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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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T-26 전차

모방을 통해 시작한 소련 전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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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6는 비록 성능이 좋지 않아 조기에 퇴출되지만 소련(러시아) 전차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기념비적 전차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소련은 적백내전 당시에 외세의 간섭을 받았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국방력 증강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당연히 좋은 무기들을 원했는데 그중에는 지난 제1차 대전을 거치면서 탄생한 전차도 있었다. 하지만 관련 기술력이 부족해서 독자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다. 외부에서 직도입하거나 기술 지원을 받는 것이 해결책이었으나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 확산을 경계한 주변국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있었다.

이에 내전 때 프랑스로부터 공급받아 백군이 사용했던 르노 FT 전차를 그대로 복제하다시피 해서 1928년 소련 최초의 전차인 T-18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발된 지 10년이 넘은 전차를 카피한 것이니 T-18은 데뷔와 동시에 구닥다리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에 T-19, T-20을 연이어 개발했으나 이들도 성능에 문제가 많아 채택되지 못했다. 사실 이들은 전차라기보다 탱케트(Tankette)에 가까웠다.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T-18. 르노 FT를 그대로 카피하다시피 해서 러스키예르노라고도 불린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이처럼 고민이 많았을 때 영국의 빅커스(Vickers) Mk. E 경전차와 관련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시 빅커스는 대공황의 여파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이어서 해당 전차의 해외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소련을 경계하던 영국이 거래에 특별히 제한을 가하지 않았던 이유는 빅커스 Mk. E가 성능이 미흡하다며 영국군이 채택하지 않은 전차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1930년 소련은 빅커스와 15대를 직도입하는 것과 별개로 기술을 이전 받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어려움을 겪던 빅커스에게는 단비였지만 소련에게는 본격적인 국산 전차의 역사가 열리게 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이후 무기사에서 소련(러시아)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전차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 계약이 갖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빅커스 Mk. E 경전차. 영국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여러 나라에 판매되어 소련의 T-26, 폴란드의 7TP, 이탈리아의 M11/39 등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갈망이 컸던 소련은 엔지니어들을 영국에 파견해 조립에도 직접 참여시켰다. 그렇게 소련으로 건너 온 직도입 물량은 V-26으로 명명되어 테스트에 들어갔다. 이때 경쟁 대상은 자체 개발한 T-19였다. 시험 결과 기동력 등에서 우위를 보인 V-26이 T-18 대체작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양산형은 소련의 거친 환경을 고려해 섀시, 변속기 등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대대적으로 보강되어야 했다.

이렇게 영국의 도움으로 탄생해 소련 전차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이끈 기념작이 바로 T-26이다. 1931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었는데 초기형은 원작인 빅커스 Mk. E Mod. A처럼 트윈포탑에 12.7mm 기관총을 탑재한 형태였다. 지금 보자면 어처구니없는 방식이지만 1930년대에 개발된 전차들 중에는 의외로 다포탑 구조를 채택한 전차가 많았다. 이런 중구난방 같은 초기 전차의 모습은 수많은 실전을 경험하며 오늘날의 형태로 진화했다.

7.62mm 기관총을 장착한 트윈포탑 형식의 T-26 초기형. < 출처 : Public Domain >

T-26은 제대로 된 소련 최초의 전차였으나 일선에서 기갑전이나 진지 공략 시 7.62mm 기관총만으로는 화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거기에다 당시 소련의 제1 주적인 폴란드가 T-26처럼 빅커스 Mk. E를 기반으로 개발한 7TP 전차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화력에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 1호 전차, 미국의 M2 경전차처럼 기관총으로만 무장한 전차가 흔했던 시기였으나 사실 이들도 화력 부족으로 고민이 많았다.

이러한 평가와 현실을 반영해 화력 강화에 나섰다. 그런데 단순한 것 같아도 기관총 대신 포를 장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이때 도움을 준 곳이 프랑스와 엉뚱하게도 제2차 대전에서 철천지원수가 되는 독일이었다. 사실 제1차 대전 후 소련과 독일은 비밀 협정을 맺고 군사 협력을 해오던 사이였다. 1933년 프랑스 및 독일에서 도입한 37mm 대전차포를 탑재해 T-26의 화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단일포탑에 45mm 포를 장착한 후기형 T-26.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하지만 같은 해 소련을 극도로 혐오한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양국 관계는 적대적으로 변했고 독일과 무기 거래도 끊겼다. 이에 소련은 서둘러 개발한 국산 45mm 포를 T-26에 장착했는데 독일제 37mm 포와 위력의 차이는 없다. 소련(러시아)은 지금도 포와 관련된 기술이 뒤져 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경을 늘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새로운 포탑은 제2차 대전 초기에 활약한 BT-5 전차, BA-3, BA-6 장갑차 등에도 탑재되었다.

1935년에 제작된 후기형은 차체를 리벳 대신 용접으로 연결하고 장갑을 늘렸으나 소련제 철강의 품질이 좋지 않아 원형인 빅커스 Mk. E보다 방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보다는 기동력을 중시한 경전차여서 방어력을 향상하는 데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T-26의 개발과 개량을 통해 터득한 기술은 이후 후속 전차 개발에 좋은 디딤돌이 되었다.


특징

T-26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기 양산형은 독립적으로 24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병렬로 부착했다. 이는 빅커스 Mk. E Mod. A를 그대로 따라 한 것으로 여러 목표를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의도였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아무리 경전차라도 경우에 따라 기갑전도 대비해야 했으므로 후기형에 와서 45mm 포로 환장해서 공격력을 향상시켰으나 이 또한 제2차 대전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T-26 mod 1933의 포탑 내부 구조.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45mm포도 화력이 부족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초기형의 장갑은 가장 두터운 곳이 15mm였는데 이는 150m 이내에서 7.62mm 철갑탄에도 관통당하는 수준이었다. 후기형은 장갑을 덧대거나 경사 장갑을 도입했지만 무게가 한정된 경전차다 보니 방어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는 없었다. T-26이 제2차 대전 발발 후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조기 퇴출된 이유도 바로 빈약한 방어력 때문이었다. 비단 이는 T-26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탄생한 경전차들 대부분의 문제점이었다.
전반적으로 성능이 부족한 전차였으나 소련은 T-26의 개발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을 발판으로 이후 무기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전차들을 만들어 냈다. < 출처 : Public Domain >
90마력 4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은 빅커스 Mk. E에 탑재된 암스트롱 시들리 엔진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다. 아무래도 원본에 비해 성능과 내구성이 떨어져서 여름에 과열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서스펜션, 구동축, 궤도 등은 소련의 거친 환경에 적합하도록 개량이 이루어졌다. T-26의 장점은 전반적으로 구조가 단순해서 양산이 쉽고 조종과 정비가 편리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많은 파생 장비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운용 현황

T-26은 1931년부터 1941년까지 총 10,300여 대가 생산되어 제2차 대전 초기에 BT와 함께 소련의 주력 전차 역할을 담당했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 당시 50대를 공화국군에 지원하면서 최초의 실전을 경험했다. 전차 운용법이나 작전 능력이 부족해서 애를 먹기도 했지만 화력에서 반군에 지원된 독일의 1호 전차를 압도한 반면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이 운용 중인 T-26 < 출처 : Public Domain >
1938년 만주, 몽골 일대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국지전에서 활약했다. 일본 관동군을 제압하는데 앞장섰으나 빈약한 방어력은 여전히 골칫거리였다. 1939년 폴란드 침공전은 단지 무주공산을 점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니 교전 사례가 없다시피 했다. 곧이어 벌어진 핀란드 침공전에서 핀란드군의 매복 기습에 걸려 참혹할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놀란 소련은 결국 T-26의 양산을 중단했다.
1939년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에게 노획된 T-26. 예상 밖의 참혹한 결과 놀란 소련은 곧바로 생산을 종료시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서둘러 T-34의 양산에 들어갔지만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했을 때 여전히 T-26이 소련의 주력이었다. 쉽게 격파당하고 기동 중에 고장 나 싸워보지도 못하고 유기된 경우도 많았다. 부품이 부족하고 정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장거리 주행도 어려울 만큼 생각보다 성능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T-34가 대량 배치되면서 2선 급으로 물러났고 이란 침공전, 만주 침공전 같은 2선 작전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핀란드가 노획하여 운용하던 T-26 전차를 다시 소련군이 노획한 후 확인하고 있다. < 출처: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T-26 mod 1931 : 쌍포신. 7.62mm DT 기관총

T-26 mod 1931 < 출처 : Public Domain >
T-26 mod 1932 : 쌍포신 37mm 포 + 7.62mm DT 기관총
T-26 mod 1932 < 출처 : Public Domain >
T-26TU : T-26 mod 1932 기반 지휘전차
T-26TU < 출처 : (cc) Владимир Саппинен at Wikipedia.org >
T-26 mod 1933 : 단포신, 45mm 20K 전차포
 
T-26 mod 1938 : 조준 장치, 포탑 개량형
T-26 mod 1938 < 출처 : Public Domain >
T-26 mod 1939 (T-26-1) : 일부 경사 장갑을 채택한 방어력 개량형
 
T-26 screened (T-26E) : 증가 장갑을 추가한 방어력 개량형
T-26E < 출처 : Public Domain >
A-43 포탑형 T-26 : 76mm 연대포 장착형
A-43 포탑형 T-26 < 출처 : Public Domain >
T-26-4 (T-26A) : 76.2mm KT 전차포 장착형
 
KhT-26 (OT-26) : T-26 mod 1931 기반 화염방사차
OT-26 < 출처 : Public Domain >
KhT-130 (OT-130) : T-26 mod 1933 기반 화염방사차
 
KhT-133 (OT-133) : T-26 mod 1939 기반 화염방사차
 
ST-26 : 가교차량
ST-26 < 출처 : Public Domain >
UST-26 : ST-26 개량형
 
SU-1 : 76.2mm 연대포 장착 자주포
 
AT-1 : 76.2mm PS-3 전차포 장착 자주포
AT-1 < Public Domain >
SU-5-1 : 76.2mm 사단포 장착 자주포
SU-5-1 < 출처 : Public Domain >
SU-5-2 : 122mm 곡사포 장착 자주포
 
SU-5-3 : 152.4mm 박격포 장착 자주포
 
SU-6 : 76.2mm 3K 대공포 장착 자주포
SU-6 < 출처 : Public Domain >
SU-T-26 (SU-26 ) : 37mm 포 장착 자주포
 
TR-4 : 병력수송장갑차
 
TR-26 : 병력수송장갑차
 
TR4-1 : 탄약운반차
 
TB-26 : 탄약운반차
 
T-26Ts : 연료운반차
 
TTs-26 : 연료운반차
 
TN : T-26T 기반 정찰차
 
BSNP : TN 기반 개량 정찰차
BSNP < 출처 : Public Domain >
T-26FT : T-26 mod. 1933 기반 정찰차
 
T-26T : 야포 견인차
T-26T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 업체 : 레닌그라드 제174공장
중량 : 9.6톤
전장 : 4.65m
전폭 : 2.44m
전고 : 2.24m
장갑 : 6~15mm
무장 : 45mm 20K mod. 1932-34 전차포×1
          7.62mm DT 기관총×1
엔진 : 4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 90마력(67kW)
추력 대비 중량 : 9.38마력/톤
서스펜션 : 판스프링
항속 거리 : 220km
최고 속도: 31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