릴 가능성도 미리 차단했다.

    크로파첵은 약실을 통하여 아래쪽으로 탄환을 장전하여 탄창을 채운다. <출처: Arundel Militaria>
    크로파첵은 약실을 통하여 아래쪽으로 탄환을 장전하여 탄창을 채운다. <출처: Arundel Militaria>

    사실 크로파첵의 탄창 설계는 당시에 가장 진보된 튜브형 탄창 설계였고, 그 때문에 크로파첵이 직접 설계한 총 뿐 아니라 다른 소총들에도 도입되었다. 예를 들자면 독일이 1884년에 도입한 마우저 1871/84소총의 탄창이 크로파첵의 탄창을 응용한 것이고 일본 최초의 연발 소총인 무라타 22년식 소총의 탄창도 마찬가지다. 또 오늘날의 산탄총 탄창 구조도 크로파첵의 설계에서 발전한 부분이 많다.

    크로파첵 소총의 튜브형 탄창방식은 이후 많은 총기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출처: Arundel Militaria>
    크로파첵 소총의 튜브형 탄창방식은 이후 많은 총기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출처: Arundel Militaria>

    물론 튜브형 탄창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한 것은 아니고, 결국 상자형 탄창이 대세가 되자 순식간에 그의 설계는 구식이 되어 뒤켠으로 밀려났다. 이미 1880년대 후반부터 클립과 상자형 탄창이 등장하면서 튜브형 탄창을 사용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볼트 액션식 소총의 상자형 탄창은 대체로 튜브형 탄창보다 장탄수가 적지만 대신 부피가 작은 데다 클립을 이용해 신속하게 재장전할 수 있고, 심지어 튜브형 탄창보다 생산성도 높다. 대세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운용의 역사

    최초로 크로파첵의 소총을 채택한 나라는 프랑스, 그중에서도 해군이었다. 프랑스 해군은 1874년에 육군이 그라 소총을 채택했어도 그에 따르지 않고 구식이 된 샤스포를 고집했지만, 실은 이들이 시대착오적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1874년이면 단발총이냐 연발총이냐를 놓고 많은 나라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프랑스 해군도 고민 끝에 금속 탄피를 쓰는 단발총은 그냥 뛰어넘고 연발총을 채택하기로 한 것이다.

    크로파첵 소총으로 사격 연습 중인 프랑스 해군 수병들 <출처: Public Domain>
    크로파첵 소총으로 사격 연습 중인 프랑스 해군 수병들 <출처: Public Domain>

    해군으로서는 충분히 그런 고민을 할 만했다. 육군과 달리 해군은 군함을 거점으로 작전하기 때문에 소화기 탄약을 장기간에 걸쳐 사용할 이유도 없고, 또 해군 선박의 탄약고라는 넉넉한 재고를 늘 가지고 이동하기 때문에 탄약 낭비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 해군 병사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경우는 대개 소수의 병력이 교전하는 경우라 개개인의 화력이 중요했고, 또 증기선의 발달로 적의 빠른 소형 선박을 사격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서 배 위에서도 발사 속도가 빠른 소총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 프랑스 해군은 1878년에 프랑스군에서는 최초로 연발 소총인 크로파첵 Mle1878 소총을 채택했다. 25,000정이 도입됐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총이 프랑스 국내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사에서 생산됐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조병창들은 모두 그라 소총을 생산할 여념이 없던 때라 그런 것 같다. 프랑스 군용 크로파첵은 그라 소총과 같은 11mm 탄약을 사용한다.

    M1886의 디테일. 프랑스 군용에는 없던 안전장치(프랑스군은 오랫동안 소총에 안전장치가 필요 없다고 봄)가 후방에 달려있다.
    M1886의 디테일. 프랑스 군용에는 없던 안전장치(프랑스군은 오랫동안 소총에 안전장치가 필요 없다고 봄)가 후방에 달려있다.

    1884년에는 프랑스 육군도 크로파첵을 채택하기로 했고, 1884년부터 1887년까지 육군형 버전인 Mle1884와 Mle1885가 합계 약 13만 정이라는 무시 못 할 수량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인 1887년에 생산이 중단된 이유가 있다. 바로 1886년에 문자 그대로 ‘게임 체인저’인 8mm 르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무연 화약의 등장 앞에 흑색 화약을 쓰는 기존 소총은 순식간에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10만 정도 넘게 생산된 총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비싸게 만든 연발총인데 말이다. 크로파첵 소총들은 프랑스군에서 르벨 소총이 대량 보급될 때까지의 짧은 기간 -약 10년 정도- 동안 프랑스군에 의해 해외 식민지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베트남에서의 전투에서는 연발총이라는 물건은 예전의 단발총보다 더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병사들에게 제대로 일깨워줬는데, 한 종군기자는 밤새 내린 비로 녹이 슬어 탄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크로파첵 소총 때문에 부상을 입은 프랑스군 병사의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군으로서는 단발총에서 연발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국가의 운명을 건 전면전의 시대가 아니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M1886의 디테일. 프랑스 군용에는 없던 안전장치(프랑스군은 오랫동안 소총에 안전장치가 필요 없다고 봄)가 후방에 달려있다.

    르벨 소총이 완전히 보급된 뒤에도 크로파첵은 폐기되지 않고 대부분 보관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에 쓰였다. 그라 소총과 달리 8mm 신형탄으로 개조되지는 않았고, 2선 급 부대나 후방 부대용으로 지급되었다. 식민지 부대들 중 마다가스카르 주둔군은 원래 보급 받았던 르벨 소총을 반납해 본국의 최전선으로 보내고 구형 크로파첵을 대신 받기도 했다.

    1915년 연말 무렵부터 프랑스군의 소총 사정도 한결 나아지면서 크로파첵 소총들은 대부분 반납되었다. 1918년 1월 무렵에는 마다가스카르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의 크로파첵 소총 보유량은 800 정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는 반납 받은 크로파첵의 거의 대부분을 러시아로 보냈기 때문이다. 이 총들은 소련 공산 정권이 대부분 접수했고, 나중에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 정부에 또 상당수가 원조 물량으로 넘어갔다가 프랑코 정권에 접수되었다. 이렇게 스페인에 남은 총들은 1950년대에 미국에 민수용으로 수출되었고, 덕분에 미국이 현재는 프랑스보다 더 많은 프랑스 군용 크로파첵 소총을 보유하고 있다.

    1916년 4월 12일 1차 대전에 참전한 포르투갈 육군의 모습. 크로파첵 소총으로 훈련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1916년 4월 12일 1차 대전에 참전한 포르투갈 육군의 모습. 크로파첵 소총으로 훈련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막상 본국인 오스트리아에서 크로파첵 소총(M1881과 M1893)은 국가헌병대(치안 유지 경찰부대. 프랑스의 국가헌병대와 같은 성격)와 해군의 어뢰정용으로만 도입되었을 뿐이다. 크로파첵을 전군 제식으로 도입해 오랫동안 유지한 나라는 포르투갈뿐으로, 포르투갈은 이 총을 꽤 오랫동안 유지했으며 일부는 1980년대까지도 현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파생형

    Mle1878 : 최초로 대량 납품된 크로파첵 소총. 작동부 구조는 그라 소총과 매우 흡사하다. 프랑스 해군 사용.

    Mle1878. 프랑스 해군이 채택한 버전. <출처: Public Domain>
    Mle1878. 프랑스 해군이 채택한 버전. <출처: Public Domain>

    Mle1884 : 프랑스 육군용으로 생산된 크로파첵 소총. 1878과 큰 차이는 없으나 프랑스 국내에서 생산(1878은 오스트리아에서 생산).

    그라 소총(위/아래)과 크로파첵 Mle1884(가운데) <출처: Public Domain>
    그라 소총(위/아래)과 크로파첵 Mle1884(가운데) <출처: Public Domain>

    Mle1885 : 기존의 그라 소총을 개조해 연발로 만든 버전.

    Mle1885. 기존의 그라 소총을 연발로 개조한 총이다. <출처: Public Domain>
    Mle1885. 기존의 그라 소총을 연발로 개조한 총이다. <출처: Public Domain>

    M1886 : 포르투갈 군용 버전. 크로파첵 설계 중 유일하게 장기간 한 나라의 군용 제식으로 운용됐다. 기병총, 포병용 단총 등 여러 가지 버전 존재.

    M1886 시리즈. 포르투갈 육군이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사용했다. 보병총, 기병총, 포병단총의 세 가지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출처: Public Domain>
    M1886 시리즈. 포르투갈 육군이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사용했다. 보병총, 기병총, 포병단총의 세 가지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출처: Public Domain>

    M1881 : 오스트리아 국가헌병대용으로 생산된 버전.

    오스트리아 국가헌병대용으로 생산된 M1881 <출처: Public Domain>
    오스트리아 국가헌병대용으로 생산된 M1881 <출처: Public Domain>

    M1893 : 오스트리아 해군의 어뢰정용으로 도입된 소총.


    제원

    길이 : 1.24m
    총열 길이 : 720mm
    무게 : 4.4kg
    탄창 용량 : 7발
    사용탄 : 11mm 그라(11x59mm R)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크로파첵 소총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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