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그라 소총
프랑스 군에 금속탄피 시대를 열어준 소총
  • 홍희범
  • 입력 : 2020.05.06 08:44
    그라 1874년형 보병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라 1874년형 보병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보불 전쟁, 즉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치른 1870~1871년의 전쟁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패자인 프랑스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폴레옹 시대에 유럽의 패자(覇者)로 군림했다가 그 조카인 나폴레옹 3세의 시대 -나폴레옹 1세 치하로부터 불과 50년 조금 넘게 지난 뒤에- 에 패자(敗者)가 되어버린 프랑스 육군은 모든 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는데, 그 중에는 소총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소총은 프로이센군보다 우수했다. 1866년형 샤스포 소총은 종이 탄피를 쓴다는 점만 빼면 거의 당대 유럽 최고의 군용 소총 중 하나였고, 그 단점조차 상대방인 독일의 드라이제에 비하면 더 진보했다는 점 덕분에 꽤 상쇄됐다. 프랑스군의 패전은 최소한 소총의 성능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다.

    프랑스의 샤스포 소총은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보다 우수했지만 전쟁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의 샤스포 소총은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보다 우수했지만 전쟁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샤스포는 성능과 무관하게 1866년에 등장한 그 시점에서 이미 ‘단기 강판’이 예정된 비운의 소총이었다. 종이 탄피를 쓴다는 점 때문이었다. 1866년이면 이미 미국의 남북전쟁을 통해 금속 탄피의 대량 사용이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뒤이고, 영국과 미국 등은 제식 탄약과 소총을 금속 탄피식 탄약을 사용하는 후장식 소총으로 바꾸려고 시도 중이거나 막 바꾸는 참이었다.

    금속 탄피는 결코 값싸지 않은 금속 자원을 대량으로 소모한다는 것과 무겁다는 것, 발사 후 탄피 배출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탄피보다 우월하다. 당장 종이 탄피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약실 밀폐가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것만으로도 후장식 총기의 골칫거리 하나를 순식간에 해결했다. 게다가 탄약의 보관도 훨씬 용이했다. 충격과 습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9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의 기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수작업이 요구되는 종이 탄피보다 오히려 생산성이 더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다.

    프랑스군 최초의 금속탄피 후장식 소총인 타바티에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군 최초의 금속탄피 후장식 소총인 타바티에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심지어 프랑스 자신도 샤스포와 함께 금속 탄피를 쓰는 후장식 소총을 배치 중이었다. 1867년부터 프랑스군에서 운용이 시작된 타바티에(Tabatière) 소총이었다. 기존에 쓰던 전장식 미니에 소총들을 개조한 이 총은 영국의 스나이더-엔필드와 매우 흡사했지만 프랑스가 영국에 특허료를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약간 구조를 바꾼 것이었다. 이 총에 바로 금속 탄피식 탄약을 채택했던 것이다.

    타바티에는 사실 샤스포에 비하면 많은 면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금속 탄피를 채택했다 해도 현대적인 볼트액션에 비하면 억지로 후장총으로 전장총을 개조한 구조상의 한계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프랑스군은 보불전쟁 시점에서 샤스포를 1선 부대에, 타바티에는 2선급 부대에 지급했다. 탄약의 호환성은 물론 없었다.

    마우저 1871 소총의 등장으로 프랑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출처: Public Domain>
    마우저 1871 소총의 등장으로 프랑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출처: Public Domain>


    그라 소총의 발명자인 바질 그라. 추후 장군으로 진급하여 프랑스 군 전체의 화기제작 총책임을 맡았다. <출처: Public Domain>
    그라 소총의 발명자인 바질 그라. 추후 장군으로 진급하여 프랑스 군 전체의 화기제작 총책임을 맡았다. <출처: Public Domain>

    실제로 1872년에 프랑스 육군은 종이 탄피를 센터파이어식 금속 탄피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문제는 그걸 쓰는 총이었다. 샤스포는 그 시점에서 아직도 생산 중이었고 채택된 지 6년밖에 안된 새 총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까워서 종이 탄피를 고집하다 바로 옆에 도사리는 거대한 적국인 독일 제국에게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해결책은 있었다. 육군 대위 바질 그라 (Basil Gras, 1836~1901)가 샤스포를 금속 탄피식 소총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에 쌓아둔 총 그 자체와 기존의 생산 시설 상당 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었고, 그의 제안이 결국 1874년 7월에 1874년형 그라 소총(Fusil Gras mle 1874)으로 프랑스군의 새로운(?) 제식 소총이 된다.


    특징

    그라 소총은 샤스포에서 노리쇠와 총열만 바꾸는 것으로 탄생할 수 있는 총이었다. 그만큼 샤스포와 유사하지만, 새로운 센터파이어식 금속 탄피를 채택하면서 보다 현대적인 볼트액션 구조를 도입하게 된다.

    그라 1874년형 보병총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그라 1874년형 보병총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격발 준비였다. 기존의 샤스포는 노리쇠를 조작한 뒤 공이도 따로 후퇴시켜야 격발 준비가 됐다. 우리가 아는 볼트액션 구조는 노리쇠를 앞뒤로 왕복하기만 하면 공이는 자동으로 후퇴해 격발 준비가 되므로 사수는 그야말로 노리쇠 조작과 방아쇠 당기는 데만 집중하면 됐다. 그런데 샤스포는 노리쇠를 후퇴시키기 전에 공이를 뒤로 당기는 조작이 추가되는 조금 번거로운 구조였다.

    그라 소총의 기관부 개방. 탄피 배출구로 탄 한 발을 넣고 노리쇠를 닫으면 된다. <출처: International Military Antiques>
    그라 소총의 기관부 개방. 탄피 배출구로 탄 한 발을 넣고 노리쇠를 닫으면 된다. <출처: International Military Antiques>

    이렇게 한 이유는 안전 문제였다. 샤스포를 설계한 기술진들도 공이를 노리쇠 조작과 연동시켜 자동으로 코킹(후퇴) 시키는 게 더 편하고 빠른 것은 알았다. 하지만 탄피가 종이인데다 뇌관이 드라이제와 달리 탄피 바깥쪽에 있는 샤스포의 탄약에서는 자칫 이런 구조가 격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그 때문에 공이를 따로 당기는 조작이 추가된 것이다.

    그라 소총의 약실이 개방된 모습 <출처: International Military Antiques>
    그라 소총의 약실이 개방된 모습 <출처: International Military Antiques>

    하지만 그라 소총에서는 센터파이어식 금속 탄피의 도입으로 그럴 걱정이 사실상 사라졌고, 그 때문에 노리쇠를 후퇴시키기 위해 장전손잡이를 들어 올릴 때 캠 작용에 의해 공이가 후퇴하면서 방아쇠에 걸리는 방식, 즉 영어로 콕 온 오프닝(Cock on Opening) 구조가 도입된 것이다.

    그라 소총의 기관부 클로즈업. 처음부터 샤스포를 개조해서 만들 수 있게 만든 만큼 샤스포와 매우 비슷하다. <출처: Public Domain>
    그라 소총의 기관부 클로즈업. 처음부터 샤스포를 개조해서 만들 수 있게 만든 만큼 샤스포와 매우 비슷하다. <출처: Public Domain>

    또 다른 차이는 탄피 배출 구조의 추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샤스포는 종이 탄피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피는 쏘는 즉시 타 없어진다(일종의 무탄피 구조). 탄피 배출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금속 탄피를 쓰는 그라는 탄피 배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갈퀴와 차개 등의 관련 부속들이 더해졌고 그에 맞춰 노리쇠의 구조와 형태도 변했다.

    그라 소총에 8연발 탄창을 장착한 버전. 레벨의 등장으로 인해 대량 보급은 되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라 소총에 8연발 탄창을 장착한 버전. 레벨의 등장으로 인해 대량 보급은 되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기본적으로 그라는 샤스포의 목재 스톡과 격발 기구는 그대로 쓰면서 노리쇠만 바꾸면 됐지만 새 탄약의 등장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총열도 바꿔야 했다. 하지만 구경이 11mm로 똑같기 때문에 초기에는 새로 총열을 만든 것 말고도 기존 총열 중 상태가 좋은 것에는 약실을 개조해서 기존 총열에 새 탄약을 끼울 수 있게 만든 것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군의 그라 소총 대다수는 기존의 것을 개조하는 것보다는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래도 기존 샤스포 소총의 생산 설비 상당수를 쉽게 응용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소총을 예상외의 단기간에 빠르게 납품하는 게 가능했다.

    그라 소총에 8연발 탄창을 장착한 버전. 레벨의 등장으로 인해 대량 보급은 되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자체가 원래 잘 설계된 총이었기에 그라 역시 상당한 내구성과 신뢰성(당시 기준)을 자랑했다. 개발 당시의 테스트 과정도 2,500발 사격이라는, 당시로는 상당한 수준의 인증 사격 과정을 거쳤고 그 사이에 청소는 500발에 한 번씩만 했다. 지금 기준으로 500발은 테스트 치고는 너무 자주 하는 것이지만 흑색 화약으로 인해 총열과 기관부의 오염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될 정도로 쌓이던 시대에는 상당히 가혹한 것이었다.

    (좌) 그라 소총 탄약. 샤스포용 탄약보다 더 탄속이 빠르고 명중률이 높아졌다. / (우)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11mm 소이탄. 그라 소총탄의 대구경을 살려 만든 버전으로, 이 탄을 위해 개조된 오치키스(Hotchkiss) 기관총에서 발사됐다. 1차 대전 중 사용된 포병용 관측기구 격추를 위해 개발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좌) 그라 소총 탄약. 샤스포용 탄약보다 더 탄속이 빠르고 명중률이 높아졌다. / (우)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11mm 소이탄. 그라 소총탄의 대구경을 살려 만든 버전으로, 이 탄을 위해 개조된 오치키스(Hotchkiss) 기관총에서 발사됐다. 1차 대전 중 사용된 포병용 관측기구 격추를 위해 개발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심지어 내구성 테스트 때는 일부러 총열 안에 6발의 탄두를 우겨넣고 35g의 흑색 화약을 격발시켜 총의 상태가 어떤지 지켜봤다. 이러면 총이 당연히 못 버티지만, 총이 안 터지나 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로 파괴되는지를 보자는 것이었다. 참고로 원래 그라용 실탄의 화약 정량은 겨우 5.25g이다. 그런데 테스트한 총들 중 하나는 폭발하지 않고 버텼다.

    (좌) 그라 소총 탄약. 샤스포용 탄약보다 더 탄속이 빠르고 명중률이 높아졌다. / (우)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11mm 소이탄. 그라 소총탄의 대구경을 살려 만든 버전으로, 이 탄을 위해 개조된 오치키스(Hotchkiss) 기관총에서 발사됐다. 1차 대전 중 사용된 포병용 관측기구 격추를 위해 개발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사격 성능은 기존의 샤스포와 비슷하지만 좀 더 진보된 수준이었다. 샤스포 자체가 당대 유럽의 군용 소총들 중 매우 우수한 축에 들었지만, 금속 탄피의 도입은 탄속과 사거리를 그보다 더 늘릴 수 있었다. 게다가 금속 탄피 도입과 함께 품질관리가 더 개선되면서 전체적인 정밀도도 높아졌다. 물론 이 시기에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스만 유독 개선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주변 강대국들과 비교해 손색없는 수준은 유지할 수 있었다.


    운용과 보급

    그라 소총은 1875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었고, 1884년까지 생산이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보유한 3개 조병창(샤텔로, 생테티엔, 튈)에서 거의 220만 정의 신규 생산이 이뤄졌다. 여기에 더해 기존의 샤스포도 130만 정 이상 -사실상 전부- 그라로 개조되었다. 합계 350만 정의 그라가 생산된 것으로, 덕분에 사실상 프랑스군 전부가 이 총으로 무장할 수 있었지만 해군은 예외였다. 샤스포를 그냥 사용한 것이다.

    프랑스군은 기존의 샤스포의 개조분을 더하여 모두 350만 정의 그라 소총을 확보했다.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군은 기존의 샤스포의 개조분을 더하여 모두 350만 정의 그라 소총을 확보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총이 1866년에 나왔다면 프랑스는 그야말로 유럽 군용 소총의 최정상에 섰겠지만, 1874년이면 다른 열강들과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었다. 이미 독일은 마우저 M71, 영국은 마티니-헨리를 도입해 운용하던 시점이니 말이다. 러시아도 미국으로부터 버든 라이플을 도입했고 다른 나라들 역시 앞다퉈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후장식 소총을 도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라가 당시 기준으로 가장 앞선 단 하나의 총은 아닐지언정 앞선 총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총이 프랑스군의 일선 제식 소총이던 시절은 프랑스 본국이 가장 조용하던 시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프랑스 본국에 전쟁이 없다고 세상이 잠잠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그라 소총은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 및 반란 진압에 열심히 사용됐고, 당연히 프랑스 외인부대에서도 자주 불을 뿜었다. 단 12년의 제식 운용 기간 중에 무려 350만 정이 생산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11mm 그라 소이탄으로 만들어진 기관총 탄약띠 <출처: Public Domain>
    11mm 그라 소이탄으로 만들어진 기관총 탄약띠 <출처: Public Domain>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지는 당시 영국 다음인 세계 2위였고, 동쪽에는 베트남, 아래로는 마다가스카르, 서쪽으로는 중남미 지역까지 뻗어있었다. 덕분에 그라는 아주 많은 나라들에 퍼지게 되었고, 베트남에서는 카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프랑스 자체적으로도 수명이 매우 길었다. 그라 소총이 일선 제식에 있던 기간은 12년에 불과하지만, 프랑스는 이 총 중 상당수를 안 버리고 있었고 특히 식민지에서는 1차 세계대전까지도 치안 유지 등의 목적으로 어떻게든 실용 총기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량으로 쌓여있던 그라는 1차 세계대전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여러 자루의 그라 소총 기관부를 떼어 만든 다연발 박격포. 공포탄을 이용해 사제 포탄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1차 대전 당시의 급조품이다. <출처: Public Domain>
    여러 자루의 그라 소총 기관부를 떼어 만든 다연발 박격포. 공포탄을 이용해 사제 포탄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1차 대전 당시의 급조품이다. <출처: Public Domain>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에 프랑스군은 본토에 아직 70만 정의 그라 소총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총들 중 상당수는 당시의 제식탄이던 8mm 르벨 탄에 맞춰 개조되어 후방용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개조조차 되지 않은 총들도 식민지나 후방 경비 등의 용도에 쓰기 위해 꺼내져 사용되었다. 심지어 일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사용된 기록이 있을 정도다. 또 일부는 조명탄 발사용으로 개조되어 1차 세계대전 당시 최전선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라가 실제 생산되던 기간(1870~1880년대)에는 수출에도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그리스와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가 이 총을 수입해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라 소총의 잉여품을 수입해 간 나라는 많다. 러시아와 그리스는 1차 세계대전 중에도 프랑스로부터 다수의 그라 소총을 넘겨받았고, 특히 러시아는 무려 45만 정을 넘겨받아 운용했다.

    러시아도 그라 소총을 무려 45만 정이나 수입하여 운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러시아도 그라 소총을 무려 45만 정이나 수입하여 운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발칸반도 지역에서도 그라 소총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군사 원조로 넘겨받은 물량이 운용됐고, 에티오피아 등의 국가에도 프랑스가 군사 원조 혹은 잉여품 수출 등으로 상당수가 넘어갔다. 덕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탄약 생산이 이뤄졌고 현재까지도 소말리아 등의 지역에서 이 총을 구경할 수 있다.

    프랑스는 일본에도 이 총을 판매하느라 제법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일본은 자국산 소총의 개발을 추진 중이었고, 결국 일본 최초의 국산 소총인 무라타 소총은 그라 소총의 구조를 어느 정도 참고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그라의 대량 구매는 이뤄지지 못했다.

    러시아도 그라 소총을 무려 45만 정이나 수입하여 운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베리에이션

    1874년형 보병총: 가장 기본형. 길이 1.3m.

    그라 1874년형 보병총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그라 1874년형 보병총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1874년형 기병총: 길이가 10cm 정도 짧다(총열 길이 72cm).

    그라 1874년형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그라 1874년형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1874년형 국가헌병대용 기병총: 기병총과 사실상 같은 총이지만 착검 가능. 국가헌병대는 군 소속이지만 지방의 치안 유지에 동원되는 준 경찰 조직으로, 말을 이용해 이동하면서도 필요하면 폭동 진압 등을 이유로 착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착검된 그라 국가헌병대용 카빈. 기병대용 카빈은 국가헌병대용과 거의 같지만 착검이 되지 않는다.
    착검된 그라 국가헌병대용 카빈. 기병대용 카빈은 국가헌병대용과 거의 같지만 착검이 되지 않는다.

    1874년형 포병용 무스퀘통(Mousqueton): 총열 길이를 51cm로 줄인 단총. 샤스포와 마찬가지로 포병을 위해 만들어진 단축형 버전이다.

    그라 무스퀘통. 포병대용의 단총 <출처: Public Domain>
    그라 무스퀘통. 포병대용의 단총 <출처: Public Domain>

    Mle1866-74: 기존의 샤스포를 개조해 그라로 바꾼 것.
     
    M14: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그라를 8mm 르벨탄에 맞춰 총열을 바꾼 것. 원래 노후화된 소총을 더 강력한 압력의 탄약에 맞게 억지로 개조한 셈이라 오래 쓰는 것은 무리이지만 어차피 발사 탄수가 거의 없는 후방용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안심하기 힘든 만큼 현대의 컬렉터들에게는 이 총을 쏘지 말라는 권고가 내려지는 게 보통이다.

    그라 M14. 8mm 르벨탄약을 쓰게 개조된 버전이다. <출처: Public Domain>
    그라 M14. 8mm 르벨탄약을 쓰게 개조된 버전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제원(기본형)

    길이 : 1.3m
    무게 : 4.2kg
    총열 길이 : 79.5cm
    사용탄 : 11x59mm R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그라 소총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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